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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4: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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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류영모 목사 |
참고 : | 2010.4.18.(저녁) 출애굽기 강해 ⑥ |
출4:1-17
모세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
I. 열등감: 만인 공통의 병
리더십 학자 죤 맥스웰이 어느날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복면 쓴 사람이 자신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서 있었습니다. 계속 진로를 방해하고 괴롭히길래 복면을 벗겨보니 바로 자기 자신이더랍니다. 바로 이 복면이 열등감이요 내 인생의 성장과 진로의 방해꾼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열등감! 만인 공통지병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 98% 정도는 모두다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얘기입니다. 나머지 2%도 정도의 문제이지 열등감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나는 열등감이 아니라 오히려 우월감이 있는데 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월감이란 것도 열등감의 공격적인 형태일 뿐입니다.
열등감이 심한 사람은 사람들을 흑백으로 구분해서 자기와 다른 사람을 적으로 간주합니다. 혹시 여러분 마음속에 사람들을 평가하는 흑백구분법이 있습니까? 키 큰사람 키 작은 사람,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예쁜 사람 안 예쁜 사람, 돈이 많은 사람 없는 사람 - 바로 그것이 자신의 열등감 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에겐 쉽게 마음이 가고 편하게 다가 갈 수 있지만, 반대 부류의 사람들에겐 적대감 혹은 불편한 마음을 느낍니다.
남편을 미워하고 심지어 적대감을 가지고 살던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자기 안에 뭔가 모르는 분노가 늘 자리잡고 있었고 가끔은 불안증, 심장의 고통까지 느껴 병원에 가보지만 원인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신경증이라는 진단만 받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인카운터 수양회에 참석했다가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어린시절 받았던 거절감을 보게 된 것입니다. 남자를 기다리던 집에서 딸로 태어나면서 그는 거절감을 쌓게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그는 남자처럼 행동하고 남자를 이기기 위해 억척스럽게 공부를 했고 「남자 그리고 여자라는 이분법」을 갖게 된 것입니다. 「남자는 나쁘고 여자는 억울하다」 그래서 남편조차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적대감의 대상 - 남자일 뿐이었습니다. 어쩌다 남편이라는 이유로 “여자, 아내” 운운하는 날이면 가정은 전쟁터로 변합니다. 그는 인카운터 수양회에서 이 거절감, 상처, 여자 콤플렉스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열등감이 무엇인가?
“자신을 남보다 못한 무가치한 인간으로 낮추어 평가하는 감정이나 삶의 태도”입니다.어릴 때부터 “개” 운운하는 욕을 들으며 자란 한 사람이 정신병원에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래. 요즘 어떤 생각이 자주드나요?” 「제가 진짜 개처럼 생각이 됩니다.」 “그래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나요?” 「강아지 때부터요.」
우리는 죄악된 땅에서 태어나서 악한 세상에 살다보니 자존감을 잃고 말았습니다.
열등감! 만인간의 약점이요 불치의 병입니다. 잘생긴 사람도 열등감이 있습니다. 여러분, 대게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 사람이 못생긴 사람이 아니고 그만하면 괜찮은 사람이 성형수술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똑똑한 사람도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요. 평소 자신만만하고 완벽해 보이던 사람이 어떤 문제나 실패를 만나게 되면 더 의기소침하고 열등감 증세를 보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 바보가 자살하는 것 보셨습니까? 그만하면 괜찮은데 열등감이 병이 되어 극단적인 결단을 내린단 말이지요.
II. 열등감의 가면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 열등의식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작다’고 하는 것입니다. 땅도 작고 사람도 크지 못해요.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열등의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합니다. 자기 나라 땅을 이렇게 몇 키로, 몇 리로 계산한 나라가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작으니까 어지간하면 거기다 대자를 갖다 붙여야 됩니다. 한강에 있는 다리는 무조건 대교입니다. 한강대교 성수대교 잠실대교. 여러분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유명한 다리를 금문대교라고 합니까? 어머어머한 다리도 그냥 금문교지 금문대교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이름이 뭡니까? 대한민국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월드컵 응원할 때 보면 대~ 한민국이라고 대자에 엑센트를 붙입니다.
그러면 교회안에는 열등감이 없을까요? 예수를 믿으면 열등감이 깨끗이 사라지게 되던가요? 교회는 어쩌면 열등감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교회안에 와서도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 쓰고 다니는 가면들이 있습니다.
① “감투 가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직분을 섬김의 도구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이것을 계급으로 생각하는 것이 감투가면 입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직분을 얻게 되면 그때부터 목에 힘을 주기 시작합니다. 이게 모두다 열등감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해서 생긴 것들입니다.
② “큰교회 가면”이 있습니다. 큰 교회 그늘에 숨어사는 신앙생활입니다. 큰 교회 교인이 되면 무책임해져도 되거든요. 한 열 명쯤 모이면 예배에 누가 안 나왔는지 다 알거든요. 그런데 우리 교회만 하더라도 예배에 누가 나왔는지 누가 안 나왔는지 일일이 알 수도 없고, 또 안 나왔다고 해서 나무라는 사람도 없습니다. 교회 그늘 밑에 숨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치 자기의 신앙이 큰 것으로 착각합니다. 큰 교회에 몸을 실은 것 하나만으로도 자기가 그만한 신앙인이라고 착각하는 거지요.
③ “예언자 가면”이 있습니다. 자기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썩었다고. 입만 벌리면 한국교회 욕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입만 벌리면 다른 사람 욕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이게 다 예언자 가면입니다.
III. 열등감을 십자가 밑으로
이 시간 자신의 열등감을 발견하고 그것을 십자가 밑으로 가져가십시다. 그리고 그분께 맡겨버리십시다. 외모 열등감, 직업 열등감, 학벌 열등감, 경제적 열등감, 모두 십자가 밑으로 가져오세요. 맡겨버리세요. 이것이 즐거운 교환의 시작입니다.
십자가 밑에 맡기고 살아야 될 그 열등감을 내가 끌어안고 살면 내 안에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가장 좋아해야 할 자기 자신을 자기가 가장 싫어하게 됩니다. 남들이 자신을 무시하면 몹시 화를 내면서도 사실은 자기가 자기를 더 무시하고 멸시합니다. 자기 인생길에 최고 후원자가 되어야 할 자신이 가장 큰 방해꾼이 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진로를 방해하면 몹시 분노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이 자신의 진로를 가로막고 서있습니다. 이것이 열등감 가진 사람의 모순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나를 내가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나를 만든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계획을 불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운행 섭리를 원망하는 것입니다. 열등감을 십자가 밑에 던져버리고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열등감은 오히려 축복의 기회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을 씁니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해야 됩니다. 세상에서는 건강한 사람을 씁니다. 질병과 장애가 없어야 됩니다. 세상에서는 인물이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억지로 포장이라도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전과자를 쓰지 않습니다.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열등감을 가진 사람,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 모두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가 해결해 주리라. 오늘 설교 제목은 「모세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 우리 예수님을 만나 열등감을 축복의 기회로, 성공의 기회로, 자기 성숙의 기회로 삼은 많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루즈벨트는 소아마비를 앓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많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경제 대통령으로, 세계 경제 대공황을 극복한 대통령으로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를 장애인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를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할 뿐입니다.
베토벤은 청각장애자였습니다. 작곡가 중에 작곡가가 아닙니까? 아무도 베토벤을 청각장애자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작곡가로 기억할 뿐입니다.아브라함 링컨, 아무도 그를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무학자로 기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남북통일을 이룬, 흑인을 해방시킨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할 뿐입니다.죤 번연을 감옥에서 평생을 보냈던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천로역정의 저자로 기억할 뿐입니다. 아인슈타인, 에디슨을 지진아나 무학자로 기억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최대의 과학자로 발명가로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열등한 조건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이 시간 이 위대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십시다.
즐거운 교환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IV. 본문 : 모세
모세는 성경 상 수많은 인물 가운데 최고의 인물입니다. 그도 한때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헤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애굽 궁전에 살았습니다. 어느 날 주먹한 번 잘못 휘둘러서 살인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광야로 도망을 가지요. 40년이 지나도록 경제적인 자립을 할 수 없어서 장인 집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여 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대답합니다. 출애굽기 3장 11절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내가 누구이기에?” 이 한마디 말속에 모세의 열등감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출신, 배경부터가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그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3:12) 네가 누구냐고?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는 소중한 존재이니라. “전능한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이게 얼마나 우리의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이 됩니까?
두 번째 모세의 변명은 “누가 나 같은 사람을 믿고 따라 오겠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다시 대답하십니다. “스스로 있는 자 그가 너를 보냈다 하라!” 나는 내가 택한 자를 보낸다. 내가 보낸 자는 내 일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세 번째 열등의식이 출애굽기 4장 1절에 나옵니다. 저들이 나를 듣지 않고 믿지도 않을 것입니다. 내게 무슨 능력이 있다고요. 그 때 지팡이를 바꾸어 뱀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너는 지팡이 같은 존재다. 그러나 내가 너를 붙들면 홍해가 갈라지게 될 것이다. 반석이 터져 생수가 쏟아지게 될 것이다. 하늘이 열려 만나가 내려지게 될 것이다.”
모세의 네 번째 변명이 오늘 본문입니다.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자라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입니다” 지도자가 무능하다고 하는 것, 지도자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 결정적인 약점일 수 있지요. 열등감 가질 만하지요.
그러나 하나님 뭐라고 말씀합니까? 입은 누가 만들었느냐. 그 입에 내가 능력을 부어 주겠다. 할렐루야. 그리고 아론이 말 잘하지 않느냐. 동서남북에서 너를 돕는 사람들을 보내주겠다. 네가 가진 것 없더라도 하나님이 사람 보내서 그 일을 감당하게 해 주겠다.
그것도 모자라 모세는 다시 변명합니다. 13절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참 어지간히 변명도 많은 열등감의 사나이입니다. 내가 하나님 같으면 “그래 관둬라. 너 아니라도 얼마든지 쓸 사람 있다. 한 두 마디 하면 알아들어야지.” 당장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지 않아요.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모세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한번 선택하면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 손을 묶어서라도 끌고 가시는 분이예요. 내 발을 꺾어서라도 하나님은 끌고 가시는 분이예요. 하나님의 선택은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순종이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성경에 사울이란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탁월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열등감을 이기지 못하여 몰락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십자가를 만나 즐거운 교환을 맛보고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첫 번째 사울은 구약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입니다. 그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외모와 훤칠한 키, 그리고 최고의 권력을 누리며 백성들의 추앙을 받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린 다윗 앞에 열등감을 이기지 못해 시기, 질투로 시간과 능력을 모두 낭비하고 왕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을 상실하고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합니다.
두 번째 사울은 신약의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큰 키 잘 생긴 얼굴도 아니었고 몸이 건강하지도 못했습니다. 걸핏하면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곤 했습니다. 그러는 그가 예수 때문에 늘 행복했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신적 교환, 즐거운 교환을 외치고 다녔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여러분 모두 다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V. 즐거운 교환: 열등감을 자존감으로.
1. 하나님은 참 이상한 교환을 즐기시는 분이십니다. 내 인생의 쓰레기 열등감을 받아 가시고 높은 자존감을 주십니다. 십자가는 즐거운 교환의 시장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약점과 열등감을 들고 와 긍정적 인생관, 아름다운 자존감을 사 가지고 가는 곳이 십자가 장터입니다.
교회는 즐거운 교환을 알려 주는 곳입니다. 이것이 복된 소식, 복음입니다. 목사는 즐거운 교환의 중매쟁이 - 중보자입니다. 성도들에게 인생의 쓰레기를 알려 주고 그것을 교환하는 장터 - 십자가를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쓰레기 받아 가시고 보화를 주시며 마냥 즐거워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려주는 즐거운 교환의 증거자입니다.
즐거운 교환을 경험하게 되면 내 안에 하나님의 성품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생기게 되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되고, 하지 못하던 말을 하게 됩니다. 열등감 대신 성공적인 자화상이 생기게 됩니다.
예수 앞에 왔을 때 주님은 갈대처럼 흔들이는 베드로를 반석이라 불러 주십니다. 시몬! 갈대 같은 존재가 베드로! 반석 같은 존재로 바뀌어 집니다. 걸핏하면 넘어지고 깨지고 망가지던 존재가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반석이 되더란 말이지요. 죄를 먹고 마시는 창녀가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성녀가 되는 거예요. 나도 성자가 될 수 있다는 자아의식의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십자가를 통하여 즐거운 교환, 자존감의 혁명을 경험하게 되면 지금까지 들리지 않던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내 내면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①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습3:17)
②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27:10)
③ 너는 내게 중요하고도 소중한 사람이다.
④ 너는 나의 사랑받는 자녀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
⑤ 나는 너의 필요를 채울 것이며 너는 내게 아주 필요한 사람이다.
⑥ 너는 내게 절대적 가치가 있는 천국의 보물이다. 할렐루야!
이 내면의 음성을 자신에게도 늘 말하고 사탄에게도 선포하십시오. 이웃에게도 이 음성을 선언하십시오. 자나 깨나 항상.
2. 새로운 자아를 발견한 사람, 열등감을 극복한 사람, 자아의식에 혁명이 일어난 사람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열등 조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열등감을 건설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이미 주님이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열등한 조건이 있다는 것 때문에 절대로 나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내게 약점이 있다고 나를 싫어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내모습 이대로 주님은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열등감을 높은 자존감으로 즐거운 교환을 경험하고 내 모습 이 대로를 받아들이고 나면 내게 주어진 환경 또한 있는 모습 그대로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내 남편 내 아내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던 사람이 내 남편이 최고 내 아내가 최고 -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자식을 키우면서도 열등의식을 이기지 못하여 자신이 이루지 못한 한을 풀 듯 한풀이식 교육을 시키는 것 - 그것도 열등감입니다. 그러던 사람이 즐거운 교환을 경험하고 나면 내 자녀의 장점을 이해하고 그 모습 그대로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이렇게 좋은 교회에서도 교회의 약점과 허물만 보입니다. 그러던 그가 자존감을 회복하고 나면 내 교회 최고를 부르짖고 다닙니다.
3. 높은 자존감을 회복한 사람 - 그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헛된 몸부림을 하지 않습니다.
비교의식이란 하나님 나라엔 결코 없는 개념입니다. 비교란 원래 같은 것끼리 이것과 저것을 비교하는 거지요. 하지만 인간은 처음부터 각 사람이 다르게 만들어 졌기에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호수공원의 벚꽃과 물속의 잉어를 비교해서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소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60억 인구 가운데 아니 이 땅에 왔다간 600억 인구 가운데 나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이게 바로 희소가치라고 하는 겁니다. 원래 상품의 가치 가운데 최고 가치가 희소가치입니다.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작품, 하나님의 걸작품, 우리 주님의 명작품이 나다! 여기에 우리의 자존감이 있습니다.
4. 내가 열등감의 노예인가 아니면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가를 평가하는 바로메타 하나가 있습니다. 나는 늘 비판적인 사람인가 아니면 늘 좋은 점을 보고 사건이나 남을 칭찬하는 사람인가를 보면 됩니다.
열등감이 심한 사람은 비판의식이 심하고 아무도 칭찬하지 못하고 아무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은 사실은 자신을 비판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그는 다른 사람을 비판함으로서 자신의 열등감을 덮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비판과 분별은 다릅니다. 비판이란 상대에 대해 정죄와 분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열등한 자신을 좋아할 수 없고 칭찬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도 진심으로 좋아할 수 없고 그의 좋은 점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서 흠을 찾아내는 비판의식이 습관처럼 되어버립니다. 비판이 습관처럼 된 사람은 자신도 행복하지 않고 그 주변의 사람들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의 입은 독을 퍼뜨리는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 칭찬하는 것을 아부라고 느낍니다. 심지어 굴욕감을 느껴 자존심 상해합니다.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보고 웃지를 못합니다. 타인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러던 그가 십자가 앞으로 열등감을 가지고 나아가 맡기고 자존감을 얻어 돌아오면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아 인정하고 칭찬할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사건의 좋은 점만 보입니다. “잘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얼굴이 온화하고 얼굴 모양이 부드러워집니다.
․늘 웃을 수 있어 여유가 생깁니다.
․자기를 용서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G12 컨퍼런스에 다녀가신 목사님들이 제게 “한소망교회 성도들은 참 밝아요. 자신감이 넘쳐요. 당당해요.”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기는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열등감을 축복으로 바꾼 뚜렷한 증거인 줄로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5. 열등감!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나의 참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믿음 안에서 자아인식의 혁명이 일어난 사람은 열등감을 오히려 축복으로 바꾸어 살아갑니다. 열등감을 성공으로 바꾸어 살아갑니다. 열등감을 성숙의 기회로 바꾸어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을 오히려 축복하는 기회로 바꾸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열등감을 바꾸어서 오히려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 된 사명으로 바꾸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열등감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나는 즐거운 교환의 또 다른 한 차원 - 열등감이 높은 자존감으로 바뀌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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