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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에게 호소하는 이스라엘인

출애굽기 이성희 목사............... 조회 수 1410 추천 수 0 2013.01.09 23: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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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5:15-18 
설교자 : 이성희 목사 
참고 : 2002년 07월 21일 연동교회 http://www.ydpc.org 

출5:15-18, 행25장10-12

바로에게 호소하는 이스라엘인  

 

자본주의는 그 근본이 힘의 논리입니다. 자본주의의 기초는 다윈이즘입니다. 흔히 말하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이론을 가지고 보면 이 세계는 정글법칙에 의해 좌우되고 이 세계 전체는 야수들이 사는 정글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힘으로는 경쟁이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천적 경쟁상실자들입니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교육을 받지 못한 환경에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진정한 자본주의가 이 땅에 꽃 피우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말하는 사랑이 있어야 하고 복지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15:1에는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강자가 약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 성경의 명령인데 강자가 약자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세상의 힘있는 사람들은 성경과는 상반된 삶을 삽니다.

 

계시록 6:15-16에는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고 합니다. 약자들의 울부짖음으로 강자들이 저주를 받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의 심판입니다.

 

매를 맞은 이스라엘의 패장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전에 바로에게 호소하였습니다. 바로는 그들의 말을 용납하지 않고 그들이 게을러서 제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휴가를 즐기려 한다고 하여 짚을 주지 않고 벽돌 수를 감하지 말고 생산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절망상태 빠지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5장에는 바울이 자신의 억울함을 가이사에게 호소합니다. 당시의 새로 부임한 총독 베스도는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고 합니다. 모세 당시에 강대국이었던 애굽의 바로에게 백성들은 호소합니다. 바울 당시에 강대국이었던 로마의 가이사에게 바울은 호소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의 권력에게 호소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 편이 아닙니다.

 

첫째, 이스라엘 패장들이 바로에게 나아갔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대신하여 패장들이 바로에게 갔습니다. 그들이 간 것은 호소하러 간 것입니다. 호소하다는 말은 히브리말로 '차아크'란 말인데 '부르짖다'는 뜻입니다. 패장들이 가서 바로에게 탄원한 것이 아니라 울부짖듯이 애원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약자의 울부짖음에 귀가 밝습니다. 과부와 고아의 소리에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십니다. 종들과 침략당한 자들의 부르짖음에 귀가 밝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의 소리에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패장들은 애굽의 앞잡이가 아니라 이스라엘 편이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패장들을 애굽의 앞잡이가 되고, 애굽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세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애굽의 편이 아니어서 애굽은 또 한번의 실패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아무리 자기들의 꾀로 하나님의 사람을 억압해도 하나님의 사람은 승리합니다.

 

시편 2:2을 보세요.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시편 2:1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여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적하는 것을 허사를 경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시편 2:4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자 웃으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세상의 임금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는 것을 비웃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패장들이 바로에게 나아간 것을 보면 당시에는 하급 관리들도 자유롭게 궁에 출입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스라엘 패장들에게는 대단한 모험이었습니다. 인도의 전설에 고양이를 두려워하는 쥐가 있었습니다. 마술사는 쥐를 고양이가 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개를 만났습니다. 마술사는 다시 고양이를 개가 되게 해주었습니다. 한때 쥐와 고양이였던 개는 잠시 안심했으나 곧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도 마술사는 개를 호랑이가 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 호랑이가 사냥꾼을 만났다고 투덜대며 찾아오자 마술사는 더 이상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마술사는 말했습니다. "너를 다시 쥐가 되게 해주마. 몸은 호랑이인데도 여전히 쥐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출애굽의 용기가 있어야 구원이 가능합니다. 마음도 호랑이여야 합니다.

 

둘째, 종들이 매를 맞는 것은 왕의 백성의 허물입니다.

 

이 말은 "당신이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인에게 불의(허물)를 행하나이다"라는 뜻입니다. 자기 백성에게 불의를 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산지가 400년이 지났습니다. 이미 그들은 애굽화 되었고, 애굽인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시 백성이나 다름이 없는 이스라엘 종들을 학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말은 "당신은 지금 당신의 백성에게 실수하고 계십니다"라는 뜻도 됩니다. 자기를 해하고, 자기의 발등을 찍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자기 백성들을 해하는 것은 자기 발등 찍기나 다름이 없습니다. 빌립보서 2:3을 보세요.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라고 하였습니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은 자신이 높아지는 비결입니다. 다른 사람을 낮추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12:15에서 말한 것처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어야" 합니다.

 

중국의 노자는 "제 몸을 천하같이 귀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줄 수 있고, 제 몸을 천하같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맡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백성을 자기 몸처럼 아끼는 사람이 천하를 다스릴 자격이 있습니다. 자기 백성, 자기 종을 아낄 줄 모르는 임금은 참 임금이 아닙니다.

 

셋째, 너희가 게으르므로 가서 일하라.

 

바로의 분노는 냉정한 책망이었습니다. 바로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는 것을 휴가를 즐기려는 것이라고 오해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게을러서 일하지 않고 제사 드리러 간다고 핑계하여 놀러갈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 얼마나 유치한 생각입니까? 세상의 임금들의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생각은 항상 이런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안식일을 노는 날로 혼돈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안식일은 노는 날이 아닙니다. 농경사회에 주신 경고는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정보사회의 안식이란 그 개념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하는 날입니다. 봉사하는 날이며 섬기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2:12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다가 밀을 따 드셨습니다. 소나 양이 우물에 빠지면 건져주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한편 손 마른 사람을 성전에서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흔히들 안식과 노는 것을 혼돈합니다. 어떤 분은 월요일에 저의 집에 전화하여 "목사님 월요일에는 놀지요?"라고 합니다. 저는 놀지 않아요. 단지 쉽니다. 놀지 말고 쉬세요! 우리 그리스도들은 노는 것이 아니라 쉬는 것입니다.

주일의 예배는 영혼의 안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절에 계속해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십니다. 예배하러 나와야 쉼을 얻습니다. 주일이면 정말 쉬고 싶으시지요? 그러면 교회에 나오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쉼을 주십니다. 집에서 잠을 자면 쉬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쉼은 영혼의 쉼, 영혼의 안식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안식만 가지고는 절대로 안식하지 못하며 쉬지 못합니다.

 

최근의 화두 중의 하나는 주5일 근무제입니다. 은행이 이미 7월부터 주5일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엿새는 일해야 합니다. "엿새 동안은 부지런히 일하고 하루를 안식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루만 쉬어도 엿새 동안은 일할 수 있는 에너지가 인간에게 본래적으로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의 생체 리듬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경적 이유를 들어 주5일 근무제를 반대만 하면 사람을 다 잃어버립니다. 교회도 이제는 따라갈 수밖에 없는 추세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고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렇게 권하고 가르치고 싶습니다. 주5일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하루는 정말 좋은 노동을 해야 합니다. 내 직장 외에 우리의 일을 요하는 곳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꼭 보수를 받아야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하는 보람을 느껴야 합니다. 주 5일 근무제가 되면 선을 행하는 일에 하루를 쓰세요. 우리 교회의 '작은 형제의 집'에 가서 하루를 봉사하세요. 이런 기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주5일 근무제인지 누가 압니까?

 

절대 노는 날이 없기를 바랍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선한 일을 하고, 예배하는데 우리의 시간을 쓰세요. 우리의 날들을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쉬는데 쓸지언정 노는데 쓰지 마세요. 주말마다 교외로 나가고 놀겁니까? 그것도 돈도 없고, 얼마쯤 지나면 힘들어 놀지도 못할 것입니다. 정말 유용하게 쓴다면 주5일 근무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랍비의 창세기 주석인 창세기 랍바는 일곱째 날에 무엇이 창조되었느냐고 물으면서 '고요, 평온, 평화, 휴식'이라고 대답합니다. 일곱째 날에 아무 것도 창조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굉장히 소중한 것이 창조되었습니다. 안식도 창조물입니다. 안식은 게을러 노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제사는 게을러 일하기 싫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에게는 또 다른 오해가 있습니다. 신이 여기 있는데 왜 광야까지 가서 제사 드리려 하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을 신격화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더 화가 났는지 모릅니다. 다니엘은 여호와께 하루 세 번 기도했습니다. 바사 사람들은 유대인인 다니엘이 잘 되는 것을 질투하여 왕 외에 다른 어떤 신에게도 사흘동안 기도하지 못하게 왕이 결정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것을 알고도 여호와께 기도하였고 고발당하여 사자굴 속에 들어갔습니다. 왕을 신격화하여 여호와 섬기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바로는 패장들에게도 짚을 주지 않을 것이지만 벽돌의 수는 이전과 같이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수히"란 말은 '토켄'이란 히브리어입니다. '저울로 달다'라는 뜻의 '타칸'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조금도 틀림없이 일을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결론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공의와 사랑으로 작은 나라를 다스렸던 어진 왕이 있었습니다. 왕은 저녁마다 신하들 몰래 평복 차림으로 민정시찰을 나갔습니다. 어느날 우연히 초라한 작은 오두막에서 건장한 사람이 음식을 먹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왕은 그들에게 "지나가는 객인데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손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물입니다. 들어오셔서 저화 함께 음식을 잡수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음식은 제법 풍성하였습니다. 왕은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친구여, 그대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그 사내는 힘찬 소리로 "나는 구두수선공일세"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구두를 수선하여 약간의 돈을 벌어 이렇게 잔치를 베푼다네". "내일을 대비해서 저축하지 않는단 말인가?" 왕은 내일 또 와도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의 친구여 언제든지 와도 환영일세"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구두수선공을 시험하려고 왕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구두수선을 못한다는 영을 내렸습니다. 다음날 다시 왕이 그 집에 갔습니다. 그는 또 잔치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왕은 무엇을 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왕의 허락 없이는 구두수선을 못한다고 해서 물을 길러 주고 돈을 받아 잔치를 베풀었네" 하였습니다. "내일 물을 길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할텐가?" "내일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이네" 다음 날 왕은 왕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물을 긷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다음날 그는 나무를 하여 팔아 또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왕은 다음날 나무꾼들을 다 왕의 군대를 섬기기 위해 왕궁으로 불러 종일 일을 시켰고 임금을 한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임금 대신 칼을 한 자루씩 주었습니다. 그는 집에 가는 길에 전당포에 가서 칼날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쇠 칼날 대신 나무로 칼날을 만들어 끼워두었습니다. 그 날 밤 왕이 다시 그 집에 와서 그 사람의 말을 다 들었습니다. "아니, 무기검열이라도 하면 어쩔려구?" 그러나 그는 내일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 왕궁에 갔을 때 왕궁의 경호대장은 구두수선공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오늘 집행을 받게 되는데 네가 목을 베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거절했지만 명령이므로 복종해야 한다고 소리 쳤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당신만이 죄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죄가 있다면 칼날이 날카로워지고, 제 팔이 강해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만약 그가 죄 없는 사람이라면 제 칼을 나무칼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그의 칼을 뽑았습니다. 모두들 그의 칼을 보고 놀랐습니다. 멀리서 보고 있던 왕은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왕궁에서 함께 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왕에게 "주님이 이 모든 것을 예비하셨습니다. 왕께서도 저와 함께 매일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4:8-9에는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의 권력 때문에 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더 잘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매일의 삶을 살피시고, 먹을 것을 주시고, 입을 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찬양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 여름이 되어 냉면 생각 많이 나시지요? 냉면을 보시면 위에 고기가 두 점 올려져 있습니다. 이 유래를 아십니까? 옛날 평양 냉면집에 어떤 마음씨 고약한 점원이 있었습니다. 이 점원은 자기 주인이 마땅치 않아 주인을 망하게 하려고 몰래 고기를 설어 냉면에 오려 놓았답니다. 그런데 고기가 없어져 망하기는커녕 그 고기 두 점 때문에 그 냉면집에 손님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그 냉면집에 돈을 많이 벌고 더 잘되었습니다. 이런 유래로 지금도 냉면에는 고기를 두 점을 올려놓는다고 합니다.

 

세상사람들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 고기 두 점도 올려놓습니다. 이것저것으로 우리를 못살게 방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잘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형통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은총으로 더 잘 되는 한 주간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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