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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5:2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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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봉수 목사 |
참고 : | 2008 상도중앙교회 HTTT://WWW.SDJA.OR.KR |
출5:22~6장1
네가 보리라
영국의 과학자들이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영국 사람들이 가장 우울한 때가 언제인가 하는 점입니다. 1월 셋째 주간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번 주간입니다. 그 이유는 우선 이 때 영국 날씨가 가장 춥고 어둡기 때문이랍니다. 둘째는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고 이때 진 빚을 갚아야 할 때가 됐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셋째는 새해의 새로운 결심들이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하는 때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희망차게 새 해를 시작했지만 그 희망은 사라지고 다시금 삶의 무게에 짓눌리면서 우울해 진다는 것입니다.
한 번 뿐인 인생인데 기왕이면 신나고 행복하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우리 인생에는 신나고 행복한 때보다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한 때가 더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때로는 우울하거나 더 나아가 마음을 짓누르는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우울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을 짓누르는 견디기 힘든 심적 고통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특히 주의 일을 하면서 우울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심적으로 큰 고통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주의 일을 내려놓기도 합니다. 아예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우울한 기분을 느끼거나 심적 고통을 겪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들이 이런 것들입니다.
첫째, 기대했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둘째, 포기하고 돌아서야 할 때
셋째, 희망의 끈을 놓아야 할 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우울한 감정과 심적 고통은 마치 정신적인 암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암이 생기면 이것이 자라고 전이가 돼서 우리 몸을 망가뜨리고 나아가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마찬가지로 우울한 감정과 심적 고통이 생기면 우리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쳐서 우리 삶 전체를 망가뜨립니다. 그래서 우리 몸에 암이 생기면 일단 이 암을 제거하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우울한 감정과 심적 고통을 처리해야 합니다. 일단 진정시키고 나아가 근원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런 우울한 감정과 심적 고통을 해결할 수 있을 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 사건 초기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시기 위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저를 준비시키시고 힘을 북돋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바로 왕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학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초지종을 알아보고는 모세에게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왜 쓸 데 없는 짓을 해서 우리를 더 힘들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모세는 혹을 떼러 갔다가 혹을 더 붙인 셈이 됐습니다.모세가 다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항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답하셨습니다. 모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시고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인간의 항변
오늘 본문을 보면 우울하고 마음이 답답한 사람들의 항변들이 나옵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들의 항변입니다.
출 4:29-31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등장으로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셔서 본격적으로 역사하시면 무엇인가 자기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의 학대가 더욱 심해진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은 자기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아졌고, 채찍질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는데 오히려 나쁜 일들만 더 많이 생겼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원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찾아와 항변을 합니다.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출 5:21)
그런데 따지고 보면 저들이 깨닫지 못해서 항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 3:1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출 5:16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종들이 매를 맞사오니 이는 당신의 백성의 죄니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을 바로의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항변하게 된 원인은 바로 깨닫지 못한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하나님의 백성 삼으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바로의 백성이었던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 되는 과정 속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깨닫지 못해서 항변할 때가 많습니다. 오해해서 원망도 하고 불평도 합니다. 깨닫지 못해서 우울하고 마음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버트란트 러셀이라는 분은 이렇게 말한 일이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부정적인 파괴와 비참한 일들은 모두가 다 감정의 충동에서 생긴 것이다. 반대로 창조적인 사건들은 모두가 다 지성의 충동에서 생긴 것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감정에 매몰되어 감정의 충동을 따라 행동하게 되면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지성을 활용해서 생각하고 깨닫고 행동하면 창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 앞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우울하게 만들고 마음의 고통을 안겨다 줄 때 감정의 충동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더욱 깊은 우울과 심적 고통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이럴 때 차분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감정보다는 지성을 앞 세워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 일들의 의미는 무엇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심적 고통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모세의 항변입니다.
본문 22-23에서 모세가 이렇게 항변하고 있습니다.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셨고, 또 자기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자기가 바로 앞에 서면 단번에 모든 일이 잘 해결 될 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이 엉뚱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바로의 저항에 제대로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물러나고 만 것입니다. 오히려 바로를 잘못 건드려서 더욱 거칠게 이스라엘 백성을 다루게 만든 것입니다.
모세의 마음이 답답합니다. 원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항변합니다. 이럴 거라면 왜 자기를 바로에게 보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뭐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난 430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한 민족입니다. 정말 긴 세월 종으로서 살아왔습니다. 하루아침에 그들의 신분이 갑자기 바뀔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인구가 무려 장정만 60만입니다. 애굽에서 저들이 노역을 주로 다 담당했습니다. 지금부터 350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 시대에 이 엄청난 노동력을 하루아침에 잃는다는 것은 나라가 그대로 망한다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그래서 바로는 필사적으로 저항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지금 한번 바로를 만나고 와서는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면 바로가 당장 손을 들고 이스라엘 백성을 내어보내 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항변하게 된 원인은 바로 조급함 때문입니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 때문에 속상해 합니다. 옆 집 아이는 벌써 뛰는데 우리 아이는 아직 걸음마를 한다는 것입니다. 옆 집 아이는 벌써 학습지를 세 개나 하는데 우리 아이는 아직 한 개도 벅차한다는 것입니다. 옆 집 아이는 벌써 어학연수를 다녀왔는데 우리 아이는 갈 생각도 안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울쌍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많은 경우 우리가 조급합니다. 인내하며 기다리면 모든 일이 다 잘 될텐데 조급함 때문에 우울하게 되고 마음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울하고 마음이 답답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
오늘 본문을 보면 인간의 항변에 대한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우선 귀 기울여 들어주십니다. 출 3: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시고자 작정하신 이유 가운데 하나가 저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이에 응답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 놓고도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기도에 응답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원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 6:1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모세의 항변을 들으시고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소개해 주는 우리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제가 애창하는 CCM 곡 가운데 하나가 “주만 바라볼지라”입니다. 특히 그 가사가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후렴 부분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작은 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 기울여 듣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신음 들릴듯 말듯 토해 놓는 작은 신음까지도 다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특히 우리의 신음에 민감하게 반응하십니다. 힘들어 토해 놓는 부르짖음, 고통 속에 쏟아 놓는 울부짖음, 괴로움 속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오는 신음소리, 하나님께서 하나도 놓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 점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점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울을 털어버릴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6:1에 놀라운 말씀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께서 이미 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제 곧 모세가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나면 겉으로 볼 때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대지를 뚫고 싹아 움터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음 소리,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일하고 계십니다. 조금 있으면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보리라”
최근에 교회 긍휼 사역팀으로부터 간증 편지를 받아보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노숙인이었던 53세의 김정수라는 분이 보낸 편지입니다. 이분은 대학 졸업 후에 가정을 이루고 직장생활을 하던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15년 전에 교통사고로 부인과 딸 그리고 장인 장모를 다 잃게 되었습니다. 죄책감에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아들 홀로 남겨두고 집을 나와서 노숙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10여년.
알콜 중독으로 온 몸이 엉망이 되었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노숙자들 틈에서 이곳저곳을 떠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노숙인 사역에까지 오게 됐습니다. 다른 교회와 다를 바 없이 단돈 500원과 차와 빵을 제공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우리교회에서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긍휼사역팀의 따뜻한 사랑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었던 인격적인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교회에 없는 예배와 성경공부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 분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되었고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사판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말씀따라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현장소장이 이분을 보고 감동을 받아 더 좋은 일자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1년 만에 2000만원을 모았고 월세방도 얻었습니다. 조그맣게 자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이 번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의류를 외국에 수출하는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수출액이 10억이 넘기 시작했고, 종업원이 90명이 넘는 탄탄한 중소기업이 되었습니다.
이분 말씀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너무도 놀라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상도중앙교회를 통해 받은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편지를 보낸다고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네가 보리라” 말씀하신대로 그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오늘을 성실하게 참고 이겨낸다면 우울과 마음의 답답함을 털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보리라”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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