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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의 분할통치(Divide & Rule) 방식

출애굽기 김흥규 목사............... 조회 수 1646 추천 수 0 2013.01.09 23: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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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5:1-6:1 
설교자 : 김흥규 목사 
참고 : 2008-02-22 내리교회[기감] http://naeri.org 

바로의 분할통치(Divide & Rule) 방식

 

 본문은 모세의 제3기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제1차 해방요구를 한 것이지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형 아론과 더불어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을 내놓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바로는 순순히 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해서 순순히 이스라엘 백성을 놓지 않으리라고 예언하신 말씀 그대로였지요(4: 21). 바로는 고도의 정치술과 협상력으로 모세와 아론을 괴롭힙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두 사람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괴롭힙니다. 모세가 태어날 즈음에 가해졌던 압제와 수탈이 더욱더 교묘한 방법으로 가중되고 재연된 것이지요.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의 집요함입니다. 아주 교활하면서 능수 능란하게 하나님의 백성을 유린하는 모습입니다. 몇 차례씩이나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허용할 것 같다가 번복하는 테크닉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바로의 모습은 바로 우리 내부 깊숙이 숨겨져 있는 죄와 사탄의 실체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이 모세가 되어서 애굽의 종의 생활을 청산하고 자유와 해방을 찾아 탈출하길 원해도 우리 안에 있는 바로가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을 끝없이 훼방하는 바로야말로 참된 자유와 탈출을 방해하는 우리 내부의 어두운 그림자로서 이해해야 합니다.


1. 탈출의 이유: 정치적인가? 종교적인가?(5: 1-5절)

 

여기서 두 지도자와 바로 사이의 대화가 나옵니다. 바로 앞에 선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을 속박의 사슬에서 풀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이 때 그 동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1절을 보세요.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여기서 중요한 말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절기를 지킬 것이라는 말입니다. 막연한 절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희생 제사를 드리겠다는 말이지요.


3절에서도 되풀이됩니다.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 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나타나셨기에 광야로 사흘 길쯤 걸어가서 제사를 드리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무서운 질병이나 칼로 이스라엘을 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정치적인 이유로 해방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를 댑니다. 애굽의 경내를 빠져나가 광야에서 예배드리기 위하여 애굽을 떠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자유로이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애굽을 떠나야 하겠다는 출애굽의 동기가 중요합니다. 혹자는 모세가 종교적인 핑계를 댄다고 해석합니다. 참 말이 아니라 구실을 에둘러 붙여 출애굽을 요구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출애굽은 단순한 정치 경제적 해방이 아니라 종교적인 해방이 근간을 이룬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정치적 해방 이전에 종교적인 해방, 즉 예배의 자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정치 경제적인 자유와 해방을 이룬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는 민족은 참자유를 얻은 민족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유는 바른 목적을 겨냥할 때 방종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지요! 출애굽의 목적은 단순히 정치 경제적인 자유만 누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참된 예배를 회복하기 위함에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예배를 드리되 어디에서 드리기를 원합니까? 광야입니다. 애굽에서는 예배를 드릴 수 없을까요? 아마 한적한 곳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드릴수도 있었겠지요. 왜 굳이 광야일까요? 어떤 이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짐승을 잡아야 하는데 애굽인들이 성수(聖獸)로 여기는 짐승들을 잡아죽일 경우 양쪽 사이에 폭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틀린 해석은 아니지만 진정한 예배는 화려하고 번잡한 가운데 드려질 수 없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하늘만 빠끔히 보이는 광야 적막한 곳에서 오로지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는 광야야말로 최적의 예배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화려한 볼거리가 가득찬 애굽을 떠나 오로지 하나님께만 귀기울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광야를 예배지로 삼았던 것이지요!


이제 모세의 제1차 해방 요구에 대해 바로는 뭐라고 응답합니까? 2절을 보세요.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말을 듣고 어떻게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겠느냐는 것입니다. 당연한 대답입니다. 앎과 행함은 직결됩니다. 알아야 행하지 모르고서야 무엇을 어떻게 행한단 말입니까? 어떻게 보면 출애굽의 과정은 바로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알아나가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몰라서 고집을 부리다가 점점 더 알수록 흔들립니다. 마침내 확실히 알았을 때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하나님께 굴복당하게 됩니다.


예배를 위하여 출애굽을 요구한 모세와 아론에게 바로는 두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동을 중단시키려 든다고 비난합니다. 이렇게 해서 바로의 아주 교묘하고 치밀한 무단통치가 본격화됩니다.


2. 바로의 고도의 분할통치(Divide & Rule or Divide & Conquer) 방식(6-21절)

 

출애굽기는 압제 시대의 금서(禁書)입니다. 놀라운 압제와 수탈 방식이 적나라하게 나올 뿐 아니라 이에 대한 하나님의 해방이 나오기 때문이지요. 바로는 두 지도자의 출애굽 요구를 선동과 거짓으로 매도합니다. 철저히 묵살합니다. 게으름으로 여유가 생겨서 허황된 요구를 한다고 보면서 더더욱 혹독한 노역을 강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대화는 바로와 이스라엘의 애굽의 간역자들과 이스라엘 패장들 사이의 명령과 불평, 등등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애굽의 간역자들이라 함은 이스라엘을 직접 통솔했던 '강제노동 감독관들'을 의미하며 패장들은 벽돌 굽는 작업 현장을 감독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특별히 선택된 '작업반장들'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로의 통치방식이 얼마나 교묘하고 조직적이며 치밀한가에 놀랍니다. 그 옛날 로마나 근세에 들어와서 영국을 비롯한 구라파 열강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약소국들을 지배하며 식민통치를 하는 지배양식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아니, 일제가 우리 민족을 식민지화했을 때 쓴 무단통치 방식과 아주 유사합니다. 한 마디로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치의 생각할 여유도 주지 않고 돌림으로써 민족적인 자주의식을 말살시키고 영구히 노예화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출애굽을 요구한 바로 그 날부터 바로는 애굽의 감독관들과 이스라엘의 작업반장들에게 엄명을 내렸습니다. 전에는 벽돌 굽는데 쓰는 짚을 직접 무상으로 제공해주었는데 앞으로는 직접 가서 구해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벽돌 생산량은 이전과 똑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동일한 수량의 벽돌을 만들어야하는 대신에 예전에 하지 않았던 짚을 구하는 노동을 덤으로 더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생산량은 그대로인데 노동량만 늘어난 것이지요!


그런데 바로가 이와 같이 포악한 정책을 지시한 이유가 중요합니다. 8절 후반부에서 9절을 보세요.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 하나니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니까 게을러져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가게 해달라고 허튼 소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게으름부릴 여유를 주지 않고 가혹하게 돌리고 또 돌리면 예배드리러 간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온 이집트 땅에 흩어져서 짚 대신 쓸 곡초 그루터기를 모아들였습니다(12절). 실제로 애굽의 추수 방식은 줄기 밑동까지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곡식 이삭만 잘라내기 때문에 곡초 그루터기는 그냥 남습니다. 나일 삼각주 지역에서 수많은 인원이 제한된 그루터기의 양을 일시에 줍고 또한 잘게 썰어서 벽돌 만드는데 사용하는 작업은 엄청난 시간과 노동량을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예전과 달리 엄청나게 가중된 노동 시간과 노동량을 이기지 못해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했습니다. 그 때마다 바로의 강제노동 감독관들이 이스라엘의 작업반장들을 때리면서 가혹한 문책을 했습니다. "바로의 감독들이 자기들이 세운 바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을 때리며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만드는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14절). 폭군 바로의 하수인들이 불가능한 목표치를 설정해놓고서는 이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의 작업반장들부터 죽도록 매질을 했습니다. 당연히 이들 작업반장들은 자기 밑에서 일하는 동족 노예들을 매질하고 다그칠 것은 분명하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힘에 부친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진짜 목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과 모세와 아론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세와 아론의 요구에 대해 정치적인 보복을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지요! 이전과 달리 가혹한 탄압에 시달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누구를 비난하겠습니까? 모세와 아론이 쓸데없는 요구를 해서 자기들을 힘들게 한다고 불평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divide & rule or conquer' 정책이라고 하지요. 예컨대 영국이 인도를 식민 통치할 때 인도 내부에 종교적이고 인종적인 대립과 갈등이 있음을 적극 이용해 피지배층 사이에 반목과 분쟁이 일어나게 해서 지배를 용이하게 만드는 수법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통치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 감정을 교묘하게 조장한다든지 해서 식민지 근성을 뿌리 깊이 박아버리는 것이지요.


15-18절을 보세요. 작업량을 채우지 못해서 구타를 당하던 이스라엘 작업반장들이 바로를 찾아가서 따집니다. 그러자 바로가 뭐라고 대꾸합니까? "바로가 이르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자 하는도다"(17절).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게을러져서 일하기가 싫으니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가게 해달라고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냐며 모든 책임을 모세와 아론에게 전가합니다. 전형적인 divide & rule 수법이지요!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도록 유도합니다!


사실, 모세와 아론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강제노역을 당했어도 그저 견딜 만 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바로를 만나고 나온 그 날부터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예전과 달리 벽돌 구울 지푸라기를 손수 구해와야만 했던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했던 말을 철회하기 전에는 엄청난 고생이 불가피한 것을 자연적으로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화살을 모세와 아론에게 돌리겠지요!


19-21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작업반장들이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을 쏟아놓습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21절). 하나님께서 두 사람에게 벌을 주셨으면 좋겠다는 저주를 퍼붓습니다. 두 사람 때문에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자기들을 미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공연히 바로에게 가당치 않은 요구를 한 것은 바로의 손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일 칼을 쥐어 준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비난합니다.


3. 하나님을 원망하는 모세(5: 22-6: 1절)

 

이제 이스라엘의 원망을 들을 모세는 거꾸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22-23절을 보세요.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왜 자기를 애굽에 보냈냐고 하소연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했더니 바로는 이스라엘을 더욱 더 가혹하게 탄압하는데 하나님은 구하실 생각을 전혀 안 하신다고 따집니다. 모세의 항의에 대해서 하나님은 바로가 결국 강한 손에 밀려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낼 것이라고 약속하시며 위로하십니다. 강한 손은 하나님의 손을 말하지요!


4. 본문이 주는 영적 교훈

 

출애굽의 관전 포인트는 모세와 바로의 대결입니다. 모세가 누구며 무엇을 하는지 눈여겨보세요. 바로가 누구며 무엇을 하는지도 주목해 보세요. 모세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유와 해방을 누리며 살기 원하는 참 자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진짜 자아인 것이지요. 반면에 바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사는 것을 방해하는 거짓된 자아입니다. 쉽게 말하면 죄입니다. 어두운 사탄의 세력이지요. 바로는 여간해서 우리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강하신 손에 의해서만 밀려날 뿐입니다. 인간의 의지로 쫓기 어렵습니다. 놓아줄 것, 놓아줄 것 같으나 결코 우리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 바로의 실체를 주목해서 봐야 합니다!


예배의 자유를 위해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달라는 모세와 아론의 요구를 들은 바로는 민족 분열 정책을 씁니다. 더욱 더 가혹한 노동력 착취를 가합니다. 그런 뒤 모든 압제와 수탈의 원인 제공과 책임을 모세와 아론에게 돌립니다. 바로의 의도는 적중했습니다. 이스라엘 회중들 사이에 광야에 나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은 아주 쓸데없고 골칫거리만 안겨다 주는 요구임이 판명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보다 지금 당장 등 따습고 배부른 것이 더 좋습니다. 또한 두 지도자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민족 내부에서도 반목과 불화가 팽배해졌습니다. 오랫동안 종의식 혹은 식민지 근성을 뿌리뽑는 일은 참으로 요원합니다. 광야에 나가서도 계속됩니다. 아니, 출애굽 1세대가 광야에서 멸망당한 뒤에야 간신히 잦아들지요.


끝으로 우리는 바로의 압제 시스템을 주목해야 합니다.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의 노동력에 기생하는 피라미드 구조입니다. 억압당하는 자들의 에너지를 완전히 고갈시켜 그 어떤 저항이나 불평도 포기하도록 만듭니다. 조금이라도 저항하는 기미가 있을 경우 더욱 더 가혹하게 탄압합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완전히 바로의 손아귀에 있음을 재차 확인 또 확인시켜줍니다. "밥을 먹여주는 손을 깨물지 말라"는 서양속담이 꼭 이를 두고 하는 말이지요. 바로에게 저항하는 것은 밥 먹여주는 손을 깨물며 자해(自害)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지요. 모세와 아론과 같이 해방자로 자처하는 자들이 실상은 더욱 더 가혹한 탄압을 촉진하는 원수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문제는 억압하는 바로에게 있지 않고 억압당하는 이스라엘에게 있다는 세뇌교육입니다. 게으른 근성, 쓸데없는 것을 요구하는 허황된 생각을 개조하기 위해서는 더 가혹한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지요. 정신없이 일에 쫓기게 해서 아예 엉뚱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리고 애굽에 빌붙어 사는 중간 계급들을 만들어서 히브리 민족들을 대신 통치하게 하면서 내분을 격화시킵니다. 그리하여 그 탄압에 대한 책임을 히브리 동족들에게 전가하면서 결국 모세와 아론에게, 마침내 하나님께 전가시키는 수법이지요. 바로의 통치술은 사탄의 통치술이요 우리 내부 안에 있는 죄악 세력의 실체이기도 합니다! 일제 시대의 민족개조론과 같은 식민통치 기술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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