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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5:1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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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양의섭 목사 |
참고 : | 2008-03-03 왕십리중앙교회 http://www.wangjoong.org/ |
어처구니 없는 믿음을 버려라!
1.여기가 낙원이라고 꼼짝도 안 하는 이를 이동시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가 처해 있는 이곳이 가장 행복한 곳이라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믿고 뭉그적거리는 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표현처럼, ‘여기가 좋사오니’하는 이에게 ‘아닙니다, 저기가 훨씬 더 좋습니다’라고 설득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지금 현재의 여러분의 삶의 자리가 만족스러우십니까? 그곳이 천국이십니까? 뭐 이만 하면 됐다고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곳이 현재 살기 좋고, 편안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곳을 박차고 나오기를 원하신다면 어쩔 것입니까?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편안함과 안전함이 실상은 내 인생에 매우 위험한 요소라면 어쩔 것입니까?
2.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그 고된 역사에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이 매우 힘들었지만, 이제는 나름대로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편안함마저 느끼게 되었다. 때로는 애굽인들의 비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처사에 화도 나고, 소망이 없는 자식들의 앞날에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런대로 이 한 세상 살다 가는 거지 뭐 하는 마음을 먹으니 그런대로 지낼 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세가 나타나서는 자기들이 누리던 그나마의 평안함을 흔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고통을 돌아보셨다고 하더니, 대체 무슨 말을 통치자 바로에게 했는지, 그 다음날부터 아주 혹독한 부역이 시작되었습니다.
당대 통치자 바로는 위대한 건축물을 많이 지은 왕이었는데, 그 건축을 위해 유대인들은 엄청 많은 흙벽돌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흙벽돌을 만들려면 짚이 공급되어야 했는데, 모세가 나타난 다음날부터 갑자기 애굽인들은 짚을 주지 않으면서 동일한 양의 벽돌을 만들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제 직접 들로 나가 짚을 구해다가 벽돌을 만들어야했습니다. 보통 때보다 한 단계가 더 생긴 것입니다. 더 바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통치자 바로에게 나아가 하소연하였지만, 대답은 아주 냉정하였습니다. “바로가 이르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자 하는도다.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지라도 벽돌은 너희가 수량대로 바칠지니라.”
화가 자신들에게 미친 줄 깨달은 유대인들은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비참한 마음으로 바로에게서 돌아서 나오다가 길에서 모세와 아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모세와 아론에게 화를 퍼붓습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3.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기껏해야 자기들을 노예 상태 그 상태에서 그나마 편안함을 느끼고, 그나마 노예로서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입으론 ‘하나님, 이 괴로움에서, 이 수욕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내 자식들에게는 자유를 누리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도, 실상 그런 노예 상태에서 실제로 벗어나려고 하는 그 어떠한 행위도,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로는 별 은혜스러운 말을 다 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정말 자유 얻기를, 해방되기를 원하는 백성인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입만 열면 ‘자유, 해방, ..’이런 것을 말하지만, 실상 그것을 얻기 위해 아무런 행동도, 그것을 얻기 위한 그 어떠한 고난도 감당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자유, 해방, 예배, ..’를 운운하면서도 실제로 해방 운동을 하는, 그래서 자기들의 삶의 지경을 조금 어렵게 만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고, 심지어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고 까지 저주합니다. 즉 ‘사태를 이런 험악한 지경까지 몰고 간 너희들에게 하나님이 벌하시지 않을지 어디 두고 보자’는 원망을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정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겁니까? 이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겁니까?
4.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신 이유,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시고자 하는 이유는 뭔가요? 1절,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두 가지가 분명합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며, 그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서이고, 그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부족한 백성들, 남의 나라에서 노예 생활이나 하는 천한 백성들을 향하여 거룩한 하나님이, 위대한 하나님이 ‘내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좀 똑똑한 이들, 잘 생긴 이들, 세상에서 잘 나가는 이들을 보고 ‘내 백성’이라고 부른다면 그나마 위안이 될 텐데, 자랑스러울 텐데, 남의 종살이나 하는 그 천한 이들을 ‘내 백성’이라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칭호를 받으며, 엄청난 사랑을 받는 유대인들은 바로에게 나아가서 뭐라고 합니까? “우리는 바로 당신의 백성입니다. 왜 우리를 괴롭히십니까? 우리는 당신의 종이요 백성이오니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부끄러운 노예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자 하시는데, 이들은 도리어 바로에게 나아가 ‘우리는 당신의 백성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백성들입니다.
이런 영적 무지의 백성들이 무슨 하나님의 뜻을 알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 주의 종들을 향하여 ‘너네 때문에 힘들게 되었다. 너네 때문에 고달파졌다. 이런 불행한 사태를 야기한 너희들을 하나님께서 벌하시기를 바란다’라고 펄펄 뛰고 있습니다.
5.하나님에 대해서, 어처구니없는 믿음을 버리십시오. 하나님의 뜻도 헤아리지 못하며, 단순히 세상에서 편안하고, 그런대로 먹고 살만 하고, 지금의 이 안락함을 누리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그게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믿음을 버리십시오.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안락한 이 세상의 삶을 뒤집어놓으십니다. 그것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들은 체 하지 않으니까 억지로 그 땅에서 나가도록 쫓아내십니다. 그나마 편안히 지내던 집들을 다 부수어버리고, 그나마 누리던 작은 행복들을 다 버리게 하십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재촉하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뭉그적거리는 여러분을 위해 그 뭉그적거리는 모든 환경을 부수어버리심을 감사하십시오.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나마 누리던 모든 세상 것들이 날아가 버림에 감사하십시오. 다른 원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원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놀라운 축복의 땅, 약속의 땅이 저 앞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거길 보라고, 그곳으로 가라고 뭉그적거리는 우리네 세상 삶의 환경을 흔들어 버리십니다.
안락함과 편안함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런대로 세상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나의 지금 이 세상 삶을 유지시켜 주시고 그 달콤함에 취하여 영적인 것을 결단하지 못하게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 아닙니다.
하나님이 안락함에 안주하도록 하신다는 어처구니없는 믿음을 버리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택함 받은 성령의 사람으로 길을 떠나도록,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네 삶의 환경을 흔들고 어렵게 하거든, 도리어 감사하며, 결단하고 길을 떠나십시오. 위험성은 있지만, 하나님께서 광야로 내모신다면, 무한한 기대감을 갖고, 순종함으로 길을 떠납시다.
세상에서의 편안함보다 주님의 손에 붙들려 흔들리는 삶을 도리어 축복인줄 믿고 길을 떠나십시오. 마침내 여러분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이 보일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애굽인들이 던져주는 고기 덩어리, 빵 덩어리에 만족하며 사는 듯 한 오늘의 세상 삶보다 다소 불안하더라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축복의 땅으로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도 그리될 것입니다. 이 모든 환경을 하나님께서 다 부수어버릴 것입니다. 그리곤 여전한 믿음으로, 주의 종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교회에 놀라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안일한 삶, 아무런 소망도, 사명도, 거룩함도, 영적 사명도 없이 그저 하루 하루 던져지는 먹을 것에 만족하여 거기에 안주하려는, 그런 삶을 하나님께서 보장해 준다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믿음을 버리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삶을 원하시는 게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에게, 실상은 세상에서 종으로, 부끄럽고도 부족한 생을 삶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찾아오셔서 ‘너는 내 거룩한 백성이다, 너는 나에게 예배하라’고 사명을 주시고, 거룩함을 부여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안일한 세상에 취한 나의 삶을 박차고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이만하면 됐나이다 하고 안주하는 우리 교회에 새 시대 새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이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며, 때로는 다소 삶에 어려움이 온다할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주의 군사로, 멋진 축복의 삶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행여나 내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사명을 잊고, 이 땅의 안일함에 안주해 있다면, 그 옛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감격, 그 신령함, 내가 새까맣게 잊고 그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에 연연해 있다면, 주여, 나를 지금의 이 안일함에서 쫓아내소서. 사명을 위해, 거룩함을 향해 떠나게 하소서!
행여나 내가 세상을 향하여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한다면, 고개 숙인다면 나를 내 삶의 안일한 현장에서 쫓아내소서.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아가도록, 이 안일한 현장에서 나를 쫓아내소서. 그리하여 끝까지 주님과 동행하여 그 땅에,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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