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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좇음

마태복음 김동호 목사............... 조회 수 2256 추천 수 0 2013.01.10 22: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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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6:24 
설교자 : 김동호 목사 
참고 : 2012.10.14 

1.jpg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좇음.
마 16:24.

옛날 동양의 선조들은 도(道)를 닦았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이 있다고 저들은 생각하였습니다. 사람답게 잘 사는 길을 찾으려고 저들은 무척 노력을 하였었습니다.

옛날 서양의 선조들은 철학을 하였습니다. 철학의 궁극적인 관심과 목적은 진리였습니다. 저들은 진리 즉 로고스를 찾으려고 애를 썼었습니다. 진리란 삶의 이치와 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치와 식을 알면 어려운 문제도 풀 수 있듯이 저들은 진리 즉 삶의 이치와 식을 찾으면 인생의 문제도 풀 수 있다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동양의 선조들이 찾던 바로 그 길이요 서양의 선조들이 찾던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요한이 이야기하고 있는 말씀은 로고스 즉 진리를 의미합니다.

당시 헬라 철학을 하던 사람들이 찾던 로고스를 언급하면서 그 로고스가 바로 예수님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요한복음은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괜히 제가 일찍 죽을찌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리 유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언을 성경구절에서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그 때 떠 오른 말씀이 요한복음 14장 6절이었습니다. 즉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그 말씀을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의 삶의 길이고 진리니 그 길과 진리를 좇아 살아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이 중 하나가 저에게 진지하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요?’

너무 당돌해 보이는 질문에 조금 당황했었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아빠가 가 봤어’ 무의식적으로 말을 하면서도 그 말이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도 그 말이 마음에 닿았던지 제 말에 동의하였습니다. ‘맞아 아빠가 가 본 것 맞아’

제 평생 사는 동안 잘 한 일중에 가장 잘 한 일은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살려 했던 것이 저를 구원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를 살게 하였습니다.

저도 죄인인지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의 죄된 본성은 본능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부정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식과 법대로가 아니라 나의 식과 법대로, 세상의 식과 법대로 살아 본 적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틀렸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주를 좇아 산다는 것이 잘 이해도 안 되고 그래서 좀 무섭고 떨리기도 하였지만 믿고 따라 산 모든 식은 맞았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주를 따름’에 달려 있습니다. 주를 따르면 살고, 주를 따르지 않으면 죽습니다. 주를 따라 살면 행복합니다. 성공합니다. 그러나 주를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살면 불행합니다. 실패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이 주를 믿고 좇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를 좇아 살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친히 우리에게 주신 그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기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는 두 말이 아니라 한 말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곧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이야기를 참 많이 합니다. 좀 힘들고 어려운 일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일을 할 때 십자가를 진다고 이야기하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도 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의 십자가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를 져야만 드디어 우리를 주를 좇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주를 좇지 못하고 자기를 좇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욕심을 따라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좇음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오직 그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주를 좇지 못함이 죄입니다. 그 죄가 우리를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죄의 삭은 사망이다>(롬 6:23)

요즘 우리 한국교회는 마치 비탈에 서 있는 교회와 같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힘차게 정상을 향하고 올라가는 교회가 아니라 바닥을 향하여 미끌어지고 추락하고 있는 교회 같아 보입니다. 추락의 원인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든 추락과 실패와 사망의 원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죄는 욕심입니다. 욕심은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 ‘생사를 건 교회개혁’이라는 좀 거친 책을 썼었습니다. 그때도 우리 한국교회가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우리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고 위태하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가 교회의 왜곡된 직분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안의 직분이 계급화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교회와 교인들의 마음 속에서 교회 직분이 계급과 권력이 되었습니다. 명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부터 교인들은 그것에 집착하기 시작하였고, 목회자와 교회는 그와 같은 교인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교회를 운영하고 잘못 경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욕심을 부추키니 교인들은 열심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충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충성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니 좋은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장이 다 나쁜 것은 아니라 모든 성장이 다 좋은 것도 아닙니다. 옳은 방법과 철학으로 성장한 성장과 옳지 못한 방법과 철학으로 성장한 성장은 모양은 같아 보여도 내용은 다릅니다. 시편 1편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전자는 알곡이지만 후자는 겨 즉 죽정이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한국교회의 성장은 죽정이와 같은 성장이었습니다. 교인들의 잘못된 욕심으로 말미암으로 충성으로 이룬 성공과 성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인들의 잘못된 욕심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성장하자 교인들의 욕심은 더해졌습니다. 더 욕심을 내게 되었고, 더 거짓된 열심을 내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커지면 커질 수록 교회 안에 있는 권력과 세상적인 매력에 대한 교인들의 욕심은 더 커져만 갔고 그 욕심이 결국 교회를 무너트리는 병이 되었고 교회와 함께 교인들도 함께 무너져 내리게 되었습니다.

명예직분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명예권사와 같은 직분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교회에서는 이미 직분이 계급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었는데도 권사가 되지 못하고 그냥 집사로 있으면 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냥 일정 나이가 되면 무조건 집사를 명예권사로 임명하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직분이 명예가 되면서부터 교회 안에는 이상한 직분과 직책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공로목사, 원로목사, 원로장로, 은퇴목사, 은퇴 장로와 같은 명칭과 대우 들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많은 목사들과 장로들과 교인들은 이런저런 모양으로 교회에서 물러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누리던 권력의 끈을 붙잡고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급격히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집착과 욕심의 절정은 세습입니다. 세습을 통하여 교회는 철저히 사유화되었습니다.

그것은 교회 밖 세상에도 없는 일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런 욕심을 부리면 지탄 받고 욕을 먹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많이 개혁되고 변화되어서 그런 욕심을 부리고 싶어도 제도적으로 부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만 예외입니다.

대형교회 뿐만 아니라 왠만한 교회 목회자들이 은퇴하면서 받고 누리는 예우가 세상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보통 몇 억 원에서 심지어는 몇 십억씩의 퇴직금을 받고 죽을 때까지 생활비를 받으며 원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교회를 떠나지 않고 이런 저런 일에 관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이런 수준의 의식과 제도를 가지고 교회보다 훨씬 투명해지고 상식적인 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습니다.

저도 이제 은퇴가 몇 년 남지 않았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옆에서들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을 보면 솔직히 욕심이 납니다. 저라고 돈이 싫겠습니까 권력이 싫겠습니까? 저도 70세까지 목회하고, 은퇴 후에도 원로목사가 되어 교회에 영향력을 끼치고, 마침 우리 아들도 신학을 졸업을 하고 목사가 되게 되었으니 아들에게 세습하고 죽을 때까지 교회가 주는 생활비를 받으며 이런저런 걱정 없이 사는게 왜 싫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것들은 주를 따름으로 얻게 되는 구원과 구원의 삶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삶이 주는 승리와 성공과 행복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비유하자면 사도바울이 고백한 바와 같이 배설물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유익과 자랑이 배설물과 같이 여겨질 그 구원의 복은, 하나님 나라의 복은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를 져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십자가를 지고 싶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주를 따라 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주를 따라 사는 삶은 참 경이롭습니다. 동안교회에서 저는 세속적인 개념이지만 성공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세속적인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높은 뜻 숭의교회를 개척한 것은 나름 모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험이 제게 있을 수 없는 더 큰 의미의 성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것은 높은 뜻 숭의교회의 부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 날 그 높은 뜻 숭의교회의 성공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를 해체하고 네 교회로 분립한 것입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의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그것을 내려 놓음으로 저는 잃은 것이 아니라 더 크고도 아름다운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은근히 기대가 됩니다. 은퇴 후 높은 뜻 교회와 사역을 깨끗이 내려 놓고 또 다시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된다면 얼마나 근사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은퇴가 기다려집니다. 높은 뜻 교회의 남은 사역들은 저를 부르셔서 높은 뜻 교회의 사역을 담당하게 하신 것처럼 또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들은 부르셔서 맡기실 것입니다. 부족한 저도 감당하였으니 저들도 능히 잘 감당하리라 저는 믿습니다.


욕심과 야망을 좇아 사는 삶은 욕심과 야망을 버리고 주를 좇는 삶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주를 좇아 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아직도 쉽지는 않지만, 아마 죽을 때까지 쉽지 않겠지만 오늘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주를 좇아 살고 싶습니다.

요즘 저는 세습 반대 운동에 앞장을 섰습니다. 그랬더니 저와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호응을 얻게 되었습니다. 방송과 언론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게 되었습니다. 세습 반대를 홍보하기 위하여 인터뷰에 응하였더니 세습 반대 내용보다 그것을 반대하는데 앞장을 선 제가 더 많이 부각이 되었습니다. 대형일간지에 제 사진이 정말 대문짝만하게 나왔습니다.

저는 요즘 이것이 저에 대한 사탄의 전략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일 일의 핵심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 때문에 부수적으로 얻어지게 된 영광에 눈이 멀게 되어 제 자신에 관심을 갖고 욕심을 갖게 된다면 저도 실패하고 이 운동도 결국은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하여튼 그게 돈이든 명예든 권력이든지 간에 욕심에 눈이 멀면 어리석어 집니다. 어리석어지면 실상을 보지 못하고 자꾸 허상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를 좇아 살다가 결국은 실패하고 망신하고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욕심과 싸우십시다. 자신과 싸우십시다. 그 자신과 욕심을 부인하는 십자가를 지십시다. 그리고 열심히 주의 도에 경청하고 쉽지 않지만 듣고 깨달았으면 그 좁은 길을 가십시다.

세상이 절대로 우리에게 줄 수 없는 진정한 삶의 승리와 구원을 이 땅에서부터 누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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