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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후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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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동호 목사 |
참고 : | 2012.12.30 |
영원을 바라보며 오늘을 사는 사람.
고후 5:1-7.
아프리카에 스프링 폭스라는 산양이 있답니다. 수 천 마리 씩 떼를 지어 사는 동물이랍니다. 그런데 이 스프링 폭스에게는 이상한 집단적인 행태가 있는데 그것은 갑자기 떼를 지어 달리다가 벼랑에 떨어져 수천 마리가 몰사하는 그런 일들을 가끔씩 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이 그 이유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아 내었습니다. 수 천 마리 씩 떼를 지어 다니다보니 뒤에 서 있는 양은 먹을 게 없답니다. 앞에 있는 양이 다 뜯어먹고 또 발로 밟아 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뒤에 있는 양들이 자꾸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답니다.
그래서 자꾸 앞에 있는 양을 뒤에서 밀게 됩니다. 앞에 있는 양들을 뒤에 있는 양들이 자꾸 밀다보니 걸음이 빨라지게 되고 나중에는 뛰게 됩니다. 앞에 있는 양들이 풀 뜯어 먹는 것을 포기하고 뛰게 되면 뒤에 있는 양들에게도 먹을 풀이 생기지만 뒤에 있는 양들은 그 풀을 먹지 않고 앞에 있는 양들을 따라 그냥 또 함께 뛴답니다.
왜냐하면 스프링 폭스라는 산양은 약한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서 살지 않고 떼지어 사는 숩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풀을 먹기 위해 뒤에 남아있다 보면 떼에서 떨어지게 되니 그것이 무서워 함께 뛰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의 양은 뒤에서 미니까 뜁니다. 뒤의 양은 앞의 양이 뛰니까 떨어지지 않으려고 함께 뜁니다. 그런데 양들은 그와 같은 이유를 모릅니다. 이유로 모르고 뛰는 뜀이 집단화되면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벼랑을 만나도 멈출 수 없습니다. 앞의 양은 뒤에서 미니 떨어지고 뒤의 양은 그냥 앞의 양을 따라서 떨어집니다. 그래서 몰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도 스프링 폭스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 사람들도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이 집단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낙오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람들을 따라삽니다. 그리고 서로 앞에 서려고 경쟁합니다. 서로 앞에 서려고 밀어대기 때문에 삶의 발걸음이 빨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천천히 걸어도 될 것을 뛰며 삽니다. 그러면 모두가 허둥대면 따라 뜁니다.
왜 그렇게 뛰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인생의 벼랑을 향하여 그냥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뛰기만 합니다. 스프링 폭스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속상하고 안타까운 것은 그 스프링 폭스를 닮은 사람들 중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을 따르지 않고 예수를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뛴다고 뛰지 않고 예수님이 뛰셔야만 뛰겠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들고 뛰어도 예수님이 그냥 걸으시면 뛰는 세상 사람들 속에서도 여유 있게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여유 있게 다 걸어가도 예수님이 뛰시면 예수님과 함께 따라 뛰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지만 세상을 따르지 않고 주를 따르는 사람 그리고 세상과 사람들로 하여금 스프링 폭스처럼 살게 하지 않고 사람처럼 생각하며 믿음의 주여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는 것, 그것을 가르치고, 모범과 시범을 보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습니다.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다 보면 세상과 사람에 파 묻히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의 주여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스프링 폭스처럼 허둥대며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어리석은 경쟁만 하며 밀고 밀리며 죽음의 달음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지만 우리의 관심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품고 땅에 살지만 하늘을 품었기 때문에 땅에서도 하늘을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오늘을 살지만 우리의 관심은 영원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오늘은 그냥 오늘이 아닙니다. 영원에 잇대인 오늘입니다. 영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 오늘은 언젠가는 끝나 없어질 오늘과 세상입니다. 우리는 그 없어지는 오늘과 세상을 늘 보고 경험하며 살면서도 그것을 심각하게 깨닫지 못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죽습니다.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다 죽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집니다.
수 조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죽으면 그 돈 정말 한 푼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조금 비싸고 좋은 관에 묻히겠지만 그것 또한 몇 년 지나면 다 썩어 없어지게 될 겁니다. 세상에서 누리던 모든 부귀와 영화도 다 없어집니다. 무너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땅에서의 삶을 장막집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장막 집은 다 무너진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무너집니다. 끝이 있습니다. 좋은 것도 끝이 있고 나쁜 것도 끝이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에서의 삶이 좋다고 그것에 취해 살면 안 됩니다. 좋아봤자 장막집입니다. 세상에서의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낙심할 것 없습니다. 그것도 끝이나고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만 장막집이 아닙니다. 세상에서의 가난과 고생과 역경도 장막집입니다. 무너집니다. 마지막 날에만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장막 집들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도 무너집니다. 그러니 좋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힘들다고 불평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 끝이 있다고 그 끝으로 정말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오늘과 세상을 끝내는 죽음이 있지만, 그리고 실제로 그 죽음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끝내는 것이 사실이고 현실이지만 오늘이 끝난 죽음 이후에 영원이 있고 땅의 장막이 무너진 후에 하늘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그것을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원과 하늘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후에만 실재하고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는데 그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영원과 하늘은 오늘과 땅에 잇대어 있습니다. 오늘을 살지만 오늘만 생각하지 않고 영원을 믿으며 오늘을 영원처럼 살면 오늘이 영원이 됩니다.땅에 살지만 땅만 생각하지 않고 하늘을 믿으며 땅에서도 하늘에서 사는 것처럼 살면 땅도 하늘이 됩니다.
그렇게 살게 되면 땅에서 일어나는 삶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게 됩니다. 부하면 부한대로, 비천하면 비천한대로, 성공하면 성공한대로,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자족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하늘에 잇대어 살면 구태어 땅에 있는 것 벗어 버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이 좋아 보이는 것이든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이든 말입니다.
영원과 하늘을 잇대면 좋아 보이는 것도 좋은 것이고 좋아 보이지 않는 것도 좋은 것이 됩니다. 의미 있는 것이 되고 가치 있는 것이 됩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은 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우리가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고후 5:1-4) 아멘.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곧 믿음을 바라보고 행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 함 이로라.”(고후 5:7) 아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에 보이는 것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성공하고 부하다고 자랑하거나 거만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냥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장막 집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얻었지만 그것에 취하여 살지 않습니다. 그것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바울의 로마시민권과 같이 하늘의 뜻과 가치를 위해 사용합니다.
성공하고 부하지만 그의 기쁨과 보람은 성공과 부함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하늘에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에 보이는 것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실패하고 가난하다고 하여도 그 때문에 어두워지거나 날카로워지지 않습니다. 원망과 불평과 시기와 미움이 없습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알기에 가난과 역경와 어려움 중에도 밝고 맑고 여유 있고 따뜻하여 세상과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그렇게 사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고난과 역경 조차도 바울의 로마시민권과 같은 효력과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항상 기쁘고 범사가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찬송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이 영원이 되고, 세상이 하늘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티가 없습니다. 부해도 부한 티가 나지 않습니다. 가난해도 가난한 티가 나지 않습니다. 성공해도 성공한 사람의 티가 나지 않습니다. 실패해도 실패한 사람의 티 또한 나지 않습니다.
저는 티 없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믿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티도 나지 않아야만 합니다. 우리에게서 티가 난다면 예수의 티만 나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에게서 조차 예수의 티는 나지 않고 세상의 타만 납니다. 성공하면 성공한 티, 실패하면 실패한 티. 부자에게서는 부자 티, 가난한 사람에게서는 가난한 사람의 티. 큰 교회 목사에게서는 큰 교회 목사의 티. 작고 가난한 교회의 목사에게서는 작고 가난한 교회 목사의 티가 팍팍 납니다. 그 티와 냄새를 풍기며 사망의 골짜기로 질주합니다. 그리고 모두 떨어져 죽습니다.
한해가 다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2012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난 한 해도 우리는 스프링 폭스처럼 정신없이 세상과 사람들 속에 파묻혀 하나님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고 바보처럼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새해에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파 묻혀 스프링 폭스처럼 살지 마십니다. 바보처럼 세상과 사람 따라 살지 말고 정말 우리 믿음의 주여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십시다.
살다보면 세상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만 그것에 너무 얽매여 일희일비하지 말고 오늘을 살아도 영원에 잇대어 살고, 세상을 살아도 하늘에 잇대어 사는 사람이 되십시다. 그리하여 성공하든 실패하든, 부하든 가난하든 세상 티와 냄새 풍기지 말고 그리스도 예수의 향기를 풍기며 살아가는 정말 근사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십시다.
영원과 하늘을 덧입고 살면 오늘도 영원이 되고 세상도 하늘이 된다는 오늘의 말씀을 잊지 말고 정말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예수 모셨더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찬송하며 살아가는 새해가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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