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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반응

출애굽기 이요나 목사............... 조회 수 2104 추천 수 0 2013.01.12 23:4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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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5-6장 
설교자 : 이요나 목사 
참고 : 2010년 08월 05일갈보리채플서울교회 http://www.calvarychapel.or.kr/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반응 

 

바울은 로마서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로 하나님께서 미리 아심으로 그 택하신 자들에 대한 인간의 쟁론이 무익함을 언급하며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롬 9:18) 증거하였다.

 

계속하여 바울은 모세와 바로를 예로 들어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응과 인간의 반응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에 대하여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롬 9:22) 증거하였다.

 

우리가 이러한 성경적 결론을 놓고 인생을 논할 때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무익하고 허망해 진다. 그럼에도 우리가 하늘을 향하여 달려 갈 수 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없음이요 또한 이미 성경으로 하신 말씀을 다 들었고 전도자도 말하여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 12:13) 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진노의 그릇이라 할지라도 그의 긍휼하심을 바라봄이 옳도다.

 

(출애굽 5장)  세상의 반응

 

(출 5:2)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많은 말로 사양을 하던 모세는 결국 여호와의 말씀에 설복하고 아론과 함께 바로에게 나아갔다. 바로 앞에 선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전하셨다. 그러나 바로는 여호와를 모르니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I.  “여호와가 누구이냐?”

 

그 당시 애굽은 다신교를 믿었다. 태양신, 달신, 별들의 신과 바람과 나일 강과 같은 자연의 힘과 아름다운 신들을 믿었다. 더욱이 바로는 애굽의 무수한 신들 중에 최고의 신들을 섬겼고 또 스스로가 애굽의 신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수많은 신을 알고 있으나 우리가 섬기는 신들 중에 여호와라는 신을 알지 못하므로 그의 말을 듣지 않겠다 한 것이다. 이에 모세는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소개하여 그는 천지를 창조하신 영원하시고 살아계신 참 신이며, 애굽이 섬기는 신들은 모두 헛것들이라 말하였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신들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는 여러 신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며 때때로 필요에 따라서 그 신들의 이름에게 복을 청하기도 하였다. 또 오늘날 믿는 사람들 중에도 급한 일만 생기면 ‘오 하나님! 도와 주십시요’라고 부르는데 과연 당신이 찾는 하나님은 누구이며 어떤 분이십니까? 만약 당신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적치유를 믿는다면 바로 당신의 신은 프로이드나 스키너이며, 만약 당신이 알파코스를 믿고 전도를 하려 한다면 찰스 만함 신부와 니키 검블은 당신의 신이 될 것이다.

 

또 우리 친지 중에도 도대체 예수가 누구인데 내가 그를 믿고 섬겨야 하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그들이 아는 신들이 있고 그 신들을 믿기 때문에 창조자 하나님의 신을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의 이름을 듣고도 도대체 예수가 누구냐고 묻는 것이다.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들은 흥미롭게도 하나님의 이름을 들으면 마음이 더욱 강퍅해 진다. 그 강퍅함으로 인해 자신들의 영혼이 파멸되는 지도 모르고 말이다.

 

Ⅱ.  강퍅해진 바로왕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여호와가 누구냐고 비웃고 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이나 계명을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히 3:15) 라고 증거하였다. 결국 인간의 강퍅함이 하나님을 밀어 내는 것이고 그들이 알고 있는 신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부 하는 것이다.

 

 바로의 말에 모세와 아론은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온역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5:3) 말하였다. 그 당시 애굽인들은 종교적 자유를 갖고 있었다. 애굽 사람들은 각자가 자기의 신들을 섬길 수 있었고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바로에게 신들을 섬기기 위해 쉬게 해달라는 주장은 정당한 요구였다.

 

흥미롭게도 모세는 ‘이스라엘의 신’이라 하지 않고 ‘히브리인의 신’이라 말하였다. 이는 애굽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민족은 기근을 피하여 강을 건너온 자 곧 히브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바로에게 여호와를 ‘히브리인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했다. 이에 바로는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역사를 쉬게 하느냐 가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4) 화를 내었다.

 

바로는 마음이 강팍해져 분노하여 “이제 나라에 이 백성에 많거늘 너희가 그들로 역사를 쉬게 하는도다 하고 바로가 당일에 백성의 간역자들과 패장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 소용의 짚을 전과같이 주지 말고 그들로 가서 스스로 줍게 하라 또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자 하나 그 사람들의 고역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5:5-9) 명하였다.

 

결국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큰 짐을 지워, 벽돌을 만들기 위해 주던 짚을 공급해 주지 못하게 한 것이다. 바로는 히브리인들이 팔자가 늘어져서 애굽 사람들과 같이 제사를 드린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그런 소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스스로 짚을 주어다가 벽돌을 만들되 그 수효를 전과 똑같이 하라고 명하였다. 참으로 혹 떼러 갔다고 혹 붙이고 온 꼴이 된 것이다.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하면 그 당시 건축물의 아랫부분은 아주 정교한 짚이 섞인 벽돌로 되어 있는 반면 중간 부분에는 짚 곳에 곡초 그루터기가 섞여있는 벽돌이 보이는데 상단에는 아무런 것도 들어 가지 않은 벽돌들로 쌓여졌다고 하였다. 성경 기록을 뒷받침해 주는 정확한 고고학적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에 공사 감독관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조장들을 때리며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게 하자 이스라엘 자손의 조장들이 바로에게 나아가 “왕은 어찌하여 종들에게 이같이 하십니까 종들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고 그들이 우리더러 벽돌을 만들라 합니다 종들이 매를 맞으오니 이는 왕의 백성의 허물입니다”(5:13-16) 호소하였다. 이는 바로 노조 대표들이 기업주들에게 나아가 항의한 것과도 같다.

 

그러자 바로는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늘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자 하는도다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이 너희의 매일 만드는 벽돌을 조금도 감하지 못하리라”(17)하였다.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물러나 모세와 아론을 만나 그들에게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21) 분노하며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5:21b)고 저주를 퍼부었다.

 

이에 모세가 여호와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습니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요 내가 바로에게 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하고 있지 않습니까?’(5:22-23) 원망하였다. 모세의 이러한 태도는 흡사 우리들과 같습니다. 우리도 어떤 일을 하다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주님 왜 이렇습니까? 주님은 어째서 가만히 계신 것입니까?’하고 푸념을 늘어 놓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이처럼 모든 것을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고 말한다.

 

III. 듣지 않는 이유

 

이와 같이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여호와가 누구냐고 비웃고 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이나 계명을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고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에 대해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기들의 욕정대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동 성애자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셨다면 왜 동성 애자로 만들었느냐 분노한다. 그들이 자신들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위장술이다. 사실 그들도 동 성애가 얼마나 더럽고 추잡한 것인지를 알고 있다. 만약 그들이 동성 애가 좋고 그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숨어서 동성연애를 할 것이 아니라 소문을 내고 자기 가족들도 동성 애자가 되도록 권유할 것이다.

 

그들도 자신들의 행위가 얼마나 더러운 것인지를 알면서도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들의 욕정이 이끌려 스스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진리를 거스려 거짓된 생활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도대체 여호와가 누구냐? 예수는 누구며 어떻게 인간을 구원한다는 거냐 하고 강퍅한 말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한 강퍅한 말들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여호와는 창조자이시며 심판자이시기 때문이시다.

 


(출애굽6장)  이스라엘의 반응


(출 6: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역사의 혹독함을 인하여 모세를 듣지 아니하였더라

 

I.하나님의 약속

 

(출 6:7)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 (출 6:7,8) 말씀하셨다.

 

이 약속은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으로 이는 애굽의 종살이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유일한 소망이다. 이와 같이 우리 믿는 자들도 세상의 죄와 사망의 고통에서 오직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소망으로 삶는다.

 

오늘 우리가 이스라엘의 출애굽에 관한 글을 읽으며 생각해야 할 것은 세상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이를 말하여 '저희에게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기록하였다. 이것이 구약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여기서  애굽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의 옛 생활을 의미한다. 또한 이스라엘이 건넌 홍해는 세례를 뜻하며, 광야생활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 해당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은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삶의 모형이다. 

 

하나님은 6절에서 '내가 그 고역에서(KJV - 종살이에서) 너희를 건지리라'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종살이를 하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 볼 때 우리 자신은 육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려 다니고 있다. 먹고 입고 즐기는 육신의 욕구에 이끌려 자신의 모든 소망이 굴복되고 있다. 결국 모든 인생들은 육신이 원하는 욕구로부터 그 어떤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육체의 노예가 되고 만다.

 

이와 같이 육신은 우리의 자아를 굴복시키는 잔인한 주인이 되어 우리 인생을 담보로 삼고파멸로 이끌어 가고 있다. 우리 주변의 알코올이나 마약 그리고 포로노나 도 박으로 자기의 인생을 스스로 망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라. 우리가 볼 때 그들의 삶이 얼마나 어리석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들도 자기의 인생을 스스로 어쩌지 못하고 육체의 노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인생을 알지 못하는 십 대 청소년들을 볼 때 정말 가슴이 아프다.

 

II. '내가 너희를 구속하리라'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르기는 했어도 그 이름의 참뜻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었다. 그들은 엘 샤다이 (El shaddai), 즉 전능하신 하나님은 알았어도 모든 필요를 채우는 분, 즉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시는 분 (the becoming one)이신 여호와에 대하여 충분히 알지 못했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노예 생활에 상당히 타성적으로 되어 있었고 그곳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그곳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더 심한 고역을 허락하셔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그곳에 안주해 버리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견딜 수 없는 노역을 주어 ‘애굽에서는 더 이상 못 살겠구나… 이곳을 떠나야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고통을 주신 셈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희로 내 백성을 감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6:7) 말씀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유일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실 것과 그 백성들로 하나님의 백성을 삼을 것을 약속해 주셨다.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노예 생활로부터 너희를 구속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유일한 소망이다. 이는 스스로 자신의 죄의 인생으로부터 구속할 능력이 없는 인간에게 있어 최종적인 선택의 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20) 증거하였다. 이는 그 누구도 우리를 구속할 능력이 없고 오직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가능한 것이다.

 

III.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계속하여 하나님은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출 6:7)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는 더 이상 죄의 세상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천지만물을 창조자의 지배 가운데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우리 삶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직함이며, 여호와란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되신 분을 뜻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재물의 신이나 쾌락의 신에게 지배를 받지 않아도 된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나의 구속자 하나님께서 나의 신이 되어 그가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평강의 땅으로 들어 가게 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역사의 혹독함을 인하여 모세를 듣지 아니하였다(출 6:9). 이처럼 인간의 마음은 현실적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도 쉽지 않았듯이 모세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하기에도 쉽지 않았다.

 

IV. '인간의 고집'

 

이 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어 보내게 하라”(6:10) 하셨다. 이에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도 자를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6:12) 답하였다. 모세는 백성들의 반응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백성들은 모세 때문에 자신들이 더 고생을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모세를 향한 감정이 좋았을 리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세는 여기서 자신의 사명을 포기하고 미디안 광야로 되돌아가려고 작정한 것 같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재차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 왕 바로에게 명을 전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셨다(6:13).

 

흥미롭게도 14절부터는 모세와 아론의 계보가 소개되고, 28절에서는 다시 13절과 연결된다. 먼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자식을 소개한 후 둘째 아들 시므온과 그의 아들들, 그 다음 자기 조상인 레위의 자손을 소개하고, 20절에 보면 아므람이 요게벳과의 사이에서 아론과 모세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모세와 아론 형제에게는 누이 미리암이 있었으며, 그 뒤에 아론의 가족과 함께 후일 모세에게 반역을 시도했던 고라의 자손이 소개되고 있다.

 

29절에서 모세는 13절에서 말한 것과 꼭 같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왕 바로에게 다 고하라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고하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를 들으리이까”(6:28-30) 하였다. 참으로 못 말리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그러함에도 모세를 계속 설득하시는 하나님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를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의 은혜를 내리시고 있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가 일으키신 여러 가지 재앙들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게 된다.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길래 자기가 그에게 복종해야 되느냐고 모세에게 반문했지만, 이제 그는 그 분이 영원한 창조주이시며 마땅히 순종을 받으셔야 할 분임을 곧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되는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여러 가지 법칙과 원칙을 제정하신 분이시다. 그의 원칙과 법칙을 어기면 우리에게 큰 손해가 미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순종하고 그의 말씀을 따르기만 하면 그는 우리의 방패시요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실 것이다.

 

때때로 우리도 바로가 한 것처럼 ‘도대체 여호와가 누구길래 복종해야 하는가?’ 강퍅한 마음을 갖는다. 이로서 우리도 바로와 같이 겪지 않아도 될 수 있는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생활의 전제 조건은 바로 순종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할 때 우리는 그의 언약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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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3 고린도전 사랑의 참음과 본성의 인내 고전13:4  김남준 목사  2013-01-11 2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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