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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호와라!

출애굽기 이동춘 목사............... 조회 수 1899 추천 수 0 2013.01.12 23:5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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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5:22-6:13 
설교자 : 이동춘 목사 
참고 : 2009-06-07 비전교회 http://www.vision21com.com/ 

출5:22-6:13

나는 여호와라!

 

며칠 전, 한 여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을 고발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유인즉 수업 중에 학생들이 야유와 함께 볼펜, 지우개, 종이뭉치 등을 교사에게 던진 겁니다. 이에 당황하고 겁을 먹은 교사가 경찰에 신고하였고, 제자들을 고발한 겁니다. 학생들은 장난으로 그랬다고 하지만 교사는 심리적 위협을 느꼈다는 겁니다. 저는 이 사건의 진위를 떠나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이 슬펐습니다. 선생님의 권위는 온데간데없어진 이 사회가 슬펐습니다. 선생이 학생들을 두려워해야 하는 시대가 슬펐습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막가자는 겁니까?’ ‘대통령직 못해먹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막가자고 마음먹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애굽 왕 바로 때문에 마음먹고 수락한 지도자직을 못해먹겠다고 하는 중에 있습니다. 이렇게 된 전후사연을 살펴보겠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부과된 일이 부당하다며 바로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면박과 노여움만 더 사게 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로의 분노에 잔뜩 긴장해서 궁을 나오는 길에 모세와 아론을 만난 겁니다. 그러자 당장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출 5:21)

 

일전에 모세와 아론이 자신들을 찾아와 이적을 보여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 고난을 살피셨다는 말을 했을 때 얼마나 기대가 컸는지 모릅니다.(4:29-31) 그런데 그 기대가 점차 무너지면서 급기야 사기 당했다는 기분이 들게 된 겁니다. 구원해주신다면서 오히려 노역(勞役)만 크게 부과되고, 바로의 진노만 쌓게 되니 모세와 아론을 향한 실망과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닌 겁니다. 그래서 5:21의 저주의 말이 나온 겁니다.

 

이렇게 백성들의 원성이 극에 달하자 모세는 하나님께 불평을 하기 시작합니다.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5:22-23)

 

모세는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러운 겁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 억지로 맡겨 놓으시더니, 이제는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하시다니 너무 억울하고 야속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막 들이대는 겁니다. 여기에는 과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질까라는 의구심도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일종의 불신앙이죠.


그러나 이건 참으로 고약한 들이댐입니다. 하나님은 진작에 이 일이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신 바입니다. 출 3:19-20을 보십시오.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하나님이 진작에 하신 말씀으로 보면 지금 모세가 당한 망신은 당연한 것이고, 구원의 대역사의 시작에 불과한 겁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진작에 하나님이 예견하여 주신 말씀을 귓등으로 듣고 흘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 어느 것 하나 흘리면 안 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이러한 태도는 또 하나의 불신앙인 겁니다.

 

우리는 모세의 이러한 태도에서 불신앙은 또 다른 불신앙을 낳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는 의심은 의심을 낳고, 미움은 미움을 낳는 것과 동일한 법칙입니다. 한 번 믿지 못하면 이 불신은 연속성을 갖게 됩니다. 옛말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불신의 연속성을 빗댄 겁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지 않는 불신앙이 하나님의 구원을 의심하는 불신앙으로 발전하게 된 겁니다.

 

모세의 이러한 태도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그러다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지 않는 것 같고, 일이 잘 안 풀리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의심합니다. 자신에게는 단 하나의 문제도 없는 듯 하나님께 해댑니다. 우리에게 있어서의 문제는 모세처럼 진작에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것이 불신앙의 발단이 되는 겁니다. 참으로 고약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내하십니다. 우리가 정신 차리지 못하고 불신앙 가운데 있을 때, 인내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해주십니다. 오히려 큰 위로와 용기를 보태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6:1)

 

하나님의 강한 손으로 이루어지는 강한 역사를 보게 될 것이라는 이 말씀은 놀라운 위로의 말씀인 겁니다.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번 더불신앙과 신앙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신앙은 하나님의 강한 손을 보지 못하는 것이고, 신앙은 하나님의 강한 손을 보는 겁니다. 불신앙은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신앙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을 보는 겁니다. 

 

여러분, 내가 일을 한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단지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대표적인 착각 이었습니다. 6:12에 보시면, 모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 자손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하소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모세가 자신의 구원의 대역사, 하나님의 일의 주인공으로 혹은 영웅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주인공은 하나님이시고, 모세는 도구에 불과한데, 이를 바꿔서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이 얼마나 큰 착각입니까! 종이 주인 행세하고 있는 꼴입니다.

 

이것 또한 우리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을 내가 드라 이브하고, 하나님의 일을 내가 하고, 하나님의 대역사에 내가 영웅이 되고 하는 일들은 하나님을 제치고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이 모순은 착각에서 시작되기 보다는 불신앙에서 발생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형국(形局)인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를 붙잡고 아주 특별한 메시지를 주십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다.”(6:3) 이 메시지의 분위기로는 ‘여호와라는 내 이름을 너에게 처음으로 공개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상당히 우쭐해질 수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되짚어 볼 일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창세기에서 이미 여호와로 불리우고 있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 13:4에 보면,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가 있고, 창 26:25에서는,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창 32:9에서는,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천연덕스럽게 이들에게 자신을 여호와로는 알리지 않으셨다고 하시는 겁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우리가 검토해 봤듯이, 분명히 하나님은 이미 창세기 시대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각각 여호와로 알려져 있었고 불리우셨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의미를 찾기 위해 사전 작업이 필요합니다. 즉 성경에 언급된 하나님의 이름을 살펴보는 겁니다. 살펴보면, 성경에 언급된 하나님의 이름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는 <엘로힘, 엘 샤다이, 아도나이, 여호와 및 여호와 츠바오트, 엘룐> 등입니다. 이런 이름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즉 각 이름이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엘로힘>은 “강하고 힘이 있다”는 의미의 ‘엘’과 “두려움에 휩싸인”이란 의미의 ‘알라’라는 말이 합하여 이루어진 이름으로 “강하고 힘 있으시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이름으로 사용되는 겁니다. 특별히 <엘로힘>은 창조의 하나님으로 자연 만물의 주권자로서의 하나님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이름입니다.

 

<엘 샤다이>란 이름은 특별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번역되는데, “하나님이 자연의 모든 권세를 복종시키시고 또한 모든 자연의 권세를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셔서 자신의 은혜 사역을 성취하는 데 이용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의미할 때 사용되는 이름입니다.

 

<여호와 츠바오트>란 대개 “만군의 여호와”로 번역되어 있는 이름으로, “천군천사들에게 둘려 계시고 모든 피조물의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란 이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요? 이 이름과 그 의미는 이미 출 3:14에서 밝히신 바입니다. 즉 “스스로 계신 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의 불변함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불변의 하나님, 특히 이스라엘과의 언약 관계에서 불변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2-3)라는 언약을 하셨습니다. 이후 이삭과도 이 언약을 동일하게 맺어 주셨고, 야곱에게 그 언약을 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동일한 언약의 말씀을 대를 이어가며 해주신 겁니다. 아브라함은 죽었지만 그 언약은 이삭과 동일하게 함께 하였고 야곱과도 같이 했던 겁니다.

 

그러나 이 언약은 약속만 되었을 뿐 성취를 볼 수 없었던 겁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분명 약속을 받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성취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자, 여호와란 이름은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언약관계 속에서 불변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 주는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일종의 사기를 당한 걸까요? 하나님께 이용만 당한 걸까요?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의 시야의 범주 안에서 제한하여 보려는 습관이 있습니다. 실은 바람직하지 못한 습관입니다. 제한된 시야의 범주에서 만사를 바라보려고 하니 불신앙의 연속성이 나타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시간과 내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시간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겁니다. 하나님은 전 우주를 통째로 보고 계시지만 나는 우주의 한 지점의 지점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제한된 시야로 하나님을 보면 안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아브라함의 세대가 아닌 400년이 넘은 후의 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당시에는 이 일의 결과를 결코 볼 수가 없었던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여호와란 이름의 온전한 의미를 결코 알 수 없었던 겁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생애 동안 이 사실을 나타내 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과의 모든 약속이 마침내 이루어지는 날이 된 겁니다. 지금까지 단순한 호칭으로 알고 부르고 있었던 여호와란 이름의 그 하나님이 불변의 언약을 지키시는 날이 된 겁니다. 여호와의 여호와 되심이 드러나는 날이 된 겁니다. 이제사 그들은 진정 큰 민족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오늘이 되기 전에는 작은 집단에 불과 했습니다. 그들이 요셉을 따라 애굽에 들어 올 때, 그 식구 수가 얼마나 됐는지 기억하십니까? 창세기 46:27에 보면, 70명입니다. 이처럼 한 집단에 불과했던 수가 이제는 근 200만명에 달하는 대인구가 된 겁니다!

 

드디어 아브라함과의 약속이 드디어 성취된 겁니다. 이제사 그들에게 약속한 땅이 실제 그들의 것이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때에는 단지 약속이었던 그 땅이 이제는 실제로 그들의 통치와 지배 아래 있는 땅이 되게 된다는 겁니다. 70명 가지고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고 살 수 없었기 때문에 200만 명이 될 때까지 이 언약은 지체된 듯 보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모세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고 계신 겁니다.(6:2-8)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마치 이루어지지 않는 듯, 지체될 때가 있습니다. 아니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고 진행 중인데 우리가 성급하게 단정 짓고 불안해하는 겁니다. 오호라, 이 전형적인 불신앙의 태도가 우리에게서 언제쯤이나 없어질까요? 주님 오실 때에야? 그러면 안 됩니다. 너무 멉니다. 오늘 당장 이 불신앙의 태도를 버리길 바랍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기다리던 그 언약이 이제 200만 명에 속한 그들에게 이루어지는 겁니다. 내가 아브라함이라면, 400년 뒤 나의 후손이 언약의 성취를 얻게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언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난의 세월을 살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후손이 복을 받고, 언약의 성취를 얻게 된다면, 이것은 고난의 세월이 아니라 언약이 이루어져가는 시간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당황하지도 원망하지도 말고, 믿음으로 견디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주변의 상황이 악화되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유가 임하고, 관계가 회복되고, 축복이 성취되는 그 날이 곧 올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 마침내 약속의 땅에 우리를 인도하실 하나님을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 왕 바로에게 명령을 전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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