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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6:1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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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성희 목사 |
참고 : | 2002년 09월 08일 연동교회 http://www.ydpc.org |
출6:14-22, 마1장1-6
모세와 아론의 족보
혈연, 학연, 지연이란 삼연주의란 말을 우리는 자주 듣습니다. 우리 나라는 합리성보다 정이 앞서는 정적 사회이기 때문에 삼연과 무관하게 살기는 힘이 드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의 일입니다. 피난길에 나선 선조는 팔도의 감사들에게 되도록 많은 병사를 모집하여 한양에 집결시키라는 어명을 내렸습니다. 졸지에 급하게 모은 병사들은 문자 그대로 오합지졸이었습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도계도 넘기 전에 패주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전라도의 병들만이 한양에 오는 도중 연전연승하여 한양에 도달하였습니다.
전라병들이 연전연승을 하게 된 기적의 원인은 두 가지라고 합니다. 첫째는 전라감사 권율 장군의 뛰어난 지휘력과 작전력입니다. 둘째는 급하게 조직한 부대이지만 그 편성의 묘입니다. 전라병들은 광산김씨 부대, 여산송씨 부대 등 가문부대를 중심으로 싸운 것입니다. 항렬이 높고 연로한 분을 대장으로 추대하였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연로하여 걷지도 못하여 업혀 다니는 부대장이 많았다고 합니다.
결속된 구심력과 가문의식이 뒷받침하여 전쟁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혈연을 절묘하게 활용한 것입니다. 흔히 우리가 혈연, 학연, 지연의 삼연주의 가운데 항상 혈연이 제일 앞섭니다. 우리 역사에서 삼연주의는 또한 망국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정치적 세도, 4색 당쟁, 시화, 지역차별 등이 삼연에 근거한 것들입니다. 이런 요인은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 가장 뿌리 깊은 땔래야 뗄 수 없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혈연 사회에서 족보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족보는 후한 시대(950년)에 최초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1467년 안동권씨 족보인 성화보가 최초이었다고 합니다. 소위 양반 가문의 전통을 이어주며, 집안끼리 화목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이 족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말에 "족보에서 이름 파낸다"는 말은 가장 저주스런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을 하고 성경에는 족보 이야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4에는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디도서 3:9에는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고 합니다. 성경은 한결같이 족보 이야기는 헛된 것이니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족보 이야기를 좀 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에는 창세기를 비롯하여 성경 중간 중간에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족보는 중국이나 우리 나라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족보의 사전적 의미는 '부계를 중심으로 혈연관계를 도표식으로 나타낸 한 종족의 계보'라고 합니다. 전통적 족보는 부계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유전 공학 발달로 그 것도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세계적 유전학자인 브라이언 사이크스교수는 전 인류는 모두 성경에 나오는 인물인 하와의 딸 33명으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인류의 뼈에서 DNA를 추출하여 연구하였습니다. 1994년 이탈리아의 북부 빙하 층에 묻혀 있는 5천여 년 된 사람의 냉동유해를 검사했습니다. 이 검사를 통해 인류의 유전자가 모계 족보를 따라 앞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희석되지 않은 채 그대로 전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앞으로는 모계 족보를 만드는 것이 더 과학적일 것 같습니다.
성경의 기자들은 내용의 전환기에 족보를 정리하는 성경의 관례를 따라 족보를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전에 모세와 아론의 족보를 밝혀 두는 것입니다. 모세의 가족적 배경은 레위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먼저 레위의 두 형인 르우벤과 시므온의 자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조상을 따라 집의 어른"이라고 부릅니다. 모세의 조상들은 집의 어른들이었습니다.
성경의 족보 이야기는 재미없는 부분입니다. 흔히들 읽을 때에 뛰어 넘기도 합니다. 신약의 예수님의 족보도 "낳고, 낳고"가 계속되면 지루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이 족보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고, 주님의 의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모세와 아론의 족보에서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곱인 이스라엘에서 모세와 아론의 족보가 시작됩니다. 출애굽을 논하기 전에 애굽에서 살게 된 원인과 근거를 밝힙니다. 가나안에 기근이 들렸을 때에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야곱은 70인의 식솔을 데리고 애굽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다시 출애굽할 것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5:16에는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애굽에 살 때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나왔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고통 당합니다. 고통을 인하여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해방하시려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역사입니다.
모세와 아론의 출현은 이스라엘 백성과 이스라엘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조상들과 맺은 언약이 후손에게 그대로 전수됨을 확인시켜 줍니다. 하나님은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는 말씀을 그대로 이루십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하나님은 후손에게 그 언약이 주어짐을 약속하셨습니다.
언약은 조상들과 맺었지만 그러나 실제로 땅은 후손들이 차지합니다. 조상들은 후손들이 잘 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조상들이 그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언약만 받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내용이 이루어지는 것은 후손들입니다. 조상들은 억울합니다. 모든 부모는 항상 자신의 자녀들과 후손들을 위한 희생제물입니다. 누구나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위한 희생제물이며 나는 내 자녀를 위한 희생제물입니다.
맥스 루카도는 "과거의 후손은 바로 우리다. 또한 우리는 미래의 부모이며 전대의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일을 이어받은 후계자이고 후원자이며 우리가 씨뿌리지 않는 숲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대의 사람들과 후대의 사람들과 동질적인 존재들입니다.
족보를 기록한 이유는 모세와 아론이 이끌 백성들이 그들의 동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그 백성들이 자신의 동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백성들은 그들을 이끄는 모세와 아론이 그들의 동족이라는 신뢰성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족보를 통하여 모세와 아론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둘째, 해방자 모세의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해방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 가운데서 된 일입니다. 모세의 출생, 성장 그리고 그의 역할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서 되어진 하나님의 일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에서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택정함을 입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노루가 통솔하는 사자 군대보다 사자가 통솔하는 노루 군대가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도자의 중요성을 말하며 지도자는 본래적으로 지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밥 얀디안이 쓴 '다윗 섬김의 리더십'에 보면 최고의 리더로 이끌어주는 6단계를 설명하면서 "은총의 뜻을 깨달아라", "하나님과의 교감을 유지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감에서 지도자가 탄생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타고난 보스(the gifted boss)란 말도 합니다. 타고난 보스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리더십을 가진 자를 의미합니다.
바울의 리더십의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로마서 1:1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1:15에는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라고 합니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며 자신의 리더십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시려고 그 가문을 활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가운데서 모세의 선택도 출애굽도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시려고 요셉의 가문을 이용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을 마태는 마태복음 처음에 적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늘로서 내려오는 권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서 내려왔기 때문에 하늘로서 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님 스스로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가 하늘로서 오는 표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는 하늘로서 오는 세례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시고 일을 주시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권위를 직접 주시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모세의 족보는 가문의 수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 하필 하나님께서 모세의 가문을 이용하셨을까요? 왜 레위 지파에서 모세를 택하셨을까요? 레위는 이스라엘의 셋째 아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첫째 아들인 르우벤과, 둘째 아들인 시므온을 소개합니다. 르우벤은 이스라엘의 장자이었으나 아버지의 소실을 범한 과실로 장자권이 요셉에게 돌아갔습니다. 역대상 5:1에서 르우벤에 대하여 소상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우리말에 족보에서 이름을 파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무서운 징벌이고 저주입니다. 그런데 르우벤이 그 꼴이 되었습니다.
시므온은 가나안 여인을 취하여 사울이란 아들을 낳았습니다. 당시에 족장의 후손들이 가나안 여인을 취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위하여 며느리를 취할 때에 가나안의 딸 중에서 하지 말라고 그의 종에게 부탁하여 가문에서 리브가를 취하였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창세기 34장에 보면 세겜 사람들을 무참히 죽은 살인자입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사람들에게 욕을 당했을 때에 오리비들인 시므온과 레위는 할례를 이용하여 칼로 그들을 죽였습니다(창 34:25). 세겜에서 야곱이 당한 가족적 비극의 장본인들입니다. 세겜을 피비린내 나게 한 살인자들입니다. 라이트푸트라는 주석가는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는 여기에 기록된 사실만으로도 명예를 지니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적나라하고 솔직하고 수치를 감추지 아니하는 자세가 이 족보에는 나타나 있습니다. 가장 추한 일을 스스로 적고 있습니다. 하필이면 가장 추한 사람들의 일을 가문의 족보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록 가문이 수치스럽다고 하더라도 내가 가문을 빛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처음에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족보는 예수님은 여인의 후손으로 태어난다는 약속의 성취입니다(창 3:15). 예수님 족보에 네 여성의 이름이 거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말은 시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대를 잇는 며느리입니다. 라합은 가나안의 기생이었습니다. 룻은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개로 취급하던 이방인 과부입니다. 우리아의 아내는 남의 부인인데 다윗이 그 남편을 전쟁터에서 죽게 하고 취한 사람입니다. 천한 조상에서 예수님은 탄생하셨습니다. 천한 우리를 구하시려고 천한 경험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족보는 천한 것을 가리지 않고 적고 있습니다. 아니, 하필이면 천한 것만 골라서 적고 있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역사요 족보입니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하여 우리 나라 사람들은 분개합니다. 일본이 근대사를 왜곡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일본은 고대사도 왜곡하여 가짜 토기를 묻어놓고 다시 발굴하여 일본의 역사를 수천 년 앞당겼습니다. 얼마전 이 모든 것이 탄로 나서 역사 교과서를 다 고친다고 합니다. 고대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이 근대사를 왜곡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을 이상히 여길 것이 없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열등의식의 발로입니다. 역사는 진실을 쓰는 것입니다. 수치를 수치로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치를 감추고 거짓으로 꾸미는 것은 역사가 아닙니다. 진실을 감추고 역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
노벨 문학상을 받은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1961년에 권총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의 가문의 변사는 뿌리가 깊습니다. 헤밍웨이의 아버지와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그의 아들 그레고리가 성전환하여 여자 교도소에서 죽었습니다. 한 때는 의사였던 그가 알콜 중독으로 고통을 당하다 죽은 것입니다. 이런 비참한 가문도 있습니다.
반면에 존 스커더라는 분의 가족이 있습니다. 이 가문은 다른 어떤 가족이 도저히 깨지 못할 선교적 기록을 수립하였습니다. 존 스커더와 그의 아내 실론은 인도 선교사입니다. 그들에게는 10자녀가 있었습니다. 아들 중의 하나는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아홉 자녀는 다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아홉 자녀 중 다섯명은 의료선교사입니다. 그들이 인도에 선교한지 100년이 되던 1919년에 세 명의 증손자가 인도를 향해 출항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서른 한 명의 자손이 인도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일곱명의 자녀는 다른 곳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소모적인 족보 자랑은 하지 맙시다. 건설적인 족보 이야기를 합시다. 여러분의 가문을 통하여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가문의 족보에 기록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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