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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이삭을 나에게 바쳐라

창세기 궁극이............... 조회 수 2179 추천 수 0 2013.01.16 11:25:22
.........
성경본문 : 창22:1-19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아브라함 

221-19.

 

1-19: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천국은 내가 갈 곳입니다. 천국은 생명적 단일이요 의사적 단일이요 능력적 단일이요 취미적 단일이요 영광적 단일이요 성분적 단일입니다.

 

롯은 중생은 했지만 육이 주격이 되어가지고 일생 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간 자의 모형입니다. 육이 주격이 된 신앙생활에는 육의 소원, 바라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육의 소원도 영의 소원도 하나님이 다 이루어 줍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창세기 16장에 아브라함이 육이 주격이 된 신앙생활에서 이스마엘의 씨가 나왔습니다. 육의 소원에는 뭐가 나온다고요? 육의 소원. 그러니까 우리가 얼른 생각할 때에 자기의 육에, 보이는 육적으로 어떤 소유성 수입성 어떤 눈에 보이는 가견적인 그것만 생각을 하거든요? ‘그것이 이루어진다그렇게 지금 얼른 생각이 들지요? 그러나 그 면을 보지 말고 그런 생각을 가지면 반드시 무슨 씨가 맺혀요? 이스마엘의 씨는 맺어진다 그 말이요. 그건 아주 필연적이다. 그런 면에서 육의 소원대로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육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거기에서 기도해도 안 이루어주더라.’ 그러니까 물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그런 면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기가 쉽겠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렇게만 생각 말고, 이스마엘의 싸라고 하는 것은 생명의 씨가 아니고 사망의 씨다 그 말이요. 육의 주격이 되어서 구했다 하면 그건 벌써 사망의 씨가 생겨지게 마련이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그 사망의 씨가 생겼다면 그 가정에 사건입니다. 화의 근원이 된단 말이요. 그 화는 영원히 갑니다.

 

롯도 가만 보면 요단평야를 가진 소돔의 부자입니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본다면 하루아침에 자기 믿음대로 대 거부가 된 겁니다. 권세도 얻었지요. 존영도 가졌었지요. 소돔 고모라성의 성주가 됐으니까. 그러나 그 물질적 부요성은 심판 때까지 입니다. 그 심판 이후는 알거지가 되는 거고 수치스러운 자가 되는 거고. 그런데 그 행동 자체가 수치스럽다 라기 보다도 롯의 족보가 복잡하단 말이요. 그 점이 더 수치스럽다 그 말이요.

 

그리고 육신이 주격이 된 신앙생활은 그 결과는 벌거벗은 자로 나온다. 분명한 사실이란 말이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도 보면 육이 주격이 돼가지고 신앙생활 한 교인들을 보면 말씀을 깨닫고 단단히 가져야 할 성화구원의 정신적 사상적 면에 완전히 벗은 자처럼 그렇게 돼 있는 인격적 상태를 볼 수가 있어요. 벗었어. 그런데 자기가 벗은 줄을 몰라.

 

아브라함이 영이 주격이 돼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 그거는 없어지는 것같이 보이지만 영원히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15장에는 보면 하나님께 감정이 있어가지고 삐지고 돌아가더니, 아브라함이 잘났다고 살다가 자기는 뚝 떨어진 그런 게 보이지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잘난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안 만나준다 그 말이요. 그 후에 세월이 14, 15년 지나는데, 그러니까 하나님이 안 만나준 거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못 만나고. 그런데 18장에 들어와서는 신앙회복이 되고 천국저축 주의로 살게 되고.

 

그렇게 되었는데 이삭이 난 후에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몹시 괴롭혔지요. 이삭이 태어나면 기뻐해야 되겠는데 그렇게 괴롭습니다. 유대인의 율법에는 장자인 서자는 장자권이 없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대화 끝에 하나님 앞에 응답 받은 후에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버리지요. 그러니까 아무리 인간보기에 신앙 신앙해도 인본주의를 쓴 것은 사망의 씨다. 내 좇아라 그 말이지요.

 

아브라함의 신앙상태가 인본주의를 쓰고 타락됐다가 또 회복되고 또 타락됐다가 또 회복되고 그런 게 상당히 많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회복할 때에 과거의 신앙생활을 총 결산하고 전부는 천국에다 저축을 해야 되겠다. 그리고 하나님과 화목을 하되 반듯이 죽음 이편에서 이 세상에서 화복을 해야 되겠다그런 깨달을 갖는 거지요.

 

이 혈육계대 문제. 단순히 회개만 했지만 이 회개만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혈육인 것 같으나 그런 생명계대가 끊어지지 않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면에 그 계대를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삭을 이제 하나님 앞에 올리지요. 이렇게 이삭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대를 잇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고 하는 것은 인간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아브라함의 그 속에 들어있는 아브라함의 중심을 보고 어떤 소원성을 보고 찾아오셨구나그게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기를 아들을 달라그런 요구가 있었고, 산꼭대기 올라가서는 명령입니다. 처음에는 네 아들을 달라.’ 요구성으로 돼 있었고, 산꼭대기 올라가서는 명령입니다. ‘네 아들을 죽이라.’ 왜 이렇게 하나님은 시험을 했을까? 아브라함은 내가 죽기 전에 죽음 이 편의 것을 전부 다 저 편으로 옮기자. 하나님과 불목상태에 있는 것 화목을 하고.

 

계대승인을 받자하는 여기에는 경제도 시간도 정력도 목숨도 다 들어있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아들을 사랑하는 고로 그래서 거기서 누구를 더 사랑하나?’ 딴 사람이 볼 때는 아브라함에게 그 장면을 시험으로 보는 거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나, 아니면 아들을 더 사랑하나하고 시험으로 본다 그 말이요. 그러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아브라함이 깨달은 것은 내가 살아있을 동안에 전부는 죽음 저 편으로 다 옮겨놓자. 하나님과 화목을 하고 생명계대를 이어나가자하는 그런 중심사상의 신앙이 들어있다 그 말이요. 아브라함은 그 신앙가지고 그렇게 하는 거다 그 말이요. 남이 볼 때는 아브라함에게 시험이다그렇게 보는 거지요. ‘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 아들을 더 사랑하느냐이렇게만 보게 된다 그 말이요. 아브라함은 자기에게 스스로 시험으로 봅니까? 그 마음속에 들어있는 거. 그거란 말이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는 목숨입니다. 순교자는 자연생명이 새 생명에게 삼킨바 되어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육의 자연생명을 버린 것 같으나 버려진 게 아니지요.

 

이제는 이삭 낳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하나님은 찾아오지 않았고, 아브라함은 자꾸만 죽음이 찾아오고. 아브라함 속에 불타고 있는 게 뭐냐? ‘죽음이 오기 전에 하나님과 자기와의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하나님께서는 순생애로 사는 자에게 순교의 기회를 주는 겁니다. 이를테면 아브라함이 자기의 시간과 경제를 다 하나님께 바치면 이삭이 굶어죽는다 그런 게 아니지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화목을 못하면 저 편에서는 하나님과 화목이 없어요. 계대문제 해결 못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그러니까 이삭을 드려서 말하자면 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 이삭을 더 사랑하느냐? 그 어느 편을 더 사랑하느냐? 그거. 그래서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이렇게 돼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어떤 그런 걸로 생각하기 쉽지요. 그것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싶은 그 마음이 불타느냐? 아브라함 속에. 아니면 하나님을 위한 그 마음으로 불타느냐? 이게 다른 겁니다. 축복받고 싶은 마음으로 불타면 어떻게 되지요? 그건 육이 되는 거고, 하나님을 위한 마음이 불타는 것은 영이 되는 거고. 신앙생활은 달라요.

 

하나님이 안 나타나셨을 때에 아브라함은 나이가 들어 자꾸 죽음이 찾아오지요. 그럴 때에 자칫 잘못하면 마음이 해이해지기 쉬운데,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믿음이 식어지지 않고 죽음이 찾아올수록 마음이 더욱 진하게 타는 겁니다. 보통 사람으로는 영적인 그 신앙생활을 이해가 안 갑니다. 이해하기 힘들어요. 보편적으로 보면 눈에 나타나 보이는 그 면만 보고 자꾸 신앙을 말하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지 않았다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네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쳐라그랬을 때에 아브라함 마음속으로 아이고, 이제 나 죽었구나그렇게 될까요, 아니면 아이고, 이제 나는 살았구나이렇게 될까요? 보통 인간들의 마음은 이제 죽었구나.’ 그렇잖아요? 아브라함에게는 그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그 기다림 속에서 나오는 그 음성. ‘네 아들 이삭을 바치라그랬을 때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혈육적인 아들은 얻었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명계대를 잇는 면에 있어서 그 축복을 받는 면에 있어서 그래야 되겠는데, 그 축복을 받아야 되겠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하나님을 고대하고 기다렸다면 네 아들을 바치라그렇게 할 때 아이고, 이제 죽었구나이렇게 나오겠습니까?

 

아이고, 이제 살았구나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 집착이 된 말이지요? ‘네 아들 이삭을 바치라할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 마음은 어디다 집착이 된 거지요? 생명계대를 잇고자 하는 그 면에 대한 축복. 그 기회를 아브라함에게 안 줘서 얼마나 애탔어요? 그런데 그 기회가 왔단 말이요. 그러니 얼마나 좋겠어요? 이게 상상이나 되겠어요? 육적인 신앙의 세계에서는 이게 이해가 되겠습니까? 영적인 신앙에서야 이해가 되는 거지. 그렇잖아요?

 

그래, ‘나에게 바치라그렇게 할 때 아브라함은 너무 너무 기뻐서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겠어요? ‘네가 나의 소원도 들어줬는데 너의 소원을 왜 들어주겠는가?’ 한 것이 네 아들을 바치라그거지요. 이게 참 이해가 되겠어요?

 

아마 모르긴 해도 아브라함이 육본신앙으로 살 때에 네 아들 이삭을 바치라그러면 그게 바쳐지겠습니까? 어렵지요. 어려워요. ‘이삭을 바치라그랬을 때에 어떻게 안 되지요. 그러나 이삭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의 아브라함의 신앙을 끌어올리는 거지요. 끌어올려서 생명계대를 이어야 되겠다고 하는 그 면에 아브라함의 신앙이 애가 타게 되는 거지요. 그랬을 때에 바치라하게 된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순생애의 신앙으로 사는 그 자에게 순교의 사건이 허락이 되지 맹숭맹숭 육덩이로 살고 있는데 순교의 신앙? 그거 안 돼요. 되는 게 아니란 말이요. 사람이 여물어지고 되어먹기를 육 쪽으로 여물어졌는데 순교가 되요? 안 되는 거지요.

 

확실히 신앙이 고도로 올라갈 때는 아브라함 자기도 모르고 또 다른 사람도 그 신앙심의 아브라함을 모릅니다. ‘너희들이 볼 때는 아들을 사랑하는 것 같으냐?’ ‘아들을 사랑하나, 안 사랑하나단순히 그 면을 두고 그 사건이 진행된 것처럼 보여진단 말이요.

 

하나님과 화목을 하자면 값이 없는 것을 놓고 화목을 합니까, 값이 있는 걸 놓고 화목을 하겠습니까? 우리 인간도 그렇지요? 그런 게 있잖아요? ‘아들을 잡으라.’ 화목이 중하냐, 아들이 중하냐? ‘아들그러면 그거는 아브라함의 사랑의 원료뭉치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원료뭉치. 여러분들에게도 다 있을 거예요. 돈이던 사람이던 무엇이던 직장이던 무엇이던 자기 마음속에 이것만큼은하는 그거 다 있을 거예요. 그게 자기의 사랑이란 말이요. 사랑으로 뭉치. ‘그거 나한테 바쳐라. 잡아라.’

 

만일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네 아들 말고 소 열 마리를 나에게 바치라그랬다면 아브라함이 기뻤을까요, 슬펐을까요? ‘네 아들 말고 소 열 마리를 바치라그러면 기뻤을까, 슬펐을까? ‘아들을 바치라하는 것도 기쁘고 소를 바치라하는 것도 기쁘고? 그러나 사람의 심리를 일반적으로 볼 때는 아들보다도 소를 바치라 할 때지요.

 

화목의 조건이 크면 클수록 수입도 큽니다. 예를 들어서 투자를 많이 할수록 수입도 크다 그 말이요. 그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아마 산수공부를 잘한 것 같아요. 아주 계산이 빨랐어요. 조건이 크면 클수록 수입도 큽니다. 그렇지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가 있는데 마약거래 같은 거 하려면 법에 저촉되고 때로는 생명을 내놓아야 할 그런 모험도 있지요? 그런데 조그마한 거 한 봉지 팔면 돈이 그렇게 많습니까? 예를 들면 그렇단 말이요. 조건이 크면 역시 수입도 크다. ‘너 이거 심부름 존 해라.’ ‘안 하렵니다.’ ‘갔다 오면 돈 얼마 줄께하면 돈 요구조건이 크지요. 그런 것처럼.

 

독자 아들을 드리라하는 걸 보면 분명히 이것은 아브라함이 가진 소유보다도 더 큽니다. 물질보다도 귀중한 것이 아들이고. 아브라함의 목숨보다도 더 귀중한 것은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아들 속에는 아브라함 자기 소유 목숨 재산 명예 영광 희망 소망 행복 이거 죄다 든 겁니다. 그런 원료뭉치란 말이요. 우리가 바른 것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배로 주시는데, 화목도 이루어 주시고 천국저축도 이루어 주시고 계대계승도 이루어 주시고.

 

여기서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소원대로 하나님 앞에 아들을 장립식을 하려면 하나님이 시험을 해야 될 거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깡패 같은 아들을 하나님이 받겠느냐 그 말이요. 그러니까 네 아들 얼마나 잘 길렀나 보자하는 시험이 있다 그 말이요.

 

아브라함은 산에서 나무를 하지를 않았지요. 집에서 장사를 장만했지요. 왜 아침 일찍이 갔나? 좀 천천히 가지 않고. 보고 싶은 아들이 이제 죽을 터이니까 하루쯤 좀 더 두고 본다고 하루 더 있다가 가면 안 됩니까? 우리는 경험은 안 했지만 부모들이 딸 시집보낼 때에 부모도 울고 딸도 운다며? 시집가는 거 가만 보면 사실은 울 게 아니지요. 왜냐하면 자기 집을 찾아가는 거니까. 자기 고향 찾아가는 거 아니요? 행복의 보금자리 찾아가는 거 아닙니까? 사실 보낼 때에 울 필요는 없는 거지요. 웃으면서 보내고 웃으면서 가고 그래야 기쁘지요.

 

그런데 이삭의 경우는 죽이러 가는데 어쨌든 당일 날 죽이면 될 거 아니요? ‘조금 더 보보 가자. 조금 더 보고 가자머뭇거리면서 가도 될 텐데 무엇 때문에 일찍이냔 말이요. 새벽같이 얼어나 가지고. 안 그래요? 그리고 하나님은 왜 또 3일 간을 여유를 줬느냐 그 말이요. 사람이 꼭 마음이 시험에 들기 좋게 했단 말이요.

 

우리 인간은 보통 보면 처음에는 결심이 대단하지요. 12310시 땡 하고 11일 탁 되면 밤새도록 옛날에 지은 죄는 다 보내고 11일 닭 울자 마자 첫 예배 때 결심이 대단하지. 그런데 갈수록 자꾸 마음이 달라지지요. 얼마 못 가서.

 

그런데 삼일 길을 주었을 때에 우리가 육으로 한 번 생각을 해보면 아브라함의 마음속에서 투쟁이 일어나기 쉽지요. ‘바칠까 말까하고. 그리고 뒷동산에 가서 드려라하면 금방이라도 뛰어갈 수가 있는데 이건 뭐 3일 길이니 사람 참 애 되게 태우는 어떤 그런 시간이요 기간인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사라에게 말은 안 했지요? 왜 사라에게 말을 안 했을까요? 아침에 가서 산에 가서 불태워 버리면 영영히 못 보는 그런 사건인데 사라에게 그 말을 안 했어요. 이삭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그걸 안다면 그 마음이 어떻겠어요? 그리고 사라가 또 그런 사건을 안다면 그거 어떻게 될까?

 

그런데 사라에게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신앙의 단계가 그 단계가 아니란 말이요. 붙들고 늘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아들 죽이러 간다는데 엄마가 죽었으면 죽었지 아들을 놓아주겠어요? 안 그래요? 동네사람 종들 불러다가 저 영감 노망 들었으니 붙잡아 묶으라고 하지.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되면 제거해 버린다. 하나님 일에 방해되는 것은 말 안 하는 게 좋지요. 그렇지 않아요? 이를테면 아내는 예수 믿고 남편은 예수 안 믿는다. 천상 월급을 남편이 타오니까 거기서 십일조 떼는 거 남편에게 말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믿음의 사람이 아니니까 말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헌금이라든지 그럴 때에 불신자 식구에게 말할 필요가 없어요. 전혀 말할 필요가 없어요. 어쨌든 세상의 주격성 성도야. 아무리 불신자가 돈 벌고 어쩌고 했어도 불신자가 사는 것은 누구 때문에 살지요? 성도 때문에 살고 있단 말이요. 성도로 통해서.

 

아브라함은 복의 기관이지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지역적으로 볼 때 가정적으로 볼 때 성도가 있기 때문에 축복이 되는 것이다. 세상을 불태우지 않는 것도 성도가 있기 때문에 불태우지 않는 거다. 그러니까 언제고 세상의 인간의 주격성은 성도야. 그러니까 믿는 일가지고 자세하게 불신자들에게 의논할 필요가 없어요. 대화할 단계도 안 되고.

 

그리고 나귀는 산기슭에 매어두고 갔지요. 만일 나귀하고 종들이 있는데 제단 옆에 매어놓고 이삭을 잡아드리는 그 옆에 종들 세워두고 하면 안 돼요. 방해가 돼서 일이 안 돼요. 그러니까 방해가 되는 것은 다 떼어놓아라. 다 떼어놓고 데려가지 말자.

 

그래, 아브라함이 가는 그 모습을 볼 때에 하나님의 마음이 어떨까?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자기 아들 이삭을 데려가면서 마음속으로 애타게 울고 있을까요, 마음속으로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를까요? 하나님의 시선이 아브라함을 보고 있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선을 독점을 하고. 천군천사들도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그 걸음걸이를 다 구경하고 있지요.

 

오늘날 여러분들도 모든 신앙성도들도 아브라함의 그 걸음걸이를 총 집중하고 있습니까? 이삭이 묻기를 양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준비했단다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왈 나는 아들이라고 길렀지만 제물을 누가 준비했다?’ 하나님이 준비했다 그 말이요. 나는 아들이라고 길렀지만 하나님은 제물로서 기르는 거지요.

 

우리가 여기서 잠깐 롯의 신조를 볼 때 인간의 행복은 아들 낳고 딸 낳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잘 먹고 잘 놀고 잘 사는 거. 그러니까 딸들은 그것밖에 모르지요. 그것만 배웠으니까. 이 두 가정의 자녀 기르는 그 노선이 교육방법이 사상이 중심이 이건 뭐 확 틀리잖아요? 그렇잖아요?

 

아브라함은 자식을 어떻게 길렀습니까? ‘이삭아,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면서 할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순종을 하고.’ 이삭의 사상적으로 여물어진 그 속에는 그 아버지의 신앙교육 속에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나 같은 이 죄인을 원하신다면 하나님의 그 명령에, 아버지로 통한 그 명령에 내가 순종하고 제물이 되겠습니다이런 각오가 나오게 된다 그 말이지요.

 

아버지가 하나님의 명령을 말하면서 그래, 순종의 제물이 되거라그러니까 이 이삭의 입장에서는 ‘3년 된 깨끗한 짐승 양을 그만두시고 더러운 내 몸을 받으신다니이런 이삭의 마음속의 그 신앙심. 이렇게 되니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명령에, 아버지로 통한 그 명령에 순종의 길을 통과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놓은 거지요.

 

이삭은 절대로 강제가 아닙니다. 강제가 되면 이건 살인이지요. 강제가 되면 살인이다. 살인은 또 강제가 되는 거지요. 아브라함의 그 신앙 원료뭉치가 이제 이삭으로써 나타나는 겁니다. 이삭의 그 순종할 수밖에 없는, 순종이 되어질 수 있는 그 이삭의 신앙심. 그 믿음. 그런데 손발을 묶은 이유가 뭘까? 저녁에 가서 한 번 생각해봐요.

 

어쨌든 모리아 산상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그 신앙은 온 세상 온 세계에 나갑니다. 이제 그 아들을 묶어놓고 막 찌르려고 할 때 그 순간이 아브라함이 칼을 들고 진짜 찌르려고 했을까요, ‘찌를까 말까하다가 에라, 모르겠다하고 찌르는 그런 마음일까요? 참 그 아브라함이 단번에 한 칼에 하는 어떤 그 강력한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급했으면 두 번이나 불렀을까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죽이지 말라그랬을 때에 아브라함은 아휴, 이제 살았다하고 마음이 푹 놓이겠습니까? 거기서 또 아브라함이 어떤 마음이 들까요? ‘뭐가 또 잘못됐을까하고 눈앞이 캄캄해 지겠지요? 그러면서 자기 신앙을 또 훑어볼 테지요. ‘나는 참 마음으로 진행해 나왔는데.’

 

그러니까 죽이지 말라하는 순간에 세상천지가 아득해진다 그 말이요. 나는 하나님 입장에서는 신앙으로 했는데, 그러면서 이삭을 바쳤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을 죽이지 말라고 했으니, 죽어지지 않았으니 아버지는 하나님 앞에 바치지 않는 것으로서 마음이 찜찜하단 말이요. 시원치가 않아. 화장실 갔다 뒤 안 닦고 나온 것 같아. 어쨌든 양 한 마리 준비해둔 것으로 바치고,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자기를 두고 맹세를 하지요. 아브라함은 이제 마음이 완전히 바친 것으로서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아들을 바쳤는데 아들은 죽었습니까? 아들은 살아서 자기 옆에 있고. 그러니까 롯과 비교해보면 롯이 가진 것보다도 영원히 영원히 있는 것을 우리는 대조가 되어 보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게 얼마나 복된 것이냐? 이래서 아브라함의 기도가 이루어진 겁니다. 생명계대를 이을 수 있는 계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그 계대.

 

영이 주격이 된 신앙생활은 최종이 어디인가 하니 모리아 산이라 그 말이요. 클라이막스라 그 말이요. 예수님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게 최고 아니요? 인간 보기에는 육이 보기에는 최저의 아주 나쁜 상태의 그런 사건이지만 영적 신앙적으로 보면 최고의 수입을 얻는 클라이막스의 장면이다. 영이 주격이 된 클라이막스의 그 신앙생활이 돼 나온다. 예수 믿어 잘 살아보자이거 너무나 거리가 멀잖아요?

 

그렇다면 오늘날 육이 주격이 된 신앙생활의 그림자가 완전히 롯이지요. 롯으로 그냥 다 보여져 버리지요. 우리는 아브라함의 그 신앙의 걸음걸이 속에 또 롯의 신앙의 걸음걸이의 결과들이 보여집니다. 그렇게 살면 그렇게 됩니다. ‘아이, 이제 큰일 났구나. 예수 믿다가 순교 당하겠구나그렇습니까? 그건 하나님 주권에 맡기고.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앞에 영이 주격이 돼서 살아간 그 신앙의 걸음걸이, 또 롯이 육이 주격이 되어서 살아간 그 신앙의 걸음걸이를 우리로 하여금 대조해서 그 결과성을 볼 수 있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도 아브라함의 그 신앙을 이어받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정신을 이어받아서 신앙하며 들어갈 수 있도록 저희들을 강력하게 붙잡아 주시고, 우리들 속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정신이 늘 살아서 움직이고 맥박 치는 믿음의 귀한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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