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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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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양의섭 목사 |
참고 : | 2008-03-04 왕십리중앙교회 http://www.wangjoong.org/ |
상처보지 말고 주님을 보라
1. 애굽의 노예로 고통을 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자기들을 구원해 달라고, 자기들을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것도 자기들의 조상을 들먹이며 부르짖었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조상 이삭에게, 야곱에게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내시기 위해, 바로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역사를 시작하는데, 그들의 반응은 별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ㅁ씀하십니다.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이 얼마나 감사한 말씀입니까! 이 얼마나 기다렸던 말씀입니까! 이 얼마나 듣고 싶었던 축복의 말씀입니까!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고통당하는 것, 다 알고 계신답니다. 그래서 이젠 더 참을 수 없어 직접 역사하시어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인도하여 거기서 복되게 살게 하시겠다고 백성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그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이제사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했구나 하는 감격이 있을 것입니다.
2. 그런데 실상 모세와 아론이 이 놀라운 축복의 소식을 백성들에게 전하자, 백성들은 시큰둥하였습니다. 아예 들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왜?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기쁜 소식을 전해 듣고도 시큰둥했습니까?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마음이 상했다구요? 왜? 바로에게 거절을 당했기에! 바로의 눈에 미운털로 박혔다는 사실에 아 이젠 살기 힘들겠구나 하는 실망감에 마음이 상했답니다. 그리곤 현실적으로 노역이 더 가중되어 그토록 기다리던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듣고도 시큰둥했답니다.
이들이 기대한 것은 뭡니까? 이들이 구하여 달라고,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을 때 기대한 것은 뭡니까? 그저 막연한 구원이거나, 갑자기 애굽이 망해서 갑자기 자기들이 통치자가 되는 것, 그야말로 아이들 같은 생각과 기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그런 아이들 같은 발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치루며, 역사의 상식을 통하여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들을 구하여 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수고를 하셔야 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많은 수고를 하셔야 했습니다.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책망할 것은 책망하고, 훈련시켜야 할 것은 훈련시키고! 이유 없이 멀쩡히 살고 있던 가나안을 빼앗아 이스라엘에게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멀쩡한 이를 두드려 팰 수도 없는 일입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갑자기 스타가 되어 있었다고 하듯이 이스라엘도 아무런 수고도 노력도, 희생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 축복의 땅에서 살게 되었다는 식으로 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당하는 가중된 노역, 마음의 상함, 모두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여 내시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할 일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좀 더 어른스러워야 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통치에서 구원함을 받는 데에 따르는 수고를 기꺼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할 것들은 즐거이 받아들여야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펼쳐지며 자신들에게 다소의 어려움과 노역이 가중되자, 투덜대기 시작했고, 불평과 불만을 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불평과 불만의 터뜨림이 노예, 종들의 근성인 것을 아십니까? 믿음의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며, 다소의 어려움, 불이익이 온다고 쉽사리 불평과 불만을 터뜨리는 것, ‘예, 나는 죄의 종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성숙한 백성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걸어가는 여정 속에 당하는 어려움, 고민, 아픔, 상처, ... 여기에 투덜대며 갈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성숙한 마음으로 감내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갑시다.
3. 백성들은 펼쳐지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한 복판에서, 자기들이 바라보아야 할 것은 상처가 아니었습니다. 자기들이 바라보아야 할 것은, 맞추어야 할 삶의 초점은 자신들을 위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지시는 우리 구주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상처에 주목합니다. 상처를 바라보며 늘 웁니다. 상처를 바라보며 늘 아파합니다. 상처를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봅시다.
제 큰 아이가 어릴 적에, 뛰어가다 넘어져 무릎이 까졌습니다. 피가 납니다. 피를 보더니 아이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이 울어재낍니다. 그래서 가까운 가게에서 브라보 콘 하나를 사서 손에 쥐어줬습니다. 그러자 울던 아이가 브라보 콘을 보며 울음을 멈춥니다. 그런데 잠시 후 까진 무릎을 보고는 다시 웁니다. 그러더니 다시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보고는 멈춥니다. 몇 번 먹더니 다시 상처를 보고 울고, 그리곤 아이스크림을 보고 멈추고, ...
상처, 우리 중에 상처 없는 사람 있습니까? 특별히 뭔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난 세월을 결단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 중에 상처 없는 이 있습니까? 별로 없을 것입니다. 다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상처를 보지 맙시다. 상처에 주목하지 말고 우리 주님을 바라봅시다. 나를 위해 역사하시는, 수고하시는, 싸우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봅시다.
새벽길을 통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우리들, 때로 삶이 힘들어지고, 어려워지고, 마음이 아프고, 상처가 생겨도 그 상처에 주목하지 말고, 여전히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는, 수고하시는 우리 주님께 주목합시다. 그 분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나아갑시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그렇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보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얼굴이 안 보이기에, 거기에 주목하지 않고 상처에만, 현실에만 주목하기에 자꾸 울 일만, 염려할 일만 생깁니다. 주님의 얼굴을 보는 가운데 이 세상의 모든 상처를 잊고, 축복의 땅,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은혜가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푸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시 123:1-2)
주님을 바라보며, 아픈 현실, 아픈 상처를 극복하고, 인도하시는 그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상처를 들여다보고 아파하지 않게 하시고, 분노하지 않게 하소서. 자기 연민에 빠져 나아가야 할 길도 나아가지 못하고 뒤만 돌아보지 않게 하소서.
주님, 이젠 주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나를 위해 그토록 애쓰시는 우리 주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나를 위해 간구하는 우리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도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의 증표,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십자가 외에 다른 것들이 내 눈에 들어오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로 행복해 하게 하시고, 십자가로 충성하게 하옵소서.
이제는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겠습니다. 불안한 현실에 주목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약속, 그 말씀, 그리고 보라 하시는 그 약속의 땅, 비전에 주목하겠습니다. 그곳에 내 삶의 초점을 두고 나아가겠사오니,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고 나아가는 십자가의 군병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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