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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도

누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019 추천 수 0 2013.01.17 23: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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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2:2-3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2.3.16 
성암교회 53년, 그리고 전도
눅12:2-3

우리는 오늘 교회 창립 53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그 53년의 절반을 성암교회의 목사로 살면서 생긴 일들을 기록한 기록물들을 식당으로 올라오는 계단 앞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주보 묶음들, 100여권 가까이 되는 설교 공책들, 하루하루의 일들을 적어간 50여 권의 목회 일지들입니다.

저는 이 자료들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기 위해 정리를 하면서 그동안 꼭 한 번은 해야 했으나 하지 않았던 제목 하나가 가슴에서 도드라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전도’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교회의 사명을 말 할 때 처음으로 전도를, 그 다음으로는 교육을, 마지막으로 사회봉사 또는 섬김을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전도에 주력을 합니다. 어떤 교회나 어떤 목사는 죽기 살기로 합니다. 그게 교세 학장이든, 복음에 대한 열정이든 그것은 그 다음문제이고 우선은 ‘전도 잘하는 것이 예수 잘 믿는 교우거나 교회’가 된 요즘입니다.

그런데 왜 허목사는, 성암교회는 ‘전도’를 말하지 않는 것인가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마10:26-27절과 함께 예수와의 관계를 숨기지 말고 세상에 드러내라고 권고 합니다. 예수를 전하는데 좀 더 적극적이고 담대 하라는 뜻이므로, 오늘날 전도를 말하는 이들이 주요 성서본문으로 삼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들은 ‘몸을 죽일 수 있는’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교우들로부터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두 말씀 모두 극심한 박해의 상황 속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눅12:1절로 보아 마태복음의 상황보다는 누가공동체의 상황이 조금 누그러진 상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예수를 숨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라’고 말하는 이 시기에 ‘예수를 전하는 일’이란 기존 사회의 정상적인 사회 질서와 상충, 상이한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이 때 당시에 예수를 믿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것 하고, 세상에 사는 것은 상극관계였습니다.
당시의 사회는 예수를 공공연히 전한다고해서 그들의 육체와 정신을 말살 시키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세상을 뒤집어엎을 폭력적인 존재로 예수와 그 일당들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많은 유대계사람들은 예수라는 이름과 그의 집단 속에서 불순종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체제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이름을 말하는 것 자체가 ‘위대한 로마’에 대한 반역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하간, 당시에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에서부터 예수를 따라 다니는 것은 불순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예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라’고 하는 것이니 이건 돌 맞을 각오를 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을 뒤집어엎으라는 말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일찍이 로마가 지중해 지역의 중심 국가로 등장한 이래 전쟁은 그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이르러 군사력에 의한 평화체제가 시작 되었습니다. 이제 가까스로 전쟁이 아닌 평화의 시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무력에 의한 것이었지만,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백성들에겐 안도였습니다. 새로운 세계가 도래한 듯이 느껴지던 시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로마체제를 비판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질서 교란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불온한 선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와 그 일행들은 공공연히 로마의 체제며 지배자들을 욕하고, 그들을 옹위하는 종교 세력들을 ‘여우’로 비난하며 다녔으니 이제 막 평화를 맛보고 있는 백성들 중에 누가 예수를 좋아 할까요? 사회적으로 예수는 결코 바람직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주장 또한 세상을 요란케 하는 말들임에 분명했겠지요.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초기 그리스도교의 선교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오늘날처럼 하나의 종교를 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항의이며, 로마식 평화주의에 대한 반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반대하는 로마의 평화라는 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힘으로 누군가를 억누르면서 만들어내는 평화입니다. ‘평화 비슷한 평화’였던 것이죠. 예수를 적극적으로 세상에 전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가치, 세상의 거짓된 평화를 반대하는 일이기도 했고, 로마의 평화와는 다른 평화, 하나님의 평화를 구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게 예수전도였습니다.
자ㅡ 그런데 우리에게 전해진 기독교 복음의 상황을 보십시다. 우리도 예수 시대의 백성들처럼 폭력 밑에서 평화를 구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조 500년 왕정시대가 그랬고, 일제 침탈의 시대가 그랬습니다. 6.25가 우리에게 또 다시 폭력 속에서 힘의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런 시대적 어간에 서양기독교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전해진 기독교 복음은 초기 예수의 선교운동처럼 폭력적인 시대상황과 대면한 게 아닙니다. 물론 3.1운동처럼 기독교가 역사의 폭력상황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순전히 민족적 자생 자각의 힘이었지, 선교사들의 선교적 사명에 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와 같은 생각으로 전해진 복음으로 말미암은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전해진 선교는 시대로부터, 정치로부터, 폭력으로부터의 도피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욕망으로 뒤틀린 기독교’를 낳은 것이고, ‘기복 신앙’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역사 이탈적 복음 선교운동’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주지하는 것처럼 우리의 전도는 ‘선교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그런 전도가 되었습니다. 옳고 그름, 나쁘고 좋음, 예수의 정신과 뜻은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만 많이 모이게 한다면, 교인만 늘어난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전도 또는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인해서 한국의 기독교는 번창은 했지만 그 야만성, 물질적인 욕망의 야만성, 정치적인 협잡의 야만성, 명예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몰염치의 야만성 그리고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언어와 행위의 폭력이 날로 증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만히 우리 주변의 교회 이야기를 들을라치면 소란하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돈 이야기 아니면 분쟁과 싸움입니다. 온갖 주먹질과 욕설은 시장 바닥을 훨씬 상회합니다.

되레 교회가 세상보다 더 야만스러운 작태를 만들어내고 학습하는 공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는 세상을 야만과 폭력으로부터 구하는 집단이 아니라 잊혀져가는 야만과 폭력을 상기시키고 학습하는 학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교회가 생산해 내는 종교적인 재화, 종교적인 상품들을 소비할 대중이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품격 있는 신앙을 교회에서, 그리스도교에서 기대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교회에 사람들이 안 나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다고 여기는 게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남은 건 뭡니까? 비대해진 제도 속에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와 습관만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면 교회는 조만간 심각한 신앙적 공황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전도’를 묻는 다면, 성암교회의 교우들인 여러분은 뭘 어떻게 답할 수 있습니까? 그토록 죽을둥살둥 전도에 목을 매는 이들에게 앞의 이야기를 들려 준 다음에 ‘전도를 해야 합니까?’하고 묻는 다면 뭐라고 할 까요? 이런 식이라면 전도 하지 않는 게 미덕이라고, 전도를 하지 말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예수의 마음을 덜 상하게 하는 일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목사인 내가, 예수를 전해야 하는 우리로서, 적극적으로 예수를 드러내며 살아야 하는 우리로서 어찌 그런 무참한 설교와 가르침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거슬러 살며, 어떻게 구원 할 수 있는지는 수없이 생각하고 말하고 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동안 내가 했던 설교의 전부는 바로 ‘전도’였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거짓들과의 싸움을 독려하지 않았습니까? 진정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평화, 하나님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설교하고 듣고 살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에 놓여 있는 교회가 이렇다고 해서 전도의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만약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이해관계와 종교적인 습관에 대한 반성과, 욕망의 내려놓음,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낮추려는 가치가 우리가 믿는 신앙에서 유래한다면, 우리는 아직 전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아니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도를 하려면 먼저 우리의 신앙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성암교회의 ‘전도’는, 예수의 이름을 담대히 말 할 수 있는 용기는, 우리시대의 사회적인 질곡을 문제 삼고 그것을 개선해보기 위한 실천적인 개입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장차 도래할 교회의 미래, 그리스도교의 공황을 헤쳐 나갈 잠재력을 가지는 게 되지 않겠습니까? 성암교회가, 성암교회의 교우들이 전도를 한다면 바로 이것 때문에 ‘세상에 예수를 담대히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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