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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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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윤대영 목사 |
참고 : | 2001. 11. 25 |
그대로 행하였더라
출7:1-7
'한 사람이 성숙 하냐? 성숙하지 않느냐? 하는 것을 판단하는 데는 그가 당연히 해야할 바를 즐겁게 하면 그는 성숙하다. 그러나 당연히 해야할 바를 하지 않는 사람은 미성숙하다.'라고 임마누엘 칸트가 말한 바가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워보면 당연히 공부를 해야하는데 공부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부모님이 여러 말로 권면하지만 그렇게 공부하기를 싫어합니다. 아직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올해 수능시험에 환갑이 넘은 할머니가 응시를 했습니다. 그 분은 말합니다. '내가 젊은 날에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스러워 여건이 좋지 않아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하고 싶어 응시를 했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 그 할머니는 성숙한 분이십니다.
중년이 되면 꼭 운동을 해야 합니다. 운동하지 아니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운동하지 아니하면 결국 노년에 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서는 걸어야 합니다. 뛰면 더 좋고요. 하여간에 온 몸을 자꾸만 움직여야 중년 이후의 건강, 노년 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눕기를 좋아하고 쉬기를 좋아하고 편하기를 좋아합니다. 연세가 들었지만 아직 그 정신 연령은 어린 것입니다. 운동하는 어른은 성숙한 어른이에요. 그래야 자녀들에게 폐해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또 미숙한 사람은 도울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돕지 않아요. 남에게 사랑할 수 있는데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미숙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주는 것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편적 이해는 받는 것이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주는 것이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주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입니다. 주는 것 중에 가장 고귀한 것이 영혼을 살리는 복음을 주는 것이 가장 고귀합니다. 물론 교회학교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성바탕을 진리로 세워 가는 것, 이것 보다 더 고귀한 일은 없습니다. 이것은 마땅히 어른 된 자, 믿음의 선조 된 자가 후배를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일을 꼭 해야 되는데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미숙한 신앙 정도일 것입니다. 또 미숙한 사람은 할 수 없는 일, 자기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그것을 위해서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는 사람이 미숙한 사람입니다. 제가 잘 아는 목사님의 자녀는 명문대학 S대학의 법과를 10년 동안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실패했습니다. 홧김에 군대에 가버리고 서른이 넘어서는 아예 대학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스스로 자학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복권 사지 마세요. 수백만 사람 중에 한 사람이 행운을 잡았다고 해서 많이 사면 될 것이라는 확률을 기대하는 사람은 하지 못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시중에 탤런트 H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어떻게 마약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합니다. 결국은 아직 그 정신이 미숙해서 그렇습니다. 보기에는 다 큰 것 같고, 보기에는 아름다워 보이고, 맡은 배역이 성숙한 여인상을 해냈기 때문에 사람들은 '괜챦은 사람인가?'하는 생각을 했지만 실제 내용은 아주 유치하기 짝이 없는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모세가 등장합니다. 여러분, 모세의 일생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모세는 행복하게 살았다고 생각되십니까? 아니면 불행하게 살았다고 생각되십니까? 모세의 일생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실패 인생으로 평가하시겠습니까? 모세는 120년을 살았습니다. 전반기 40년은 바로의 왕궁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호화롭게 자랐습니다. 중반기 40년은 미디안 광야에 가서 양들을 치는 목동으로 살았습니다. 후반기 40년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사형선고를 받고 태어났습니다. 당시 바로 왕은 '히브리 여자가 아들을 낳거든 무조건 죽여라.'는 사형선고를 하였고 이 당시에 모세가 태어났으므로 그는 사형 선고를 받고 태어났습니다. 그 어머니와 누이의 기지로 나일강에 갈 상자에 실어 띄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바로의 공주를 만나게 하고, 바로의 공주의 양자로 자라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말 행운으로 인생을 출발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은 처절합니다. 40년 간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바로 목전에 가나안 땅을 바라봅니다. 손이 닿을 듯 합니다. 그러나 느보산 위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만 해라.' 요즘 말로 하면 명퇴를 당한 것입니다. 여러분, 40년간 광야생활에서 고생을 했으면 마지막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서 즐겨야지요. 이것은 야구에서 9회말 투수를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모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결과로 보면 불행한 인생처럼 보이고, 실패한 인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4절에서 26절 말씀,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결국 성경은 모세가 보람찬 인생을, 성공적 인생을 살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가 마땅히 할 일을 하는 인생 여정으로 마감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성공적 인생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복된 인생이 되기까지 처음부터 모세는 그러한 인생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6절 말씀,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시는 대로 곧 그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리라.'는 이 말씀이 모세에게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험로와 여러 가지 어려운 과정을 통하여 이러한 성숙에로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왜 처음부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자기가 하는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내가 하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세는 그 어려운 여러 여정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7장 1절에서 5절 말씀에 보면, 모든 주어가 '내가'로 계속 반복되는데 여기 '내가'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는 말씀입니다. 1절 말씀 보면,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 즉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 2절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내가 너를 사용하여 내 뜻을 이루어 간다.' 3절 '내가 이적을 많이 행하리라. 내가 바로의 강퍅한 마음을 완전히 뛰어 넘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가는 것은 내가 기적적 사건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4절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했습니다. 이 역시 '내 군대 이스라엘 백성을 내가 이끌어 나올 것이다.' 5절 '내가 애굽을 내 손위에 펴서'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느냐? 당연히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주의 일을 해야 되는데 왜 안 하려고 하느냐? 내가 하려고 하니까 부담이 돼서 안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반복, 반복 모세에게 하신 뜻이 있습니다. 모세를 성숙시키기 위해서 모세의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 사역의 주최를 '나'라는 것을 확고히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말씀을 모세에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처음에는 모세는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왜? 자기 힘으로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장 1절에서 15절 말씀에 보면 이러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자기 동족들이 애굽 사람에게 노역하고 즉 노예 생활 간역자에게 강제 노동을 당하고 있을 때, 그 현장에 나갔을 때에 그 간역자가 자기 동족을 아주 괴롭히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자기 이름으로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힘으로 그 간역자를 쳐죽여 버립니다. 그의 마음속에 불일 듯 울분이 차 올라왔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왜 이방 이집트 사람이 고통을 주느냐? 내가 해방하리라. 그는 자기가 배운 군사적 힘, 과학적인 지식, 그리고 자기가 여태까지 쌓아온 완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일로 미디안 광야로 도피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 말씀에 보면, 예수님과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또한 사랑하는 제자 셋이 함께 변화산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은 산아래 있습니다. 이때, 한 아버지가 자기 아들이 귀신들려서 간질 증세를 드러내는 아이를 데리고 와서 그 제자들에게 낫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성경에는 자세히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미루어 짐작해 볼 때에 이 제자들이 이 아이를 주님 없는 때에 낫게 해서 아마 별의 별 방법을 동원했을 것입니다. 머리채를 잡고 안수를 했을 것이고 아니면 쓸어안고 기도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예수님께서 하시던 여러 가지를 답습해서 아마 그 아이에게 적용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더욱 간질 증세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세 제자와 함께 하산하셨습니다. 그때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을 보자 반가워서 예수님께 뛰어갔습니다. '예수님, 이 아이를 낫게 해주십시오.' 곧이어 예수님이 그 아이를 낫게 해주셨습니다. 이 모습을 본 그때 혼이 난 실패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 오랜만이지요. 아무리 별 방법을 다 동원해도 실패했는데 예수님은 어떻게 주님은 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7장 20절 말씀에 기록하기를 '만일 믿음이 겨자씨만큼 있다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느니라' 여기서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나는 하나님께 쓰임받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면 사역의 주최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 하신다'고 ale는 믿음을 의지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많은 주의 종들을 보면 처음에는 사역을 시작할 때 아주 힘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역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시무룩해지고 탈진 상태로 들어가는 분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처음 임직을 받고 안수 받을 때는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 일을 자기 혼자 다 할 것처럼 아주 포효하는 사자처럼 얼굴을 아주 결단이 차게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1년, 2년, 3년이 지나면 풍선에 바람 빠지듯 쭈글쭈글 해지는 모습을 봅니다. 그 원인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가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해보겠다.' 작심 삼일이지요. 시작할 때, 누가 뭐 잘 안 하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하려고 하지요. 결국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성경에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 받고 끝까지 충성한 사람들 보면, 모두 '사역의 주최는 하나님'이시라는 생각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일한 사람들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사사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사는 모두 자격이 미달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봐도 '저 사람들이 무슨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모두 부름 받아서 능력 없고부족함에 하나님 앞에 철저히 의지했으며 이들이 성공적 사역을 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 삼손 같은 사람은 너무나 장대하고 힘이 있어서 오히려 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사사 중에 여성 드보라도 있습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전폭적으로 의존하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늘 내주었기 때문에 성공적 사역자가 되었던 것을 사사기 4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세는 왜 이 자리에 쉽게 오지 못했던가? 그것은 부정적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 보면, 여호와의 산 호렙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그에게 나타나서 모세에게 말합니다. 10절에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이 때, 모세가 대답합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부정적인 의식으로 꽉 차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저 파 라오의 왕궁에서 쫓겨난 사람이요, 나는 지명 수배되어 지금 숨어 다니는 사람이에요. 나는 40년간 저 양들을 기르는 양치기로 전락한 존재요, 이제는 내 나이도 80이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자 그에게 할 수 있는 부분은 하나도 생각되지 않고, 장점은 전혀 발견되지 않고 할 수 없는 요소만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부정적 의식을 긍정적 의식으로 바꾸기 위해서 많은 표적을 보여주셨는데 세 가지를 압축해 드리면, 출애굽기 4장에 '네가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것을 던져라.' 던졌더니 뱀이 됐습니다. '뱀을 잡아라.' 뱀을 손으로 다시 잡았더니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또 '너의 손을 품속에 넣어라.' 품속에 넣었다가 내보았더니 하얗게 자기 손이 문둥병으로 만연했습니다. '다시 품속에 넣어라.' 다시 보았더니 건강한 손이 되었습니다. '하수를 길러다가 육지에 부어라.' 부었더니 피가 확 쏟아졌어요. 이토록 하나님께서 그에게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정적 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혀가 둔합니다. 나는 입이 뻣뻣합니다. 나는 말을 잘 할 수 없습니다.'하는 것입니다. 왜? 왜 의식이 성숙치 못하는가? 사역을 하되 자기 홀로 사역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더불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자기 홀로 사역을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4장 14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노를 발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화를 내셨습니다. '모세야 네가 부정적 의식을 가졌더니 이제는 또 하나님의 일을 홀로 하려고 하느냐? 하나님 일은 더불어 하는 것이다.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탈진하는 사람들을 보면 교회 일을 자기 혼자 다 하려고 해요. 부서를 맡으면 그 부서원들하고 함께 협력하고 대화하고 일을 나누어서 이렇게 하면 되는데 '나 혼자, 다른 사람 아무도 하지 마.' 그러다 혼자 시험 들어 혼자 넘어져요. 다른 사람도 못하게 하고 자기도 탈진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역을 시작하실 때 제자들을 둘 씩 짝지어 보내셨어요. 뿐만 아니라 열왕기상 19장 10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한 엘리야가 탈진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굴속에 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흐리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나 혼자, 의인입니다. 의인은 나 하나 남았습니다. 이제 선지자는 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 혼자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내 생명을 거두어 가십시오.' 이 때, 하나님께서 열왕기상 19장 18절 말씀을 통해서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 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엘리야야, 너는 어찌하여 너 혼자라고 생각하느냐? 너 혼자 주의 일 하려고 하느냐? 내가 준비한 칠 천명의 훌륭한 선지자, 종들이 있느니라. 왜 더불어 할 생각을 하지 아니하느냐?' 여러분, 주님의 일은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옛말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함께 더불어 일을 하자.' 협력할 줄 아는 사람, 이렇게 주의 일을 해야 성공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종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모세를 주의 종되게 하셨습니다. 1절 말씀에 '내가 너로 바로 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에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자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은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을 생명 구원이라고 합니다. 이 생명 구원에 관한 말씀은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바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명 구원이라고 합니다. 된 다음에 왜 되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했습니다. 권세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일을 권세라고 말하는데 즉, 성화적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독일의 신학자 본 훼퍼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는 일로 신앙의 완성으로 생각하는 것은 값싼 은총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내가 그 마음속에 시인하고 입술로 고백해서 하나님 자녀 되었다. 이것으로 신앙의 완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값싼 은총을 받은 거예요.' 내가 주일이면 교회에 나와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조용히 나의 가정과 사회로 돌아가서 사회와 가정 속에서 하나님 자녀답지 않게 세상 사람이 볼 때는 자기들과 똑같은 사람처럼 조용히 부담 없이 살아가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올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 자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 일 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 하시는 일을 우리로 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 구원만 받아 가지고는 이것을 온전히 구원이 아닙니다. 성화적 거룩해지는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부유함까지 장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의 일을 내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소위 being과 doing의 문제, 즉 '나의 됨과 나의 함, 어느 것이 먼저냐' 하는 문제로 논란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나를 나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부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되었던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누린 것인데 그 특권을 누린 것은 거룩해지는 것이고 거룩해 지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은사는 시간도 은사입니다. 공간도 은사입니다. 내 생명도 은사입니다. 내 건강도 은사입니다. 내 아내도 은사입니다. 내 자녀도 은사입니다. 나에게 주시는 경제력도 은사입니다. 나에게 주시는 모든 환경은 다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우리에게 맡겨준 은사들입니다. 여러분, 이 은사를 나를 위하여 쓰겠습니까? 나를 위하여 이 은사를 쓴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것을 우상에게 드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내 자아가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바로 알고, 이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때에 하나님의 은사를 은사로 서명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여러 사람과 더불어 주님을 섬기면서 경험한 경험 중에 틀림없는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돈벌면 교회에 헌금하겠습니다.'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돈 버는 것을 보지 못했고 벌어서도 헌금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하겠습니다.'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물부터 부어주시지 '하나님, 제가 퇴직하면 교회일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분이 퇴직하고 3일만에 돌아가셨어요. 직장 나가면 바쁘니까 직장 끝나면 주의 일 하겠다구요. 주님께서 그런 사람은 안 썼어요. 하나님이 이 모든 만물을 은사로 주시는 뜻은 하나님의 일 하도록 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일 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 주 뜻대로 할 때에 더 많은 은사를 그에게 허락해 주는 줄로 믿습니다. 많은 은사 받는 방법, 많은 은사 받는 비결, 하나님의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면 하나님께서 건강주시고 하나님이 일하시면 그 일할 수 있도록 물질주시고 하나님의 일하시면 그에게 성령도 충만히 줘서 마음껏 사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아론에게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 교회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성가대하라. 하나님께 찬양할 사람은 찬양하라고 하나님이 지금 부르시고 계십니다. 교회학교 교사가 부족해서 하나님께서 교사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재가 복지에 있는 고독한 노인을 사랑하라고 여러분을 복지 선교하라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교회 오는 주의 성도를 서로 사랑하고 돕기 위해서 저 주차장에서 주차 정리하도록 여러분을 부르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세상에 보내는 것은 하나님 일하도록 파송 하는 파송적 의미에서 세상으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은사를 여러분에게 맡기십니다. 일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사의 창고에 키를 맡겨 주실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한번도 부정함이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쏟으시고, 광야에서 메추라기를 쏟으시고, 광야에서 반석에서 샘물 나도록 하시고, 구리 뱀을 쳐들어서 불 뱀에 물린 자들이 믿고 쳐다볼 때 낫는 역사를 주셨습니다. 모세처럼 그대로 행하는 자가 될 때에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역사 하셔서 그 일을 이루도록 협력하시고 주관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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