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출7:1-6 |
---|---|
설교자 : | 피영민 목사 |
참고 : |
강퍅한 마음을 향한 경고
모세와 바로왕의 대결은 세상적으로 보면 당연히 바로가 이기는 싸움이었지만 결국 모세가 이기고 말았다. 두 사람의 마음이 달랐기 때문에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모세는 승리하였고, 강퍅한 마음을 가진 바로왕은 패배한 것이다. 우리는 어떤 마음의 소유자인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찌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보내게 할찌니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리라마는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찌라.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시매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대로 곧 그대로 행하였더라. 출애굽기 7장 1-6절
출애굽기 1장부터 6장까지는 출애굽의 지도자인 모세가 어떻게 탄생을 했고 어떻게 성장을 했고 어떻게 소명을 받았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7장부터 12장까지는 모세가 애굽왕 바로와 대결을 하는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 모세는 바로왕과는 대결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막대기 하나 가지고 40년 동안 양을 친 목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바로왕은 세계 최강대국의 최고 권력자요, 천군만마를 소유한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자였습니다. 모세하고 바로왕의 싸움은 표면적으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정도의 싸움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어떻게 바로왕을 이기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7장부터 12장까지의 스토리를 보면 모세는 대 승리를 거두었고 바로왕은 처절한 패배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원인은 두 사람의 마음의 다름에 있었습니다. 바로왕의 마음은 강퍅한 마음이었고, 모세의 마음은 부드러운 마음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마음이 달랐기 때문에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모세는 승리하였고, 강퍅한 마음을 가진 바로왕은 패배한 것입니다.
마음을 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통해 우리 인간을 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할 때 머리로 믿는 것도 아니고 감정으로 믿는 것도 아닙니다. 눈물 좀 흘렸다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 성경을 몇 번 읽었다고 해서 믿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으로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고로 믿음의 자리(seat of faith)는 지성도 아니고, 이성도 아니고, 감성도 아니고, 의지도 아닙니다. 바로 ‘마음’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상한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인생에 처절하게 실패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과 난관을 겪고 내 마음이 상해있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상한 마음을 위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라”(마 12:20).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십니다. 상한 마음은 성령님이 위로해주시고 치유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강퍅한 마음에 대해서는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강퍅한 마음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강퍅한 마음은 영어로는 ‘hardened heart’ 굳어진 마음입니다. 완전히 말라서 수분도 하나도 없는, 완악하고 완고한 마음, 고집 센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장기 가운데서도 굳어지면 쓸 수 없는 장기가 있습니다. 바로 간입니다. 술 많이 먹고 담배를 많이 피고 과로하면 간에 심한 스트레스가 가해집니다. 간에 심한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간이 약해지게 되고 그 상태에서 먹고도 운동 안하면 배가 나오게 되고 기름이 배에 끼에 되면 기름이 간으로 가게 되고 그래서 지방간도 되는 것입니다. 결국 나중에 간 경화가 되고 그래서 간 경화상태가 오래가면 간암이 되고 간이 수행해야 될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결국은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간경화입니다.
강퍅한 마음의 증세
강퍅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경화, 심경화(心硬化)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굳어져 버려서 하나님과 교통이 안 되고 단절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지금 강퍅한 마음인가 아닌가 진단한다고 할 때 우리가 알 수 있는 강퍅한 마음의 증세는 어떨까요?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리라마는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출 7:3-4).
마음이 강퍅하게 되면 말씀을 듣지 않는 증세가 나타납니다. 기적도 보여 주시고, 표징도 보여주시고, 여러 가지 살아계신 증거도 많이 보여주셔도 하나님 말씀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 강퍅한 마음인 것입니다.
믿음을 갖고 싶다면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려면 자꾸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퍅한 마음은 말씀을 들으려고도 안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에는 믿음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생기지 않으니까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습니다.
바로왕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서 존경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데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출 5:2). 바로왕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닫힌 마음,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출애굽기 5장과 10장 사이에 일곱 번씩이나 말합니다. “내 백성을 가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말씀이라”(Let my people go!).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왕은 일곱 번씩이나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순종하지도 아니한 것입니다. 이것이 강퍅한 마음입니다.
누가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주제가 아닙니다. 성경에 바로왕이 마음을 강퍅하게 했다는 것이 열여덟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아홉 번은 여호와께서 강퍅하게 하셨다고 기록이 되어 있고 나머지 아홉 번은 바로가 스스로 자기 마음을 강퍅하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와 관련해 한 가지 비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따뜻한 햇볕이 비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햇볕은 따뜻한 것이고 생명을 줍니다. 햇볕을 받으면 얼음은 딱딱하게 얼어 있다가도 녹아서 그것이 생수가 되고 물이 됩니다. 그런데 진흙은 어떻게 됩니까? 똑같이 햇빛을 받아도 수분이 증발해 버려서 더 딱딱해지고 나중에는 돌처럼 됩니다. 이런 현상에 햇볕이 잘못한 것 없습니다. 따뜻하게 비춰줬을 뿐입니다. 그런데 얼음은 녹아서 생수가 되고 진흙은 굳어서 바위, 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햇볕 같으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마음이 녹아 생수가 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흙처럼 오히려 더 굳어지는 마음이 된다면 그 마음이 바로 강퍅한 마음입니다.
강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그러면 이 강퍅한 마음은 도대체 누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바로왕이 강퍅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했습니다. 그러나 바로왕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바벨론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느브갓네살왕도 강퍅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다니엘서 5장 20절에 느브갓네살왕도 뜻이 강퍅하고 교만하여 그 왕위가 폐한바 되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을 왕위에서 폐하시자 그는 인간의 이성을 잃어버리고 정신이 오락가락하게 되었습니다. 7년 동안 들짐승들과 함께 거하고 소처럼 풀을 뜯어 먹으며 살다가 정신이 돌아오니까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라” 하고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바로왕도 강퍅했고 느브갓네살왕도 강퍅했습니다.
비단 왕들만 강퍅한 마음을 가졌던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상징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시시때때로 마음을 강퍅하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이르시기를 너희는 므리바에서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시 95:8)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진행할 때 물이 없으면 강퍅해지고, 먹을 것이 조금 없으면 강퍅해지고, 조금만 괴로움이 오면 강퍅해지고, 조금만 슬픔이 와도 강퍅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끌어내서 물도 안주느냐, 밥도 안주느냐, 옷도 안주느냐며 강퍅한 마음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음을 강퍅하게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퍅한 마음을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너희가 너희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한 마음을 따라서 행하고 나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렘 16:12).
예레미야 시대에 왜 이스라엘 백성이 망했습니까? 강퍅한 마음 때문에 망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강퍅한 마음을 따라서 하나님을 청종치 아니했습니다. 히브리서 3장 8절에도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들도 강퍅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며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인 교회도 마음이 강퍅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백성들뿐만 아니라 영적인 지도자인 예수님의 열두제자들조차도 때로 마음이 강퍅해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저희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여졌습니다. “Their hearts were hardened” 그들의 마음이 강퍅해졌다는 것을 성경은 “둔하여졌다”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남자만 오천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던 큰 기적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기적입니까? 도시락 하나 가지고 축사했을 때에 떼어 주면 계속 밥이 남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성도들 다 모였을 때 도시락 하나, 김밥 하나를 축사했더니 우리교회 3천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아서 옆 교회에 나누어 줬더라.” 그런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열두제자들은 그 기적을 보았지만 금방 마음이 둔하여졌습니다.
제자들이 노를 저어서 호수를 건너가는데 풍랑이 일어나고 날은 저물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두려움이 생겨났습니다. 풍랑이 일어 괴로이 노를 젓고 있는 그 때에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오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보고 외칩니다. “유령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I am that I am.” 헬라 말로 ‘에고 에이미’라고 하는 것이 ‘나는 하나님이라’ 하는 뜻입니다. 복음서에 “내가 곧 그니라” 하는 말씀은 곧 “내가 하나님이라”, “내가 여호와니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 예수님이 “안심하라 내가 여호와니 두려워말라” 하고 바다를 꾸짖으니 바다도 잔잔해지고 제자들이 더욱 더 놀라게 되었습니다. ‘저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 한 마디로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가?’ 생각할 그 때에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이 완악해진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은 직접 보고 체험하고 그리고도 믿지 아니하는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방 사람들도 강퍅하고 하나님의 교회도 때로는 강퍅해질 수 있고 때로는 영적인 지도자들도 강퍅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은 어떻습니까?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내 고집 내 판단, 내 경험, 내 뜻 그것이 중요하지 하나님의 말씀이 뭐가 중요한가. 하나님 말씀은 나는 듣지도 아니하겠고 믿지도 아니하겠고 순종치도 아니하겠다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은 마음이 강퍅하신 것입니다.
강퍅한 마음의 결과
강퍅한 마음은 첫째로 우리 인간의 삶에 재앙을 가져옵니다.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네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것이라”(출 7:4).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강퍅한 마음은 재앙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신처럼 여기던 열 가지를 다 하나님께서 치시고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과 진노를 애굽에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렘 23:17).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 마음에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보라 나 여호와가 노를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으로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나 여호와의 노는 네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 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렘 23:19-20). 하나님께서 강퍅한 마음을 가진 자의 머리를 친다는 것을 말일이 되면 다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솔로몬도 이 진리를 재차 선언하고 있습니다.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잠 28:14).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사람은 재앙에 빠지게 됩니다. 또한 강퍅한 마음은 형통할 수가 없습니다. 실패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욥은 자기 신앙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나니 스스로 강퍅케 하여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욥 9:4). 여기서 형통하다고 하는 것은 상처를 입지 않고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성공을 했어도 온갖 상처를 다 입고 높이 올라간다면 그것은 상처뿐인 영광인 것입니다. 사람이 출세를 하기 위해서 가정도, 건강도 파괴했다면 그것이 무슨 성공입니까? 그러므로 마음이 강퍅한 사람은 실패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강퍅한 마음으로는 저주가 오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이 여호수아를 대적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오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수 11:20).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여호와를 대적하면 은혜도 없고 저주도 없게 됩니다.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하시고 저주를 더하신다”(애 3:65).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레미야 시대에 바벨론에 멸망해 버린 것은, 그래서 예레미야가 눈물을 흘리며 애가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그들의 마음이 강퍅해서 저주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도 아니하고 순종하려고 하지도 아니하고 믿지도 아니하는 강퍅한 마음에는 오는 바로 것이 세 가지 입니다. 첫째는 재앙이요 둘째는 실패요 셋째는 저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퍅한 마음은 대단히 위험한 마음입니다. 강퍅한 마음은 대단히 위험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려운 마음인 것입니다.
강퍅한 마음의 치료
강퍅한 마음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hardened heart” 완전히 강퍅해진 마음, 즉 돌처럼 굳어져서 전혀 바꿀 수 없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고칠 수 없는 것입니다. 김일성의 마음, 김정일의 마음이 강퍅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런 마음을 고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신자들은 “hardening heart” 마음이 강퍅해지는 과정에 있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강퍅해지는 도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은 돌이켜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강퍅한 마음을 치료하려면 우리가 할 일이 있고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히브리서 말씀이 답을 주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히 3:12-13).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지지 않기 위해 혼자 할 일은 삼가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죄의 유혹에 넘어가서 강퍅해지지 아니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죄에는 유혹성(deceitfulness)이 있습니다. 죄는 사람을 속입니다. 아닌 것도 그런 척 하고 그런 것도 아닌 척 합니다. 이것이 속임수요 죄입니다. 이런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강퍅함을 보이게 됩니다. “간음하지 말라 이혼하지 말라” 하는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아니합니다. 마음에 강퍅함이 생겨 그것은 나와는 관계없고 그것은 나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강퍅한 마음을 보이게 되면 그 사람의 인생의 결국에는 재앙과 실패와 저주가 임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삼가야 됩니다. 조심해야 됩니다. 날마다 매 시간 마다 죄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또한 강퍅한 마음을 면하기 위해 우리 서로가 할 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다, 혹은 악심을 품고 있다, 아니면 지금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우리는 피차 권면하여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는 삼가야 하고 또 다른 사람을 향해서는 권면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우리의 강퍅한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이 되는 것은 결국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겔 36:26). 굳은 마음이 제거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뀌게 되는 것은 은혜시대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께 간구해야 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 모인 곳에 성령이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에 함께 기도하실 때 성령님께 간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내 마음이 강퍅해지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날 도우셔서 내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고 믿어지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여 살게 하옵소서. 내가 어찌 재앙과 저주와 실패의 길을 가겠습니까? 하나님, 내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마음을 바꾸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결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모세가 강퍅한 마음을 가진 바로 왕에게 위대한 승리를 했습니다. 강퍅한 마음이 강한 것이 아닙니다. 강퍅한 마음을 가진 바로 왕이 강합니까? 아니면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모세가 강합니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셨은즉”(출 7:1). 부드러움을 가진 모세가 강퍅한 마음을 가진 바로왕 앞에 신처럼 되었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자로 애굽에 가서 바로 왕에게 명령 하고, 바로왕이 순종치 아니하면 심판도 내리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강퍅한 것이 강한 것이 아니고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믿고 계시지 않은 분은 하나님 말씀을 향한 강퍅한 마음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평생토록 섬기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날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날도 오게 될 것입니다. 또 이미 예수 믿으신 분들은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대로 매일 자신의 마음에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마음에 주의해서 말씀에 강퍅하게 됨을 면하고 혹시 우리 주위에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분이 강퍅해 질 때에는 권면을 해서 마음의 강퍅함에 서로 빠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강퍅한 마음은 위험한 것이지만 부드러운 마음은 강한 것이고 결국 부드러운 마음이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