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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하지 말라

아모스 신윤식 목사............... 조회 수 1468 추천 수 0 2013.01.28 23:52:14
.........
성경본문 : 암7:10-17 
설교자 : 신윤식 목사 
참고 : 은석교회 http://onlycross.net 

<본문>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고하지 말라 하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가운데서 창녀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측량하여 나누어질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땅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암 7:10-17)

 

<설교>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기쁨일까요? 아니면 위로일까요? 물론 성령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씀은 기쁨과 위로로 다가오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아니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기쁨과 위로는커녕 분노와 실망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꿈과 야망과 탐심을 해체하는 기능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 앞에 세워진 인간은 필히 자신의 무너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고, 자신의 무너짐에서 참된 소망과 힘이 되시는 분을 만나기 때문에 비로소 말씀이 주는 기쁨과 위로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을 놓지를 못합니다. 무엇을 이용해서든 자신을 굳게 세우기 위해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이 세워지는데 방해가 되거나 걸림돌이 되는 것은 용납하지를 않습니다. 그것이 비록 진리라 할지라도 진리임을 부인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다른 진리를 고집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증거하는 사람도 당연히 용납하지를 않습니다. 본문에 아마샤라는 제사장이 그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0-11절을 보면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당시 벧엘의 제사장이었던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게 전한 선지자 아모스에 대한 보고 내용입니다. 이 보고 내용을 보면 아마샤는 아모스를 이스라엘을 해롭게 하고 왕을 대적하는 반역자로 여깁니다. 이것이 아모스에 대한 아마샤의 시각입니다. 선지자인 아모스가 외치는 말들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닌가가 관심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체제를 흔들고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왕이 세운 사람으로써 왕의 편에 있는 왕의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편에 서서 제사를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증거해야 하는 자로 세움 받은 것이 제사장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제사장으로 만들고, 또 앞으로도 제사장의 위치를 보장해 줄 힘을 갖고 있는 여로보암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모스가 외치는 내용들이 이스라엘에 혼란을 일으키고 왕을 불리하게 하는 말이라면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입니다.

 

선지자 아모스의 말은 제사장 아마샤와 조화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왕을 바라보고 왕을 위해 존재하는 아마샤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내용은 왕을 위한 축복의 말이고,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 회망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철저하게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했던 선지자의 말들은 제사장 아마샤와는 맞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샤에게 아모스는 눈에 가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교회의 현실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 편이 아니라 사람 편에 서서 사람을 위한 목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은 걸림돌이 아닐 수 없고,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증거하는 사람들은 미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죄와 심판에 대한 말씀을 거부하면서 교인들에게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는 희망적인 말을 하는 것이 복음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와 심판에 대한 내용은 예수를 믿는 신자에게는 해당되지 않고 예수 밖의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한 용도 정도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지자가 죄와 심판을 외쳤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모스에서도 처음부터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가 언급되고 심판이 선포되고 있는데, 이스라엘과 유다 역시 하나님의 율법을 잘 실천하면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신자에게 왜 죄와 심판에 대한 선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이미 예수님의 은혜로 용서 받은 신자라면 더 이상 죄와 심판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와 심판에 대한 말씀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자신을 존재케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잊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와 심판의 말씀으로 드러나는 것은 구원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구원에 속한 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인간의 자질이나 의와는 상관이 없는 외부에서 벌어진 일이 됩니다. 그 외부에서 벌어진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일을 있게 하신 분에게 감사하는 것이 진심으로 죄와 심판을 아는 신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원하신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말을 해서 자기 한 몸 평안하게 유지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평안하다’는 말만 외쳤던 것입니다.

 

렘 6:13-14절을 보면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거짓선지자의 특징입니다.

 

거짓선지자들은 심판이나 종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현재의 자기 안위에만 마음을 둡니다. 그래서 자기 안위에 불리한 일은 거부하는 것입니다. 위로와 축복의 말을 하면서 밥 먹고 사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에도 목사의 역할에 관심이 없고 단지 복음을 이용해서 밥 먹고 사는 것이 전부인 사람들은 죄와 심판보다는 평안과 복이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그리고 소위 위로와 치유의 목회를 통해서 목사로서의 자기 위치를 더욱 탄탄하게 만드는 것에만 마음을 둘 뿐입니다. 목회라는 미명 아래서 말입니다.

 

12,13절을 보면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고 말합니다.

 

아마샤는 아모스의 말은 자신이 제사장으로 있는 벧엘에는 필요 없으니까 유다 땅으로나 가서 말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진리 밖에 있는 인간이고, 이러한 인간에 의해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아마샤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모스의 말을 통해서 이스라엘이착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능히 알 수 있고 그들이 보지 못한 죄가 무엇인가를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쪽으로는 전혀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아모스가 외친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를 통해서 강자가 약자를 학대하는 이스라엘의 현실을 볼 수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왜 악이 되고 심판의 이유가 되는가를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그런 눈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제사를 하고 제물을 바친들 그것은 신앙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에게 제사와 제물을 바치는 행위는 하나님을 향한 둘도 없는 열심이며 섬김이었고 신앙이었습니다. 그러한 자기들이야 말로 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죄와 심판에 관한 말은 자기들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인들도 자기 취향에 맞는 말을 듣기를 원합니다. 진리를 듣기 위해 교회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취향에 맞는 말을 즐기기 위해 교회를 찾습니다. 결국 신앙이 아니라 취미 생활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을 파고 들어와 꼭꼭 숨겨 두었던 깊숙한 악한 죄를 드러내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자임을 알게 하고, 오히려 더러움으로 가득한 자라는 것을 보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의 용서의 은혜가 나의 전부라는 고백을 하게 하는 기적의 능력을 맛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듣기 위해 교회를 찾는 것이라면 신앙이 아니라 취미생활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언하지 말라는 아마샤의 말에 대해 아모스는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14,15절)라고 말합니다.

 

아모스는 자신을 선지자가 아니고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며 단지 목자고 뽕 나무를 재배하던 사람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처럼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데려다가 선지자로 세우셨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에는 선지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실제로 선지자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들 중에 하나를 불러서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아모스를 세우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를 선지자로 여기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선지자인가? 신자인가? 는 하나님의 말씀과의 관계에서 드러납니다. 진리가 다가왔을 때 진리로 말미암아 자신의 악함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신 은혜에 모든 마음이 점령당하는 그가 신자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 죄와 심판에 대한 말은 인간의 현실을 보게 하고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실상을 보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도하는 복음이 됩니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에게 죄와 심판을 선포하는 말은 거북스러운 말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귀를 닫아 버리는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나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배척할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는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깨어지기를 원합니다. 철저히 깨어지는 것이 곧 사는 길임을 알기 때문에 깨어지고 또 깨어지기를 소원하게 됩니다. 이런 신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꿀송이처럼 단 말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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