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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증거

요한삼서 신윤식 목사............... 조회 수 1669 추천 수 0 2013.01.30 23: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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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삼1:11-15 
설교자 : 신윤식 목사 
참고 : 은석교회 http://onlycross.net 

(4강) 요한삼서 1:11-15 진리의 증거

 

<본문>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면대하여 말하리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각 친구 명하에 문안하라(요한삼서 1:11-15)

<설교>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디오드레베는 으뜸 되기를 좋아한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으뜸이 된다는 것은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유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혹도 진리로 인해서 다스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는 것입니다. 아예 벌레보다 못한 비천의 자리에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인 것을 진리가 끊임없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자신의 실체가 어떠한가를 보게 되면 으뜸 되고자 하는 마음은 다스려지기 마련입니다. 으뜸 되고자 하는 것 자체가 진리를 외면하고 있는 악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디오드레베가 으뜸 되고자 한 것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했다면 그리스도의 몸의 관계에서 자신은 다만 지체일 뿐, 다른 지체들 가운데 으뜸이 될 자격이 없음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목사가 힘을 쓰는 곳도 아니고 장로가 힘을 쓰는 곳도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힘이 되어 모든 성도를 다스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말씀에 의해 고침 받고 다스려지고 말씀으로 교제하기 위해 모이는 것일 뿐이기에 누가 누구를 다스리고 지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의 중요성은 진리에 있습니다. 진리는 교회임을 증명하는 증명서가 아니고 장식품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진리만을 추구하는 척하면서 결국 진리가 아닌 외적인 것에 모든 관심을 두는 것은 진리를 속이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교회의 가치는 진리에 있기에 진리에 관심을 두지 않는 교회는 교회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릇에 개밥이 담겨 있으면 개밥그릇일 뿐이고, 쓰레기가 담겨 있으면 쓰레기통일 뿐입니다. 교회가 진리를 담고 있지 않다면 그것을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우리는 진리를 중심으로 산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담고 있다면, 진리가 중심이 되어 있다면 진리로 인해 증거되는 것은 분명 있을 것입니다. 진리는 장식품이 아니기에, 진리는 우리를 다스리는 큰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기에 진리와 함께 하는 교회라면 분명 진리로 인해 다스림 받게 될 것이고, 다스림을 받음으로써 자연 진리의 내용이 증거되지 않겠습니까? 본문에서 우리는 그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1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한 것은, 디오드레베의 으뜸 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으뜸 되고자 하는 것을 악을 행하는 것으로, 그리고 그 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뵈옵지 못할 것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으뜸 되기를 좋아하면 왜 하나님을 뵈옵지 못합니까?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죄를 범해서입니까? 그렇다면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우리 역시 하나님을 뵙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으뜸 되고자 하는 것을 악한 것으로 말한다고 해서 으뜸 되고자 하는 행위 자체를 악한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으뜸 되고자 하는 행위가 악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으뜸 되고자 하는 행위에 담겨 있는 진짜 악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행위를 악한 것, 선한 것으로 구분합니다. 이것이 도덕이고 윤리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행위를 가지고 악과 선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행위에 담겨 있는 중심을 봄으로써 악과 선으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으뜸 되고자 하는 것은 낮은 자리에 있는 자신을 보지 않는 증거입니다. 자신의 비천함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의 비천함을 보지 못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면 과연 그것을 진실된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나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은 자신의 죄의 자리, 비천의 자리에서만 흘러나올 수 있는 위대한 고백임을 생각해 본다면 비천의 자리에 있는 자신을 보지 못한 자는 그래서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자는 낮은 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행위가 악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비천함을 보지 않음으로서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는 것이 악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봄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낮은 자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으뜸 되고자 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으며,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기에 하나님을 뵈올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12절의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는 구절을 보면 사도는 디오드레베와 달리 데메드리오란 사람에 대해 소개하면서 그를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다고 칭찬하면서 사도들도 증거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데메드리오란 사람은 칭찬받을만한 삶을 살았던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데메드리오란 한 개인을 칭찬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는 데메드리오가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데메드리오가 진리를 증거했다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데메드리오를 증거했다는 것입니다. 즉 진리로 인해서 데메드리오에게 진리가 있음이 확증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의미로 말하자면 ‘진리는 오직 진리에 의해서만 증거되고 확증된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가령 바리새인에 대한 선입견을 제외하고 그들을 바라봤을 때 그들에게 진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들을 진리를 기준으로 보지 않으면 보이는 것들은 그들의 열심이고 행위일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기준으로 보게 되면 그들의 열심과 행위에 담겨 있는 으뜸 되고자 하는 악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증거를 받고자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이 선으로 여기는 사회사업이나 문화사업 등등을 끌어 들여 세상으로부터 ‘교회답다’는 증거를 받고자 하는 것이야 말로 진리를 향한 무관심을 드러내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진리에게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즉 진리에만 모든 관심을 둠으로써 진리에 의해 나타나는 열매들로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교회라는 증거는 진리로부터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우리를 책망하고 의로 이끌어 갑니다. 그러므로 진리 가운데 행하는 교회라면 항상 낮은 자리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자 할 것이고, 따라서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것 역시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든 신자든 중요한 것은 세상적인 평가가 아니라 진리로부터 어떤 증거를 받느냐 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나를 진

리는 어떻게 증거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가 선포될 때마다 진리를 기준으로 하여 자신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은 여러분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로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과연 선을 본받는 길을 가는지 악을 본받는 길을 가는지를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시강에서 자신을 보지 않으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별로 틀린 것이 없이 옳은 길을 가는 것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또한 진리를 기준으로 한다고 해도 진리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면 그 역시 자신에 대한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항상 진리에 대한 관심으로 진리를 알아가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항상 진리 앞에 자신을 세우십시오. 진리가 무엇을 말씀하고 진리가 우리를 어떤 길로 이끌어 가는가를 살피면서 과연 내가 진리의 길을 가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우리는 나 자신의 악함은 보지 못하고 결국 타인의 악함만을 보면서 판단하게 될 것이고, 잘난 척하게 되고 디오드레베처럼 으뜸 되기를 좋아하게 되고 교회의 주도권을 쥐려고 할 것이고 자기 고집만 세우려고 할 것입니다.

 

진리는 우리를 형제를 대접하고 섬기는 자리로 이끌어 가는 것이지 형제로부터 우대 받는 자리로 이끌어 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대접하고 섬기는 모습에서 진리가 그를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13-15절은 요한이서와 같은 내용으로 형제를 만나고자 하는 사도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만나서 진리를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 안에서의 형제의 관계입니다. 서로 만나면 진리를 나눌 수 있기에 만남이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리를 기뻐하고 진리에 관심을 두고 있을 때 자연 이런 모습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가 과연 은석교회를 교회로 증거 할 것이며 나를 그리스도인이라 증거할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를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진리가 지금의 나를 어떻게 증거할 것인가를 돌아보며 나의 모든 것이 진리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되기를 소원하며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맞춰 살려고 하지 마시고, 세상을 보며 살려고 하지 마시고 진리를 바라보며 진리에 맞춰 사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진리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증거 되어질 것입니다. 세상은 여러분을 모른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아실 것입니다. 그 증거물은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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