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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로 인한 사귐

요한일서 신윤식 목사............... 조회 수 1707 추천 수 0 2013.02.02 23: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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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일1:3 
설교자 : 신윤식 목사 
참고 : 은석교회 http://onlycross.net 

(4강) 요한일서 1:3 그리스도로 인한 사귐

 

<본문>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한일서 1:3)

<설교>

사도는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을 함으로써 사귐에 대해 우리의 상식과는 다른 의미의 말을 합니다.

 

사도가 말하는 사귐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사도가 전해준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도가 전해준 것 안에서 사귐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귐이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가 전한 것을 중심으로 한 교제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가 전한 것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결국 신자의 사귐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알고 믿는 그리스도를 우리가 알고 있고 믿을 때 사귐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귐에는 충돌이 없습니다. 시기와 미움이 없고 탐욕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교회로 모이면서도 분란이 있고 시기와 미움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들이 온전한 사귐에 머물지 못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안에서만 사귐이 가능한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를 배제하고서는 사귐이 불가능한 것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없이도 사귐이 가능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같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고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며 ‘사귐’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귐은 조그만 일로 인해서도 쉽게 깨어져 버립니다. 단순한 친분관계는 마음에 섭섭함이 조금만 있어도 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사귐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인간의 사귐이 어떠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향해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한 그것이야 말로 사귐의 의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사귐은 하나 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단지 다른 사람보다 더 가까운 친분관계로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되는 관계, 이것이 진정한 사귐인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사귐이 이 세상에서 가능한 것입니까?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의 하나된 관계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깨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잘되는 것이 선이며, 해를 입는 것은 악으로 규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은 후에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이 곧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온통 자기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필요하면 타인을 짓밟으면서 자신이 살기 위해 애를 쓰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세상 속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사귐을 이루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도 내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이 있고 타인에 대한 시기와 미움이 살아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사귐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사도는 이것을 사도가 보고 들은 바를 전하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3-14절을 보면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라는 말씀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을 하는 것은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는 사람과 이방인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 간의 불화 때문이었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오랫동안 내려오던 유대인의 관습이 문제였습니다. 비록 예수를 믿었다고 하나 유대인은 관습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방인에게도 요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방인 성도들은 유대인 성도들의 그러한 요구가 부당하였습니다. 자신들에게 있어서 유대인들의 관습을 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고 하면서 항상 불화하였고 막힌 담이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에게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는 말을 합니다. 예수님이 화평이시고 둘로 하나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과연 예수님의 피가 어떻게 막힌 담을 헐고 둘을 하나로 만들고 가깝게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피는 심판 받아 마땅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피의 은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자비이며 긍휼이십니다. 누구든 피의 은혜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킨다고 해도 마찬가지고, 율법을 초월하여 산다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킨다고 해서 죄인이 덜 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더 큰 죄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율법을 지키든 지키지 않든 모든 사람은 동일한 죄인일 뿐이며 심판의 대상자일 뿐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 그 피를 믿는 자만 구원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율법도 아니고 열심도 아니라 오직 은혜였을 뿐입니다. 피를 믿는 믿음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또한 공짜로 주어진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은혜라는 방식안에서 해결되었기 때문에 성도는 누구든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행위나 열심 공로 등을 내세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가 모일 때 자기 행위를 보지 않고 육신의 것을 보지 않고 단지 예수님의 은혜만을 생각하고 은혜만을 말한다면 같은 마음 같은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가까워진 것입니다. 둘이 하나가 된것입니다. 이 모두가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요한일서 2:2절에 보면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돌아가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온 세상의 사람들은 다 구원을 받는 것입니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피가 나를 죄에서 건졌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이런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믿음을 가지고도 경쟁을 하거나 싸우지를 못합니다. 애당초 내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의 것을 가지고 내 것이라고 행세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예수님의 피 앞에서는 ‘나’라는 존재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계실 뿐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없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뿐인데 시기가 있고 미움이 있겠습니까?

 

형제에 대해 미움이 있고 시기가 있다면 그것은 서로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것과 타인에게 있는 것을 비교함으로써 더 많은 것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우월감을 가지게 되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시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나서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그러한 비교의 싸움을 그치지를 않는 것입니다. 때문에 친한척하다가도 기회가 되면 비난을 하고 험담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 것입니다.

 

여러분 서로의 것으로 비교하려거든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가장 귀한 것을 내어 놓기 바랍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생명이 아닙니까?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하늘의 생명을 내어 놓고 서로 비교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에 차별이 있습니까? 질의 차이가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가난하든 부하든 동일한 생명을 복으로 부여 받은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다면 분란도 경쟁도 시기도 미움도 자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귐은 그리스도와 함께 함으로 가능합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여러분이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안에서 서로 만나는 하나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같은 마음으로 모이는 것, 이것을 사도는 사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이 사귐에 있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친분을 바탕으로 한 사귐은 오늘은 친구였다가도 내일은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그 이유는 공평이라는 원칙에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유한 것이 다르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계에 사귐은 절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0:10절에 보면 “도적이 오는 것은 도덕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이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다같이 동일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똑같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짐을 받은 것입니다. 똑같이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되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의 사랑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비참하고 수치스런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기쁘게 담당하시며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바라보십시오. 불평 대신에 사랑으로 인한 감사함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사귐에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한 바로 모일 때 비로소 성도와의 사귐이 가능한 것입니다. 사도가 주님을 사모하듯 우리 역시 주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같은 생명으로 감사하고 같은 사랑을 말하는 이것이 예수의 피로 이루어진 사귐의 관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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