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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사랑

요한일서 최용우............... 조회 수 1969 추천 수 0 2013.02.07 23: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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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일3:16-18 
설교자 : 신윤식 목사 
참고 : 은석교회 http://onlycross.net 

(33강) 요한일서 3:16-18 형제 사랑

 

<본문>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한일서 3:16-18)

<설교>

이웃을 사랑하는 문제를 이웃을 좋아하는 감정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에 대한 오해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은 내 스스로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마음에 들게 되면 좋아하는 감정이 본능적으로 발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 또한 나의 생각과 계획에 의해 실천되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왠지 좋은 마음이 들 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만약 사랑이 좋아하는 감정적인 것이라면 사랑하라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마음을 스스로 통제하고 다스리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14절에 보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좋아하는 감정이라면 결국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사망에 거한다는 뜻이 될 뿐입니다.

그러면 좋아하는 감정 없이 사랑이 가능 합니까?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감정과 상관없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신자이며 성경은 그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사망에 거한다는 말을 할 정도로 구원과 연관된 사랑, 그것을 좋아하는 감정으로 이해하는 것부터가 큰 오류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 상대방을 좋아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좋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6절을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목숨을 버리신 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사랑을 안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안다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 역시 사랑을 안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사랑이 무엇인지 달리 배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데 본문은 예수님이 목숨을 버리신 일에서 사랑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을 모른 자는 사랑도 모른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알지 못한 세상이 말하는 사랑은 모두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고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가리켜서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사랑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사랑이라면 굳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몰라도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에서만 사랑을 알 수 있기에 세상에는 사랑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이 말을 듣는다면 크게 반발하겠지만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인을 위함이고, 연약한 자를 위함이었습니다. 죄인을 불쌍히 보심이었고, 연약한 자의 연약함을 대신 짊어지심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결국 사랑은 불쌍히 여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병든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형편이 딱하기 때문에 불쌍히 여기신 것이 아니라 질병에 붙들려서 헤어날 수 없는 그 처지가 불쌍하셨던 것입니다. 병든 자들은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사망과 저주에서 헤어날 수 없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불쌍한 자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불쌍한 자를 불쌍함에서 해방시키고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사랑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돈을 준 것이 아니라 저주 아래 있는 우리에게 자유케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이라면 신자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가난한 자를 돕는 것입니까? 봉사하는 것입니까? 물론 그러한 모습도 보여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본질은 형제를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자신을 불쌍히 볼 수 있는 신자들에게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을 받았고 알게 된 신자에게서만 보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말에 부담을 가질 것입니다. 아무리 형제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 사람을 위해 내 목숨을 버릴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들어가면 모두 고개를 흔들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날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목숨을 버리는 것을 사랑의 수준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즉 사랑의 최고 수준이 목숨을 버리는 것인데, 우리는 그런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없고 조금 낮은 수준에서 실천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라는 것은 위험에 빠진 형제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대신 죽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육신을 구하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영혼을 구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형제의 영혼을 위해 목숨을 버리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목숨은 나의 전부이지 않습니까? 다른 것은 다 내놔도 목숨을 못내놓지 않습니까? 그런데 목숨까지 버린다면 그것은 나의 전부를 내 놓는 것입니다. 아까워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형제의 영혼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형제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놓아도 좋을 정도로 영혼의 문제는 중요한 것이며, 형제의 영혼을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설사 죽는다 할지라도 복음 전하는 일을 중지할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영혼의 생명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목숨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형제의 영혼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죽으심에 전혀 마음을 두지 않고 있으며 감사치도 않고 은혜로 여기지도 않는 증거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17-18절을 보면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궁핍한 형제가 있을 때 그 쓸것을 도와주는 것으로까지 나아가야 함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세상이 궁핍한 자를 도와주는 것과 같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중점은 궁핍한 자를 도와주라는 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궁핍한 자를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는다면 과연 주님의 사랑이 있는 자인가를 묻고자 하는 것입니다.

 

궁핍한 형제를 돕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사랑과 연관됩니다. 궁핍하다는 것은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형편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 자신이 그런 형편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궁핍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죽으심에서 자신의 궁핍함을 보는 자가 신자입니다. 이 사람은 형제의 궁핍에서 예수님이 아니면 살 수 없었던 자신의 궁핍을 보게 되고 자신을 도우신 주님의 은혜가 형제를 돕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보다 재물이 더 귀히 여겨진다면 재물이 형제를 돕고자 하는 마음을 막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직 목숨을 버리신

주님의 사랑에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안다면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에게 크나큰 선물로 자리한다면 그 사랑은 말과 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으로 주님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사랑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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