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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물과 피

요한일서 신윤식 목사............... 조회 수 2565 추천 수 0 2013.02.21 23: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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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일5:6-8 
설교자 : 신윤식 목사 
참고 : 은석교회 http://onlycross.net 

(50강) 요한일서 5:6-8 성령과 물과 피

 

<본문>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요한일서 5:6-8)

<설교>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지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원하고 갈망하게 되는 것은 죄에 붙들려 있는 인간의 형편을 깊이 자각하게 될 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죄의 깊음을 발견하였으나 죄를 어찌 할 수 없음을 알고 절망하는 그 마음에 예수님의 피 흘리심은 그야말로 기쁜 소식, 복음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죄에 대해 무지하고 죄에 대해 무감각한 상태의 세상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원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물론 세상도 죄에 대해서는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죄를 인식하는 기준은 윤리와 도덕이며, 인간이 본성적으로 갖고 있는 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에 있는 세상은 죄에 대해 무지하며 무감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이 죄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겪게 되는 현재적인 고통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로 인한 고통이라고 감지할 수 있는 어떤 특정적인 고통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이 겪는 질병도 죄로 인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질병을 죄로 인한 결과로 보지 않습니다. 다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즉 건강관리를 잘 못하거나 운이 없으면 걸리는 것이 질병이라고 여길 뿐입니다. 죽음 역시 인간이 죄 가운데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이지만, 세상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는 것으로만 간주할 뿐입니다.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인간이 죄를 알게 되고 예수님을 원하게 되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으시는 것은 예수님을 억지로 떠먹여 주는 방식이 아니라 죄를 알고 볼 수 있는 지혜를 주심으로 스스로 예수님을 원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예수님을 찾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신자로 하여금 죄가 무엇인가를 알게 하시고, 우리의 형편을 보게 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죄를 말할 때 죄로 말미암아 죄책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죄책감이란 죄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마음입니다.

 

문제는 사람이 죄책감을 가지게 되면 죄책감을 벗을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하게 되고 결국 스스로 어떤 방법과 길을 모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주일에 예배에 참석지 않아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할 때 죄책감을 벗기 위해 회개의 기도를 한다거나, 아니면 헌금을 많이 하는 등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결국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짐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무거워 지는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계명을 내가 행해야 할 항목으로 받아들이면서 ‘내가 어떻게 이 계명을 지킬 수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명이 이미 무거운 짐으로 되어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켜야 하는 계명인데 자신이 없다는 것이지요.

 

사도는 형제를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교회를 찾는 사람치고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형제 사랑이라는 행위에 대해 부담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처럼 부담을 가지는 이것이 이미 사랑이라는 계명이 무거운 짐으로 지워져 있다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계명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죄책감을 가지기도 할 것입니다.

 

요일 4: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신자에게는 두려움이 없다고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 계명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으로 신자라는 존재성 자체가 흔들리게 되고 결국 자신의 신앙의 미래에 대해 두려움과 염려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는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그 이유를 믿음이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원하지 않는 세력입니다. 왜 예수님을 원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예수가 없어도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잘 살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즉 세상은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무엇이기에 이런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까? 5절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라고 말씀하는 것을 보면 믿음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고 이 믿음이 세상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믿는 것만을 믿음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은 귀신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여’라고 소리친 내용이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귀신도 믿고 있는 수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지식적 내용을 믿는 것을 믿음의 전부로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6절을 보면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고 말씀합니다. 물과 피로 임하신 예수로 언급하는 것에 주의를 해야 합니다. 물과 피로 임하신 예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고, 그분을 믿는 것만이 참된 믿음이고, 그 믿음이 세상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피로 임하셨다는 것은 다들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물로 임하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어떤 사람은 군병들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을 때 그곳에서 물이 나왔다는 것과 연관하여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창에 찔린 곳에서 물이 나왔다는 것은 실제 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이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물과 연관된 일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물에 잠기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나오는 것은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죄로 인해 죽어야 할 죄인들에게 해당된 것입니다. 그런데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우리의 죽음을 예수님이 담당하실 것임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죽어야 할 운명으로 세상에 오셨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물과 피를 함께 언급을 하는 것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진 일이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죄에 대해 무감각하고 무지한 자들에게 예수님은 없어도 되는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만이 죄에 대해 무지하고 무감각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자 했던 유대인들도 죄에 대해 무지했고 무감각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죄는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힘써 지킬수록 그들은 죄인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죄는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이런 그들이 물과 피로 임하신 예수님을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아는 관계에서의 죄는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율법과의 관계에서 죄를 생각합니다. 그 결과 주일을 지키지 않고, 열심히 성경보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십일조를 하지 않는 등의 행위에 치우쳐 죄를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말하면서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결과만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님이 흘리신 피의 은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잘 지키고 행할 수 있는 힘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율법은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고, 쓸데없는 죄책감에 빠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이것이 물과 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무지함입니다.

 

그러면 이런 상태의 인간에게 어떤 사건이 있음으로 믿음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까? 8절을 보면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고 말합니다. 증거하는 이가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이 합하여 하나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어찌 보면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삼위일체라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증거하는 이는 셋이지만 중요한 것은 셋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라는 것은 일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각기 다르지만 증거하는 것이 같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연 성령과, 물과, 피가 무엇을 증거하기에 증거하는 것이 같을까요? 물은 우리가 죽어야 할 죄인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실제 나의 죽음을 경험하게 합니다. 육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죽은 자와 같음을 깨닫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서 나의 죽음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과 물과 피는 죄인된 우리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죽은 자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증거를 받은 자는 자신을 죽은 자로 보게 될 것이고, 하늘의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께 모든 희망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죽은 잘 보게 되는 신자는 자신이 의를 행할 수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행하신 피의 사건만을 의로운 것으로 믿게 되는 것이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만이 나를 살린다는 소망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참된 믿음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세상을 사는데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 오셨는가를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없이는 자신의 영혼은 영원한 멸망으로 끝난다는 것만 염두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나타나는 믿음의 모습들입니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로 하여금 사랑이 증거되는 쪽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과 다른 길을 갈 때 신자는 그러한 자신을 보며 애통하게 됩니다. 말씀에 순종치 않는 것으로 애통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성령과 물과 피의 증거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 셋이 무엇을 증거하는가를 생각하십시오. 이 증거를 깊이 생각할 때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라는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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