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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일5:1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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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신윤식 목사 |
참고 : |
<본문>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한일서 5:19-20)
<설교>
19절을 보면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구분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세상은 하나님께 속한 자와 악한 자 안에 처한 자로 구분되어집니다. 하나님께 속한자라고 말하면서 악한 자에 속했다고 말하지 않고 악한 자 안에 처했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 모든 인간의 처음 형편이 어떠했는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악한 자에 처한 상태로 난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이 택하시고 건지셔서 하나님께 소속한 자로 만드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자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한 자는 자신이 어떤 형편에 처했었는지를 알고 그러한 형편에서 구출된 것을 큰 은혜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인간이 처한 형편에 대해 무지합니다. 자신들이 악한 자 안에 처했고 그 마지막은 멸망이라는 것을 전혀 보지 못한 채 현재의 기쁨을 좇아 살아갈 뿐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무지고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세상의 악함이 무엇인가를 압니다. 그런데 알면서도 악함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전히 악함 가운데 있는 자신으로 말미암아 애통해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길은 자신의 모든 죄를 지고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 밖에 없음을 항상 마음이 깊이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생각의 전환입니다. 새사람으로서의 새로운 생각으로 살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생각도 우리들의 지혜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20절에서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참된 자를 알게 되고 인간의 형편이 어떠함을 알게 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지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각이 주어지지 않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세상의 사람들은 신자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도무지 무지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세상에 되어질 일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의 일만 잘되면 만사형통으로 여깁니다. 그것을 행복의 전부로 여깁니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세상이 죄와 어둠에 둘려 싸여 있고 그 마지막은 망하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신자는 세상의 되어질 일을 알고 있기에 세상이 행복이 아님을 알게 되었으며 세상 일이 잘된다고 해서 내가 잘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잘되는 것은 다만 참되신 예수님을 믿는 자로 사는 것임을 알 뿐입니다. 이것이 지각이 있는 신자입니다.
신자란 세상 사람보다 조금 더 착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개 ‘신자답다’라고 말하면 착한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착한 일을 많이 하는 것과 신자되는 것과는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물론 신자로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갈 때 그 삶의 모습들이 세상이 볼 때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착한 일을 했기에 신자다운 것이 아니라 신자이기에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일 뿐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신자가 아니고서도 착하다고 평가 받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점을 생각한다면 단지 착함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신자 됨을 구분한다는 것은 신자와 세상의 구분점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일 뿐입니다.
신자는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으로 족합니다. 여기에 다른 조건을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로 났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내가 참된 자를 알고 있다는 것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참된 자를 안다는 것은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자로부터 지각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세상이 비록 수많은 착함을 보인다고 해도 참되신 분을 알지 못한다는 한가지만으로 세상에 처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와 속하지 않은 자는 분명 다른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과 사고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처한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알지 못해도 괜찮다고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손에 세상의 것만 주어지만 그것으로 만족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세상의 것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자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마지막을 보지 않는 자의 구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의 생각은 참된 자를 아는 지각으로부터 나오는 생각입니다. 참된 자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하심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참된 자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자비를 안다는 뜻이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과 긍휼을 안다면 형제를 사랑하고자 하는 생각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형제를 경쟁과 시기의 대상으로 또는 자신의 자랑거리를 들어주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자를 안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나의 존재의 본질을 알았기에 자기 자랑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고 자신은 죄악 중에 출생한 악한 자라는 고백이 있기에 형제를 대할 때 교만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형제 사랑이며 형제 사랑 역시 참된 자를 아는 지각으로 인해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 속한 자의 모습들입니다.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정해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한 자의 삶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알아서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길로 하나님께 속한 자를 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신자는 어떤 일에서든 ‘하나님은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하나님께로 이끌고자 하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고 계시기 때문에 신자는 결국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에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된 분이 주신 지각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이 복을 누리십니까? 이 복을 알기에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알기에 하나님께 나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낼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욕망을 억누른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악한 것인가를 알기에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자신을 보며 악함에 대해 애통해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된 자를 알게 되면 우린 그분 앞에서 다만 감사할 따름입니다. 멸망에 처해야 마땅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자로 건짐을 받았다는 엄청난 복으로 인해 다만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다만 그분만을 자랑할 뿐입니다. 나를 나 되게 하신 그분의 능력에 감사하며 찬송할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고전 2:2절을 보면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셨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십자가 말고 다른 것은 몰라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모두 가치없는 앎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가장 귀한 앎이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러한 앎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나서 참된 자를 아는 지각을 받은 신자야 말로 귀한 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자의 복을 누리는 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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