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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애굽에서 벧엘로 올라갈 수 있다

창세기 궁극이............... 조회 수 2644 추천 수 0 2013.02.26 11: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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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13:1-13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아브라함 

131-13.

 

1-13: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 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우리 인간을 하나님 위에다 지어놓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 바로 밑에다 인간을 지어놓고, 그 다음에 인간 밑에다가 모든 만물을 발아래 밟고 지배하고 다스리도록 우리 인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일 높은 위치는 하나님이고, 둘째는 인간이고, 셋째는 만물.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순서적으로 이걸 어겨서 살면 안 됩니다. 어겨서 살면 그거는 타락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그 순위를 누구든지 거스르게 되면 심판이고 고통이고 타락이요. 반드시 그렇게 돼 있습니다. 이치란 말이요.

 

먼저 하나님, 둘째는 인간, 셋째는 만물. 만물이라 하면 세상 모두. 다른 인간을 하나님 위에다 올려놓을 수는 없고, 그렇게 되면 우상이 되어버리니 하나님께서 그 우상을 집어 치워버립니다. 예를 들어서 자기 자식이 우상이 될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보다도 더 위로 올려놓고 사랑하는 것은 우상이 돼버려요.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치워버립니다. 죽게 해서 데리고 가든지 어쨌든 치워버린단 말이요. 그러니까 인간이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 이상은 될 수가 없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을 자꾸 하나님께 자꾸 맞춰요. 그래야만이 그 사람이 심판을 당하지 아니하고, 나는 인인관계적으로 그 사람과 관계성을 잘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가 못 깨달아서 모르고 살았으면 그것은 아무리 인간에게 좋게 해주며 살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산 사람이다.

 

우리가 옛날 부모로부터 그런 것을 많이 느낄 수가 있어요. 옛날 부모님들은 자식을 그렇게 사랑했어요. 자식사랑에는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지요? 부모의 그 자식사랑을 뭘 갖다 비할 거요? 오늘날 부모도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하나님에게로 바로 맞추게 하는 그 역할을 못하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부모로서 자식에게 대한 교육이 바로 못 됐다그렇게 되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들어 주었는데 가정에는 부모 자식 처 형제들이 다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관계가 다 어그러져 버렸어요. 그게 바로 서 있지를 못하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내려가는 그 교훈이 하나님께 맞추어 돌아가는 그거는 주지 않고 세상에서 제일 크게 되는 거, 돈 많이 벌어 잘 되는 거그 말밖에 없잖아요?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쳤겠지만 부모를 공경할 수 있는 그 지식이 안 들어갔단 말이요. 그러니 어떻게 공경할 거냐?

 

그러니까 하나님께 맞춘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맞추어 놓은 것, 바로 되는 것인데 바로 되는 이것을 못 가르쳐줬다. 또 자식의 입장에서는 바로 되는 것을 못 배웠다. 그러니까 부모 처와 자식 간에 형제간에 인간을 사랑하는 법이 없는 거지요. 법이 서지를 못하는 거지요. 그렇게 돼버려.

 

물질이 있으면 누가 잘못 하겠어요? 그렇지 않겠어요? 편안하고 잘 살고 시간 있으면 누가 못하겠어요? 그런 것이 아니고 제일 먼저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 두 번째 인간을 알게 하는 것, 세 번째 만물을 다스리는 법을 알게 하는 것. 그러니까 하나님을 먼저 놓지 아니하면 인간을 사랑할 수가 없어요. 인간을 사랑하는 법이 안 나와요. 그 다음에는 이제 인간을 다스릴 줄 모르니까 만물을 다스리는 그게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둔하다그렇게 되는 거요. 어리석다. 그렇게 되면 인간 편에서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하나님 편에서 보면 자꾸 사람을 죽이고 있어. 그런 거 실질적으로 얼마든지 볼 수 가 있습니다. 알겠어요?

 

우리 인간이 똑똑하다고 그래도 하나님 앞에 그렇게 연약하고 미련하고 멍청이란 말이요. 하나님을 배워나가도 그런데 하나님을 안 배우겠다. 못 배우겠다. 안 믿겠다하는 그런 사람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어요. 그렇게 돼요.

 

우리 인간의 마음을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을 모르면 인간의 마음을 몰라. 인간의 마음을 잘 알려고 하면 하나님을 잘 알면 인간을 잘 알게 돼요.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람을 잘 알게 되고 세상을 잘 알게 돼요. 그럼 그 사람은 세상을 잘 살아가는 거고, 사람관계성을 알고 가는 사람이라. 그게 예수 믿는 사람이다. 그게 사람이 바로 사는 겁니다.

 

오늘날 보면 부모치고 자식 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느라고 교회는 안 보내고 저기 공부하는 데로 다 보냈잖아요? 자기 자식을 만능의 능력자로 만들어 놓으려고 피아노 태권도 학원에서 하루 온 종일 시달리지요? 그러면 애가 그거 다 배워져서 만능의 능력자가 됩니까?

 

마음은 자꾸 비뚤어지고 괴팍스럽게 돌아가는데 육신적으로 그런 것을 다 배우니 괴팍스런 그 마음에서 괴물스러운 포악한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되면 부모들이 당하지요. 그러면 그 부모는 또 역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자꾸 그렇게 되는 거지요. 그 뿌린 대로 거두는 겁니다.

 

, 밭에는 먹을 수 있는 알곡의 씨를 뿌리면 나지요? 날 때에 풀도 같이 나지요? 그 풀은 늘 뜯어줘야 되고. 그러면 알곡의 씨를 안 뿌렸다고 해서 그 밭에 아무 것도 안 납니까? 뭐가 많이 나지요? 잡초가 많이 나요. 우리 사람의 마음이 그와 똑같아요.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은 밭과 같은 건데, 그래서 세상의 농부들이 씨를 뿌리는 것을 통해 그 이치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거예요.

 

우리 사람의 마음도 밭이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 밭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먼저 심어. 안 심으면 세상에서 훌륭하게 되느냐? 세상에서 돈 잘 벌고 잘 먹고 잘 살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되어먹지를 못 해. 사람을 진리로 다스리지를 못 해. 사람을 인도하지를 못 해. 그 잘못된 거지요.

 

만물이 우리 인간 이상으로 올라올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은 만물 위에서 다스리고 통치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무렴 마음을 갖고 있고 생각을 갖고 있고 가치평가를 따질 줄 아는 자기가 만물 밑에 내려가서 있으면 기쁠까요, 고통일까요? 고통이지요. 만물 위에라야 자기가 다스릴 수 있지요. 그렇지 않아요?

 

이것을 알지 못하면 자기라고 하는 인간은 만물 아래로 떨어지게 돼요. 인간이 그렇게 돼 있어요. 알면 다스리게 되지요. 알면 만물 위로 올라오는 거지요. 올라와야 다스리지 밑에 있으면 못 다스려. 밑에 있으면 고통이라 그 말이요.

 

그런데 사람들이 이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자꾸 어디 밑으로 들어가려고 그러지요? 자꾸 돈 밑으로 들어가려고 그래. 그러니까 돈이 자기를 다스려주는 식으로 돈 밑으로 자꾸 들어가려고 그래.

 

인간은 돈 위로 올라와야 돼요. 돈이 사람을 따라오도록 만들어야지. 그렇지 않아요? 기술자가 기술만 갖고 있으면 돈이 자꾸 따라오지. 그렇지 않아요? 기술 없는 사람은 뭘 따라가지요? 돈 따라가지. 기술 있는 사람은 돈 따라가지를 않아요. 돈이 자꾸 와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자꾸 버리기 때문에 고통이고 슬픔이고 불행이고.

 

하나님의 우리에게 향한 뜻은 우리의 인격성장. 자기 속에는 하나님의 도덕성으로 자라나는 게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버릇 있는 사람이 있고, 버릇이 없는 사람이 있지요? 도덕성을 바로 배운 사람은 교양이 있고 도덕성이 좋지요. 교양이 없고 도덕성이 없는 사람은 포학하고 무디고 막무가내고 자기만 알고. 그렇지요? 같은 사람이지만 다 같은 사람이 아니지요? 그 속에 든 게 다르지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뜻은 우리의 내적인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장하는 것, 자라는 것. 마음도 자랍니다. 배우는 것도 자라지요? 우리 인간이 그렇게 돼 있어요. 학교에 안 들어가서 안 배우면 학교공부의 안다고 하는 것이 자라지를 못해요. 학교에 들어가서 배우면 자란단 말이요. 교회도 마찬가지. 성경을 바로 배우면 하나님의 뜻을 아는 면에서 자라게 돼. 바로 못 배우면 맨날 교회에서 손뼉치고 금식기도 하고 하나님보고 뭘 자꾸 달라고 그러고. 그게 뭐요? 그게 배우는 건가? 다른 말로 하면 그건 거지다.

 

그런 거짓교회가 많아요. 하나님보고 뭘 자꾸 달라고 하는 것. ‘복 주시오. 복 주시오자꾸 복 달라고 하는 그게 거지란 말이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세상사람들도 하지 않는 짓을 하고 있어요. 그 거지라.

 

그러니까 세상부자는 교회 올 필요가 없어. 예수 믿는 사람으 교회 와서 하나님께 맨날 달라고만 그러지? 그런데 세상 부자는 자기는 돈도 많지, 집도 있지 하니까 달라고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교회 올 필요가 없는 거지. 그런 식으로 돼버렸어.

 

사람의 가치는 인격인데 아무리 자기가 돈 많고 집 있고 부자라도 그 사람이 속성 면에 있어서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자랐느냐? 하나님의 인격으로 얼마나 자람이 되었느냐하는 면에 대해서는 가난뱅이요 거지꼴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인격이라고 하는 것이 가치가 없어. 그럼 그런 사람은 뭐냐? 자기 주머니에 돈 붙으면 허허 웃고 세상 좋게만 보이고, 자기 주머니에 돈 떨어지면 전부 다 남보고 원망이고, 그래서 싸우고 헤어지고. 맨 그 판 아니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실 때에 죽음 저 너머에 우리의 영원한 행복이 있기 때문에 영원한 행복이 있는 그런 우리로 지어놓은 겁니다. 그게 없다 그러면 그거는 하나님이 불공평이요. 왜 그러냐? 사람이 어느 나라에 태어나는 거 자기가 못합니다. 그건 하나님이 하시는 것. 그 다음에 부잣집에 태어나던 가난한 집에 태어나던 그거 누가 하느냐? 그거 자기가 못해요. 어린아이가 자기가 태어날 집을 골라서 태어나나? 자기가 못해요. 그건 하나님이 하시는 것. 또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게 하던 부자나라에 태어나게 하던 그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거고. 또 남자로 태어나게 하던 여자로 태어나게 하던 그것도 하나님이 하는 거고. 이건 인간이 마음대로 못하는 거.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우리 인간에게 영원한 그곳이 없다면, 영원한 행복이 없다면, 임시적뿐이라면, 이 세상뿐이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삿대질을 하고 원망할 일이 있게 되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 왜 나를 부자나라에 그것도 부잣집에 태어나게 해서 예수 믿게 해서 하나님 앞에 마음대로 물질도 쓰고 그렇게 해서 일 많이 해서 상도 많이 타고 하늘나라에 데려가면 좋은 텐데 왜 나를 가난한 나라에 그것도 지질이 못 사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해서 이렇게 고생을 시키십니까?’ 그러니까 돈이 있나, 뭐 배웠나? 아무 것도 없단 말이요. 그런 면으로 우리가 따지게 되면 하나님 앞에 항의가 된단 말이요.

 

우리가 세상 살면서 그런 사람 많이 보지요? ‘아이고, 하나님께서 왜 나를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했나? 부잣집에 태어나게 하지.’ ‘하나님이 왜 나를 여자로 태어나게 했나? 남자로 태어나게 하지.’ 그런 말하는 사람 많이 들어봤지요? 그거는 믿는 자기가 못한단 말이요. 하나님이 그렇게 했다.

 

왜 가난한 나라에 태어내게 하고, 왜 부잣집에 태어나게 했느냐? 하나님의 뜻이 계시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영원한 곳이 있기 때문에, 영원한 행복적인 그곳이 있기 때문에 임시적인 이 세상에서 그와 같은 환경에 태어나게 한 겁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났어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배우고 깨닫고 아는 면에 부자로서 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고 했듯이 돈 가난, 집 가난이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이 나에게 없구나. 하나님의 사랑이 없고 하나님의 진실이 내 속에는 없고, 그런 면에 나는 가난하구나. 그러면 왜 나를 없는 집에 태어나게 했느냐? 옳지. 여기서 나를 깨닫게 하는 것은 마음에 부자로 만들어 가라고 나를 가난한 집에 태어내게 헸구나이렇게 깨닫고 자기를 영적인 부자로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 잘 배우고 잘 깨닫고 하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 그런 사람 우리가 봅니다. 비록 집안은 가난하지만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 못 만나봤습니까? 집은 부잔데 돈은 많은데 마음은 졸갑스러워가지고 이 탓 저 탓 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그러니 사람이 사람에게 칭찬받을 수 있을까요? 인간의 세계는 그런 게 있단 말이요.

 

돼지도 마음이 이 탓 저 탓 하는 게 있나? 마음이 넉넉한 그런 게 있나? 짐승의 세계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졸갑스럽거나 사람이 응당히 가져야 할 하나님의 마음을 품지를 못한다면 우릿간에 있는 돼지하고 다를 게 뭐지요? 돼지는 먹는 걱정 안 해도 주인이 와서 하루 여섯 끼 탁탁 주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인간은 자꾸 찾아먹어야 되고 벌어먹어야 되고. 그럼 돼지보다 못하지 않느냐? 그렇지 않아요? 우리 인간이 돼지보다 못한 존재입니까?

그래, 가난한 집에 태어났으면 부요자를 원하고, 또 나는 대학교도 못 나왔고 나는 못 배웠다고 하면 대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임시성이라. 죽음의 선 너머 천국에 가서는 대학교 지식이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 나는 못 배웠다고 하면. 어디서 배울 거냐?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하나님의 지식을 배워가자. 하나님의 지식을 배워가면 세상에서도 때로는 써먹고 하늘나라에 가서도 써먹고. 그 얼마나 지혜지식자요? 얼마든지 똑똑할 수가 있지.

 

또 부잣집에 태어났으면 , 부자라서 참 좋구나. 그러나 이 부자는 불타지고 다 순식간이 날아간다. 그러니 현재 나에게 있는 이 물질을 가지고 영원한 부자로 만들어가자.’ 그러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면에 배워가고 깨닫는 면에 부자.

 

이 세상의 물질은 내가 없어도 천국에 못 가져가는 거고, 물질이 있어도 죽음의 선 넘어가면서 가져갈 수도 없는 거고, 가져가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간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그곳이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 편에서 볼 때는 이 세상이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고, 하나님이 야속한 것처럼 보여지지만 깨닫고 보면 그럴 수 없는 은혜라.

 

하나님이 내 처지 내 마음을 어련히 알고 현재적으로 나를 이와 같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했느냐? 하나님의 어련히 알아서 했다 그 말이요. 오히려 우리가 가만히 보면 부잣집에서 깨달아져서 사는 것보다도 없는 집에서 깨달아져서 사는 사람이 더 값진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사람을 많이 경험하지요? 가난한 집이지만 살림을 쪼개서 알뜰히 살고 지혜롭게 잘 사는 사람은 나중에 그 집에 돈이 많이 들어오고 부자가 돼도 살림을 잘 살지요. 그러나 부잣집에 태어나서 그런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돈을 물 쓰듯이 써. 그러다가 갑자기 가난해져 버리면 어떻게 할 거야?

 

우리 인간에게는 영원한 그 세계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늘 생의 계산법을 죽음의 저 너머에다 딱 대 놓고 살아. 이 세상에다 대면 그거는 안 맞아 들어가고, 혹 맞을 수 있다고 해도 그거 얼마나 가지고 있겠어요? 어차피 갈 때 다 버리고 갈 거.

 

예수 믿어도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한 거니까 남이 가난하고 부자고 하는 거기에 예수 믿는 나는 하등의 관계가 없지요. 나도 잘 만들어가고 다른 사람도 잘 만들어지게 하며 살면 되는 겁니다. 죽음 저 너머에 누림성이 있기 때문에 행복한 세계가 있기 때문에 이를 준비토록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사건 환경을 우리에게 주었고, 이런 일 저런 일들을 주었고, 우리를 현재적으로 이렇게 살게 했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이렇게 성경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었다 그 말이요. 뭣 때문에 주었어요? 영원한 그 행복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말씀을 주었다 그 말이요. 그리고 현재 자기의 처해져 있는 그 환경을 주었다 그 말이요. 알겠어요?

 

그것을 자기가 안 믿는다고 하더라도 현재 자기의 처해져 있는 현실과 자기에게 다가오는 사건들을 부정할 수가 없어요. 안 그래요? 부정하고(불평하고) 살면 자기만 어리석어지지. 자기만 미련해지고 어리석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처럼 만들어 놓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한 번 또 생각해 봅니다. 아예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게 하고 신령하고 행복한 그 세계에서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게 벽돌을 찍어놓은 것처럼 너나 나나 똑같이 만들어 놓으면 좋지 않겠느냐? 그렇게 해놓으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도덕성을 가진 인격의 세계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 말이요. 그래서 인간은 반드시 이 세상에서 사건을 치뤄가게 돼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입니다. 어느 인간이라도 다 나그네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 마음을 잘 닮아가고 만들어 가라고 이 만물 가운데 거하게 했다. 우리를 지은 목적이 뭐라고요? 인간 자기를 지은 목적이? 영원한 신령계에 가서 누리게 하기 위한 것. 영원히 최고의 행복을 맛보게 하는 것.

 

우리가 이 세상에 있지만 인간은 자꾸 행복을 갈구하지 않아요? 그렇지요? 우리 인간은 사랑을 좋아하지요? 사랑은 참 좋은 겁니다. 왜 그러냐? 우리 인간은 사랑의 존재이기 때문에. 왜 행복을 좋아하느냐? 행복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지요? 그래서 행복이라 그러면 행복 속에는 사랑이 충만하고 진실이 충만하고 거룩하고. 그렇지요? 그런 게 들어 있잖아요. 행복이라 그러면서 사랑이 없으면 그 행복합니까? 그건 행복이 안 돼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 인간은 그런 존재다. 사랑의 존재요 행복의 존재다. 누림의 존재다.

 

그래서 여러분들, 가면 갈수록 사람들 먹고 마시고 누리는데 힘을 쓰지요? ‘생활이 풍부하기 때문에 그렇다그렇게 보기도 하지만 그러나 사람의 존재성이 누림성이에요. 놀고먹고 구경하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하는 이걸 좋아하는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춤추고 노래 부른다그렇게 단순히 알지 말고 인간 내 속에 그런 게 들어있다 그 말이요. 즉 우리 인간은 누림의 존재다 그 말이요.

 

그래서 테레비 같은 거 보고 있으면 배고픈 줄도 모르지요. 배고픈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웃는 그거 쳐다보느라고 배고픈 걸 몰라. 인간은 그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보면 세상사람들도 춤추고 뛰고 노래 부르고 하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우리 인간은 누림성을 넣어서 지어졌다.

 

이 세상에서 왜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 부르느냐? ‘, 죽음 저 넘어 그 세계가 얼마나 행복한 것일까하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현재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으로 깨닫게 해 주는 것. ‘너도 그 속에 들어가서 춤추고 뛰놀아라그런 뜻이 아니고 , 내 속에 누림성이 있구나하는 그걸 깨달으라고. 저들은 현재적으로 임시적으로 저렇게 뛰놀아도 그건 임시성이거든요. 죽음 저 넘어 천국에 디스코가 있을까요? 우리 인간은 죽음 저 너머에 누림성이 있다.

 

누가 잘 누리느냐? 누가 잘 느끼느냐? 이 세상에서도 보면 감각성이 뛰어난 사람이 있지요? 그렇지요? 촉감성이 뛰어난 사람도 있어요. 입맛이 뛰어난 사람은 식당하면 돼요. 식당하면 장사 잘 될 거요. 음식 맛이 있어야 손님이 잘 올 거 아니요? 안 그래요? 귀맛이 뛰어난 사람은 소리꾼들 하는 그리로 가면 돼. 그렇지요? 후각이 뛰어난 사람도 있지요. 맛을 못 보는 사람이 있습니까? 있어요, 없어요? 있지요. 있어요. 단맛을 못 본다든지 신 맛을 못 본다든지 짠 맛을 못 본다든지 맛을 못 보는 사람이 있어. 숨은 쉬는데 냄새를 못 맡는 사람이 있어. 그렇지요? 또 눈은 있어도 보는 면에 흐릿한 사람이 있지요? 또 눈은 떴어도 전혀 못 보는 사람이 있고, 또 귀는 있어도 듣는 면에 둔한 사람이 있고.

 

하나님 말씀도 마찬가지. 듣고 마음의 느낌에서 깨닫는 게 둔한 사람이 있고 빠른 사람이 있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신다면 자기도 하나님처럼 작은 하나님으로 만들어라 그 말이요. ‘예수 믿어라하고 전도하는 건 쉽게 말하면 예수님처럼 닮아져라그 말이요.

 

그런데 가르치려면 알아야 가르치지. 알아야 써먹지. 그렇지 않아요? 알아야 통하지. 모르면 모든 면에 멍청이가 될 수밖에 없어요. 알면 그만큼 마음이 빠르고 생각이 빠르고 행동이 빠르고 사람을 알아보고 환경을 지배하고 통치하고.

 

우리로 하여금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자라게 했다. 그걸 갖다가 다른 말로 하면 성장구원이다 그 말이요. 그걸 갖다가 성장구원이라 그런다 그 말이요.

 

실력이 있을수록 자기에게는 가지는 것이 많아진다. 실력이 없으면 빼앗기고, 실력이 있으면 가지는 것이 많아진다. 장사하는 실력이 있으면 자기의 소유가 많아져. 기술의 실력이 있으면 자기의 소유가 많아져. 듣는 실력이 있으면 자기의 마음속에서 깨닫는 면에서 가지는 것이 많아져. 이 세상 인간의 세계가 그렇게 되어 있다 그 말이요.

 

우리를 만물 위에 만들어 놓으신 것은 우리로 만물을 잘 이용해서 성장구원이 되라고 그렇게 만들어 놨다. 그러니까 이 세상 모든 만물을 누구에게 주려고? 여러분들에게 주려고, 나에게 주려고 지어 놨다 그 말이요. 돼지나 호랑이나 그런 짐승들에게 주려고 한 게 아니고 나 주려고 지어 놨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이 만물을 다 나에게 주려고 만들어 놨으니까 우리가 이 만물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내가 그걸 가지러 가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 말이요. 문제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맡기시면 내가 가질 수가 있지. 문제는 실력이다. 실력이 없으면 못 가져. 실력이 없으면 빼앗겨 버려요. 실력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돌아와.

 

우리를 만물 가운데 두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누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 붙잡고 아이고, 나는 행복하다그렇게 폭 빠지라고 한 게 아니고 그걸 이용을 해서 성장구원이 되라고. 성장이 되라 그 말이요.

 

처녀총각이 시집장가 가놓으면 둘이서 그냥 푹 빠지기 쉽지요? 우리는 그런 게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왜 처녀총각을 붙여놓았느냐? 둘이서 붙잡고 푹 빠지라고 그랬어? 뭐 하라고? 뭐하라고 준 거지요? 성장하라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장을 하라고 줬다 그 말이요.

 

그런데 처음 인간 아담이 그 뜻을 몰랐어요. 그러니까 그걸 놓쳐버렸다. 성장하는 그 면을 놓쳐버렸다. 그러니까 하와가 뭘 봤지요? 선악과를 본 거지. 선악과가 뭐냐? 여러분들, 우리가 많이 볼 수 있는데 시집장가 가는 그 날 둘이서 의논하기를 선악과부터 보지요? 그렇지 않아요?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잘 되고 부자 되고하는 그 면을 먼저 봐. 그게 선악과에요. 그렇게 되면 사단의 시험이 돼버려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생명과부터 먼저 따먹어라. 하나님의 뜻부터 먼저 찾아라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고 둘을 붙여놨더니 둘이서 소곤소곤 하는 말이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고 돈 많이 벌어서 편안하게 살고 노후대책 세우고 아들딸은 몇 명 낳고합니다. 그게 뭐요? 그 선악과 따먹는 것. 그러니까 맨날 타락이고 그런 거지. 그거는 만물 아래로 내려간 거다. 타락이라 그 말이요. 그러니까 통치적으로 부패가 됐고 도덕적으로 속화됐고 신앙적으로 타락이 됐고. 이게 만물 아래로 내려간 거다. 원래 인간은 영적인 하나님의 뜻을 붙드는 그런 고차원적인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모양적으로만 보지 말고 인간의 내적인 면에 있어서 인격적인 그 마음의 상태, 그 깨달음의 상태 그 면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못 깨달아 놓으면 참 불쌍하고 처절해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돈만 많으면 행복한 것 같고 세상이 다 자기 것 같고 그렇지요. 그러나 마음속은 참 처절해요. 불쌍해요. 우리 인간이 그렇게 되면 안 된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의 성도로서 신자로서의 타락을 볼 줄 알아야 되고, 개인적인 타락도 또 볼 줄 알아야 된다. 예를 들면 대학교수가 학문연구는 안 하고 돈 돈 돈하며 돈 버는데 눈독이 들어있으면 이것은 타락이다 그 말이요. 개인적인 타락입니다. 좋은 가치를 버리고 가치 없는 것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십 년 전에도 돈 돈하던 사람이 지금도 돈 돈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타락일까요, 타락이 아닐까요? 그 사람은 십 년 전에도 돈 돈했고, 지금도 돈 돈하고 맨날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타락이 아닌 것 같지만 근본적인 사람의 위치에서 볼 때는 이러나 저러나 타락입니다.

 

또 학생은 학생의 위치가 있잖아요? 그런데 배울 시간에 배우지 않고 술집에 가서 앉아있다면 그건 학생으로서의 타락이지요.

 

그런 것처럼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살아야 할 위치가 있습니다. 아까 처음에 말씀드렸지요? 뭐지요? 첫째는 하나님, 둘째는 인간, 셋째는 만물. 그 자기의 위치를 잘 알아야 된다. 인간 자기가 하나님 위로 올라가서도 안 되고, 또 인간이 인간 밑에 내려가서도 안 되고, 인간이 만물 밑에 내려가서도 안 되고. 인간 자기는 하나님 다음이다.

 

우리가 하나님일 제일로 하고 그 다음에 자기가 정신적 마음적으로 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거는 신령계요 영원계요 무한계입니다. 그 정신으로 살아야 할 자기이다. 우리 믿는 사람이 마음속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자라고자 하는 이 마음을 버린다면 이것은 타락입니다. 알겠어요?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야 되겠다하는 이걸 버리면 그건 타락이다 그 말이요. 우리가 그 면에서 잘 알아야 된다.

 

성경은 영원한 것이 있고 영의 것이 있다고 분명히 말을 했습니다. 영원한 것은 하늘나라 신령계요 천국이요 영의 것이니 이 하나님의 것을 우리가 가져야 할 겁니다. 이런 정신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께서 필요적절하게 모든 사건을 다 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아까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 인간, 만물 이걸 먼저 지식적으로 가져야 됩니다. 이게 정신을 바로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그건 없었어요. 하나님, 인간, 물질세상 그 순서가 없었어요. 그러면 믿기 전에 제일 먼저로 꼽는 게 뭐였지요? . 세상. 하나님은 온데간데없는 거고 돈 밑에 인간. 우리도 예수 믿기 전엔 그랬단 말이요.

 

그렇게 살면 사람 꼴이 뭐가 되며 집안 꼴이 뭐가 되며 사회 꼴이 뭐가 되요? 그렇게 살면 결국 자기가 망한다. 그럼에도 예수 믿으면서도 세상 것 얻으려고 믿는 사람이 있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건 거지다. ‘세상을 먼저하고 있단 말이요.

 

그리고 교회적으로 보면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 나는 교회, 또 만물은 나의 발등상. 그렇게 또 돼 있어요.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 나는 교회다. 여러분들이 교회에요. 교회라고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 것이고.

 

성경에 보니까 아브라함이 인간으로 사는 동안에 그 목적을 알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세상을 창조했는지, 왜 인간을 창조했는지 아브라함은 그걸 알았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갔는데 애굽에 내려가는 건 타락이에요. 그런데 거기서 깨닫고 벧엘로 올라온 거지요. 벧엘로 올라오면서 세상이 나를 유혹해도, 물질이 나를 유혹해도 내가 두 번 다시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겠다하는 결심을 하고 올라오는 거지요.

 

오늘 아침시간에 이만큼 합시다.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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