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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케 하는 생활

잠언 한태완 목사............... 조회 수 2332 추천 수 0 2013.03.01 19: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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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잠17:1-14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화목케 하는 생활

본문:잠언17:1-14

시편 133편에 보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형제가 서로 화목하는 것 이상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화해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좋은 말씀만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생활의 본만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놀라운 기적만을 나타내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로 말미암아 원수가 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에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하고, 이웃과 이웃과의 관계를 말하는 상징적인 뜻이 있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는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11절 이하에도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원수되었던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있던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길이 어디 있습니까?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누구의 이름을 의지하고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고 나오셨습니다. 그 외에는 주님 앞에 나올 길이 없는 것입니다.

1. 화목케 하는 자

그러면 잠언에서 말씀하는 '서로 화목케 하는 삶'이 얼마나 복된가 하는 사실을 보십시다. 잠언 10장 12절은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7절에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하면서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모두가 죄 있는 사람인데 사랑하면 죄를 덮어버립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으면 죄를 드러내게 됩니다. 잠언 15장 16-18절에 보게 되면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잠언 17장 9절에 보면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게 되면 허물이 있어도 덮어주고, 사랑 없는 사람은 자꾸 그것을 드러내서 결국 이간시켜 버린다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 자식은 희망없는 자식이고 망나니야"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그 아들을 그렇게 희망없는 망나니로 보지 않습니다. 사람이 달라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어머니에게는 사랑이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다른 세상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없으니까 그 사람이 망나니에 희망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어머니에게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잠언 18장 6-9절에는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남의 말'은 무엇을 말할까요? 남의 좋은 것을 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경험을 보면 어떻습니까? 말하는 중에 남의 좋은 말, 칭찬하는 말, 성공하는 말을 많이 합니까? 아니면 남 흉보는 말, 잘 안되는 말, 못된 말들을 많이 합니까? 양심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듣는 것도 그렇습니다. 칭찬하는 말, 성공하는 말, 좋은 말하는 것이 듣기가 좋습니까, 아니면 남 흉보는 말이 듣기가 좋습니까?

이상한 일입니다. 인간 성품이 타락한 다음부터는 남 훌륭한 일, 잘되는 일, 성공한 일을 말하게 되면 그저 "그래, 그래" 하다가도 남 흉보는 말, 남 망했다는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깨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남의 흉을 보고 헐뜯는 이야기는 별식(別食)과 같아서 귀가 솔깃해져 흥미있게 듣는다고 했습니다. 듣기만 합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선전을 합니다. 그대로만 선전합니까? 거기에 붙여서 전하니까 처음 말하는 것과 나중에 말하는 것이 아주 다른 말이 되어 버립니다.

잠언 20장 3절에서는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고 했고, 잠언 25장 8절에는 "너는 급거히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수욕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고 했습니다. 다툼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서로 사랑하며 화평하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에게 꾀임을 받아 범죄한 이래 사랑대신 미움이, 화목대신 싸움이 인간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유명한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 마지막 부분에 재미있는 대화가 나오는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자기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받아 가지고 멀리 가서 허랑방탕하다가 결국 다 없앴습니다. 돈이라는 게 벌면서 써야지, 벌지도 않고 그냥 있는 대로 뽑아 쓰니까 얼마 못 가서 다 없어진 것은 당연하지요, 그래서 그를 좇아 다니던 사람들은 다 떠나갔던 것입니다.

결국 돼지우리에 가서 쥐엄 열매만 먹게 되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러다간 죽겠거든요, 또 '아버지의 종들도 아주 배부르게 잘 먹는데 내가 이래선 되겠나'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에 일어나 돌아갔다"고 합니다. 무슨 꼴로 돌아갔습니까? 거지꼴이 다 되어 가지고 갔습니다. 돼지 쥐엄 열매 먹던 사람이 사람 꼴이었겠습니까? 거지모양으로 돌아갔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는 저기 멀리 한 사람이 보이는데 아무리 보아도 틀림없이 자기 아들입니다. 그래서 달려나가서 입을 맞추고 옷을 갈아 입히고, 목욕을 시키고, 반지를 끼워주고, 신발을 신기고, 잔치를 한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형이 밖에 나갔다. 집에 돌아오는데 집안에서 웅성웅성하고 이상한 소리가 나거든요. 그래서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느냐?" 그랬더니 "동생이 돌아와서 아버님이 좋아서 잔치를 베풉니다"라고 합니다. 우리라면 그 소식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동생이 돌아왔으니 너무 좋구나. 그 동안 잘못된 길로 가다가 이제 정신이 들었구나"라며 좋아해야 될텐데. "난 집에 안 들어간다. 내가 친구들에게 한턱 내고 인심을 쓸려고 할 때는 조그만 양 한 마리도 허락 안 하시더니 동생이 돌아오니까, 그것도 제대로 된 동생이라면 모를까 아버지 재산 다 탕진해버린 놈이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아들 왔다고 준비해서 이렇게 대접을 해? 나는 뭐야? 난 안 들어간다. 안 들어가!"합니다.

그런데 거기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내 동생이 돌아오니까"라고 하지 않고, "당신의 아들이 돌아오니까"라고 하지 않고, "당신의 아들이 돌아오니까"라고 한 것입니다. 나하곤 아예 관계가 끊어진 겁니다. 형제의 관계가 끊어진 겁니다. 그때 아버지는 "내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네 동생"이라고 합니다. 그 말을 자꾸 강조합니다. "네 동생"이라고 합니다. 그 말을 자꾸 강조합니다. "네 동생이야."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큰 아들은 형제 의식을 잃어버렸고, 아버지는 그것을 다시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위로 하나님과 화평하고 옆으로는 이웃과 확목되는 종교입니다. 로마서 5장 1절에도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5장 19절에서도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부탁하셨을 뿐만 아니라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후에 와서 제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형제가 화목하지 않은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시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뜻을 받아서 에베소서 4장 1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메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로마서 12장 18절에 보아도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했습니다.

2. 화평의 사람이 되기 위한 지침

(1)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서로 화평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까? 화평을 가지려면 먼저 자신이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근심과 걱정과 염려가 가득한 사람, 내적인 투쟁이 있는 사람은 자연히 다른 사람과 화목하기가 어렵습니다. 성경에 보아도 사람의 마음은 마치 바닷물이 요동해서 솟구쳐 올라 여러 가지 더러운 것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악인의 마음에는 안정이 없고 평화가 없습니다. 어느 사회, 어느 단체나 말썽부리고, 이 사람과 다투고 저 사람과 다투고 하는 사람을 가만히 보면 자기 자신의 마음에 평화가 없는 사람입니다.

집에서 남편이나 아내와 다투고 나온 사람이 밖에 나가서 편할 것 같습니까?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신경질 내고 짜증냅니다. 마음이 편안한 사람은 나가서 다른 사람이 다투려고 하면 피하고 맙니다. '저렇게 복잡하게 스트레스 받고, 그럴 필요가 있나?' 하며 피합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이 불안한 사람은 가서 이 사람과도 다투고 저 사람과 다투고 자꾸 트러블을 만듭니다. 교회도 가만히 보면 조용한 교회를 시끄럽게 바꾸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그 가정에 평화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해야 하고, 하나님과 화평하려면 죄의 용서함을 받아야만 됩니다.

(2) 이웃과 화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웃과도 화목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름답습니다. 그림이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를 나타낸 걸 표시할 때 아름다움이 생깁니다. 색깔도 그렇습니다. 무지개가 왜 아름답습니까? 일곱 가지 색깔이 조화를 이루어서 아름다운 겁니다. 빨주노초파남보. 이 색깔이 조화를 이루니까 아름답습니다. 조화를 무시하고 새빨간 색깔만 보십시오. 무지개가 노란 색깔로만 되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별 모양이 없을 겁니다. 조화된 색깔이 아름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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