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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단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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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13.2.17 주일설교 http://charmsarang.onmam.com/ |
죄악된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 단 1:1~7
오늘 우리는 죄악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천국 백성들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천국 백성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불편함과 어려움도 많습니다. 손해를 보고 욕을 먹는가 하면, 심지어는 박해와 고난을 당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악된 세상에서 성도는 많은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믿음을 지키고 성도의 거룩함을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고난과 욕을 당했으며, 순교한 성도들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많은 성도들이 믿음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타협하거나 죄악에 굴복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부끄러우며, 우리를 위해 수모와 고난과 죽임을 당하신 주님 앞에 얼마나 불충한 일입니까? 당신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죄악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성도의 순결을 지킬 수 있을까요?
유다의 멸망
하나님의 권능으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정착했습니다. 사사시대를 거쳐 왕정국가가 세워졌는데, 나중에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했고, 남 왕국 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요시야왕은 유다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경건하고 믿음 좋은 왕이었습니다. 요시야는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있던 나라에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놀라운 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요시야 왕은 애굽과의 전투에 나섰다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전사한 요시야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된지 석 달 만에 애굽 왕 느고가 쳐들어와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그의 형제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제압하고 유다를 속국으로 삼아 여호야김에게 조공을 바치게 했습니다. 여호야김은 삼년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섬기다가 애굽을 등에 업고 바벨론을 배반했습니다. 그러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다시 쳐들어와 여호야김을 잡아가고, 성전의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약탈해갔습니다. 그러나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 바벨론은 유다를 멸망시키고 성전을 파괴했으며,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다니엘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김을 잡아가고 성전 기구들 일부를 바벨론으로 약탈해간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으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1-2절)
멸망의 원인
유다는 왜 그렇게 멸망을 당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었으며,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백성인 유다가 왜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했을까요?
유다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으며,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과 유다의 우상숭배를 신랄하게 책망하셨고, 우상숭배의 죄에서 떠나지 않으면 심판하실 것을 여러 차례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버리지 않았고 우상숭배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서 있는 한 안전하다고 믿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인데, 어느 이방 나라가 감히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든지 성전만 서 있으면 안전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대인들의 확신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파괴함으로써 완전히 깨지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성전이 이방인들의 손에 파괴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철저히 파괴되었고, 성전의 기구들과 그릇들은 모두 약탈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북 왕국 이스라엘에 이어 남 왕국 유다도 이방인들에 의해 완전히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들에게 비참하게 살육을 당했고, 거룩한 땅은 유린을 당하여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통치하신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원통한 일입니까?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 유대인들은 그야말로 맨붕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특히 성전이 파괴되고,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사용되던 성전의 기물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들에게 노략을 당한 것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성전파괴와 조국의 멸망을 지켜본 유대인들은 절망과 회의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모든 일들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2절)
하나님은 어느 한 민족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성전이라는 어떤 한 건물에 매이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만물과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유대인들은 성전파괴와 유다의 멸망을 보고 절망하며 맨붕 상태가 되었지만, 성경은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라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범죄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유다 왕국을 징벌하셨던 것입니다.
비록 유다가 멸망당하고 성전이 파괴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인류 역사와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셨습니다. 성전 건물이 서있든지 파괴되고 없든지, 이스라엘 나라가 건재하든지 멸망당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이스라엘은 패배했지만, 하나님은 패배하지 않으십니다. 성전은 파괴되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선하신 뜻과 계획을 조금도 차질 없이 이루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절대주권을 가지시고 영원토록 통치하십니다.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
느부갓네살은 주전 606년에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성전의 그릇 얼마를 약탈해가고, 유다의 왕족과 귀족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켰던 주전 58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포로를 잡아갔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주전 606년에 첫 번째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본문은 이 사실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곧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3-4절)
느부갓네살은 정복한 나라들의 인재들을 데려다가 엘리트 교육을 시켜서 바벨론의 관리로 등용하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선발된 젊은이들은 왕실 장학생이 되어 바벨론의 언어와 문학, 수학, 과학, 항해, 정치, 역사, 지리 등을 익혀야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렇게 교육받은 젊은이들을 바벨론의 고위 관리로 발탁하여 자기 민족들을 다스리게 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바벨론 왕실 장학생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철저한 교육을 통해 이렇게 선발된 젊은이들을 바벨론화하려고 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이들에게 최고의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3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5절) 바벨론 왕실의 모든 음식은 최고의 음식이었지만, 그 이전에 모두 바벨론의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이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당장 음식을 먹는 일에서부터 영적인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은 곧 우상숭배에 가담하는 일과 같았습니다.
바벨론은 또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름을 바꿔주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6-7절)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라는 뜻인데, ‘벨드사살’은 ‘벨이여 그 생명을 보존하소서’라는 뜻입니다. ‘하나냐’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인데, ‘사드락’은 의미는 확실치 않으나 바벨론의 우상인 마르둑과 관련된 의미로 추정됩니다. ‘미사엘’은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뜻인데, ‘메삭’도 의미는 불분명하지만 역시 우상과 관련된 이름임에 틀림없습니다. ‘아사랴’는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라는 뜻인데, ‘아벳느고’는 바벨론의 우상인 ‘느고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들의 이름은 본래 하나님과 관련이 있었는데, 바벨론은 이들의 이름을 우상과 관련이 있는 이름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이 때 다니엘과 세 친구의 나이는 14세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제 그들은 고향과 부모와 조국과 하나님을 다 잊어버리고, 바벨론의 이교와 우상숭배의 문화 속에서 철저한 재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느부갓네살 왕 앞에 나가서 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자, 이들은 과연 이러한 모든 상황 속에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방의 이교적인 문화와 교육과 사상에 동화되었을까요, 아니면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을까요? 이것은 오늘 죄악된 문화와 제도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니엘
다니엘은 조국이 멸망을 당하는 과정에서 바벨론에 잡혀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혜와 총명이 뛰어나 높은 지위에 올랐으며, 바벨론이 멸망을 당한 후에도 페르샤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뛰어난 관리였고 정치가였습니다. 어떻게 다니엘은 왕들이 바뀌고 제국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최고위 관리로 등용될 수 있었을까요? 주권자가 바뀔 때마다 거기에 맡게 처신을 잘 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우리는 이런 것을 시류에 영합한다고 표현합니다.
다니엘이 왕들과 제국이 바뀌어도 여전히 가장 높은 지위에 발탁될 수 있었던 것은 시류에 영합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모든 상황과 미래를 꿰뚫어볼 수 있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누구보다 정직하고 유능하며 청렴했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을 굳게 붙잡고 있었습니다. 이런 다니엘은 어느 시대, 어느 왕에게나 꼭 필요한 인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왕들과 나라가 바뀌는 가운데서도 다니엘이 여전히 높은 지위 오를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는 비결
다니엘서의 전반부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어떻게 적대적이고 죄악된 타국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며 믿음을 지킬 수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또한 모든 것이 불리한 환경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오늘 죄악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서 이것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은 자기편에 아무도 없을 때도, 신앙적으로 모든 것이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얼마든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니엘 등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죄악과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세상에서 홀로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은 모든 환경이 거룩하고 은혜로운 곳에서만 잘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난과 핍박과 죄악된 도전이 거센 환경에서 믿음은 더욱 강하게 잘 자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이 어렵고 세상이 악해서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버려야 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조국을 멸망시키고 성전을 파괴한 원수의 나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바벨론은 우상의 나라였으며, 느부갓네살 왕은 전형적인 독재군주였고 폭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 속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는 어떻게 믿음을 지켰으며, 더욱 더 믿음이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첫 번째 비결은 기도였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기 전에 기도했습니다.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알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단2:17-19) 다니엘은 모함을 당하여 사자굴에 던져지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9장에는 다니엘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이 죄악된 바벨론에서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첫 번째 비결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다니엘이 우상숭배와 죄악의 나라에서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두 번째 비결은 말씀이었습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9:2) 여기 나오는 책은 구약의 선지서들을 가리킵니다. 9:11과 9:13에는 모세의 율법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성경을 읽고 깨닫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성경을 읽고 기도했기 때문에 악한 세상에서 믿음을 굳게 지키고 하나님께 충성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비한 영적 체험이 있어야 믿음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다니엘도 신비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런 체험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기도로써 주님과 교제했습니다. 다니엘이 죄악된 환경에서 믿음을 지키고 승리한 비결은 말씀과 기도였습니다. 다니엘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훌륭한 믿음의 발자취를 남겼던 모든 사람들의 비결 역시 말씀과 기도였습니다. 그밖에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죄악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렇게 죄악된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습니다. 그 비결은 여전히 말씀과 기도입니다. 더욱 말씀을 굳게 붙들고 기도에 힘씀으로써 악한 세상을 이기고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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