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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기도의 능력

마태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757 추천 수 0 2013.03.05 17: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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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6:5-8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http://www.john316.or.kr 

은밀한 기도의 능력 (마태복음 6장 5-8절)

 

< 성도의 4대 의무 >

 교회생활을 잘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일과 직분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끔 “내가 어떻게 그런 직분을 받을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들지만 자격을 완벽하게 갖추고 직분을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직분을 받을 때 “나는 이제까지 별로 충성하지 않았는데...”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부족한 나를 귀하게 보시고 이렇게 직분을 맡기셨구나.”라고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은 이제까지의 충성만 보고 직분을 주지 않습니다. 사람은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보고 평가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그의 미래까지도 보고 평가하십니다. 미래에 자신이 어떤 인물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현재 모습으로만 자신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고 때가 되면 직분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그 직분이 신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줍니다.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생각하고 거룩한 부담을 지는 삶에는 결코 후퇴가 없습니다.

 성도들의 4대 핵심 의무가 있습니다. 첫째, 예배생활의 의무입니다. 예배드리며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은 신앙생활의 기본이고 영혼을 지탱시키는 척추입니다. 이 의무가 흔들리면 영혼이 흔들리고 축복도 흔들립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하나님이 쓰지 않으면 뜻을 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십시오.

 둘째, 전도생활의 의무입니다. 전도는 주님의 마지막 유언의 말씀입니다. 가장 성도다운 모습이 나타날 때는 전도에 관심을 둘 때입니다. 전도는 ‘남의 영혼을 살리는 것’이고 동시에 ‘내 영혼을 살찌우는 것’입니다. 교회가 침체해지면 영혼도 침체해지고 교회가 윤택해지면 영혼도 윤택해집니다. 결국 전도를 통한 교회 부흥은 자신의 복과 직결됩니다.

 셋째, 헌신생활의 의무입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얻은 열 개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 돌리고 한 달 30일 중 하루 수입은 선교와 나눔에 쓰십시오. 그런 삶은 신앙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거룩한 가치관과 책임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분명하고 확실하고 책임적으로 하는 것이 복되고 아름답습니다.

 넷째, 기도생활의 의무입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우리를 맺어주는 기적의 연결고리이고 능력과 축복의 원천입니다. 그 사실을 정말 믿으면 삶에는 놀라운 지각변동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다른 어떤 것보다 기도에서 성공해야 하는데 실제로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실패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얼마나 아쉬운 일입니까?

< 축복을 이끌어내는 기도 >

 기도는 최상의 축복의 도구입니다. 그런데 기도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바르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가 응답과 축복을 이끌어내는 복된 기도일까요?

1. 진실한 기도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는 외식적인 기도를 금하라고 했습니다. 마음도 없이 입술로만 기도하는 척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는 의외로 그런 ‘척 하는 기도’가 많습니다.

 어느 날, 새로 개업한 한 변호사가 첫 손님을 기다리는데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며 누군가 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유능하게 보이려고 바쁜 것처럼 전화기를 들고 거짓말로 대화했습니다. “아! 그러세요! 이번 사건은 해결이 쉽지 않겠어요. 노력해 보죠.”

 그때 문으로 누가 들어오자 그는 전화기에서 손을 떼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잠깐만 거기 앉아 계세요.” 그리고 계속해서 전화기를 귀에 대고 말했습니다. “네. 준비만 잘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비서를 시켜 서류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내일 다시 전화 주세요.” 그리고 전화를 끊고 그 앉은 사람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그러자 그가 얼굴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새로 전화를 신청해서 전화 놓아드리려고 전화국에서 왔어요.”

 많은 사람이 그 변호사처럼 상대가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기도합니다. 그러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도 모른 척 합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처럼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는데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기도하는 것도 일종의 명예욕입니다.

 마태복음 6장에는 크게 2가지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명예욕을 버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물질욕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사실 물질욕을 버리는 것보다 명예욕을 버리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사람의 칭찬을 너무 바라지 마십시오. 명예욕을 버려야 진정한 축복도 주어집니다. 그처럼 명예욕을 버리고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진실한 기도를 드려야 그 기도가 응답 받는 기도가 됩니다.

2. 은밀한 기도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은밀한 선행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간에도 자리다툼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습니다. 그러나 선행을 하고 그 선행 사실조차 잊어버려야 그 선행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 선행이 되지 않고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선행이 됩니다.

 가끔 보면 건축할 때 헌금자와 헌금 액수를 강대상에서 공개하고 주보에 공개해 명예욕을 부추겨 헌금 경쟁을 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처럼 명예욕을 부추겨 헌금하게 하면 헌금 목표 달성은 쉬워도 후유증이 큽니다. 그런 교회는 겉과는 달리 속에는 죽은 뼈가 가득하게 되고 결국 생명이 역사하기보다 죽음이 역사합니다.

 또한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면 자기 의에 도취되어 남을 깔보게 됩니다. 발언도 인기성 발언이나 공격성 발언을 많이 하기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분쟁과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분쟁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는 사람들의 교만과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치 말고 최대한 자신을 감추면서 기도할 때도 은밀하게 기도하십시오.

 은밀한 기도는 경건을 위한 최적의 길입니다. 경건한 사람에게 있는 감사와 나눔의 삶, 그리고 거룩한 활동과 역사의 밑바탕에는 항상 은밀한 기도가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예수님 되게 한 것도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분주한 중에도 수시로 한적한 곳을 찾아가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기적과 말씀의 뿌리에는 은밀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전달되는 통로입니다. 또한 삶의 토대를 세우고 잘못된 삶을 보수하는 최대 수단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늘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의 장단에 맞추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은밀한 기도를 통해 삶의 중심을 잡고 사람에게 좋게 들리게 하려고 기도하지 말고 화려하고 유창한 기도를 부러워하지도 마십시오. 때로는 떠듬대는 순수한 기도가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더 움직입니다.

 어느 날, 늦게 믿고 늘 감격 중에 사는 한 할아버지에게 며느리가 밥상을 놓고 부탁했습니다. “아버님! 오늘은 아버님이 식사기도를 해주세요.” 손자들이 고사리 손을 모으고 할아버지의 기도를 기다릴 때 대중기도를 해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는 식은땀을 흘리다가 갑자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만세!”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고 얼마나 웃고 기뻐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대중 앞에 드려지는 화려한 기도보다 은밀하게 드려지는 순박한 기도를 더욱 기뻐하시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살면서 왜 때로 고독한 순간에 처합니까? 은밀한 기도를 받고 싶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연인들이 데이트를 할 때 둘 만의 장소를 찾듯이 외로우면 골방에 들어가 은밀하게 기도하십시오.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며 고통 중에도 진리와 감사거리를 발견하는 삶처럼 복된 삶은 없습니다. 그처럼 ‘무대 앞’에 서기보다 ‘하나님 앞’에 서기를 힘쓸 때 영혼이 풍성해지고 하나님의 음성도 더욱 생생하게 들릴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은혜 받겠다고 각종 집회와 세미나를 열심히 찾아다닙니다. 그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정작 혼자 하나님 앞에 앉아 기도하는 시간은 없다면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예수님은 대중을 사랑했지만 대중성은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이스라엘 왕으로 모시려고 할 때 예수님은 뒤로 물러나 숨으셨고, 신유 후에는 치유된 사람들의 입에 마이크를 갖다 대고 간증을 유도하기보다 그 기적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중요한 순간에는 항상 혼자 한적한 곳에 가셔서 은밀하게 기도했습니다. 공생애 시작 전에 혼자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하셨고, 12제자를 선택할 때도 홀로 기도하셨고(눅 6:12-13),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혼자 기도했습니다(마 26:36-48). 예수님도 그처럼 은밀한 기도 시간이 필요했다면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하겠습니까? 항상 은밀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영혼의 배터리를 충전해서 앞으로 다가올 축복의 날과 시련의 날을 동시에 준비하십시오.

3. 순수한 기도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기도 시간이 길어야 효과도 큰 것은 아닙니다. 보통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답이 길고 장황합니다. 핵심을 모르니까 어느 한 대목이라도 걸리기를 바라고 그물을 넓게 치는 것입니다. 그 얄팍한 꾀를 하나님이 모르시겠습니까?

 중언부언이란 ‘같은 말을 공허하게 반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무당이 굿할 때 공허한 주문을 반복합니다. 불교인들은 “나무아미타불”을 계속 반복하고, 어떤 성도는 주기도문을 영험한 능력이 있는 줄 알고 형식적으로 반복합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주문이 아닙니다. 그처럼 기도는 주문이 아닌데 왜 이방인들은 기도할 때 증언부언하며 주문하듯이 기도합니까? 영적인 명예욕을 가지고 오래 신령하게 기도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싶은데 오래 기도할 거리가 없으니까 증언부언을 하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영성을 기도시간으로 평가하면서 누구는 하루에 몇 시간을 기도한다고 내세웁니다. 그러나 ‘기도의 길이’보다 ‘기도의 깊이’가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기도를 짧게 하란 말은 아닙니다. 어떤 분은 새벽기도회에 와서 몇 분 기도하고 훌쩍 가버립니다. ‘기도 길이’보다 ‘기도 깊이’가 중요하긴 하지만 대중기도가 아닌 개인기도를 몇 분만 하고 끝내는 기도는 대개 기도의 깊이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을 때, 즉 자녀가 병들고 사업이 망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몇 분 안에 기도를 끝냅니까? 그때는 밤을 새서라도 애타게 기도할 것입니다. 그처럼 간절히 기도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도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중언부언 하지 말라고 했지 간단히 기도하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간단히 기도하지 말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어떤 분은 기도합니다. “하나님! 전 국민이 잘 먹고 잘 살게 하소서!” 내용은 좋지만 전 국민이 하나님께 복 받을 행동을 합니까? 차라리 전 국민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맞습니다. 그처럼 황당하게 스케일이 큰 추상적인 기도는 대개 짧습니다. 중언부언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단 몇 분 안에 우주적인 기도를 끝내지 마십시오.

 또한 중언부언 하지 말라는 말은 형식적인 반복을 금한 것이지 반복 자체를 금한 것은 아닙니다. 한나가 아들을 낳지 못한 것이 너무 한이 되어서 반복된 말로 탄식하며 기도하자 엘리 제사장은 술주정하는 것처럼 여기고 “포도주를 끊으라!”고 했습니다(삼상1:14). 그러나 진실하고 순수한 기도라면 얼마든지 방언하듯이 반복해도 좋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도움을 요청할 때 이렇게 요청합니까?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대한민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 38번지에 사는데 제가 지금 물에 빠졌습니다. 5분 이내에 건지지 않으면 죽으니 그 전에 구해주세요.” 그러면 진짜 죽습니다. 다급하고 간절하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짧은 반복기도가 나올 수 있습니다. 기도에는 정형이 없습니다. 짧아도 좋고 길어도 좋습니다. 다만 사람을 의식해서 중언부언 하며 길게 기도하지는 마십시오.

4. 믿음의 기도

 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인용하며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는데 왜 기도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다 아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필요를 다 아니까 기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이 최적의 응답을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최근의 한 미국 통계에 의하면 약 90%의 사람들이 기도의 능력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더욱 기도의 능력을 믿고 자기 힘으로 이루기 힘든 찬란한 비전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 힘만으로는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 그 동안 가졌던 꿈과 비전이 이뤄지고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최상의 축복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담대히 기도해야 합니다.

 자세히 보면 많은 기도가 그저 잘 지내고 잘 견디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금년을 잘 보내게 해주세요. 이 병을 잘 견디게 하소서! 자녀가 사춘기를 잘 지나게 하소서!” 물론 그런 기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런 기도로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먼저 제한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고 움직이십니다. 작은 것을 기도하면 작은 것을 주시고 큰 것을 기도하면 큰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담대하게 큰 것을 구하십시오.

 보통 기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님! 필요한 물질을 채워주소서.” 그러나 담대한 기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님! 물질적인 큰 축복을 주셔서 나눔의 모델이 되게 하소서!” 보통 기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님! 자녀가 철들게 하소서.” 그러나 담대한 기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님! 자녀가 인물이 되어 이 시대의 리더가 되게 하소서!” 보통 기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니! 이 병을 잘 견디고 고통 없이 천국 가게 하소서!” 그러나 담대한 기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님! 온전한 치유를 통해 기력과 기억력이 좋아져서 이전보다 더 쓰임 받게 하소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찬란한 축복의 주인공이 되길 원하면 크고 담대한 기도를 드리십시오. 자기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작은 것만 원하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현실적인 능력을 넘는 큰 비전을 이루려면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축복의 문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담대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어떤 분은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그런 대로 살만 하니까 더 이상 안 구하겠습니다.” 그것은 겸손한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교만한 태도이고 이기적인 태도입니다. 자신의 필요가 채워졌다고 해서 안 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구해서 더 받고 더 나누면 얼마나 좋습니까? 또한 사업의 축복도 구하고 성공해서 열심히 은밀하게 선교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므로 현재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보다 큰 꿈과 비전을 가지십시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결손 가정에서 자라 못 배웠습니다. 능력도 없고 재주도 없습니다.” 그처럼 입을 적게 벌리면 하나님의 축복도 제한됩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손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미 크신 축복을 주시려고 준비하셨습니다. 결국 축복은 축복을 수용할 자신의 믿음에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입을 크게 열고 큰 축복을 구하고 현재의 헌신적인 삶으로 그 기도제목이 허황된 것이 아님을 증명하십시오.

< 큰 것을 구하십시오 >

 어느 날, 한 학생이 목사님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번 학기말 과학 시험에서 C를 맞게 기도해주세요.”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왜 C를 구해? A를 구하지 않고?”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그 과목에서 이제까지 제일 잘 맞은 것이 C였어요.” 그때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형제! C의 틀에 갇혀서 살지 말고 입을 넓게 열어 A를 구하고 최선을 다해봐!”

 그 도전을 받고 그는 돌아가서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 공부해서 마침내 그 과목에서 처음으로 A를 맞았습니다. 그처럼 닫힌 사고에서 벗어나 담대하게 기도하고 노력하면 처음으로 원하는 일에서 A를 맞으면서 찬란한 꿈이 현실이 될 것입니다.

 이제 자기 한계에 갇혀 살지 말고 C의 기도가 아닌 A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최상의 것을 주시려고 우리의 마음속에 찬란한 꿈과 비전을 두셨습니다. 그 꿈과 비전을 나눌 때 누군가 “네 주제를 알라!”고 비웃어도 중요한 것은 그의 인정이 아니고 하나님의 인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은밀한 기도를 통해 마음속의 찬란한 꿈과 비전을 토로하면 하나님은 그 믿음의 기도를 받으시고 그 꿈과 비전을 이뤄주실 것입니다.

 어떤 분은 큰 소원을 품고 기도하라고 하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기도는 욕심이 담긴 이기적인 기도가 아닐까?” 그러나 찬란한 꿈과 비전을 품고 기도하는 것은 이기적인 기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란한 꿈을 이뤄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작은 것을 구하는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이룰 수 없는 찬란한 꿈과 비전을 품고 더 큰 것을 구하십시오.

 어느 날, 예수님이 여리고성을 떠나시고 많은 무리가 뒤따를 때 길가에 앉은 두 맹인이 예수님께 소리쳤습니다. “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이 “시끄럽다! 조용히 하라!”고 하자 두 맹인이 더 크게 소리쳤습니다. “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그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요? 그들의 믿음을 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들은 “사람들의 무시를 받지 않고 더 많이 동냥 받게 하소서.”라고 C의 삶을 구하지 않고 담대하게 A의 삶을 구했습니다. “예수님! 보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기에 보기를 원하는 소원 고백에는 담대한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담대하게 구하자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베풀어주셔서 그들은 난생 처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십니다. “아무개야!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그때 C를 구하는 이런 기도에 머물지 마십시오. “하나님! 금년도 잘 보내게 하소서! 가족이 모두 잘 지내게 하소서! 직장생활을 잘 견디게 하소서! 사업이 부도나지 않게 하소서!” 대신 A를 구하는 이런 기도를 하십시오. “하나님! 금년이 제 일생의 최상의 해가 되게 하소서! 우리 가정에 인물이 나오게 하소서! 직장에서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게 하소서! 신적인 지혜와 창조성을 가지고 사업에서 크게 성공해 많이 나누게 하소서!”

 이제 기도를 자랑하지 말고 은밀하게 기도하되 담대한 믿음으로 큰 것을 구하십시오. “하나님! 우리 분당 샛별교회가 나눔의 모델 교회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 성경 66권 전권 설교파일을 통해 천년영향력의 비전을 이루게 하소서! 우리 성도와 성도 자녀들과 온라인 새벽기도 회원 중에 나눔을 선도할 걸출한 인물이 나게 하소서!” 하나님은 믿음으로 구하는 큰 기도에 큰 응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진실하고 은밀하고 순수하고 담대한 믿음의 기도로 응답 받고 축복을 얻어 누리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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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1 역대상 야베스 축복의 원리 대상4:9-10  강문호 목사  2013-03-03 2488
8420 창세기 나의 모든 것을 천국에 이전등기 하는 것이 신앙이다. 창13:1-13  김경형 목사  2013-03-02 1917
8419 출애굽기 홍해를 건넌 사람들 출14:26-31  박종순 목사  2013-03-01 2546
8418 잠언 화목케 하는 생활 잠17:1-14  한태완 목사  2013-03-01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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