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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살후1: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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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http://www.john316.or.kr |
데살로니가후서(3) 믿음의 능력이 나타날 때 (살후 1:11-12)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김 받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처럼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려면 기쁨으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11절). 어떤 엄마는 자녀를 좋은 대학 보내려고 매일 인상 쓰고 “너 죽고 나 죽자!”고 합니다. 좋은 대학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강대국 틈에서 살아남아 1대 2의 비율로 일본인을 상대하고 1대 20 비율로 중국인을 상대하는 길은 실력밖에 없음을 알기에 그렇게 대학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현재의 행복이 말살될 정도까지 대학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
대학을 나왔는데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지 못해 가정이 불행하고, 인간관계를 못해서 갈등과 상처와 스트레스로 늘 위장병을 달고 살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공부의 목적은 결국 기쁨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왜 말씀을 공부합니까? 역시 말씀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분은 부흥회를 갔다 와서 신실함이 깊어지기보다는 자기 담임목사가 시시해 보이는 부작용이 생깁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부흥사가 자랑하는 최고의 개그 만담과 수십 년째 써먹는 감동적인 몇 편의 예화만 단편적으로 듣고 감격해서 자기 담임목사를 못난이 취급하는 분별없는 사람은 사실 부흥회에 안 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모습은 인생전체로 보면 큰 손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성가대 지휘자는 성가대원들이 노래를 못한다고 무섭게 화를 냅니다. 그러자 성가대원들도 마음 졸인 채로 우거지상을 하며 노래합니다. 그러면 그 성가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지 못합니다. 불행한 얼굴로 잘하는 것보다 차라리 행복한 얼굴로 못하는 것이 낫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예배당 걸레질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면서도 기쁘게 노래하며 합니다. 그러면 본인도 행복하지만 보는 사람도 행복하고 하나님도 영광을 받습니다.
< 능력은 십자가를 질 때 나타납니다 >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기쁘고 행복하게 하십시오. 언제나 일보다 은혜가 먼저입니다. 우리의 손길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이 진척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 일을 돕겠다고 하기 전에 먼저 은혜 많이 받고 기쁘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그것이 교회와 목회자를 최고로 돕는 것입니다.
특히 기쁘게 십자가를 지십시오. 믿음의 역사와 능력이 언제 나타납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좁은 길을 선택할 줄 알고 과감히 십자가를 질 때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최대의 일은 십자가에서 죽고 사는 일이었습니다. 그처럼 성도의 최대의 일도 전도, 선교, 봉사 이전에 십자가에서 죽는 일입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 자기 힘으로 일하는 것은 자기 일을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성령 안에서 죽음을 고백하는 십자가 신앙을 가지십시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강단은 크게 회개할 점이 있습니다. 부흥회란 이름을 빌어 애굽을 바라보게 한 것입니다. 부흥회에서 입으로는 예수님을 말하지만 내용에는 예수님의 정신이 없이 거의 개그 수준의 얘기로 가나안 땅의 행복이 아닌 애굽의 축복을 바라보게 하니까 많은 한국 교인들이 여전히 광야 가운데 헤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헤매다 죽어도 천국은 갈 수 있겠지만 얼마나 불행한 삶입니까? 이제 예수님을 믿을 때 자존심과 세상 욕심을 버리고 성령 안에서 심령이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로 채워지게 하십시오. 물질도 소명을 이루려고 추구하되 욕심을 채우려고 추구하지는 마십시오. 예수님의 정신도 없이 많이 가지면 오히려 불행의 가능성이 커지고 나중에 하나님한테 종아리 맞을 가능성도 커집니다.
성도가 가진 물질은 자기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것입니까? 그 질문에 많은 교인들은 자동적으로 말합니다. “하나님 것입니다.” 그러나 차라리 “제 것입니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이 낫습니다. 말로는 “하나님 것입니다.”라고 해놓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조금 쓰고 자기만 위해서는 펑펑 쓴다면 그 위선 때문에 더 종아리를 맞으니까 차라리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합니다. 물론 진짜로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라 욕심을 덜어내는 문제와 하나님의 주권 문제에 진지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 체험의 가장 뚜렷한 증거인 십자가의 헌신도 없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하면 차라리 축복을 많이 받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많이 축복 받아서 종아리 맞을 일만 많이 하면 그게 무슨 축복이겠습니까? 십자가를 지고 이웃과 나눌 각오가 없다면 차라리 조금 받으십시오. 그러나 그런 소극적인 삶보다는 십자가 신앙으로 철저히 무장한 후에 많이 축복 받고 많이 나누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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