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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5:3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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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3.2.12 주일설교 http://www.john316.or.kr |
더 해야 할 일 3가지 (마태복음 5장 38-42절)
리더십 원리에 의하면 4가지 유형의 리더가 있습니다. 첫째, 똑부형 리더입니다. 똑똑하면서 부지런한 바람직한 유형입니다. 그러나 약점도 있습니다. 자신이 똑똑하고 부지런하니까 남 일하는 것이 영 시원찮게 보입니다. 그래서 그와 함께 일하거나 그 밑에서 일하려면 힘들 수 있습니다.
둘째, 똑게형 리더입니다. 똑똑하지만 게으른 형입니다. 게으른 것은 나쁘지만 이런 유형도 장점은 있습니다. 게을러서 혼자 일처리를 못하고 남의 도움을 받으며 일하니까 남을 세워주는 리더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비전이 뚜렷하면 이런 유형도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꽤 있습니다.
셋째, 멍게형 리더입니다. 멍청하면서 게으릅니다. 그래서 어디 가든지 큰일은 하지 못하지만 이런 사람도 다 필요해서 하나님이 있게 하셨습니다. 사실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만 있다면 그 사회가 얼마나 삭막해집니까? 조금 맹하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야 분위기가 평화롭고 유쾌해집니다.
넷째, 멍부형 리더입니다. 멍청하면서 부지런합니다. 하나 일하고 두 개의 일감을 만드는 가장 힘든 리더 유형입니다. 이런 리더는 사람들을 실족시킬 때가 많기에 똑게형, 멍게형 리더는 되어도 멍부형 리더는 되지 말라고 합니다. 거룩한 목표도 없이 바쁘게만 살면 ‘빛을 비추는 인생’이 되기보다 ‘연기 피우는 인생’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어느 날, 한 원숭이가 강가를 지나는데 강에서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노는 것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물속에 급히 뛰어들어 물고기를 부지런히 건져 강변으로 던졌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강 밖으로 나와 보니까 물고기들이 다 죽어 있었습니다. 원숭이가 탄식했습니다. “내가 조금 일찍 구조하지 않아서 이렇게 됐구나!” 그래서 다음날은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물고기들을 강 밖으로 던졌습니다. 얼마나 ‘멍청한 부지런함’입니까?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른 목표와 비전을 가지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네가 더 살아야 할 이유가 뭐냐?”고 물으시면 즉시 대답할 수 있는 분명하고 가치 있는 비전이 있습니까? 그 비전 때문에 건강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공부해야 하고, 마음과 인격을 정비해야 할 분명한 삶의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살면서 두 가지 비전은 꼭 가지십시오. 첫째, 자신을 위한 비전입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5% 정도라고 합니다. 결국 가치 있는 분명한 비전이 있다면 성공적인 삶을 사는 5% 안에 속하는 큰 특권을 얻습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를 위한 비전입니다. 영혼의 방황은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면 끝나고 영적인 방황은 좋은 공동체를 만나면 끝납니다. 지금 방황하는 영혼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위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를 만드는 꿈을 품고 최선을 다해 헌신하십시오.
우리 교회는 한국에서 나눔의 모델이 되는 교회를 꿈꾸며 매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희 제단이 나눔의 모델이 되려면 인물이 필요합니다. 인물을 보내주시고 우리 중에 인물이 나오게 하소서!” 그 비전을 가지고 계속 기도하며 준비하십시오. 믿음이 죽지 않으면 비전도 죽지 않고 비전이 죽지 않으면 조만간 그 비전은 현실화됩니다. 그처럼 분명한 비전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그래서 비전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비전이 분명해야 성공도 분명해집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분명한 비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언젠가 남극의 얼음 덩어리 밑에서 불이 났습니다. 얼음덩어리가 묘하게 볼록 렌즈처럼 만들어져서 그것이 햇빛을 모아 열이 생기며 얼음덩어리 밑에 불이 난 것입니다. 그처럼 비전에 집중하면 얼음덩어리도 녹이고 쇳덩어리도 녹이는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 더 해야 할 일 3가지 >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 시간에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 더 해야 할 일 3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더 책임지십시오
구약시대의 율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속옷을 가지려고 하면 겉옷까지도 주라고 했습니다(38-40절). 왜 예수님은 구약과 상반된 말씀을 하실까요? 가끔 모순된 성경 구절이 나오면 억지로 풀려고 하지 말고 잘 모르면 그때는 그냥 넘어가십시오. 이해되는 말씀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은혜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이해될 때가 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란 출애굽기의 율법과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은혜롭게 적용하면 어떨까요? 출애굽기의 율법의 말씀은 가해자가 되었을 때 적용하고 예수님의 사랑의 말씀은 피해자가 되었을 때 적용하는 것입니다. 즉 남에게 해를 입힌 가해자는 똑같은 보응을 받을 만큼 책임의식을 느끼고 오른쪽 뺨을 맞은 피해자는 왼편도 돌려댈 만큼 용서의식에 탁월하면 얼마나 그 삶이 복된 삶이 되겠습니까?
보통 사람들은 피해를 입히면 마태복음을 내세워 상대의 용서를 바라고 피해를 입으면 출애굽기를 내세워 상대의 책임을 요구합니다. 그처럼 책임추궁인은 많고 책임지는 자는 적은 것이 문제입니다. 일전에 천주교에서는 “내 탓이요!”란 운동을 벌였고 한 교회에서는 “네 덕이요!”란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처럼 탓은 내게 돌리고 덕은 네게 돌릴 때 힘든 세상도 그런 대로 살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요나는 풍랑을 만난 배 안에서 제비 뽑힌 후 말했습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러면 바다가 잔잔해지리라!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내 탓인 줄 안다(욘1:12).” 대단한 책임정신입니다. 요나에게 부족한 점이 많았어도 그가 선지자로 선택된 것은 그런 투철한 책임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잘못은 인정하고 책임지며 남의 잘못은 용서해주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처럼 남에게 잘못했으면 출애굽기를 보며 책임을 지고 남이 잘못했으면 마태복음을 보며 용서와 사랑으로 덮어주십시오.
물론 오른쪽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란 말씀은 비폭력주의이지 무저항주의는 아닙니다. 불의에는 저항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항할 때는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 저항해야 합니다. 오른 뺨을 칠 때 왼 뺨을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 주라는 말은 철저히 사랑으로 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인 한 명을 죽이면 정의를 실현한다고 이스라엘인들은 날이 새기 전에 상대 열 명을 죽입니다. 그런 무서운 보복률 때문에 싸움이 끝없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정복하려면 하나의 미움에 하나의 사랑이 아닌 열 개의 사랑으로 저항하십시오. 그처럼 기독교의 사랑은 ‘소극적인 무저항주의’가 아니라 ‘적극적인 사랑의 저항주의’입니다. 그런 책임적인 사랑으로 원수를 정복하고 역경을 극복하십시오.
2. 더 섬겨주십시오
본문 41절 말씀처럼 ‘오리 인생’이 아닌 ‘십리 인생’이 되십시오. 해야 할 의무보다 조금 더 하고, 남의 기대보다 조금 더 하고, 받는 대가보다 조금 더 하고, 약속 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 오십시오. 예배 시간도 10분 전에 오는 것, 시간에 맞춰 오는 것, 10분 후에 오는 것은 의미 차이도 크고 은혜 차이도 큽니다. 직장에서 정리 대상 1순위는 무능력한 사람이 아닌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사람입니다. 오리 인생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사장이 입사 지원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을 잘합니까?” 그때 한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사장님! 저를 뽑아주시면 밥값 이상은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바로 그를 채용했습니다. 하나님은 밥값 이상을 하는 십리 인생에게 축복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그래서 ‘나폴레옹 힐’이란 리더십 연구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오리를 가라고 할 때 십리를 간 사람들이다.”
‘오리 인생’은 좋은 친구와 인맥을 얻지 못합니다. 아무리 외모가 출중하고 능력이 커도 얌체처럼 제 할 일만 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면 누가 좋아합니까? 그런 청년에게는 좋은 처녀를 소개해주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어떤 청년에게는 많은 처녀를 소개해줍니다. 그것은 그 청년이 ‘십리 인생’을 산다는 증거입니다. 요셉이 어떻게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까? 맡겨진 일 이상을 하는 십리 인생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매일 콧노래만 부르고 상점 안을 누비던 천사 같은 에디란 직원이 해고되었습니다. 한 고객이 왜 천사 같은 에디를 해고했느냐고 묻자 점주가 말했습니다. “그는 있으나마나 한 천사였어요.” 오리 이하의 삶을 살며 직장 동료에게 일감을 미루는 게으른 천사는 진짜 천사가 아닙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임무보다 더 많은 일을 감당하면 손해될 것 같지만 십리 인생에게는 언제나 보상이 따릅니다. 손해 보기로 작정하면 손해 보지 않습니다.
어느 날, 작은 회사의 회계원으로 있던 록펠러가 기도하며 석유사업을 구상했습니다. 큰돈이 필요한 사업이었지만 쉽게 자본을 마련했습니다. 지인들이 너도나도 자금을 대주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석유사업은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이었지만 사람들은 사업 전망이 아닌 록펠러란 사람 때문에 돈을 맡긴 것입니다. 십리 인생을 살면 언젠가 꿈과 같은 축복의 기회도 생기고 능력도 향상되고 숨은 잠재력도 나타날 것입니다.
특히 본문 41절에서 중요한 단어는 ‘누구든지’란 단어입니다. 그 단어에는 ‘함께 가기 싫은 사람’도 포함합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인들은 수시로 유대인들에게 무거운 짐을 옮기게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했을까요? 함께 가며 복음을 전하며 그를 변화시키란 뜻입니다. 그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까지 변화시키는 능력과 영향력을 갖춘 사람이 바로 진짜 성도입니다.
또한 십리 인생이 되려면 무엇보다 감사하는 삶을 사십시오. 감사는 영혼을 미래로 이끌어가는 에너지와 같고 낙심과 좌절의 안개를 걷어내는 아침햇살과 같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대개 작은 일에도 감사합니다. 어려운 일을 할 때 오리 인생은 찡그리고 짜증내며 하지만 십리 인생은 감사하고 기뻐하며 합니다. 그런 십리 인생에게 어떻게 축복이 없겠습니까?
강철 왕 카네기 회사에 늘 웃고 다니며 입에 감사가 붙은 찰스란 젊은 노무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일찍 출근하는 카네기보다 항상 먼저 와서 있었습니다.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 중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카네기는 그에게 100만 불의 보너스를 주었습니다. 지금 돈의 가치로 약 300억 원입니다.
훗날 그 청년이 미국 최고의 철강회사인 유나이티드 스틸사의 사장이 되었는데 사장 취임식 때 카네기가 축사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개 노무자가 어떻게 이 회사의 사장이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하지만 곁에서 그를 꾸준히 지켜본 사람은 다 그렇게 결정할 겁니다.” 오리 인생으로 약삭빠르게 살면 결국 오리도 못 가는 무능한 사람이 되고 사람들도 외면하지만 십리 인생으로 더 책임지고 감사하며 살면 사람들의 인정도 받고, 능력과 잠재력도 커지고, 하나님도 큰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3. 더 나눠주십시오
본문 42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얼마나 착한 마음입니까? 그런 착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요즘에는 착하다는 말이 마치 “바보 같다”는 말처럼 사용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세태입니까?
어느 날, 4살짜리 꼬마가 장난감 차를 타며 재밌게 놀 때 한 욕심쟁이 꼬마가 막무가내로 자기도 그 차를 태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4살짜리 꼬마가 떼를 부리는 아이에게 차를 양보했습니다. 얼마나 대견한 모습입니까? 그런 모습을 보면 크게 칭찬해야 하는데 어떤 부모는 말합니다. “이 바보야! 너는 왜 바보처럼 맨날 뺏기니.” 어리석은 부모입니다. 바른 행동을 바보 행동으로 보는 사람이 바보입니다.
어느 날, 아들이 수학여행을 갈 때 아빠 장로님이 비상금을 주며 당부했습니다. “얘야! 이 비상금은 꼭 필요할 때만 써라!” 그런데 아들이 비상금을 다 썼습니다. 아빠가 무슨 급한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친구들과 식당에 갔는데 지갑을 가져온 친구가 없어서 그 비상금을 썼다고 하면서 아들이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아빠! 잘했지요?” 그때 장로님이 말했습니다. “얘야! 너 그래 가지고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래?”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본문 42절 말씀을 보고 자신보다 아들이 더 성경적으로 사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더 나누며 사는 자에게 더 나눠주십니다. 줄 줄 모르면 받지도 못합니다. 성경의 위인들을 보면 여러 약점은 많았지만 이기주의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그의 삶을 죽 살펴보면 그는 나눔에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누면서 오히려 거부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아있는데 저 멀리 세 나그네가 나타났습니다. 그 때가 정오쯤인데 보통 사람 같으면 “이 더운 날씨에 왜 저렇게 다니나?”하고 냉소했겠지만 아브라함은 단숨에 달려 나가 그들을 힘써 대접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그들은 하나님과 천사들이었습니다. 그에 대해 히브리서 13장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힘써 누군가를 대접하면 부지중에 하나님을 대접하는 축복 기회가 됩니다.
때로는 미운 사람도 소중하게 대해주십시오. 요새는 미워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도 까닭 없이 미워하는 편견의 시대입니다. A에게 당했다고 A가 속한 인종, 지역, 출신, 국가, 성별, 직급, 계층, 피부색까지도 도매 급으로 미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을 자세히 보면 거의 예외 없이 깊은 사회적인 열등감이 있고 자신이 사기를 치면서 남을 사기꾼이라고 하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가장 편견이 없어야 할 목사조차 그런 편견을 무심코 노출해서 교회에서 성도들에 의해 쫓겨난 목사가 얼마나 많습니까? 목사보다 더 편견이 없어야 할 사람은 선교사입니다. ‘선교’라는 개념 자체가 ‘편견’과는 정반대의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교사가 대화중에 무심코 그런 지역색을 노출해서 선교사의 기본 자질이 없다고 점잖은 다른 이유를 내세워 후원을 끊는 경우도 최근에 여러 건 봤습니다. 그런 일을 당하면 자신이 먼저 편견을 드러내어 순수한 성도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을 회개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깊은 편견에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성직자까지 그렇다는 것은 사람이 그만큼 철들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제 사람을 볼 때 사람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십시오. 하나님이 많이 사랑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뚜렷한 이유도 없이 판단하지 말고 편견 없는 마음으로 힘써 나누십시오. 무엇보다 축복과 칭찬의 말을 많이 해주십시오. 축복과 칭찬의 말을 많이 해주는 것은 축복을 맡겨두는 것과 같습니다. 때가 되면 그 이상의 축복을 도로 찾아 쓰게 될 것입니다.
< 축복을 많이 해주십시오 >
오늘날 회사원의 절반가량이 회사의 인정을 못 받고 80%는 “고맙다.”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식당이나 마켓 등에서 직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주면 그 말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돈을 받고 일해도 자신을 위해 일해 주는 사람에게 감사하십시오. 경찰과 공무원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해주십시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공무원과 경찰들이 일하는데 왜 감사합니까?” 감사하면 그들이 훨씬 더 일을 잘해주는 것을 모르니 얼마나 인색하고 복 없는 사람입니까?
어느 날, 한 사람이 문을 열자 개가 입으로 신문을 물어가지고 문 옆에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개를 예뻐해 주며 그 개가 가장 좋아하는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다음 날, 그가 신문을 취하려고 문을 열자 문 옆에는 신문이 8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개가 칭찬 받고 신나서 이웃집 신문들을 다 긁어모아 온 것입니다.
사람도 감사하면 더 일을 잘하게 됩니다. 한 번 칭찬해주면 8배 이상의 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격려를 통해 남을 기분 좋게 해주십시오. 요새는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인 렌즈를 끼고 볼 때가 많습니다. “왜 저렇게 행동할까? 도저히 이해 못하겠어. 왜 저런 식으로 옷을 입었을까?” 그런 비판 렌즈를 빼고 영성 렌즈를 껴서 누구에게나 있는 장점과 아름다운 점을 발견해 말해주는 습관을 개발하십시오.
한 목회자 부부가 6살짜리 딸에게 좋은 것을 보게 하는 습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그 어린 딸은 사람을 만나면 항상 좋은 점을 찾아 말했습니다. “아줌마! 귀고리가 예쁘네요. 단추가 예쁘네요. 손가락이 예쁘네요.”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기분 좋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좋은 면을 보고 말해주는 습관을 통해 만나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은 축복을 맡겨두는 것과 같아서 나중에 가장 적절한 때 찾아 쓰게 됩니다.
어떤 4자녀의 어머니는 생일 케이크를 자르기 전에 돌아가면서 생일을 맞은 자녀의 잘하는 점을 한 가지 말하게 했습니다. 그때 어떤 자녀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런 말 표현을 잘 못했습니다. 그래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얼마나 가족들을 사랑하는지를 알 텐데 왜 굳이 저렇게 말하라고 할까 속으로 불평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철들고 나서야 그것이 축복을 맡겨두는 법을 가르친 어머님의 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칭찬에 인색하지 마십시오. 상대의 장점을 생각만 하지 말고 되도록 말로 표현해서 그가 알게 하십시오. 생각만 하면 남에게 축복이 되지 못합니다. 사랑은 표현될 때까지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수시로 축복의 말을 해주십시오. 쑥스러우면 문자메시지나 메일로 표현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은혜가 됩니다. 당신은 제게 의미 있는 존재입니다. 당신의 신실함, 유머감각, 그리고 사려 깊은 성품이 항상 깊은 감동을 줍니다.” 그런 말들이 상대에게는 축복의 보물쪽지가 됩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더 격려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전보다 훨씬 부정적인 말들이 많이 돌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을 보십시오. 얼굴을 드러내고 말하면 부끄러워서 도저히 하지 못할 말들도 서슴없이 비겁하게 숨어서 해댑니다. 이런 때에 가족과 친구와 동료들에게 얼마나 그들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느끼게 해주십시오. “집사님! 재미있어서 언제나 즐거워요. 고난 중에도 기뻐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삶에 늘 감동을 받아요.”
상처를 주는 말의 홍수에 빠져 익사되지 않도록 부정적이고 낙심시키는 말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해주십시오. 증오하고 질투하는 사람들과는 논쟁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이해하려고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끌어내리려고 논쟁하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좀 더 논의하면서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십시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거룩한 비전을 따라 소수의 길을 가거든 칭찬하는 말과 격려하는 행동으로 기쁘게 그의 동행자 및 동역자가 되어주십시오. 그처럼 영혼의 보물쪽지처럼 칭찬하는 말과 격려하는 행동을 많이 건네주며 축복을 맡겨두면 언젠가는 그 축복을 찾아 쓰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항상 더 책임지고, 더 섬겨주고, 더 나눠주는 삶을 통해 더 많은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받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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