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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39: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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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
존재의 기쁨(1)
본문/ 시139:1-18, 요16:21
1. 들어가는 이야기
내가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 시각이 2013년 1월 1일 12시 35분입니다. 밖에는 지난 주 내린 눈 위에 雪上加雪(설상가설)로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있습니다. 폭설입니다. 풍광이 참 아름답습니다. “산촌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묻쳤세라, 사립문 여지 마라 날 찾으리 뉘 있으랴, 한 밤 중 一片明月(일편명월)이, 내 벗인가 하노라” 라고 한 신흠의 시조 그대로입니다. 이 멋있는 경치를 바라보며 나는 하나님께 참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왜? 내가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이 놀랍고 황홀한 설경을 보면서 “아하, 멋찐 거!” 라고 감동-감격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존재는 기쁨이며 신비입니다.
2. 존재는 기쁨입니다
*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139:13-18). *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요16:21).
이처럼 성경은 기본적으로 모든 존재의 태어남을 “기쁨”이라고 하십니다. 우리 기독교의 존재에 대한 정통적-역사적 입장은 “존재로서의 존재는 선하다(esse qua esse bonum est)”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 지 난 알 수 없도다” 하는 찬송가 310장의 내용을 신화학자 죠셉 켐벨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원래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자기 좋을 대로 마음에 드는 대로 의미를 부여한 것 뿐이다. 그 의미란 무엇이든 갖다 붙이면 모두 그럴듯한 의미가 된다. 인생의 참 의미는 오직 存在(존재-생생하게 살아 있음) 바로 그것 뿐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인생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느끼고 꼭 해야 할 일-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마치 놀이하듯 재미있게 유쾌하게 신나게 하라.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대는 지옥에서 사는 것이다.왜냐하면 지옥이란 말라붙은 삶이기 때문이다.” 즉, 존재의 의미는 하나님께만 있고 그 분 안에서만 존재의 의미-존재의 참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참고 : 죠셉 캠벨,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22쪽).
3. 존재의 기쁨이란 무엇인가?
첫째. 나는 지난 주말부터 오늘까지 내리는 폭설로 정배리 집안에 옴짝달싹 못하고 벌써 3일째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너무 좋습니다. 오가는 차도 없고-사람도 없고-가끔 까막-까치-길 잃은 산새가 한적함을 더 하는 텅 빈 하얀 공간 속에 홀로 앉아 말씀의 샘물을 쓰는 이 시간이 너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존재하게 하지 않으셨다면 이런 기쁨은 그야말로 없을 無(무) 아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에게 육감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보는 기쁨(웅장한 경치-기이한 물건-아름다운 모양-신기한 현상 등), 듣는 기쁨(새 소리-바람 소리-파도 소리-음악 등), 냄새 맡는 기쁨(낙엽 태우는 냄새-향수-커피 향-애기 냄새 등), 맛 보는 기쁨(음식-음료 등), 감촉하는 기쁨(비단의 감촉-사랑하는 사람의 스킨 쉽-좋은 친구의 굳센 손길 등), 육감의 기쁨(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날아 갈 듯한 상쾌한 기분 등), 이 모두가 존재가 없으면 누릴 수 없는 기쁨입니다.
우리 삶에서 이런 육감이 주는 기쁨이 없었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삭막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이 좋은 육감을 주시고 이 육감을 통하여 기쁨을 누리고 맛보도록 하셨으니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둘째.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왼쪽 어금니에 금으로 씌웠던 크라운 덮개가 입안에서 툭! 떨어져 내렸습니다. 이크! 이건 또 뭐야?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래 받치던 이가 삭아서 크라운이 굴러 내린 것입니다. 잠시 당황하였으나 이 또한 존재의 기쁨입니다. 전도서에 기록된 대로 존재는 그러하다는 것을 깨우치는 예고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가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窓)들로 내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願慾)이 그 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전12:1-5)
“맷돌질 하는 자가 적어진다” 즉, 음식을 맷돌질하는 어금니가 빠져 적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존재는 필경 쇠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돌아 갈 준비를 하라는 예고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존재의 기쁨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生老病死(생로병사)는 극복해야 할 苦(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존재 특히 우리 사람에게 주신 기쁨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아니 그러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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