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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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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08-12-03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은혜에 매여>
사도행전 20장 22절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Ⅰ.본문해설
우리는 인생에 찾아오는 고통을 흔히 하나님께 불순종했기에 생겨난 것으로 생각한다. 고통이 실제로 우리의 죄악의 결과인 경우도 많이 있지만, 이것을 모든 경우에 적용시킬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생각과 뜻을 인간 이해를 초월해서 펼치시기 때문이다. 오늘 성경은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 복음을 전하러 가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큰 환란이 있을 것을 성령님께서 증거해 주셨고 사도 바울도 알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즉 자신의 사명에 온전히 순종한 삶의 결과가 바로 고통과 핍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고통이 불순종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어린 신자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신앙이 깊어지면 고통 가운데서 주님의 주권과 뜻을 생각하며 그 뜻에 순종할 수 있게 된다. 항구 도시인 밀레도에서 사도 바울은 배를 타고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불러 소회를 한 장면이다.
Ⅱ. “무슨 일을 만날는지”
여기서 사도는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고별사를 한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지만 꼭 승리할 것이다”라고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한다고 힘없이 이야기 하고 있다. 바울은 병든 사람을 고치고 죽은 사람도 살리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자였지만, 이 시점에서 그의 모습은 마치 능력이 없는 자 같아 보인다. 위대한 능력을 지닌 사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환란과 결박 앞에서 아무 항거도 하지 않은 채 그 고난을 감당할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A. 예수님의 성육신
이러한 신자의 삶의 이중성은 사실 예수님을 통해 예견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의 능력을 지니시기도 하였지만, 고난을 당할 때 그의 모습은 완전히 인간의 모습이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셨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람으로서 사람의 연약함을 지니신 분이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체휼하며 사랑하시기 위해 친히 그 고통을 담당하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셨다.
신자인 우리도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지만 또한 고난 앞에서 순종해야 하는 삶을 함께 경험하게 하신다. 은혜 안에서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는 자들은 매우 강하다. 이것은 충만한 믿음으로, 강한 은혜로, 강한 확신으로, 흔들리지 않는 꿋꿋함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꿋꿋함은 어려움이 와도 낙심하지 않는다. 그 자리의 소망은 처음부터 사람들의 인정이 아니었기에,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이 그 자리에 심으신 이유를 생각하며 견고히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도는 이러한 은혜의 능력 가운데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절실히 느끼며 살아가게 되어 있다.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고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을 때, 하나님은 또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자인지를 보게 해 주신다.
B. 사도바울의 연약함
본문의 사도의 모습도 이와 같다. 바울은 큰 은혜를 받은 자이지만, 환난 앞에서 두려울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됨으로 자신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보게 될 때 이를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가 약해진다고 할 때 은혜 안에서 약해지는 것과 은혜 밖에서 약해지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은혜 밖에서 약한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걱정하며 수를 쓰고 오히려 불신앙으로 반응하며 믿음을 져버린다. 반면 은혜 안에서 약한 자는 더 주님을 의지하며 은혜의 소중한 가치를 절실히 느낀다. 이럴 때 그의 기도는 더욱 간절하고 진실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약한 가운데 강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두 가지를 함께 지니고 산 사람이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에게 은혜를 많이 받고 큰 능력을 지닌 자였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큰 어려움을 많이 겪은 사람이었다. 사도가 경험했던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은 복음의 혁혁한 능력 가운데 경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 속에서 경험한 것이었다. 사도는 평생 당해온 것이 고난과 시련의 길이었는데, 또 다시 그의 앞에는 큰 환란과 시련의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마음에서 그 고난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텐데도, 오히려 사도는 심령으로 그 길을 가고자 하였다.
III. “심령에 매여”
그러면 무엇이 사도를 예루살렘으로 가게 하였을까? 그가 그 길을 다시 간 이유는 바로 “심령의 매임을 받은 것” 때문이었다. 여기서 매임이라는 것은 “강제”의 의미이다. 사도가 이 말을 했을 때에 그는 그 시대에 노예의 팔려감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그린 노예가 팔려가는 광경은 노예 무리가 끈에 묶인 채 한 사람 한 사람씩 앞 사람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도는 본인이 이러한 묶임에 묶여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사도를 묶어 강제로 끌고 간 사람은 없었다. 예수님도 그에게 협박하며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하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협박을 받은 사람보다 더 큰 이끌림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야 할 강제력을 느꼈다. 이 강제력이 바로 은혜의 힘이다.
Ⅲ. 맺는말
은혜는 그 자체가 이미 소명을 포함하고 있다. 한 예로 큰 봉변을 당한 자는 자신을 어려움에서 구원한 자에 대해 무한한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예수님께 대해 우리가 느끼는 은혜의 감정도 바로 이와 같다. 보답할 수 없는 은혜를 경험하면서 앞으로의 인생을 주님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강한 강제력이 바로 사도 바울이 느꼈던 감정이었다. 주님이 한 번도 그렇게 하라고 하신 적이 없어도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마음... 이것이 은혜 받은 성도의 마음이다. 교회의 역사는 이렇게 은혜에 강하게 매인 자들의 고난의 역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은혜 받지 못한 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은혜 받은 자들은 담대히 행할 수 있었다. 우리 안에 이 은혜의 강한 매임이 있도록 기도하자. 은혜의 강함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주님이 원하시는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말이다. 200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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