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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의 역사와 에스더

에스더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164 추천 수 0 2013.03.09 2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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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에1:1-12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2.5.24 주일설교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유방의 역사>와 에스더
에스더1:1-12

마릴린 앨롬 이라는 스탠퍼드대학의 여성학자가 <유방의 역사>라는 책을 썼습니다. 여자들의 젖가슴 말입니다.

그녀에 의하면 ‘유방’즉 ‘가슴’이라는 말은 문화사적 개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개념이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서 여자들의 체형이 변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여자들의 가슴은 사회적인 역할에 따라 달라졌다는 겁니다. 모성이 강조되던 시대는 조건 없이 젖가슴이 풍만해지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많아질수록 젖가슴이 작아 졌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여성들의 몸이 삐쩍 마르고 가슴도 거의 없는 여자가 이상적인 여자처럼 여겨지는 것은 여성의 사회진출과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 모델들을 보면 가슴도 엉덩이도 없는 홀쭉한 소년의 몸입니다. 이런 여자의 몸이 등장하게 된 것은 남성과 경쟁하기 위해서라는 거죠. 남자처럼 우람해질 수는 없고, 그래도 남자들 가까운 몸이 소년의 몸이기 때문에 모델들의 몸은 소년과 같아 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서 여성들은 사회적인 활동, 모성 그리고 에로틱한 매력까지 가져야만 경쟁에서 살아남게 되었답니다. 3중의 사회적인 요구가 여인들에게 들이 닥친 것이죠. 그러다 보니 가슴은 크고, 엉덩이는 소년처럼 날렵해져야 하는 기형적인 몸매가 요구되어졌다는 겁니다. 소위 S라인 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가슴은 크고 허리는 잘록하고 다시 엉덩이는 볼륨 있어야 하는 뭐 그런 거 말입니다.

왜 오늘 설교를 ‘여자들의 젖가슴에 대한 문화사적 이해’로 시작을 하느냐? 그것은 어떤 인간존재든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역사적, 문화사적 개념 속에서 이해되고 해석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유관순을 알려면 그녀가 살았던 그 시대의 역사적 이해를 따라가야 그녀를 바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나혜석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여성을 알려면 그녀가 지녔던 문화적인 개념을 알지 않고서는 바르게 알 수 없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서에 등장하는 에스더에 대해서도 이런 바탕에서부터 해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득불 마릴린 앨롬의 <유방의 역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구약 성서에는 두 명의 여인이 책의 제목으로 등장합니다. 한 여인은 ‘룻’이고 다른 여인이 오늘 우리가 읽고자 하는 에스더입니다. 사실 이 룻과 에스더는 줄거리가 간명해서 대충 읽어도 통속적인 재미도 있고, 구성도 좋습니다. 그래서 여선교회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단골 본문으로 등장하곤 합니다.

에스더서는 본시 성경 66권속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어떤 견해로는 서기 400년 쯤 되던 때에 성경에 들어왔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의 엘리트들 사이에 에스더는 중요한 책으로 취급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에스더 이야기는 널리 사랑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기원전 166-167년 어간에 발생한 민족해방을 위한 봉기의 시기에 집중적으로 읽혔습니다. 로마의 압제를 받고 있던 이들은 늘 해방을 꿈꿨습니다. 그 때 우리나라의 안창호 같은 민족 해방 열사인 마카비가 등장하면서 이스라엘 유대민족은 부림절(2월14-15/하만의 이야기, 페르시아 시대 때 학살을 모면하고 반대로 그들을 학살했던 사건을 기념하는)이라는 절기를 대대적으로 지켰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페르시아 시대에 학살로부터 살아남은 것을 을 기리는 축제였습니다. 그들은 그 축제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 했었고, 그와 맞물려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민중의 교과서로 에스더서가 읽혀졌던 것입니다. 민족의 해방을 위한 일반 대중들의 필독서가 에스더였다면, 우리는 에스더서를 읽기 위한 기본적인 자료 하나를 챙기게 되는 셈입니다.

에스더서의 중요한 소재는 ‘성性’입니다. 여성다움 말입니다. 그것은 와스디라 불리는 왕후의 폐위사건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거국적인 축제가 벌어졌던 모양입니다. 수많은 관료들과 봉건 제후들이 속속 궁중으로 모여듭니다. 연일 계속되던 축제의 마지막 날에 왕은 거나하게 취해서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주도해 갑니다. 그것은 축제의 마지막 날 왕후가 벌거벗은 채로 왕비의 관만 쓰고 신하들 앞에 자랑거리로 나서는 일이었습니다. 왕은 왕후의 여성다움을 신하들에게 적나라하게 자랑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와스디 왕후는 이를 거절합니다.

축제를 망치고, 왕의 위신을 떨어뜨렸으며, 왕실의 관습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었습니다. 왕은 크게 노했고, 이후의 일들을 신하들과 상의합니다. 회의는 여성들이 지아비의 명을 거스르는 것을 금지시키는 법령을 반포하는 것으로 확대됩니다. 여자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만이 여자다운 것이라는, 성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와스디가 폐위 당하고 난 후, 후임 왕후에 대한 간택 캠페인이 벌어집니다. 제국 각처에서 선택된 여인들이-요즘으로 치면 미스 선발대회 마냥-궁중으로 들여 보내집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1년 동안 합숙 훈련을 합니다. 여인다운 예절, 남자를 다루는 법, 그리고 왕이 좋아하는 체형을 위한 성형 수술 등이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이른바 여성 만들기 프로젝트,‘일명 ’몸치장‘이었습니다. 미스코리아 나가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 이때도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더는 양부인 모르드개의 언질에 따라 몸치장 프로젝트에 엄청난 돈과 정성을 쏟아 부었을 것입니다. 학력이나, 출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몸 하나만 조건에 맞으면, 왕의 마음에 맞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외모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여하튼, 에스더 속에서 등장하는 여성은 오로지 남성 즉, 지아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성은 남성을 위한 필요도구이다’이런 결론이 에스더의 이야기 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치장을 했던지 에스더는 즉각 채홍사(왕의 부인을 간택을 책임진 공무원)의 눈에 띕니다. 2:9에 보니까 에스더는 그 즉시 7명의 시녀가 각 전문성을 따라 배치되었습니다. 에스더의 몸치장을 위한 최고급 전문가 집단이었습니다. 왕의 앞으로 나아가기 이전에 이미 에스더는 이런 특별 배려를 받게 된 것입니다. 자, 이제 에스더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의 몸도 마음도 이젠 그의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몸을 어떻게 잘 보일 수 있느냐 하는 것만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왕의 눈에 들어 하루라도 동침을 하지 않는다면 그의 인생은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15에 보니까 에스더는 왕의 앞으로 나아갈 때 전문가의 조언만 따랐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 어디에도 에스더 개인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오직 몸치장에만 골몰하는, 그래야만 하는 가련한 인생만 보입니다. 에스더는 사라지고 전문가의 능력만 서술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결정적인 비결은 그의 인간스러운 품격 때문이 아니고 오로지 몸, 성적 정체성이 작용되었을 뿐입니다.

여기까지가 에스더를 읽을 때 우리가 얻게 되는 두 번째 정보입니다. 그런데 하만의 등장으로 갑자기 성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양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문지기고 하만은 고위 관료입니다. 하만은 아마도 왕보다도 더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만은 제국 전체에 퍼져 있는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 정책을 시행합니다. 그리고 제비뽑기를 통해 유대인을 처형할 날짜도 정해집니다. 모르드개는 이 민족적인 위기 앞에 안절부절 하고 있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내시 하닥을 통해 벌어지는 일들을 의논합니다.

에스더는 잔치를 베풀고, 거기에 왕과 하만을 잔치에 초대합니다. 그런 와중에 왕은 모르드개가 지난 날 반역의 무리들을 고발했던 문서를 읽게 됩니다. 왕은 새삼 모르드개에게 어떤 보답을 할까 생각하다가 하만에게 묻습니다. 하만은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어의와 말을 내려서 시내를 돌게 하는 게 좋겠다고 대답합니다. 일종의 카퍼레이드를 벌여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로서는 그런 대접을 받는 이가 왕의 다음 서열이라는 암묵적인 선포가 포함된 것이었습니다. 하만이 노린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므로드개라는 사실을 알게 된 하만은 기절초풍하고 맙니다.

바로 그 순간, 에스더는 왕후살해 음모를 왕에게 고해바칩니다. 하만은 졸지에 왕후를 죽이려는 살인미수범으로 몰립니다. 그때까지 하만은 에스더가 유대인인지 몰랐습니다. 하만은 왕후에게 달려가 한 번만 살려 달라고 치맛자락을 붙잡고 하소연 합니다. 그런데 이 장면이 왕의 눈에 띄었습니다. 왕은 하만이 왕후를 겁탈하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만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하만은 유대인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고 했던 처형대에 달려 죽습니다.  

에스더의 이야기를 바르게 해줄 세 번째 정보는 무엇일까요? 민족적이고도 국가적인 위기의 상황에서도 에스더는 그녀가 지닌 성, 다시 말하면 여성성을 십분 발휘하여 위기를 탈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왕으로 하여금 모르드개의 지난 문서를 읽도록 한 매개물도 여성성을 이용한 축제입니다. 하만으로 하여금 왕후를 겁탈하려고 한다는 왕의 오해를 불러오게 한 것도 에스더라는 여자가 지닌 여성성입니다. 요컨대 에스더는 문제의 해결 방식을 위해 자신의 성을 지혜롭게 사용했다는 걸 성서가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게 에스더서의 주된 가르침일까요? 아닙니다.

그 다음 이야기를 읽어야 합니다. 유대인을 죽이려던 하만이 죽고, 권력의 2인자로 등장하는 모르드개는 유대인을 죽이려던 그 날에 유대인을 죽이려했던 그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합니다. 무려 7만 5천명이 살해되었습니다. 하만의 아들 열 명도 죽었습니다. 죽을 위기에서 되살아난 유대인들은 흥에 겨워 이 축제를 한 달 동안 하게 됩니다. 그게 부림절 축제입니다. 성서의 기록자는 에스더서를 결말짓기를, 에스더라는 왕후의 치적을 기록하지 않고 모르드개가 왕의 위대한 대신이 되어 유대인들의 기억에 길이 남았다고 씁니다. 마치, 윤봉길 의사가 이등박문을 향해 도시락 폭탄 던진 이야기를 들으며 민족자긍심을 돋구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걸 훗날 마카비 시대의 민족주의자들이 부림절이라는 축제를 열며 읽고 또 읽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에스더서를 읽으며 유대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켰습니다. 에스더서를 성서에 포함했던 종교엘리트들은 바로 이것을 염두에 두었을 거라는 겁니다. 여성성을 한껏 발휘하여 애 낳고, 남편 섬기고, 부부생활 하는 데만 쓰지 않고, 민족을 위해 ‘성’을 바쳤던 한 인간 에스더를 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민족주의입니다. 남자를 위해 가꾸고 다듬고, 성을 위해 성 에너지를 낭비하는 몸뚱이로 살지 말고, 민족을 위해 가치있는 삶을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몸’을 민족을 위해 바치라는 것입니다. 여성다움을 넘어서서 유대인다움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던 마카베오 혁명군의 입장에선 한 낱 부녀자라해도 ‘성적인 존재’로만 살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유대인의 가정에서 키우는 강아지까지라도 유대 민족의 해방을 위해 일해야 했던 때였습니다. 모든 여성은 유관순 열사와 같은, 윤희순 여사와 같은 민족해방운동가가 되어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모델이 바로 에스더였던 것입니다. 몸뚱이 하나로 팔자를 고친 여자지만, 결국은 민족을 위해 그 한 몸을 장렬하게 바칠 각오와 결심을 했던, 그리고 그 결과로 민족을 위기에서 구해냈던 장한 여성을 유대민족 앞에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모든 여자들도 ‘성’을 자기의 제1 정체성으로 삼기는 하지만, 때때로 민족을 위해 그 성을 포기하고 살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니면 여성성을 포기하고 민족성으로만 살아야 된다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그 반대로 오로지 몸뚱이로만 인생을 살아야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한 인간은 그를 둘러싼 현실적인 여건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자기의 주체성’을 오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구요? 히틀러 밑에서 나찌에 부역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궁금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답이 바로 에스더서에 있는 것입니다.

허구적인 주체를 만들어 내는 장치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속아서 모든 광신적인 집단행동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하만이 할 만행을 모르드개가 눈 깜짝하지 않고 실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카비시대의 유대인들은 민족주의 앞에서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을 집단 이데올로기로 하는 북한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늘도 역사와, 종교적인 현실 속에서 얼마든지 허구적인 주체가 설정될 수 있고, 그것에 속아서 자기를 잃어버릴 수 있으니 ‘에스더’서 속에서 그걸 읽어내고 현실의 지침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신없이 ‘죽으면 죽으리다’하고 덤벼들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건 믿음도 아니고, 역사적인 책임도 아니고, 개체적인 결단도 아닌, 허구적인 주체에 놀아난 광신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이 광신적인 집단 허구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다’하고 뛰어들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양 하는 현실을 똑바로 보고 속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에스더서’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을 한 마디로 하라면, ‘허구적인 장치와 선동에 속지 말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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