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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의 ‘삐딱이들’ 1 -주의 사랑한 제자

요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667 추천 수 0 2013.03.09 2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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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1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2.6.21 주일설교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초기 기독교의 ‘삐딱이들’ 1
요1:1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뜻을 지난 주일에 전하는 중에, 요한공동체는 초기기독교의 여러 공동체(마태, 마가, 누구)가운데 아주 독특한 공동체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더 쉽게 말씀드려서, 요한복음과 요한서들은 다른 복음서와는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드리면서, 이미 요한복음에 대한 설교를 했기 때문에 교우들이 알고 계시다는 전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일 오후에 설교 모니터링을 하면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정말 내가 교우들에게 요한복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전해 드렸던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있는 모든 자료들을 찾느라 한 주일 내내 써야 했습니다. 결국, 하지도 않고 한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금년 초부터 6월까지는 구약성서를 통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주일과 수요일 시간을 썼습니다. 아직 수요일 강좌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구약의 흐름은 ‘야훼 평등주의’입니다. 이것에 대한 갈등과 희망이 이스라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 연장선에 예수의 탄생과 삶과 죽음이 있으므로, 구약성서를 이어간다는 의미에서 예수이야기를 후반기 설교 주제로 삼으려고 합니다. 여러 복음서에 주제가 ‘예수’이지만 우리는 요한복음에서만 예수의 본래 모습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질 설교의 제목은  [초기 기독교의 ‘삐딱이들’] 1,2,3 으로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당시 유대사회 입장으로 볼 때는 아웃사이더 종파, 즉 새로운 종교 집단의 출현이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그리스도교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이스라엘에는 유대교가 이미 제도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잘 조직된 종파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와 비스무래 한, 또는 조금은 다른 것 같은 그리스도교가 유대교 흉내를 내면서 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때입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마치 유대교 공동체처럼 조직되어가고, 유대교 공동체를 뛰어넘는 ‘역사의 승자’가 되기를 꿈꾸던 그 때 요한공동체가 등장을 합니다. 그냥 등장을 하는 게 아니라, 먼저 조직된 그리스도교 공동체인 마태나, 마가, 누가 공동체의 신앙 양태를 비판하면서 말입니다. 그들은 점점 유대교 같은 종교 조직을 만들면서 유대교를 넘어서는‘종교의 승리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걸 비판하는 공동체가 요한복음 공동체였던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마가, 마태, 누가 복음보다 늦은 서기 100-110년경에 기록이 되게 된 것입니다. 사복음서 중에 가장 늦게 기록된 복음서인 이유가 그것입니다.

당시 마태나 마가, 누가 공동체는 이미 예수를 관념화, 교권화, 교리화 하고 있었습니다. 즉,  틀을 모두 갖추고 종교 비즈니스를 할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공동체로서는 그게 마땅치 않게 여겨 진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비판하고 도전하는 신학해석을 시도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요한복음 공동체는 마태나 마가, 누가 공동체가 그리스도교를 종교화하는 것을 삐딱하게 생각하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들을 초기 기독교의 ‘삐딱이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즘의 정치 사회적인 성향으로 말하자면,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요한공동체는 좌파 기독교 였던 것입니다.  

‘다빈치 코드’라는, 댄 브라운의 소설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인 ‘최후의 만찬’에 감추어진 작가의 의도를 상상해낸 소설이기도 합니다. 댄 브라운은 이 그림이 13명의 남자, 즉 예수와 그의 제자 12명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 12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를 그렸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림에서 예수님의 오른쪽에 삐딱하게 머리를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있는 이 사람이(그림을 보여 줄 것)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것이고, 그녀의 이름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것입니다.  

댄 브라운은 조금 더 나아가서, 이 그림속의 여자가 요한복음에 나오는 ‘주가 사랑한 제자’라는 것입니다. ‘주가 사랑한 제자’라는 표현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고 오직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표현입니다. 성서를 읽는 이들은 그가 당연히 남자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주가 사랑하는 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큰데도 불구하고 전혀 그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요한공동체의 최고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름을 모를 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게 공동체에 유익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을까요? 그런 여러 정황상 댄 브라운의 상상력, 한 명의 여자가 그림 속에 들어 있는데 그녀의 이름은 ‘막달라 마리아’이고, 그녀는 요한 공동체의 중요한 종교적인 지도자였을 거라는 짐작입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 공동체는 ‘막달라 마리아’와 연관이 있는 신앙 공동체인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주류는 사도계 그리스도운동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신앙 공동체의 중심이 된 운동이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 주류 공동체의 핵심 인물들은 모두 남자 그 중에 예수님의 형제들이거나, 제자들이었습니다. 주류 에서는 여성을 교회의 지도자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혐오하게 만들기까지 했습니다(딤전2:9-14).

그런데 서기 170년 경 에 소아시아의 중부지역인 프리기아에서 평민들에 의해 주도된 몬타누스 운동이라는 게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당연히 비주류 기독교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열광적이었고, 단순했고, 요한복음서를 적극 수용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몬타누스 신앙 공동체에서는 ‘프리스카’와 ‘막시밀라’라는 두 명의 여성을 예수님의 제자에 버금가는 신앙 후계자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몬타누스 신앙 운동이 일어나던 그 때 주류계 기독교 신앙공동체는 이미 종교화 교리화 교권화가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종말론이 쇠퇴해 있었습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주류계 역시 임박한 종말론을 근거로 하고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종교가 터를 잡게 되면서 종말 신앙이 약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몬타누스 신앙공동체는 여전히 종말론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몬타누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사회적인 약자이며 궁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몬타누스 신앙공동체는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4세기 후반에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탄압을 받을수록 더욱 강력하게 묵시사상으로 무장하고 단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 집단에서 요한복음이 아주 중요한 텍스트로 활용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서에 등장하는 ‘빛과 그림자’로 양분된 이분법적 사고가 그들의 세상이해를 돕고 있었습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세상은 그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것을 부정하고, 억압하고, 학대하고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들은 여기서 ‘어둠’을 상징하는,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이미 교리화가 되어버린 여타의 신앙 공동체를 포함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태, 마가, 누가 공동체 같은 초기 기독교 주류 공동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주류 기독교와는 반대로 여성의 위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에는 대부분 여자들이 그 주인공으로 등장을 합니다.

자, 이게 사실지 아닌지는 여기서 사고를 정지하겠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요한복음이 이렇게 성 해방적이고, 기존 질서에 비판적인 성경으로 수용되었다는 것이며, 이렇게 주류(사도계 그리스도교)에 의해 일찍부터 불온한 신앙 집단으로 지목된 신앙집단이 이 요한복음을 주 교재로 선택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주류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요한복음을 거부감을 가지고 들춰보지 않았죠.

그러다가 서기 200년 경 이레네우스라는 지도자로부터입니다. 그는 폴리갑이라는 서머나 교회의 감독에게 들었고 하면서, 주의 제자 요한이 에베소에서 요한복음을 쓰고, 이어서 요한1서, 2서, 요한계시록을 썼다고 진술하면서부터 주류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텍스트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의 말로는 ‘주의 사랑한 제자’가 바로  야고보의 형제 ‘제자 요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난데없이 폴리갑이 나타나 ‘삐딱하게 여기던’요한복음을 주류계로 가져 오긴 했지만, 여긴 요한공동체의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열광적으로 종말론사상을 신앙의 요체로 여기던 요한공동체는 좌파와 우파로 분열이 됩니다. 좌파는 영지주의적 묵시운동과 연결이 되고, 우파는 사도계 주류 그리스도교와 친해진 것입니다. 바로 이 후자, 주류 계열의 그리스도교 운동으로 기울어진 이들이 요한 서신을 기록하는데, 이 서신들은 요한복음의 삐딱한 사상과 그리스도계의 온건 보수적인 사상을 적절하게 연결하는 그런 방식으로 집필이 된 것입니다. 즉 요한공동체 구성원들은 요한서신을 통해 사도계 그리스도교와 연계할 수 있고, 사도계 그리스도교는 요한복음서의 불온함 또는 불온한 이해를 떨쳐 버릴 가능성을 요한서신에서 찾은 것입니다. 주류 그리스도교는 서신서를 통해 요한복음을 해석함으로 그 불편함을 해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폴리갑이야기가 만들어진 비하인드 스토리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요한복음이 기독교 주류에 끼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요한공동체의 분리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요한복음은 4권의 복음서 중에서 가장 빛나는 경전이 되었습니다. 삐딱한 책이 ‘삐딱하게 돌아가는 종교와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게 하는 아주 중요한 텍스트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종말론적 입지가 분명합니다. ‘실현된 종말론’혹은 ‘실현되어 가는 종말론’으로 이해되어 있어서, 종말론에 있어 어정쩡하지 않습니다.

이제 서서히 아시게 되겠지만, 요한복음은 ‘오늘을 살고 있는 신앙인들의 꽃’입니다. 과거에는 불편한 책이었지만, 이제는 가장 중요하고 빛나는, 현대화된 시대에 바르게 예수와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는 중요 텍스트입니다.

여러분을 그 빛나는 복음의 꽃밭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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