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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의 유익

로마서 이상호 목사............... 조회 수 1974 추천 수 0 2013.03.10 22: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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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5:1-11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환난의 유익 
롬 5:1-11                                             

2006. 7. 23, 오전

오늘 본문의 주제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입니다. 1, 2, 7-11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사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죄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 복음의 내용이며 요약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태풍과 홍수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본문 3-4절을 통하여 환난의 유익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징검다리를 아시죠? 우리에게는 징검다리를 건넜던 추억들을 거의 다 갖고 계실 것입니다. 징검다리를 잘못 짚었다가는 돌이 흔들려서 넘어져 물에 빠진 경험을 하신 분도 있을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징검다리와 같습니다. 예수님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본문 2절 말씀에 보면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딛고 서 있습니다. 사람이 땅을 딛고 서 있는 것처럼, 개울을 건널 때, 징검다리를 딛고 건너는 것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딛고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징검다리를 딛고서 세상이란 개울을 건너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딛고 서 있는 성도의 특징에 대해서 본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기뻐합니다. 그뿐 아니라,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합니다.
3절에“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 많은 좋은 유익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세상을 살면서 환난을 당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딛고 서 있기만 하면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환난이란 단순히 인간이 이 세상에서 겪는 아픔이나 고통, 두려움, 좌절, 박탈, 실망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환난의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시18편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사망의 줄, 사망의 올무, 죽음의 창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 염세주의자들은 환난에 대해 불평하면서 인생을 비관합니다. 스토아 철학자들과 같은 낙관주의자들은 ‘참자! 참고 참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야!’ 하면서 막연히 지금의 환난이 좋은 날로 바뀌기를 기대합니다. 성경은 환난 가운데서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도가 환난을 당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환난은 성령의 열매 중의 하나인 오래참음(인내)의 열매를 맺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환난없이 인내를 배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환난이 없다면 참을 어떤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내하는 것을 배우는 것도 환난이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성령의 열매가운데에는 ‘오래참음’의 열매가 있습니다. 이것은 바꾸어 말해서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생활가운데에도 오래 참아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그 누구보다도 성령충만을 받고 난 이후 많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 낚는 어부’라는 말씀 속에는 이미 환난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잡을 수 있는 고기는 항상 물결이 잔잔한 어항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고, 때때로 태풍과 해일로 배와 사람을 삼키기도 하는 바다에 있습니다. 하물며 고기를 잡는 바다에도 환난이 있거늘 사람을 낚는 세상에야 그 얼마나 많은 태풍이 불어 환난을 겪겠습니까?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고 하심으로 베드로가 사람낚는 어부로 살아가면서 겪게 될 환난의 태풍을 예고하셨습니다.
성도도 이와 같습니다.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듯이 성도는 하늘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의 고난을 마나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많은 고난을 겪으면 마침내 성령의 열매인 오래참음, 즉 인내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때야 비로소 참 성도가 되는 것이죠.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야이심을 보여 주신 사건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서 비로소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구세주가 되신 겁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대단한 환난이 아닙니까?

그것이 엄청난 환난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산기도, 철야기도를 하셨던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기를 ‘주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환난의 잔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잔을 기꺼이 마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산기도, 철야기도를 하신 후 얻은 예수님의 결론입니다.

하늘을 힘있게 나르는 독수리가 하늘을 나르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장애물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공기입니다. 그러나 공기가 방해가 된다고 제거해 버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습니까? 독수리는 더 이상 한 뼘도 날아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환난을 여러분의 행복한 인생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환난에 대해 불평하십니까? 환난은 결코 인생의 장애물의 아니라, 성도로서의 내 인생을 영적으로 비상할 수 있게 해 주는 조건을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잔은 불평, 불만의 장애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진정한 메시야로 증명해 주는 조건을 제공한 것이었습니다. 내 인생이 아름다운 무지개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내 인생 가운데 비오는 것을 감수하셔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의 잔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그 환난의 잔으로 인하여 기뻐하십시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난은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열매인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2. 환난 가운데 기뻐할 수 있는 이유 중의 또 하나는, 환난은 영적 성숙(연단)을 가져오는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내는 연단을” 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연단이란 ‘성숙’이란 단어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환난의 경험을 많이 겪는 것은 그만큼 신앙적으로 ‘성숙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결국 연단이란 말은 성도의 성숙을 의미합니다. 결국 믿음의 길을 걸어가다가 당하는 여러 가지 환난을 고통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또는 마지못해 참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환난가운데서 즐거워하면 이것은 성도를 더욱 한 차원 높은 성숙의 단계로 이끌어 갑니다.
바울이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 경험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웬만한 환난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입니다. 큰 일을 많이 당한 사람은 작은 일을 당할 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나 집안에서 대사를 치를 때, 일을 많이 해 본 사람은 일이 눈에 보이고 척척 잘해 갑니다. 왜 그렇게 잘합니까? 일을 많이 경험하면서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노하우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일을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였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생활도 그렇습니다. 믿음생활하면서 큰 환난, 작은 어려움을 잘 참으면서 겪은 사람들은 신앙의 힘이 생기고 노하우가 생깁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붙들어야 되는지 압니다. 그렇게 연단을 받다보면 신앙의 거품이 다 빠집니다. 불순물들이 다 제거되고 순수하고 진실한 모습만 남습니다. 믿는 척 하는 것이 빠집니다. 외식하는 거품이 빠집니다. 교만하던 불순물이 제거됩니다. 모세의 광야 40년이 바로 그의 그릇된 신앙의 거품을 제거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다윗의 광야 생활이 신앙의 불순물들을 제거해 주었습니다. 욥의 환난과 인내와 연단이 그의 신앙의 거품과 불순물을 빠지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고백했습니다. 모세도 다윗도 욥도 환난을 통하여 성숙하여 졌습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성숙하였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래 참느냐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오래 참으셨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사실 사도바울이 바울이 되기 이전 사울 시절에, 행한 대로 심판을 받았다면 사울은 바울이 되기 이전에 벌써 죽었었어야만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행동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참으셨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1:16)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그만큼 참으셨기에 바울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만큼 참으셨기에 오늘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음을 경험한 바울은 그래서 그의 생애 마지막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특별히 인내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딤후2:10)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딤후2:12)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딤후4:2절 말씀에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참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내는 무엇보다도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인내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샌더스는 말하기를 “세상을 정복한 사람들은 세상을 정복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정복한 사람들이다”라고 했습니다. 남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이기는 것은 그보다 더욱 쉽지 아니한 일입니다.
성도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 최대의 승리는 나를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나, 절망하는 나, 쉽게 분노의 감정을 일으키는 나, 쉽게 포기하고 싶어하는 나를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그러므로 잘 인내하는 사람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내는 성숙한 영성의 표시입니다. 그 성도가 얼마나 성숙한 사람인가?는 그가 얼마나 인내하는가?로 가름할 수 있습니다. 인내를 이룬 사람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영적 성숙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고 했습니다. 깊은 영적 성숙의 세계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인내는 필수과목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여러분, 환난가운데 계십니까? 인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인내를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인내가 우리들의 거룩한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취미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인내를 생각하며 참았더니 깊은 영적 성숙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생각하며 오래 참는 중에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영적 성숙의 자리에 우뚝 설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3. 환난은 소망을 갖게 해 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4절 하)
바울이 거듭되는 환난과 환난중에서 인내하고 연단을 받는 중에 그가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환난을 통해 신앙의 거품을 다 빼고 나니 소망이 보이더라를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환난을 당할 때, 좌절하고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난가운데서 소망의 빛을 볼 수 있습니다. 환난중에서도 소망을 갖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 일화에 보면 그가 마지막으로 뽀족한 못이 박힌 그 위로 지나가는 환난과 고통을 겪으면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라고 찬송하며 그 못위를 맨발로 지나갔다고 하지 않습니까! 환난중에서도 소망을 가졌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는 중에서도 그의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에 서서 그를 맞이하는 소망을 보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환난중에서도 소망을 갖게되는 힘이 생깁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3-16)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모세 이들은 모두 믿음의 길을 따라 갔고, 믿음을 따라 살다가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인생길에서 그들 나름대로 환난을 겪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을 잘 믿는 것 때문에 형의 미움과 시기가운데서 살았습니다. 에녹은 불의한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잘 압니다. 노아 역시 불신앙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산에 배를 만들며 조롱과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미래를 단순히 믿음하나만 가지고 떠나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환난으로 인해 더욱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고 성숙한 믿음을 가진 그들의 가슴에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찼습니다. 그들은 본향이 있음을 믿고 그 본향을 사모했습니다. 아벨은 미움과 시기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했습니다. 에녹은 불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로움을 소망하였습니다. 노아는 불신앙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을 소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미지의 세계로 떠났으나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의 실현을 소망했습니다. 바울은 여러 가지 환난 가운데서 이르기를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4:8)라고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소망이 있습니까?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손해 보는 것 같고, 어려움을 더 많이 겪는 것 같을 때, 바로 그 순간에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위하여 준비된 의의 면류관을 볼 수 있는 영적 눈을 가지고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어려운 환경들, 복잡한 인간관계, 세상의 염려를 넘어서서 오직 우리를 위하여 준비된 더 나은 본향의 성을 소망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딛고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딛고 있는다는 것은 환난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환난에 대한 태도, 자세를 다르게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딛고 사는 사람을 보면 환난 가운데서도 기쁨을 잃지 아니합니다. 왜냐하면
환난은 성령의 열매인 인내(오래참음)의 열매를 맺게 하기 때문입니다.
환난은 영적 성숙(연단)을 이루게 합니다.
환난은 본향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갖게 합니다.
그러므로 환난으로 인해 좌절하지 말고 오히려 환난으로 인해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굳게 딛고 사는 우리들의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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