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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고

로마서 이상호 목사............... 조회 수 1996 추천 수 0 2013.03.10 22:57:51
.........
성경본문 : 롬6:1-14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고 
롬 6:1-14                                                 

2006. 10. 22, 오전

A. 세례에 대하여
1. 세례는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을 하라(1-2절).
오늘 말씀을 이해하려면 5장20절부터 보아야 합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은혜를 더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1절)
자녀들이 병들었다가 고침받는 것보다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부모의 소원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었을 때에 온갖 죄를 다 짖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보다는 처음부터 예수 잘 믿는 것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십니다. 죄짓고 곁길로 나가면 하나님은 마음 아파하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하더라" 그러므로 젊었을 때에 죄를 실컷 짓다가 나중에 예수 믿어야지? 그러면 하나님께 더 큰 칭찬을 받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고장난 자동차를 고치는 것보다는 고장나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癌(암)에서 고침받는 것보다는 暗(암)이 안 걸리는 것이 더 큰 은혜, 더큰 복입니다.
그렇다면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2절)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죄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2."세례"는 새새람된 표시입니다.(3-4절)
기독교 신앙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입니다. 혼자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고민하는 것입니다. "렌즈"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이란 세상을 향한 죽음과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이다"라고 했습니다.

세례란 말에는 3가지 뜻이 있습니다.
①물 속에 잠근다.: 사람은 물 속에 잠기면 죽습니다. 우리가 은혜 안에 잠기면 육신의 혈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세례받고 은혜 충만하면 육신의 정욕에서 멀어집니다.(롬6:6)
②물로 씻는다.: 더러운 옷과 몸은 물로 씻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더러운 죄악은 예수님의 보혈로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③온 몸에 물로 충만케 한다.: 세례란 예수님과 나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의 헛된 세상 자존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신앙 자존심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자존심이 성숙했는지 어린이인지 평소에는 잘 모릅니다. 시험을 당하면 압니다. 마음속에 모든 불의와 추악한 모습이 드러납니다.(롬1:24-32)
이럴 때에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아직도 옛사람이 살아 있구나" 그래서 죄인임을 고백하고 다시금 회개합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완전히 죽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부족함을 고백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 신앙은 안 됩니다. 날마다 시기, 질투, 불평, 원망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여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죽일 때에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의 신앙으로 새생명, 새소망 중에 늘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 함께 죽고 함께 살고
오늘 말씀에 자주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합하여”라는 말입니다. 5절과 6절에서는 “연합”이란 단어가, 7절과 8절에서는 “함께”라는 단어가 반복하여 나오고 있습니다. 이 세 단어는 다 같은 의미입니다.
“더불어 하나가 되다”라는 뜻으로 번갈아 가며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들 중에서 "함께“라는 말을 집중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같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같이 있다고 해서 완전히 “함께”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주 중요한 것이 하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생각을 함께 해야 완전하게 함께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마음이 함께 있지 않으면, 결국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을 생각해보아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결국 주님과 함께 하는 일을 말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으며, 그 주님을 의지합니다. 그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분명하게 알고 있고, 설명되어져야 합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 고난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나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바로 이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내 사건이 되고 나에게 실제적인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고, 감격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내 삶 속에, 내 생명 속에 예수님의 부활이 살아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일이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함이 있을 때, 비로소 신앙생활은 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일 예배는 지난 한 주간 동안 이 “함께 함”으로 잘 살아 왔는지 뒤돌아보고 다시 새롭게 마음과 생각을 가다듬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능력과 권능을 다시 새롭게 든든히 붙잡고 또 다시 삶을 향하여 담대히 나아가는 출발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은 우리에게 가장 복된 날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어떤 복을 원하십니까? 즉 하나님이 내게 주셨으면 하는 첫 번째의 복은 무엇입니까? 당장 긴급한 문제부터, 늘 평상시에 꿈꾸고 있는 일까지, 아마 사람마다 이루기 원하는 최고의 복은 각각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질 가장 최고의 복은 바로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 그리고 내가 주님과 함께 하는 것” 함께 함...임마누엘의 복이 가장 큰복이요, 첫째 가는 복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는 남편이 먼 외국에 나가 있습니다. 남편은 자주 전화도 하고, 귀한 선물과 편지도 자주 보내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할 아내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그 분의 권능과 능력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할 것이요 내 형편과 처지에 따라 나를 돌보실 것입니다. ‘돌아 온 탕자’ 이야기를 생각해 보세요. 아버지를 떠나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먼 이국 땅으로 갔을 때는 그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아들이 깨닫지 않습니까?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구나!”
냄새나는 돼지우리 앞에서, 이 진리를 깨닫고 “탕자(아버지를 떠난 아들)”는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래적으로 “함께 함”을 좋아하는 성품을 가지고 계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도, 사람을 창조하실 때도 성부, 성자, 성령님은 늘 함께 하셨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매일 아담과 하와를 만나셨습니다. 함께 동산을 거닐며 얘기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보세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심이 얼마나 좋은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그 이름을 “함께 함”이라고 지으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b).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함을 이토록 좋아하시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일 날 한 번 나오는 것도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생색을 내요.
“힘들고 바빠서 나올 수 없는 형편인데도 오늘 나왔어요. 그러니 복 많이 주세요....” 매일 매일의 삶은 또 어떤지 생각해 보세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우리의 생활 속에서 내가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마음과 생각이 주님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가 많을 것입니다.

“함께 함”의 시작...“함께 죽고”
그러면, 주님과 함께 하는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함께 함이란 주님의 생각과 마음에 함께 하는 일이요, 물론 당연히 몸도 함께 하는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3절과 4절을 보세요.
여기에 “세례”라는 말이 두 번 나오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죄 사함의 증표로, 새 사람이 되어 새 삶을 살겠다는 약속으로 세례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말씀을 잘 보면 세례라는 말 다음에 따라 오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4절의 경우를 한 번 살펴볼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세례를 받는 것은 죽으심과 합하기 위해, 즉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하기 위해서 라고 말합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장사 지낸 바 되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분명해 졌지요? 함께 함의 시작은 “죽음”입니다.

자, 이 경우에 성도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누구든 예수님을 믿을 때, 살려고 믿었고, 그것도 잘 살아 보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진실을 알고 보니, 먼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평범한 죽음이 아니라 고통과 고난으로 온 몸의 피와 물이 다 쏟아져 나온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사실을 짐짓 모른 체 하고 신앙 생활 할 수 없습니다. 슬쩍 건너뛰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건너갈 수 없습니다. 신앙 생활 중에 죽음과 같은 고통이 있고, 죽음을 생각게 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가운데 정말 어렵고 힘든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겨내십시오. 참아 내십시오. 나를 위해서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라는 마음과 생각으로 이겨내십시오. 그것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함께 죽고”의 완성...“장사 되었나니”
성도 여러분, 성경이 말씀하는 죽음은 완전한 죽음입니다. 4절에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라는 말이 나옵니다. 완전히 죽은 사람이 장사되어집니다.
땅에 묻고, 비석을 세웁니다. 아직 다 죽지 않은 사람은 산소 호흡기 붙여서 중 환자실에 눕혀 놓을지언정, 갖다가 땅에 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일에서 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장사지내져야 하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4절 후반 절의 말씀처럼, 다시 살기 위해서입니다. 옛것이 완전히 지나가고 새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이 죽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죽으려면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주님의 곁을 떠나 곁길로 가고, 쓰러지고 넘어지는 것은 작고 사소한 감정, 기분의 문제들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나의 작은 이익과 자존심과 명예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옳지 않은 길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다 내가 죽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철저하게 죽도록 해야 합니다. 나를 장사 지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죽음이요,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주실 죽음입니다. 오늘부터 죽는 연습을 하며 삽시다. 우리의 살려고 하는 욕심이 너무 커서 처음부터 온전히 죽을 수 없으니,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주님과 함께 죽는 훈련을 하며 삽시다.

“함께 죽고”의 그 이후...“함께 살고”
5절을 함께 읽읍시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 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이 말씀에서 “본 받아”란 '모델삼아'의 뜻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모델로 하여 그 모습, 그 내용, 그 과정 그대로 죽었으면, 역시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모델로 하여, 그대로 우리도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생각하며 내가 살지 않고 죽었습니다. 당장은 마음이 편치 않고,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내 안에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내 심령 깊은 곳에서 말할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샘솟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이 더 커졌고, 주님을 향한 소망이 더 커졌습니다. 주님과 함께 죽었더니 주님과 함께 살아 난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일인가를 날마다 경험하시며, 여러분의 심령에 찬양과 기쁨이 샘솟는 매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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