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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요한복음 이익환 목사............... 조회 수 2223 추천 수 0 2013.03.15 21: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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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3:1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본문 : 요한복음 13:1
2007. 5. 5.(토) 텔아비브 욥바 교회 - 교회창립주일 및 어린이주일  

오늘 아침에는 어느 목사님이 지은 기도시를 낭송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서투른 아마추어 같은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처음 보는 하늘이듯 그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처음 만났던 그 감격으로 주님을 보게 하소서.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 여인을 처음 그렇게 바라보던 그 눈초리로
그렇게 내 아내를 보게 하소서.
처음 들어서는 예배당이듯 그 설레임으로 예배당 안에 앉게 하소서.
처음 내 마음속에 그 구원의 메시지가 내 심장을 사로잡던 그 감격으로
처음 그 설교를 듣는 그 심정으로 설교를 듣게 하소서.

오 주님, 마지막 단두대에 올라 서 있는 사형수 같은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마지막 보는 하늘인 것처럼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마지막 보는 아내인 것처럼 그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게 하소서.
마지막 보는 예배당인 것처럼 그 예배당을 바라보게 하소서.
마지막 듣는 설교인 것처럼 그 설교를 듣게 하소서.”

이 기도시의 제목이 "항상 처음처럼 마지막처럼"입니다. 이 기도시를 알고나서 저도 참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시의 어느 구절이 마음에 와 닿으시나요? 혹시 이 부분 아니신가요?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 여인을 처음 그렇게 바라보던 그 눈초리로 그렇게 내 아내를 보게 하소서. ... 마지막 보는 아내인 것처럼 그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게 하소서."
이 부분에 감동을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감동을 느껴요.
그런데 이 기도시에서 제게 가장 와 닿는 단어는 바로 '처음'이란 단어와 '마지막'이란 단어입니다. 이 기도시의 제목처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마음 가운데 있는 소망 중에 하나가 무엇입니까?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살고 싶은 소망 아니신가요? 특별히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가지는 소망이 이것 아닙니까?
저의 경우는 이 소원이 강하고 정말 그렇게 주님 섬기고 교회 섬기다가 주님 앞에 가고 싶습니다.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감격으로 내가 숨을 거두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을 날마다 만나고 싶습니다. 처음 주님의 사랑을 알곤 펑펑 울었던 그 눈물과 감사가 나의 마지막 순간까지 있기를 소원합니다. 처음 주님께 소명을 받아 두려움과 감사로 엎드린 것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두려움과 감사함으로 저의 소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강단에 섰을 때 나의 무능함을 고백하고 주의 도우심을 간절히 사모했고, 행여 잘못된 말씀을 전할까 두려워했던 마음, 그러나 비록 부족한 종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로서의 담대함을 가지고 섰던 그 마음 그대로 내가 서는 마지막 강단까지 있기를 소원합니다. 첫 사랑의 감격이 마지막까지 있기를, 첫 은혜의 감사가 마지막까지 있기를, 첫 헌신의 순수함과 겸손이 마지막까지 있기를 소원합니다.
정말 우리가 소원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왤까요? 왜 우리는 이런 소원을 가지게 됩니까? 그것은 우리가 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당장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 순간에는 베드로처럼 눈 앞에 있는 현실의 문제로 인해 뒤로 발을 빼는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순수하고 뜨거운 믿음이 그대로 가면 좋은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음을 봅니다. 우리의 감정에 따라 달라지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눈 앞에 놓인 현실의 문제 가운데서 식어지고 잊혀지고, 영적인 게으름 가운데 식어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실제적인 모습입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무엇인지를 아셔요. 우리의 의지가 얼마나 쉽게 변할 수 있는가도 아셔요.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계신 겁니다. 다시 말해서, 변하기 쉽고 넘어지기 쉬운 우리에게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주님 사랑하고 신앙생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13장의 내용입니다. 13장은 우리가 흔히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는 장면 중에서 이른바 세족식 사건이 등장합니다. 스승이시요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어 주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주님 사랑하고 신앙생활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봅니다. 같이 읽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 구절은 세족식, 나아가 최후의 만찬의 서론격에 해당됩니다. 즉,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드시면서 발을 씻기시고 빵과 포도주를 나누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바로 1절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셨기에" 그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불어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가치가 사랑이지만 그만큼 쉽게 말해지고 쉽게 이해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많은데 정말 참 사랑은 그렇게 많질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랑을 참 사랑이라고 합니까? 변하지 않는 사랑, 조건 없이 사랑하는 그 사랑, 끝까지 사랑하는 그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을 참 사랑,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사랑이 바로 이런 사랑이라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를 사랑하시되 변함없이, 한결같이,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나는 감정에 따라 사랑의 정도가 달라지고, 내 기분에 따라, 내 상황에 따라, 내 영적인 상태에 따라 주님을 사랑하는 정도가 달라지지만, 주님께서는 감정과 상관없이 기분과 상관없이 한결같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내가 불순종할 때에도, 내가 그릇행할 때에도, 내가 고집피우며 나갈 때에도, 주님께서는 묵묵히 나를 바라보시며 늘 기다리는 그 모습으로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내 생각에는 ‘내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인데, 내가 얼마나 모순덩어리고, 위선되고, 엉망인데 하나님은 이런 나를 미워하실꺼야, 나를 사랑하지 않으실꺼야’라고 생각될 그 때에라도 주님께서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택하시고 구원하실 때는 나의 상태나 조건을 보고 택하신 것 아닙니다. 그저 사랑한다는 그 한가지 이유 때문에 나를 택하셨고, 지금도 처음의 그 사랑을 가지고 나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시몬 베드로를 잘 압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후에 그는 좌절과 실의에 빠졌습니다. 자신은 더 이상의 주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외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주님께서는 먼저 다가가셨고, 배고플까봐 식사를 손수 준비하셔서 먹이시고, 한마디의 야단도 책망도 없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셨고, 베드로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디에서요? 지난 주에 가졌던 갈릴리 수련회, 베드로 수위권 교회, 그 장소에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떠한 모양으로 있든지 주님의 눈은 항상 나를 향해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1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으로 표현을 했는데, ‘끝까지’라는 말은 헬라원어로 ‘eis telos’라고 합니다. 이것은 ‘완성하기까지’라는 뜻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주님의 사랑은 처음과 같은 사랑으로 한결같이 사랑하시되 그 사랑을 완성하기까지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나에 대해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나에 대해 실망할 수 있지만, 주님은 나에 대한 변함없는 기대를 갖고 계십니다. 나는 나의 성장이 더딘 것 같고, 늘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주님은 내가 주님과 같은 장성한 분량에 이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계시고, 그렇게 자랄 수 있도록 계속해서 격려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주님께서는 나를 위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나를 격려하시고, 내가 천국에 들어가는 그 날까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완성시키십니다. 이것이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자기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이른바 세족식입니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것은 종이 할 일이고, 아랫 사람이 할 일입니다. 스승이 할 일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은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아직도 제자들 가운데는 ‘누가 크냐?’는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발을 씻겨주어야 하는데 씻어주지 않았고, 그 와중에 스승인 주님의 발조차 씻기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지금 제자들의 상황은 서로 질투하고 서로 으뜸이 되고자 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고, 분위기도 무척 냉냉하고 썰렁한 분위기였습니다. 게다가 주님의 상황은 어떤 상황입니까? 이제 몇시간 후면 체포되어 십자가에 달려야 하는 상황입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기가 막히고 마음 아픈 순간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주님은 손수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비록 주님 자신에게 괴로운 일이 있지만, 제자들을 먼저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얼마 후면 십자가의 길로 가는데 제자들이 이런 모습으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대립하고 있어서는 안되었기에,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이런 마음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을 것입니다.
  ‘너희를 사랑하기에 종이 되어 너희의 발을 씻긴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사랑하기에 스승이라는 체면도, 자존심도 다 버릴 수 있고, 사랑하기에 종이 되는 것도, 더러운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내 사랑이다. 너희를 위해 내 목숨까지 줄 것인데, 이까짓 종이 되어 발씻기는 것이 무슨 문제냐. 내 마음, 내 생명 다 준다. 그만큼 너희는 나의 사랑하는 자들이다. 얼마후 내가 잡혀가 죽을 때에라도, 내가 너희를 떠난 후에도 너희의 발을 씻겼던 나의 손길을 기억하라. 그래서 이겨내고 힘내고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주님의 모습에서, 십자가 앞에서 주님 자신은 괴로워 죽을지언정, 자기 사람들에게는 끝까지 사랑하셨던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이러한 사랑을 보여주시고, 우리에게도 동일한 사랑을 베푸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이 있습니다. 14-15절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우리 역시 그러한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믿어주고, 인내하고 용납하는 사랑, 겸손이 낮아져 섬겨줄 수 있는 사랑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의 합당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고 할 때, 우리의 사랑의 기준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만큼 낮아지고, 넓어지고, 깊어져야 합니다. 나 역시 형제 자매를 사랑함에 있어 내 기준, 내 편견, 내 자존심 내세우지 말고, 주님처럼 조건없이,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보다 아름답고 건강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결국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며 신앙생활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입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던 주님을 닮아갈 때 우리는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주님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저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참 사랑이 무엇이고 참 섬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주님의 그 실천적인 사랑을 우리가 닮아갈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 성장이 가능합니다.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변하지 않을 가능성은 내 안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닮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순종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능히 주님처럼 변함없이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고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할수 있습니다.

  오늘은 교회창립주일입니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정말 우리가 창립예배를 통해 확인해야하고 다짐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지금의 이 마음, 지금의 이 사랑, 지금의 이 헌신, 지금의 이 감격, 그대로 변함없이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아니 지금보다 더 사랑해야 하고, 지금보다 더 헌신해야 하고, 지금보다 더 섬겨야 합니다. 즉, 끝까지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성장과 변화가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끝까지 변함없는 사랑과 헌신으로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우리는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더 깊은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다짐하고 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닮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닮아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낮아지는 그런 사랑을 우리가 하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처럼 우리 역시 서로의 발을 씻기는 살아있는 실천적 사랑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떤 면에서는 특수한 교회입니다. 오랜 기간 이스라엘에 머무는 분들보다는 잠시 머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잘못하면 이스라엘에 있는 동안 잠시 머물다 가는 교회가 되기 쉽고, 오랜 동안 머무는 분들은 잠시 머물다 가는 이들에게 대해 점차 무관심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이제 시작된지 얼마 안된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매주 예배 인원이 증가하고, 수련회도 100%를 넘어 120% 참석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데, 그래서 우리는 감사하지만, 우리에게 더욱 더 필요한 것은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더욱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은 서로가 낯섭니다. 아직은 서먹하고, 아직은 서로에 대해 잘 모릅니다. 아직은 덜 비벼진 비빔밥 같습니다. 비빔밥이 맛있으려면 재료가 따로 따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잘 비벼져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잘 비벼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잘 비벼져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한 교인, 한 식구, 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서로를 잘 섬기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집사님들이 너무나 잘 섬겨주고 계시고, 청년들도 소속감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잘 해주고 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는데, 수련회가 끝난 후 지난 주중에 우리 교인 중 한 분이 직장에서 청년들 리스트를 만들고 있었답니다. 청년들이 많아지니까 토요일 교회로 청년들을 데리고 오는 것이 걱정이 되었는지, 청년들을 어떻게 차량 분배를 해야하나 해서 리스트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누구 시킨 것도 아니고 부탁한 것도 아니예요. 스스로 한 것입니다. 그 분이 수련회 때 청년들 먹이려고 삼겹살도 사왔다지요?
  저는 담임목사로서 참 행복합니다. 좋은 성도님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교회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아직 갖추어진 것이 없고 하나 하나를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희생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모든 분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며 섬기고 있어요. 어느 집사님은 지금 교회를 위해 섬기고 수고하는 일들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더군요.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처럼 제가 하는 일이 이토록 의미있는 적이 없을 정도로 기쁘다"고 말입니다. 어느 집사님은 요즘 자기가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 1000명과 같이 사는 기분이랍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여러분들을 만나는데, 어느 누구도 오기 싫어서 온 얼굴이 아니라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섬기고 싶어서 온 얼굴들이어서 너무나 좋습니다.
  저는 이러한 기쁨과 섬김이 변함없이 우리 교회 안에 충만하길 바랍니다. 이러한 우리의 사랑과 섬김과 헌신이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우리 안에 충만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꼭 기억해야 하고 꼭 다짐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주님을 닮아가겠다는 결심과 노력입니다. 이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끝까지, 완성시키실 때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므로 이루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교회의 능력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교회의 능력이고 힘이고 자랑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한 교회, 그래서 그 사랑을 기뻐하고, 그 사랑에 감사함으로 예배하고, 그 사랑을 닮아 성장하고, 그 사랑으로 서로를 깊게 사랑하고 넓게 사랑하고 낮아짐으로 사랑하는 교회가 될 줄로 확신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교회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세상 사람들에게 소문나는 교회, 그리스도의 사랑의 반석 위에 든든히 서 나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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