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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 라바

레위기 이익환 목사............... 조회 수 2558 추천 수 0 2013.03.15 21: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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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레23:39-43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호산나 라바
레위기 23:39-43
2007년 9월 29일(토) 추수감사절(초막절, 수콧) 텔아비브 욥바 교회

 

이스라엘에서는 매년 기간은 조금씩 다르지만 9월 중순에서 10월중순까지의 기간 중 거의 보름을 휴일로 보내게 됩니다. 한달 중에 거의 절반이 휴일입니다. 매주 안식일이 있고, 우리의 설날에 해당하는 로쉬하샤나, 대속죄일인 욤 키푸르, 그리고 이어서 초막절에 해당되는 수콧이 계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수콧이라고 부르는 이 절기는 성경에서 초막절, 장막절, 혹은 수장절로 번역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유대력에는 여러 절기가 있고 그 중에 삼대 절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삼대 절기는 페삭-유월절(무교절), 샤부옷-칠칠절(오순절), 수콧-초막절(장막절)입니다. 이 삼대 절기는 모두 두 가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출애굽이고 또 다른 하나는 농사입니다.

페삭-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직전 열번째 재앙에서 어린양 피를 문지방에 발라 그 재앙이 유월, pass over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절기입니다.

그리고 샤부옷-칠칠절은 전승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시나이 광야를 행진했을 때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수여받은 때라고 합니다. 이 역시 출애굽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특별히 율법과 관련이 있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절기인 수콧-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방랑하던 것을 기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기입니다.

  그리고 농사와 관련해서는 페삭-유월절 혹은 무교절은 겨울 보리를 거두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초실절이라고 부르는데, 말뜻 그대로 파종한 후 첫번째로 수확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죽으시고 부활하신 때가 바로 유월절 마지막 기간인데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 초실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유월절이 첫 수확을 하는 초실절인 것과 연관해서입니다.

샤부옷-칠칠절 혹은 오순절은 여름 보리와 밀을 수확하는 시기로 맥추절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수콧-초막절은 포도, 올리브 등을 수확하는 절기로 수장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수장절은 열매들을 수확하여 창고로 모아들여 저장한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삼대 절기는 출애굽과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절기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식량과 물질, 건강 등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기에 유대 절기는 한결같이 즐거운 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즐거운 축제가 바로 초막절입니다. 그 이유는 초막절이 영적으로 가장 정결한 시간이고 마지막 추수이기 때문입니다. 초막절 앞에 로쉬 하샤나라고 하는 설날과 욤 키푸르, 대속죄일이 있습니다. 이 절기 때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지은 죄를 회개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절기가 바로 초막절입니다. 이미 죄에 대한 회개가 있고 나서 맞는 절기가 초막절이기에 어느 절기보다 기쁨으로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유대력은 우리나라 음력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역시 음력이기 때문에 매년 절기들의 날짜가 바뀝니다. 그리고 초막절과 우리의 명절인 추석이 비슷한 기간인 경우가 많습니다. 달라도 한달 범위 정도 됩니다. 우리의 고유의 명절인 추석 역시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깊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막절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일찍 그런 생각을 못하고 로쉬 하샤나 이후에 달력을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좀 더 일찍 결정을 했더라면 오늘 특별 순서도 마련하고 했을텐데 그렇지 못했고, 내년부터는 좀 더 특별한 순서를 마련해서 정말 즐거운 축제로서 예배를 드렸으면 합니다.

  사실 지금 한국교회에서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은 성경적인 절기는 아닙니다. 그 출처가 미국이지요. 청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신대륙에 가서 모진 고생 끝에 거둔 첫 수확물에 대한 감사예배를 드린데서 유래된 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입니다. 그것이 선교사들에 의해 우리나라 교회에 그대로 소개가 되었고, 지금은 거의 교회 절기로 지키고 있는데,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인 생각은 우리의 추석과도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 초막절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것이 좀 더 옳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 이스라엘에 있는데, 이스라엘에서 살아가면서 초막절로 추수감사절을 지킨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초막절이 먼 옛날 성경 시대 때의 절기가 아니라 지금도 지켜지고 있는 피부와 와닿는 절기인데, 이 절기 때에 우리가 추수감사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참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추수감사절은 분명 "감사"가 그 주제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무엇에 대한 감사로 예배를 드리십니까? 하나님께 어떠한 것들로 감사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오늘 저는 초막절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감사할 것들을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첫째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감사드립시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초막절은 광야 40년을 기억하기 위한 절기입니다. 광야 40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은 방랑 생활이었습니다. 정착생활이 아닌 유랑생활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제대로된 집을 짓고 살 수 없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그들이 거했던 거주형태는 초막입니다. 쉽게 말하면 천막, 텐트입니다. 베두윈 같은 유목민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천막입니다. 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늘 이동해야했기 때문에 그런 천막을 치고 광야 40년을 살았던 것입니다.

  초막절을 히브리어로 수콧(סכות)이라고 하는데, 이는 텐트, 천막, 초막을 뜻하는 수카(סוכה)의 복수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초막절에는 이런 수카, 초막을 만들어 칠일 동안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초막절이 되면 집 주변에 수카를 만들고 그 안에 식사도 하고 잠도 자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면서 광야생활을 기억하라고 했을 때 과연 어떤 것을 기억하게 될까요? 이집트 시나이 광야를 다녀오신 분들은 좀 더 쉽게 이해가 될 것인데, 이스라엘에도 네게브 광야 같은 곳이 있으니까 이해가 쉬우리라 생각됩니다. 그러한 광야에서 40년을 살았다? 사실 이건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몇십명도 아니고 수십만명이 그 척박한 사막과도 같은 광야에서 40년을 살았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물이 풍부합니까? 먹을 것이 풍족합니까? 환경이 좋습니까?

  어떤 남자분이 부인 때문에 성지순례를 왔답니다. 이 남자분은 믿는 분이 아니었어요. 아내가 함께 가자니까 여행 삼아 온 겁니다. 이집트 여행을 하고 이스라엘로 가는 중에 사나이 반도를 거치고 됩니다. 교회는 다니지 않았지만 부인 덕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시내 광야에서 40년을 방랑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가이드의 설명도 들으면서 광야를 보면서 가는데, 가도가도 도무지 사람이 살만한 땅이 아니더라는 겁니다.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살 수 없는 땅이라는 것이지요. 이분이 그것을 깨달았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광야에서 40년 동안 살았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정말 살아있다는 것이다 생각이 들은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기로 했답니다.

  하나님의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아주시는 은혜가 없이는 도무지 살 수 없는 땅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러므로 초막에 거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한 것은 광야의 힘들고 고된 환경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들을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1:31-33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 동안 어떻게 이끄셨는지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어떻게 인도하셨는가에 대한 말씀인데, 볼 때마다 큰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을 때 어떻게 하셨냐? '마치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는 것 같이' 하셨다는 겁니다. 어린 아들이 있습니다. 혼자 제대로 걷지도 못합니다.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합니다. 때도 씁니다. 아직 어려서 걷는 것도 서툴고 자주 넘어집니다. 불평도 많습니다. 그런 어린 아들을 데리고 험한 광야길을 갈 때 부모는 그 아들을 안고 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행여 다칠까, 행여 아플까 하면서 두 팔로 안고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잘 알려진 이야긴데요, 어떤 사람이 너무나도 힘든 상황에 있었답니다. 너무나 힘든 상황이 오래되자 신앙에 회의마저 들었답니다.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나. 왜 나를 홀로 나두시나'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런 가운데 어느날 꿈을 꾸었습니다. 바닷가를 걷는데 모래 위에 발자국이 있는데 어떤 때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나있고, 어떤 때는 한 사람의 발자국만 있는 것입니다. 참 이상하다 싶어 그 발자국을 따라 갔습니다. 그랬더니 멀리 누군가의 모습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업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업혀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더랍니다. 그리고 자기를 업고 가는 사람을 보니 바로 예수님이시더랍니다. 그리고 꿈이 깼어요. 그제서야 이 사람은 깨달았습니다.

  "내 인생길을 가면서 나는 혼자 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가셨구나. 내가 홀로 갈 수 있을 때는 나와 함께 걸으셨고, 내가 힘들어 도무지 갈 수 없을 때는 나를 업고 가셨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뒤돌아보니 정말 그렇더라는 겁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고난 가운데 주님께서 정말 함께 계셨고 자신을 업고 그 고난 가운데를 걸어가셨던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그는 회개의 눈물과 더불어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인생을 보통 광야에 비유를 많이 합니다. 언제 어떤 어려움을 만날지 모릅니다. 메마르고 거칠고 위험하고 고된 길이 광야이고 인생길입니다. 그 광야같은 인생길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아십니까?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지켜주시고 나를 두 팔로 안고 가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음을 아십니까? 때로는 갈 길을 몰라 헤멜 때 불과 구름 기둥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아십니까?

  저는 그리 많은 인생을 산 것은 아닙니다. 40년 남짓 인생을 살았지만 그 가운데서 방황의 시간도 있었고, 하나님을 떠났던 적도 있었고, 불순종의 길로 있었고, 뜻하지 않은 고통과 아픔의 시간들도 있었고 힘든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압니다. 뒤돌아보면 그 가운데 주님께서 계셨습니다. 내가 홀로 울 때 주님께서 함께 우셨고, 내가 아파 쓰러져 있을 때 주님께서 나를 안으셨고, 내가 갈 길을 몰라 해멜 때 주님께서 불과 구름 기둥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목말라 할 때 반석을 터트려 목마름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이 초막절에 감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 인생길에서 나와 늘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명기 18:2-10에서도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광야길을 걷게 하신 이유가 나옵니다.

  "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 길을 걷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를 낮추시며 네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나로 먹이신 것도 그 목적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답니다. 쉽게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과정이 바로 광야 40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노예근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불평하고 원망하고 속이고 불순종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기적을 봐도 그때뿐이었습니다. 도무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하지 않았고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는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바로 가나안에 들어갔다면 속수무책으로 패배했을 겁니다. 설사 점령했더라도 아마도 순식간에 가나안 족속들에게 동화되어 하나님을 버렸을 것입니다.

이러한 노예근성을 가진 오합지졸의 이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고,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곧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알게 하시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낮추시고 훈련시키신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내는 학교입니다. 광야학교입니다. 그 학교의 과정이 끝났을 때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는 학교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과 슬픔, 아픔뿐만 아니라 모든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들어가십니다. 고난을 통해 나를 낮추십니다. 아픔을 통해 나에게 있는 불순물들을 걸러내십니다. 실패를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십니다. 상처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드시고 나를 더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고 나를 더 다듬으셔서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낮추시고 훈련시키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를 당신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시고 나를 사용하시기 위해 나를 다듬고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내가 겪는 모든 일들, 아픔과 기쁨, 슬픔과 즐거움, 고난과 순탄함, 그 모든 일들이 나를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교육과정임을 기억하며 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이렇게 이어집니다.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광야훈련을 마친 이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광야는 끝이 아닙니다. 광야는 가나안으로 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광야에 주저앉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주신 비전이 바로 가나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없다고 주저않은 곳이 바로 광야였지만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가나안의 비전을 주셨고 내가 함께 할 것이고 그래서 너희가 능히 차지할 수 있음을 거듭거듭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광야를 거친 후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가나안의 비전을 주시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광야라는 학교를 잘 마치면 우리에게 약속의 땅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 축복과 비전을 다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꿈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우리에게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와 확신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내가 함께 하면 능히 그 땅을 취할 수 있다고, 수없이 주저않는 나에게 확신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초막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자신들과 함께 하심으로 자신의 길을 인도하셨고, 또한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시키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감사가 바로 초막절의 감사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감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우리에게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초막절을 다른 말로 수장절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곡식을 추수해서 저장해 놓는다는 뜻이라고 말입니다. 초막절에는 포도, 올리브, 석류, 무화과, 대추야자 등을 수확합니다. 이 다섯가지 열매들은 밀, 보리와 더불어서 성전에 감사예물로 드려졌던 열매들입니다. 초막절은 그동안 파종한 것들을 마지막으로 수확하는 절기이기에 가장 큰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이 기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풍성한 복을 채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만 아니라 새해에도 그러한 은혜를 주실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리게됩니다.

  올 한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셨고, 일할 수 있는 터전을 주셨고, 우리의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수 있는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우리가 먹고 사는 것,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늘 감사할 줄 아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셋째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초막절이 시작된 지 팔일 째되는 날을 '쉬미니 아쩨렛'이라고 하고, 이날 비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른 비가 와야지만 파종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불어서 그 날을 '심캇 토라'(שימחת תורה)로 지킵니다. 심캇 토라라는 말은 '토라의 기쁨'이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토라를 주신 것에 대해 즐거워하며 감사하는 날로 지킵니다. 유대인들은 이 날까지 토라를 읽음으로 일년치를 마무리짓고, 다음날부터 다시 처음부터 읽게 됩니다. 이날 회당에서 토라를 꺼내 회당 안에서 원을 그리며 주위를 돕니다. 어른들은 토라를 어깨에 메고, 어린들은 그 뒤를 춤을 추며 따라갑니다. 일곱 바뀌를 다 돌면 토라궤로 가시고 가서 신명기의 마지막 단락을 읽습니다. 이로써 일년치 토라를 완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날 유대인들은 큰 잔치를 베풀고 하나님께서 토라를 주신 것에 대해 즐거워합니다.

  올해의 경우는 10월 4일이 초막절 팔일 째 되는 날로 쉬니니 아쩨렛이며 심캇 토라입니다. 저는 이러한 의식이 상당히 의미있다고 봅니다. 초막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한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께서 토라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토라는 작은 의미에서는 모세 오경을 말하고 크게는 성경 전체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토라를 주셨습니다. 시내산에서 십계명를 주셨고, 모세를 통해 토라를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광야생활을 기념하는 초막절에 그들은 토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겁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로 믿습니다. 떡으로 사는 자 떡 때문에 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 말씀 때문에 흥합니다.

말씀 안에 길이 있습니다. 말씀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 안에 지혜가 있습니다. 말씀 안에 인생의 모든 대답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그 말씀을 더욱 더 사랑하고, 날마다 읽고 묵상하여 마음 밭에 새기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말씀의 능력과 열매들이 나타나는 복된 사람들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넷째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성전이 있던 시대에는 매일 희생제물을 바친 후에 제단에 포도주를 부었습니다. 그러나 초막절에는 포도주 대신에 물을 부었습니다. 이는 비를 기원하기 위해서랍니다. 초막절 즈음에 이른비가 오는데 이른비가 제 때 와주어야 파종을 할 수 있고 우기 동안 비가 적절하게 와야 한해의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단에 물을 부으면서 불렀던 찬양이 있습니다. 시편 113-118편입니다. 이 노래들을 할렐송이라고 하는데,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축복의 구절이 있습니다. 시편 118편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시 118:25-26)

  "구원하소서"의 히브리어가 '호샤나'입니다. 이 용어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은 초막절의 마지막날인 칠일째 날을 '호쉬아나 라바'(호산나 라바)라고 부릅니다. '라바'는 '크다'란 뜻이므로 '큰 구원의 날'이란 의미로 초막절의 마자막 날을 그런 의미로 지킵니다. 이날은 지난 해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마지막 사죄의 날이요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 날은 메시아와 관련있는 날입니다. 스가랴 14:16-19에 보면 메시아가 오셔서 새 시대가 도래하면 이방나라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초막절을 축하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즉 메시아가 오시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예루살렘에서 초막절을 축하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구약의 전통에 따라 초막절에 메시아가 오신다는 믿습니다. 그 날짜까지 계산한 유대교 신비주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10월 재림을 외쳤던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주장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미 메시아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슈아, 우리 주님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7:37-38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 말씀을 언제 하셨는가?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이 말씀을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큰 날, '크다' 라바입니다. 즉 이 날은 초막절의 마지막 날인 '호쉬아나 라바', '큰 구원의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십시오. 이 날은 성전 제단에 물을 붓는 날입니다. 제사장들이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러다가 제단에 물을 붓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제단 주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죄의 은총과 구원을 간구합니다. 그리고 춤을 추며 성령에 사로잡히기를 간구합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나를 믿으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날 것이다, 즉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충만함을 얻게 될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구주로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마시게 됩니다.

  초막절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초막절의 감사의 내용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추수감사의 의미와 더불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지켜주시고 인도하시고 훈련시키심으로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장차도 구원해 달라는 것이고, 마침내 메시아가 오셔서 자신들을 영원히 구원해달라는 것이 바로 초막절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두 손을 풍성하게 채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광야같은 인생길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당신의 사람으로, 당신의 도구로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영원히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믿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인생의 영원한 목마름을 해결해주시고,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감사하는 것은 우리에게 장차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예수님으로 하나되어 함께 초막절을 지키게 될 것이라는 꿈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주신 그 비전이 마침내 이루어질 것입니다. 지금도 이루어져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유대인들이 예슈아께 돌아오고 있습니다. 예슈아는 유대인이셨고, 유대인들을 구원하길 원하셨고 지금도 원하고 계십니다. 예슈아를 만난 유대인들이 구원받아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에서 예슈아를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 기독교인들이 함께 초막절을 지키고 절기들을 지키면서 하나님과 그 어린양 예슈아를 찬양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가랴서에 있는대로 꿈을 꿉니다. 유대인들이 예슈아께 더욱 더 돌아올 것이며, 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 땅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예슈아의 이름을 높이며, '호쉬아나 라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높혀 찬양하는 그 날이 올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는 우리에게 이러한 꿈을 주신 것에 감사합시다. 더욱 더 많은 유대인들이 예슈아께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에게 기도의 사명을 주시고 우리를 들어 쓰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호산나 라바, 이 큰 구원의 날에 우리의 감사가 예슈아, 우리 주님으로 인해 더욱 더 충만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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