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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소식

마태복음 빛의 사자............... 조회 수 2653 추천 수 0 2013.03.30 12: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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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8:1-20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소식

 

본문 : 마28:1-20, 요21: 1- 14

찬송가: 사망을 이긴 주 (찬송가 172장, <통> 152장)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조선의 정세는 매우 불안하고 혼란스웠다. 당시 국제 사회는 조선을 ‘소망 없는 은둔의 땅’으로 보았다. 그러나 황무지이기 때문에 더욱 복음이 증거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미국의 젊은 선교사들이 있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였다. 그들은 순교의 각오로 파송을 자원했다.

1885년 4월5일 부활절. 거센 풍랑을 헤치고 한 척의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단순한 입항이 아니었다. 이 나라에 처음으로 복음이 들어오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부활절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조선땅을 밟았다. 황무지에 소망의 빛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아펜젤러는 본국에 보낸 첫 선교 보고서에서 이 날의 감동을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다. 그날 사망의 철창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이 창조의 주가 되심과 예수님이 온 인류의 구주 되심에 대한 믿음의 대상이 됨을 분명히 확증해준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전15: 12- 21)고 주장한 것은 맞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들의 선택과 구속과 영생의 문제까지 포함이 됨으로 부활은 당연히 있어야 했던 것이다.

"주는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시 16:10).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 육의 몸을 입으시고 오셨지만 그에게는 죄가 없으시다. 그의 오심이 영만이 아닌 육이시고 그의 죽으심이 육이시고 그의 살으심이 육인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의 목격자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위시하여 열한 사도들과 오백여 명에게 나타나 보이시되 40일간이나 보여준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무덤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무덤은 없다. 부활로 그 무덤은 빈 무덤이 된 것이다. 예수님의 원초적인 부활은 하나님이 되셔야할 것과 거룩한 신성이 사망에 매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부활의 첫 열매가 되기 위해서 살아나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의 혼자의 부활이 아니다. 죽으시므로 온 인류를 위함이며 그의 부활도 온 인류를 위함이다. 이 부활은 가장 강한 사망의 적을 정복하시며 죽음에서 믿는 자들을 해방키 위함이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부활사건이 있기 전에 그의 누이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봐도 분명히 부활의 교훈을 통한 후에 나사로를 살린 것이다

 

인류가 소유한 기록 가운데 4복음서보다 성스럽고 진실된 피 묻은 기록은 없을 것이다. 특히 요한복음의 거의 절반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일주일간의 기록이다. 사도행전의 수백 명의 순교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증인들이었다. 인류 증언사 가운데 일찍이 예수님의 부활 증인들보다 진실되고 다수의 순교자를 낸 것은 없었다. 공모 사기 사건이라면 무슨 대가를 바랐을까. 금생과 내세, 영육간에 백에 하나도 유익이 없는 일을 위하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기의 순교를 해야 했던 심리적, 도덕적 동기가 설명이 안 된다.

 

안식일이 주일로, 할례가 세례로, 회당이 교회로 바꿔진 사회학적 이유도 부활의 역사성 이외에는 근거를 설명할 수 없다.

부활은 “예수가 패했다”가 아니라 “예수가 죽음을 패배시켰다”는 승리의 소식인 것이다.(요11:25- 26)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 20)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만일 부활이 거짓이라면, 성경의 진리는 한 순간에 다 무너지는 말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부활에 대해 여러 번 반복하여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알려줌으로써 믿는 자들에게 만족할 만한 증거들을 제공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면 교회를 오래 다 닌 사람일수록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다는데 대한 감격이 식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부활 이야기를 하면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가볍게 넘기고 만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현실적인 사건이다. 날마다 확인하고 감격하고 찬양해야 할 일이다. 부활의 감격에는 과거라는 시제가 있을 수 없다. 당신에게 이러한 감격이 식지 않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부활의 약속을 책들 속에만 쓰신 것이 아니라 봄날의 잎사귀들마다에도 쓰셨다. 겨울에 보면 나무가 다 죽은 것 같다. 어느 나무가 살았는지, 어느 나무가 죽었는지 알 수 없다. 봄이 되어야 나무는 싹이 나고, 꽃이 피어, 결실함으로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나무가 죽어 있다면 어느 계절이든 싹이 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 현상에 대해 종종 오해를 한다. 남쪽을 향하여 서 있었더니 싹이 나더라, 어떤 비료를 주었더니 꽃이 피더라는 등...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은 무슨 거름을 주었느냐, 어느 쪽을 향해 서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오직 꽃이 더 잘 피게 하고, 싹이 더 잘나게 하는 것뿐이지 생명을 만드는 조건이 될 수 없다. 구원 문제에 있어서 이 부분이 잘 정리되지 않으면 매우 혼동이 된다. 출생을 자기가 하는 사람은 없다. 출생에 관한 한 우리에게는 전혀 조건도 없고, 출생하는 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내가 온 것은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죽은 나무와 같은 우리의 존재 위에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치 않고 생명을 부여하시는 주님! 부활은 이 사실을 증거해 주는 명확한 사건이다. 죽음에서의 부활! 새 생명으로의 출발! 이것은 주님의 부활이 오늘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소망스러운 소식이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4)

1967년 6월 30일 열일곱 살의 운동 선수 조니 에릭슨은 체사피크 만에서 다이빙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그로 인해 목 아래부터 전신이 마비된 그녀는 쓰라림, 좌절, 원망, 분노, 심지어 자살하고 싶은 침체까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감정에 휩싸였다. 하지만 재활 훈련 및 치료 기간을 통해, 그리고 부모님, 자매들과 친구들의 열렬한 후원을 통해 점차 깊은 블랙홀에서 빠져나왔다. 그녀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후원하는 모임도 만들었다. 그녀의 변화의 중심에는 성경을 재발견한 일이 있었다. 그녀는 자기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무력하며 마비된 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한 환상을 보면서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부활이었다.

 

“나는 이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다. 성경은 우리의 몸이 하늘에서 ‘영화롭게'된다고 말한다. 그때는 내가 여기에서 죽은 후 내 발로 춤을 출 때다. 손가락은 오그라들어 구부러지고, 근육은 쇠약해지고, 무릎은 비틀리고, 어깨 아래로는 아무런 감각이 없는 내가, 언젠가는 가볍고 밝으며 강력하고 눈부신 의로 옷 입은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나처럼 척추를 다친 사람에게, 뇌 손상을 입은 환자 혹은 조울증 환자에게 어떤 소망을 주는지 상상할 수 있는가? 다른 어떤 종교나 철학도 새로운 몸과 정신을 약속하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 안에서만, 상처 입은 사람이 이처럼 놀라운 소망을 발견할 수 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처음 제자들을 부르신 곳에 다시 나타나셨다. 어찌보면 현재의 상황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다시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장면이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지금은 주님의 부활을 맞이했고, 주님과 함께 조반을 나누었다. 부활하여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을 통하여 오늘 우리의 모습을 진단해야만 할 것이다.

 

첫째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주님께서 만나 주셨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늘 우리가 죽었었던 자들이었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한다. 주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신다. 한 동안 제자들은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예수께서 유대를 통치하실 왕이 되어지길 학수고대했다. 심지어 누가 크냐고 까지 예수님에게 묻곤 했던 제자들이었다. 이제 그들의 꿈은 사라져 버렸다. 오히려 자신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일종의 수치심만 가지고 있었다. 죽은 사람에 대한 일종의 기본적 양심을 가진 사람처럼 말이다. 그들은 평소에 예수님께 제대로 충성하지 못하고, 말씀을 깊이 새겨듣지 못한 점을 한스러워 했다. 더욱이 바다에 나가 그물을 던지는 순간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깊은 회상에 잠겨 있었고 고기가 잡히지 않자 그들은 심히 괴로워했다. 이때 주님은 그들을 만나주셨다. 낙심과 절망 속에 있는 제자들, 이 세상에 대한 모든 꿈을 포기해 버린 그들 앞에 주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이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공과 축복에 병들어 있습니까? 마치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엄청난 출세가 보장되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주님은 오늘 우리가 이러한 생각들이 버려지고 자신의 죄인 됨을 자각하고 부족함을 시인할 때 만나 주실 것이다. 오늘 내가 죄인 됨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축복으로 그 증거를 나타내시더라는 것이다.

 

성공과 축복! 그 자체는 그리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여기에 매달려 복음의 본질을 망각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그리 강하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이야기해도 결국 우리는 빵 문제에 넘어 지고 마는 것을 봅니다. 공산주의 같은 철두철미한 사상이라는 것도 빵 앞에는 굴복하지 않습니까? 비단 빵의 문제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인간은 형통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증거를 보여 주십니다. 욥에게도 갑절의 축복을, 아브라함에게도 자녀와 물질을, 다윗에게는 명예와 권세를 주셨음을 볼 수 있다. 요한복음 21장에서도 주님은 베드로에게 생선을 가져 오라 하셔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혀 있는 고기들을 보게 하십니다. 이미 베드로에게 있어서의 생선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 보게 하심으로 153마리나 되는 생선과 함께 모두가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막연하게 기쁨을 주기보다는 주님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겠다는 의도가 서려 있습니다. 우리가 주 앞에 바로 섰을 때 주님은 반드시 세상 사람이라도 확인할 수 있는 풍성한 축복의 증거를 보여 주실 것이다.

 

셋째로 주님은 함께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밤새도록 바다에서 지새웠던 제자들, 그들 앞에 고기들은 잡히지 않았고, 그들은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지쳐있는 제자들 앞에 주님께서 나타나셨고, 예수님은 선장 되어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명령하신다. 그들은 순종했고 153마리의 고기가 그물 안으로 몰려오는 기적을 그들은 체험한다. 제자들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 주님과 함께 했을 때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전에 목회를 하면서 너무 힘들어하고 있었을 때이다. 어느 노 목사님 한 분이 제게 와서 "이 목사 왜 그렇게 어렵게 일하나! 맡겨 버리게. 그러면 쉽게 할 수 있네"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하면 밤이 맞도록 수고해야 고기 한 마리도 건져 올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유능한 선장이 필요합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생명 없는 이가 어떻게 결실 할 수 있겠습니까? 부활의 생명을 지니신 그분을 모시고 결실해야 하지 않겠는가!

 

영국의 계관시인 테니슨은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아름다운 언어로 찬양한 시인이었다. 어느 날 그는 시골길을 가다가 행복한 얼굴로 열심히 일하는 중년 부인을 보았다. “오늘 아침에 좋은 소식이 있나 보죠?” 테니슨이 묻자 부인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한 가지 소식밖에 모른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테니슨도 말했다. “부인, 그것은 오래된 소식이자 새로운 소식이며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면 그리고 그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넉넉히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당신의 삶속에 진정 부활의 기쁨이 있는가?

부활은 성도의 유일한 소망이다. 그분이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망적이다. 우리는 죄인이었다. 죽은 자였다. 그러한 우리의 모습에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새 생명을 불어 넣으셨다. 다시 사신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자.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늘 해마다 부활절을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한 부활의 신앙을 가지지 못했기에 오늘도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근심하며 두려워하며 떨며 낙심하며 살아갑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며 금년 부활절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부활에 이르면서 참 능력을 체험하게 하시고 참 생명을 수용하게 하시고 부활의 능력을 몸으로 체험하며 감사 감격한 그리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죽음과 사탄을 물리치신 승리의 날을 경축하는 찬양으로 온 세상이 가득 메워지게 하옵소서,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도 죄악의 몸을 씻고 주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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