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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살후2:1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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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http://www.john316.or.kr |
데살로니가후서(6) 굳건하게 해야 할 3가지 (살후 2장 13-17절)
1. 복음을 굳건하게 붙잡으라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 받게 하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13절).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즉 복음의 진리를 믿어야지 능력과 표적과 기적을 믿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꾸만 헛된 종말사상과 표적 중심적인 믿음으로 이탈하지 말고 가르침을 받은 대로 복음을 꼭 붙잡으라고 권면합니다(15절). 가끔 보면 ‘복음’을 믿기보다 ‘믿음’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을 믿으면 언젠가 시험에 빠질 때가 반드시 옵니다.
디스크로 몇 십 년 고생한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 지병을 고치려고 유명한 기도원은 다 찾아갔고 신령한 사람을 찾아 수없이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가 나중에 말했습니다. “목사님! 왜 병 낫게 해준다는 분들은 그렇게 거짓말을 잘해요. 그들은 안수기도를 할 때는 꼭 고친다고 장담하지만 막상 고치지 못하면 다 제가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해요. 저 같이 몇 십 년 고생한 환자에게 왜 간절한 믿음이 없겠어요? 그런데 병이 낫지 않으면 믿음 없다는 소리까지 들으니까 더 상처를 받고 이젠 안수 받기가 겁나요.”
치유기도 후에 치유가 없을 때 “당신이 믿음이 없어서!”라고 말하는 것은 병자를 이중 삼중으로 상처를 입히는 고약한 행동입니다. 이제 “병이 낫는다고 믿으라!”고 하는 심리치료에 영혼을 맡기지 마십시오. 기도 받는 것보다 기도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병 치유를 위해 기도할 때도 ‘믿음을 믿음’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치려고 하십시오. 그처럼 복음을 꼭 붙잡아야 진정한 은혜를 체험할 것입니다.
2. 선한 일을 굳건하게 하라
사도 바울은 위로의 말과 함께 모든 선한 일을 굳건하게 계속하라고 도전합니다(16-17절). 당시 일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헛된 종말론에 빠져 “이렇게 일하면 뭐해? 곧 세상이 끝날 텐데.”라고 하면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기도와 전도만 했습니다. 그런 모습은 종말을 대비하는 바른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일 종말이 와도 자신이 현재 해야 할 책임을 망각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 진짜 종말을 대비하는 바른 자세입니다.
1992년 시한부 종말론 열풍이 불 때 직장을 그만두고 교회에 와서 기도와 전도만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물론 교회의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맡은 일을 팽개치고 교회에 와서 살면 안 됩니다. 풀타임 사역자는 자기 소명을 따라 교회에서 살 정도가 되어야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일과 직업에 최선을 다하면서 동시에 교회 봉사도 최선을 다하길 원하십니다.
가끔 교회에 구걸하러 오는 사람 중에 몸이 멀쩡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에게 “왜 그렇게 다니느냐?”고 하면 “일거리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을 낮추고 찾아보면 왜 일거리가 없습니까? 한 목사님이 그런 사람들에게 “일당 5만원을 줄 테니까 내일 9시까지 교회에 나와 청소해주세요!”라고 했는데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은 잘못된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을 굳건하게 감당하는 책임적인 사람을 책임져주십니다.
3. 선한 말을 굳건하게 하라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모든 선한 일을 굳건하게 하면서 선한 말도 굳건하게 하라고 도전합니다(17절). 종말이 왔다고 두려움과 공포를 조장하는 말을 퍼뜨리지 말고 서로 위로하고 소망을 주는 말을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좋은 만남을 허락해주셨습니까? 서로 위로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위로란 누군가를 정신적으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리더의 가장 큰 일이 무엇입니까? 양떼를 위로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리더는 양떼를 위로하면서 오히려 양떼로부터 위로를 받을 때도 많습니다. 얼마나 복된 관계입니까? 이 세상에 위로가 전혀 필요 없을 만큼 강한 강철영혼은 없습니다. 강한 사람에게도 약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위로가 필요합니다.
서로 위로해주십시오. 부부가 서로 위로하고, 부모와 자녀가 서로 위로하고, 목회자와 성도가 서로 위로하고, 성도와 성도가 서로 위로해야 합니다. 한 마디의 위로가 때로는 위로 받는 사람에게 살아갈 엄청난 의미와 힘과 용기를 줍니다. 그렇게 누군가를 위로해주려고 애쓰면 그가 속한 공동체의 구석구석까지 따뜻한 영적인 온기가 흘러넘치게 되고 더 나아가 신비하게 하나님이 그들의 위로자가 되어주십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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