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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살후3:1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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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http://www.john316.or.kr |
데살로니가후서(9) 종말을 대비한 3대 자세 (살후 3:13-18)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하다 보면 낙심하게 하는 일을 만나지만 그때 낙심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13절).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끝낼 때도 비슷한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이 구절에서 “때가 이르매”란 표현은 대단히 중요한 원리를 포함합니다. 즉 씨를 뿌리면 반드시 거두지만 거두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왜 낙심이 찾아옵니까? 기다림의 시간에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이 한국 사람입니다. 어떤 권사님이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인내를 주소서. 지금 당장 주소서!” 여기에 한국인의 비극이 있습니다. 물론 어떤 것은 당장에 이뤄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명과 인격의 영역에서는 “때가 이르매”란 기다림이 없이는 복된 결과가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려면 10달이 되어야 합니다. 7달 반에 태어나면 미숙아가 됩니다. 아무도 그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에서는 여덟달반의 인격과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처럼 인생 여정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삶의 과정에서 정당하게 승부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 비극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은 결과만 얻어내려고 하지 말고 좋은 일을 했거든 열매를 얻기까지 기다리며 포기하지 마십시오.
2. 바른 사람과 어울리십시오
사도 바울은 때로는 부드럽게 권면하지만 때로는 아주 강하게 말씀을 선포합니다.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자신이 편지로 적은 말을 순종하지 않거든 그를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고 했습니다(14절). 마치 왕따를 시키라는 말 같아서 언뜻 보면 거부감이 듭니다.
어떻게 대 사도가 왕따를 조장합니까? 그만큼 잘못된 종말론의 부정적인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사랑해야 하지만 어울리지 말아야 할 사람과는 어울리지 말아야 합니다. 나쁜 것에 물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따돌림의 대상에게는 깨달음의 기회를 주고 그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반면교사가 되어 잘못된 사상에 물들지 않게 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때로는 거룩한 왕따도 필요합니다.
일반 왕따와 거룩한 왕따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거룩한 왕따는 영혼을 위한 조치라는 점이 다릅니다. 그래서 왕따를 당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마음에 의해 그런 조치가 취해져야 합니다(15절). 결국 거룩한 왕따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일시적인 왕따이지만 어떤 사람을 무시하거나 더럽다고 피하는 의미의 왕따가 아닙니다. 즉 최종 선을 위해서 잠시의 아픔과 상처의 현장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3. 굳건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사도 바울은 때로 강한 말로 질책하기도 했지만 평강과 은혜를 빌어주는 축복으로 서신을 마칩니다(16절).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안정감과 확신을 주려고 본 서신서가 자신이 분명히 쓴 서신임을 마지막으로 인증합니다(17절). 그처럼 편지 인증을 하고 축도로 서신을 마친 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서신서의 권위를 인정하고 서신서의 내용을 따라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생활을 하다가 기다림에 지쳐 선행과 기다림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은 다릅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일은 때로 너무 느려 보여서 성질 급한 사람들은 답답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때에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처사가 때로는 이해되지 않아도 기도하면서 넉넉한 믿음으로 기다리면 하나님이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마음의 소원을 이뤄주실 것입니다.
믿음은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의 뜻이 이뤄질 때 모든 것이 최선이 된다고 믿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사실 주님의 뜻이 더디 이뤄지는 것은 하나님의 인내 때문입니다. 그 기다림의 기간은 모두가 구원받도록 심판을 연기하는 집행 유예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이 힘든 기간이 아니고 오히려 복된 기간이라는 넉넉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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