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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석상의 교훈-고난주간

마태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178 추천 수 0 2013.04.04 23: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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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6:17-30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http://www.john316.or.kr 

최후의 만찬석상의 교훈 (마태복음 26장 17-30절)

 

< 하나 됨을 추구하십시오 >

 교회생활을 할 때 꼭 알아야 할 지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우들의 정치적인 견해가 다른 것에 너무 충격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라도 얼마든지 정치적인 견해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여당 편이고 어떤 성도는 야당 편입니다. 세상에서는 국회의원처럼 멱살 쥐고 싸울 수 있고 건배할 때도 여당은 “위하여!”라고 하고 야당은 “위하야!”라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정치적인 견해가 달라도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가장 피하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선거 때입니다. 교회마다 여당 편 교인과 야당 편 교인은 대략 절반씩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와 목회자를 사랑합니다. 목회자도 역시 둘 다 사랑하기에 정치적인 편향성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양쪽 교인들을 다 사랑하기에 어느 한 쪽에 투표하면 반대 성향의 교인들을 실망시키는 것 같아서 투표권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목회자가 제일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돈일까요? 그러나 잘 나눈다면 목회자가 돈이 있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이성일까요? 물론 조심해야 하지만 인간의 본능을 생각할 때 그 문제에서 완벽함을 자신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문제를 은혜로 지켜주시니 감사할 따릅니다. 사실 돈이나 이성보다 목회자가 더 피해야 할 것이 정치적인 편향성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정치적인 편향성을 드러내면 교인 절반이 실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성도가 가장 배타해야 할 것은 바로 ‘배타적인 성향 자체’입니다.

 이차 세계 대전 중 많은 성도들이 히틀러에 의해 감옥과 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그중에 마틴 니오뮬러란 한 독일인이 있었습니다. 성탄절이 되어 독방에서 지내던 그가 성탄절 특별선물로 다른 3명의 성도가 수용된 감방으로 잠깐 옮겨졌습니다. 그때 만난 3명은 각각 구세군, 오순절, 감리교 출신이었고 자신은 독일 자유 복음주의 교회 출신이었습니다.

 그들은 폭격에 불타 버려진 문 조각을 탁자로 삼아 매일 받는 검은 빵과 물로 성찬식을 가졌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며 니오뮬러는 말했습니다. “당시 차가운 돌 마루 위에 같이 무릎을 꿇었을 때 우리의 교단적인 차이는 봄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면 아집과 편견은 사라집니다. 영혼과 가정과 교회를 파괴하는 이단만 아니라면 교파가 다른들 무슨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 성도는 차이를 차별로 격하시키지 않고 찬란한 무지갯빛으로 승화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남에 대한 판단을 그치고 때로는 하나가 되기 위해 자기 방식대로 일하려는 권리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권리까지도 포기해야 합니다. 최후의 만찬은 그런 하나 되는 삶을 잘 교훈합니다.

< 최후의 만찬석상의 교훈 >

 본문에는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최후의 만찬석상의 교훈은 주님이 주시는 마지막 교훈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교훈들을 남다르게 중시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본문은 어떤 교훈을 줍니까?

1. 음지의 헌신자가 되십시오

 본문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무교절의 첫날’은 누룩 없는 떡을 먹는 첫째 날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목요일입니다. 그 날 제자들은 예수님께 유월절 식사를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는지 물었습니다. 유월절 식사는 오늘날로 말하면 유월절인 금요일 해지기 전에 양을 잡아 쓴 나물과 함께 준비했다가 해지는 저녁 6시쯤에 하는 식사입니다. 그 식사를 어디서 할 것인지 하루 전에 물은 것입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로서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찾았기에 유월절 식사 장소를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식사에 필요한 준비물인 어린양, 무교병, 포도주, 쓴 나물, 등불 등의 마련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식사 장소를 물었을 때 제자들은 그 유월절 식사를 하루 전에 가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하루 전에 유월절 식사를 했습니까? 유월절 어린양은 금요일에 잡는데 예수님이 금요일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유월절 양이 되실 것을 이미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에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이 구절에서 왜 마태는 ‘아무’라고 하면서 만찬장소 제공자의 이름을 감췄을까요? 당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요주의 대상인 상황에서 만찬장소 제공자의 신분을 감춰주려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 아무개는 요한 마가의 아버지나 개심한 니고데모나 부자였던 아리마대 요셉이란 견해도 있지만 정확한 것은 모릅니다. 어떤 학자는 그 장소 제공자가 큰 다락방을 소유할 만큼 부유했던 예수님의 무명의 친구였다는 주장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 아무개에게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그 아무개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호칭할 정도로 존경했고 예수님이 부담스런 부탁을 스스럼없이 할 정도로 음지에서 예수님을 위해 헌신한 ‘유력한 음지의 헌신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이 아무 때나 쓰실 수 있는 유력한 음지의 헌신자가 되십시오. 또한 거룩한 비전을 향해 달려가는 사명자의 영적인 배경 및 음지의 동역자들이 되십시오.

 새벽에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로 만물이 살찌게 되듯이 참된 우정과 동역은 소리 없는 헌신적인 행동을 통해 나타납니다. 말로는 친구를 아낀다고 하면서 친구를 돈을 빌리는 대상이나 컨닝 인생을 위한 이용대상으로 여기면 그 관계는 곧 깨집니다. 그러므로 복된 인간관계를 원하면 말과 생각으로만 사랑하지 말고 소리 없는 행동으로 사랑하고 헌신하십시오. 그때 하나님의 은혜도 이슬 같이 소리 없이 그의 삶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2. 사람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제자들이 예수님이 시키신 대로 무명의 헌신자의 집에 있는 큰 다락방에서 유월절 식사를 준비했습니다(19절). 당시 유월절 식사를 준비할 때 가장 핵심적인 일은 어린양을 잡는 일이었습니다(17절). 그런데 본문에서 양을 잡는 것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날이 저물 때, 즉 목요일 저녁 6시 경에 최후의 만찬장에서 예수님이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습니다(20절). 그리고 식사하실 때 말씀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21절).” 당시에 가룟 유다는 은밀하게 예수님을 팔 계획을 진행시켰는데 예수님이 그 사실을 알고 회개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충격과 근심 중에 물었습니다. “주여! 접니까?” 그때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23절).” 마가복음에서는 그냥 예수님과 함께 먹는 자가 배반한다고 했지만(막 14:18), 본문에서는 예수님과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배반한다고 했습니다. 유대 관습에 따르면 함께 식사 그릇에 손을 넣는 사이는 매우 친밀한 사이를 뜻하는데 그 말은 가룟 유다가 12제자 중에서도 결코 소외된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런 은혜와 사랑을 받고도 배반한 것입니다.

 사람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사람을 의심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람에게 자기 인생을 맡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지켜줄 만큼 강한 존재가 아닙니다. 인생은 아침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약 4:14). 기세등등하던 권력자들이 권좌에서 밀려나 줄줄이 죽거나 감옥에 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사람은 다 약한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족과 자녀도 맡기고 사업과 앞날도 맡기십시오. 특히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사람에 대해 원망하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런 태도는 그가 사람을 의지했다는 증거로서 그러면 결국 문제에 지게 됩니다. 어려워도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굳게 붙잡고 나가면 조만간 반드시 문제가 해결되고 역전 인생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3. 언어를 잘 살펴서 쓰십시오

 예수님은 자신을 팔 배신자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24절).” 배신하는 비참한 운명이 되기보다 차라리 나지 않는 것이 좋았을 것이란 말씀은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런 말까지 들었으면 바로 회개했어야 하는데 가룟 유다는 모른 척 하고 물었습니다(25절).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다른 제자들은 그때 다 예수님을 “주님(퀴리오스)!”이라고 호칭했지만 가룟 유다만은 “랍비(선생님)여!”라고 호칭했습니다. 당시에 대적들도 예수님에 대해 ‘랍비’라고 호칭했는데 그처럼 예수님께 경외심이 결여된 호칭을 쓴 것만 봐도 가룟 유다는 이미 주님의 메시야 되심을 부인하고 주님으로부터 마음이 떠났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제자들은 다 자신의 연약성을 인정하고 “나는 아니지요?”라고 묻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가룟 유다가 위선적으로 묻는 것은 얼마나 뻔뻔합니까? 지금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도 그 뻔뻔한 말에 기가 막힐 지경인데 예수님은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겠습니까? 그래서 직설적으로 “네가 말했다.”고 하시고 가룟 유다와의 대화를 끝내셨습니다(25절). 그러자 가룟 유다는 그 현장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이 가룟 유다의 말하는 스타일을 보면서 언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언어는 자신의 얼굴입니다. 그러므로 언어를 잘 가꾸고 살피십시오. 반말과 상스러운 말과 비속어도 금해야 하지만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는 말도 최대한 주의하십시오. 물론 힘이 빠진 동료와 친구에게 믿음과 희망과 격려를 주기 위해 자신감이 넘치는 말을 하는 것은 괜찮지만 상대에게 자랑과 교만으로 들려질 수 있는 말은 힘써 주의해야 합니다.

 그처럼 자신의 언어도 잘 살피면서 동시에 남의 언어도 잘 살피십시오. 누군가 상스러운 언어를 하면 때로는 따끔하게 지적하고 자녀가 그런 언어를 쓰면 강력하게 교훈하십시오. 그렇게 지적할 수 없는 관계이거나 지적할 가치조차 없다면 가급적 멀리서 사랑하십시오. 속된 말로 “싸가지가 없다!”는 말은 언제 씁니까? 대개 언어를 보고 그런 말을 씁니다. “싸가지가 없다!”는 말은 “싹수가 노랗다.”는 말이고 결국 “싹과 가지가 없어서 열매 맺는 인생을 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언어가 나쁘면 그 인생은 희망이 없습니다.

 왜 한국 교회가 지금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까?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근원적인 죄성과 연약성 때문이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 교회가 성도 수가 많아지고 힘이 생기면서 그 힘을 과시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부 성공한 목사나 성격파 목사가 강단에서 말을 함부로 하는 것도 한국 교회에 큰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옛날에 일부 부흥사들은 세상에서도 잘 쓰지 않는 본능을 자극하는 욕과 비속어를 부흥회 중에 내뱉으면서 얼마나 많은 강단을 더럽혔습니까? 성도들은 그들이 내뱉는 웃기는 욕설을 듣고 은혜 받았다고 여겼습니다. 저로 그랬었지만 목회자가 되고 보니까 그것이 은혜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허무한 개그와 욕설이 섞인 설교를 듣고 웃은 것을 은혜 받았다고 하니까 그런 부흥사들은 더욱 안하무인으로 거친 언어를 쓴 것입니다.

 이제는 강단에서 그런 잘못된 언어들이 활개 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부흥강사가 강단에서 욕설을 쓰면 용기 있게 일어서서 말하십시오. “목사님! 아무리 부흥강사라고 해도 그런 말을 쓰시면 됩니까?” 강단에서의 욕설은 누가 봐도 명백한 잘못이고 영혼에 큰 악영향을 미치기에 그런 때는 용기 있게 일어서서 그런 말을 쓰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제지가 없으면 김일성처럼 독재 목사가 되어 망하는 길로 갈 수 있기에 부흥강사 본인을 위해서도 그런 제지는 꼭 필요합니다.

 욕설과 허무 개그를 듣고 은혜 받았다고 하면 강단이 망가지고 결국 교회도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그처럼 너무 잘못된 언어를 쓰면 그 잘못을 용기 있게 지적도 해야 하는데 한국 교인들은 너무 착해서 그런 것들을 용납하니까 김일성 목사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물론 목회자를 섬기는 마음으로 비판도 자제하고 최대한 참아주는 것은 복 받을 좋은 태도입니다. 그러나 강단에서 욕하는 것과 같은 마지노선을 넘는 언행까지 그냥 참고 들어주면 안 됩니다.

 생명을 주신 부모에게 다른 것은 다 순종하고 심지어 사명을 따라 죽으라면 죽는 흉내도 내십시오. 그러나 부모가 자식 앞에서 상스러운 욕설을 남발하면 부모에게라도 당당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십시오. “아버님! 그런 욕만은 삼가주십시오.” 부모라도 자식 앞에서 지켜야 할 예의는 지켜야 합니다. 하물며 거룩한 강단에서 목회자가 욕설을 한다면 어떻게 그냥 지켜보기만 합니까? 그런 상황이 생기면 당당하게 회중 가운데 일어서서 설교 중에도 말씀하십시오. “목사님! 강단에서 욕은 삼가주십시오.”

 때로는 그런 용기가 있어야 김일성 목사의 출현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또한 한국 교회의 힘 만능주의와 성공과 외형 지상주의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말하는 사람의 현재 삶의 반영이자 그의 미래의 모습입니다. 강단의 언어도 한국 교회의 미래상을 좌우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혼은 물론 한국 교회의 싹수가 노랗게 되지 않고 파랗게 되도록 늘 좋은 언어로 좋은 미래를 선도하는 초석이 되십시오.

4.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십시오

 본문 26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가룟 유다가 떠나고 예수님은 떡을 가지고 축복하신 후에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했습니다.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다.” 성만찬에서 떼어진 떡은 ‘찢기신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고 그 떡을 먹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 됨을 상징합니다.

 떡을 먹은 후에 예수님은 잔을 가지고 다시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했습니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내 피 곧 언약의 피니라(27-28절).” 성만찬에서 마시는 포도주는 ‘예수님의 죄 사함의 피’를 뜻하고 그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음을 상징합니다.  

 그렇게 떡과 잔을 나눠주신 후에 예수님은 포도주를 천국에서 새것으로 제자들과 함께 마실 날까지 마시지 않겠다고 했습니다(29절).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영원한 천국을 얻게 될 것을 암시한 말씀입니다. 그 말씀 후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함께 찬미하면서 체포당할 고난의 장소인 감람산으로 나갔습니다(30절). 결국 성찬식은 ‘자신이 예수님과 한 몸’임을 확인하고 동시에 ‘성도가 예수님 안에서 한 몸’임을 확인하면서 서로 사랑할 것과 어떤 고난에서도 찬미를 잃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의식입니다.

 성도의 가장 큰 복은 예수님과 하나 되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서로 사랑하며 돕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꿈꾸셨던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가족처럼 사랑하며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인종과 지역과 계층과 문화와 종교의 장벽을 십자가로 무너뜨려 서로 어울려 사는 세상을 꿈꾸셨습니다.

 교회는 무지개처럼 각각의 색깔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런 공동체를 이루는 촉매제입니다. 결국 십자가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사닥다리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구름다리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자기 마음대로 살지 말고 자기 마음을 주면서 하나 되기에 힘쓰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을 나누며 많은 생명을 세워주고 돌봐주라고 주신 것입니다.

<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십시오 >

 어느 날, 한 아이가 술래잡기 중에 폐허가 된 부엌에 숨었다가 구석에서 고양이의 반짝이는 눈을 보고 놀라서 뛰쳐나왔습니다. 고양이가 그곳에서 출산 후 새끼들을 돌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부터 고양이는 영물이란 얘기를 들어서 쫓아내지 못하고 불안해하는데 그 얘기를 듣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얘야! 새끼 낳느라고 사지에 갔다 온 생명을 잘 보살펴주어야지.” 그리고 어머니에게 죽을 쑤게 해서 고양이를 먹여주었습니다. 그 아버님의 생명교육이 그의 마음에 오랜 여운과 깊은 교훈을 남겼다고 합니다.

 다른 생명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 되기를 힘쓰고 하나 됨을 위해 최대한 자기 것을 나누십시오. 마음을 나누고 그 마음을 물질과 시간의 나눔으로 표현하는 삶만큼 복된 삶은 없습니다. 왜 우리 분당샛별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를 힘써 지향합니까? 나눔 자체도 축복의 원천이 되지만 영혼을 위한 나눔은 최대의 축복의 원천이 됨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난 5년간 서민들의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각 교회들의 재정도 상당히 어려워졌고 전방에 나간 선교사님들도 후원이 줄면서 상당히 어려워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우리 교회도 내핍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지난 5년간 한 번도 교회재정을 저 자신을 위해 써본 적이 없고 식사조차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대접할 때는 재정이 없으면 마이너스 통장을 써서라도 저의 개인 재정으로 대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선교사님들의 기도제목에는 항상 최선을 다해 반응했습니다. 작년에는 큰 재정적 헌신을 통해 총회도 섬겼습니다.

 그런 나눔의 증거들을 앞세워 하나님께 수시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렇게 재정을 잘 쓰려고 애쓰는 저희를 기억해주셔서 인물을 만나게 하시든지 아니면 저희 중에 인물이 나오게 하소서! 그래서 멋지게 나누어 많은 생명들을 일으키고 한국 교회에 나눔을 바람을 일으키게 하소서!” 그렇게 소중한 뜻을 품고 나가니까 하나님이 종종 생각지 못한 음지의 헌신자를 붙여주셔서 저희들의 소중한 뜻을 지탱시켜주실 때도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성도의 헌신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이제 성찬식에 참여하면서 ‘예수님과 한 몸’임을 확인하고 동시에 ‘예수님 안에서 한 몸’임을 확인하면서 사랑과 나눔을 새롭게 다짐하십시오. 사람을 너무 믿지는 말고 그저 최대한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자기 것을 힘써 나누십시오. 그리고 나눌 때는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를 정도로 나누는 음지의 헌신자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양지로 이끄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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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4 사사기 인생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 삿1:16-26  이한규 목사  2013-04-04 2103
8803 사사기 복을 구하십시오 삿1:8-15  이한규 목사  2013-04-04 1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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