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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5:4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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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http://www.john316.or.kr |
고난주간) 성도의 3대 필수적인 신앙 (막 15:42-47)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은 안식일을 준비하는 준비일이었습니다(42절). 예수님은 당시 시간으로 제 9시, 오늘날 시간으로 오후 3시에 돌아가셨습니다. 약 3시간만 지나면 안식일이 되고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기에 십자가 밑에 있던 여인들은 “누가 빨리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서 장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안타깝게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내리려면 빌라도의 허락을 맡아야 하는데 예수님의 12제자들은 다 도망가 버려서 아무도 빌라도를 찾아 탄원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오후 4시가 되고 5시가 되어도 아무도 빌라도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무거운 침묵을 깨고 한 사람이 당돌히 빌라도를 찾아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존경받는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었기 때문입니다(43절).
70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총괄하는 유대 사회의 최고 의결기구로서 그 공회원은 오늘날의 국회의원보다 훨씬 막강한 권력을 가졌습니다. 그처럼 신분이 높은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를 찾아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한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자신도 많은 갈등과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은밀한 제자란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다 잃을 수 있고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 모함으로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주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겼습니다(요 19:38).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죄도 없이 끝까지 십자가를 묵묵히 지는 모습을 보며 예수님이 메시아란 그의 믿음이 커졌고 또한 십자가상에서 말씀하시는 한 마디 한 마디도 그의 마음을 감동으로 젖게 했습니다. 결국 그 믿음과 감동이 명예와 권력에 대한 추구와 두려움을 이겨내서 마침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한 것입니다.
믿음이 자라면 자신의 신앙을 공개하는 영적인 커밍아웃(Coming out)이 생깁니다. 사실상 신앙생활이 진실하게 되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바로 신앙을 공개할 때입니다. 그처럼 담대한 미음으로 신앙을 공개하고 “제가 교회 다녀서 술을 못합니다!”라고 하면 친구도 끊기고 거래도 끊길 것 같지만 그런 모습이 신뢰를 주어서 오히려 더 진실한 친구가 생기고 더 진실한 거래가 트일 것입니다.
2. 내세적인 신앙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담대하게 나와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한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장례라도 잘 치러드리겠다는 동정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른 유대인들과는 달리 강한 메시아 신앙과 내세적인 신앙을 가졌습니다(43절). 그처럼 영생 천국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면 삶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모릅니다. 평범한 사람도 내일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면 비범한 삶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그때 성도의 가장 기초적인 2대 덕목인 주일성수와 새벽기도가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가 됩니다.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 땅의 왕국을 기다리며 메시아가 철장권세를 가지고 흰 말을 타고 와서 초인적인 능력으로 수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로마를 물리치고 옛날의 다윗 왕국보다 더 큰 대제국을 건설하는 꿈을 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대 군중들을 거느리기는커녕 작은 개척교회 정도 밖의 목회를 못했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는 흰 말 대신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유대 종교 리더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을 도저히 메시아로 볼 수 없었습니다.
또한 유대 종교 리더들에 의해 예수님이 붙잡혀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고 군중들도 “진짜 메시아라면 저렇게 힘없이 끌려 다닐 리가 없다! 가짜다! 우리가 속았다!”고 해서 결국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유대인들과는 달리 아리마대 요셉은 이 땅의 왕국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진짜 하나님 나라는 칼과 창이 아닌 사랑과 용서로 이뤄지는 나라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힘없이 끌려 다니다가 십자가에 달리시는 모습을 보면서 더 믿음이 깊어졌습니다.
현세적인 신앙과 내세적인 신앙이 얼마나 차이가 큽니까? 이 땅의 성공에만 관심을 가지면 예수님의 마음에 대못을 박고 결국 불행해집니다. 그 말은 이 땅에서 성공하지 말아야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꿈꾸십시오. 그래서 성도 중에 성공한 경제인도 나오고, 유력한 정치인과 유능한 전문인들도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리마대 요셉처럼 항상 내세적인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쁘게 설 때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3. 헌신적인 신앙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의 허락을 받자마자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다가 가장 값비싼 장례용품인 세마포로 싸서 자기가 준비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안치했습니다(46절). 당시 바위 속에 판 무덤은 돈이 많고 지체가 높지 않으면 구입할 수 없었던 값비싼 무덤이었습니다. 그 무덤을 예수님께 내어드린 것입니다. 그처럼 부활과 영생을 믿는 내세적인 신앙은 반드시 헌신적인 신앙으로 발전합니다.
사람이 많이 가질수록 그것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정말 어렵지만 그래도 떠나는 연습을 잘해야 합니다. 어차피 붙들 수 없는 것을 붙들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릅니다. 반면에 놓치지 말아야 할 소중한 것을 위해 자신의 생명과 소유를 드리는 삶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세상적으로도 누구보다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그 성공의 열매를 주님께 드림으로 신앙적으로도 가장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살면서 돈도 열심히 벌고 성공하십시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 성공과 소유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함으로 신앙적으로도 성공하십시오. 나 한 사람의 믿음의 헌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누군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한 사람이 큰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하기에 한 사람의 헌신은 결코 작은 힘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신앙을 공개하고 헌신하면 남에게도 그 영향이 바로 미쳐집니다.
실제로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의 신앙을 공개하고 헌신하자 그 모습에 영향을 받고 바로 또 한 사람의 공회원이 자기의 신앙을 공개하고 헌신했습니다. 바로 니고데모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로부터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자기의 무덤에 장사하려고 하자 니고데모도 담대하게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장사 지내는 일에 동참했습니다(요 19:38-39).
좋은 신앙은 전염됩니다. 사람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서로 영향을 끼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 한 사람의 헌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내가 뜨겁게 기도하면 교우들도 같이 뜨겁게 기도하게 됩니다. 내가 변하면 내 가족과 친구와 이웃도 변합니다. 내가 감사하면 내 구역 식구들도 감사합니다. 내가 겸손해지면 내 이웃들도 겸손해집니다. 내가 사랑하고 용서하면 교회에 사랑과 용서가 넘치게 됩니다. 그처럼 어디에 가든지 좋은 일을 일으키고, 좋은 생각과 좋은 삶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십시오.
특별히 거룩한 일을 위해 앞장서서 헌신하십시오. 당시 아리마대 요셉의 헌신적인 행동이 수많은 여인들과 숨은 제자들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되었겠습니까? 살면서 아리마대 요셉처럼 그동안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을 주님을 위해 자랑스럽게 버릴 줄 아는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자기 것을 포기하고 피와 땀과 눈물의 수증기를 하늘로 올려드리면 그의 삶에 늘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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