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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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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2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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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동호 목사 |
참고 : | 2013. 3. 24 |
뿌리는 목회, 거두는 목회.
시 126:1-6.
여러해 전 코스타에서 박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많은 은혜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늘 은혜교회를 한번 와보고 싶었습니다. 드디어 오늘 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1991년 동안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노회에서는 제일 큰 교회였습니다. 아직 어린 목사라할만큼 젊은 목사가 나름 열심히 목회하였더니 부임 첫 해 제법 숫적인 부흥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어리석게 하고 교만하게 하였습니다. 늘 그것이 제 마음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거두절미하시고 '네 목회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럼 누구 목횝니까?' 하나님이 대답해 주셨습니다. '너희 교회 원로목사 목회니라.' 조금 억울한 마음에 하나님께 따지듯 말씀드렸습니다. '1,300명 까지는 원로목사님이 하신 것이지만 그 후에 늘어난 것은 제가 한거잖습니까?'
하나님이 계속 대답해 주셨습니다. '네가 씨를 뿌렸냐? 밭을 갈았냐? 네 선배가 닦아 놓은 터에 와서 좀 수고하여 수가 늘었다고 그걸 다 네 몫이라고 하는 놈이 어디있냐?'
그날 저는 제 평생에 교훈이 되고 기준이 되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목회에는 두 종류의 목회가 있다. 하나는 뿌리는 목회이고 또 다른 하나는 거두는 목회이다.
거두는 목회도 중요하지만 정말 하나님께 칭찬받고 상받는 목회는 뿌리는 목회다.
그날로 제 목회의 철학과 방향이 정해졌습니다. 그것은 뿌리는 목회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저도 뿌리는 것보다는 거두는게 더 좋습니다. 그러나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를 생각하고 힘써 거두는 것 보다 뿌리는 것에 더 힘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는데 조금씩 조금씩 연습을 해보니 거두는 것보다 더 보람이 있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뿌려 그것의 열매를 거두게 되면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또 다시 뿌리는 일을 찾았습니다. 농부가 가을에는 추수를 하지만 다시 봄이 되면 또 다시 파종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뿌리는 목회를 통하여 제 목회라는 농사는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계속 봄을 맞고 있습니다.
저의 뿌리는 목회는 나름 발전하였습니다.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교회를 분립하여 나눈다거나, 저희 교회가 하고 벌이는 이런 저런 조금은 파격적인 일들을 캐보면 그 이유가 뿌리는 목회 철학과 정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뿌리는 목회의 첫 적용은 청년 목회였습니다. 동안교회에서의 10년 목회는 청년목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청년들의 부흥이 있었습니다. 제가 동안교회를 떠날 때 4부 예배가 청년들 예배였는데 청년 예배 출석이 1,600명 정도였으니까 처음을 생각하면 제법 큰 청년의 부흥이 있었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가 개척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시 4부 예배가 청년들 예배였는데 교회를 분립하기 직전 약 2천 명 정도의 청년들이 2천 석 예배당을 꽉채워 예배하였었습니다. 1부, 2부 3부에도 청년들이 예배하였는데 언젠가 조사해 보니 5천 명 출석 교인 중 67%가 20대와 30대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뿌리는 목회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뿌리는 목회의 핵심은 코스타였습니다.
KOSTA는 1986년 여름 미국 워싱톤 DC에서 홍정길목사님과 이동원 목사님에 의해서 유학생 수련회로 시작되었습니다. KOSTA란 KOrean STudent in America 란 뜻이었습니다.
이 집회가 발전하여 유럽과 일본과 남미 전 세계로 발전함에 따라 현재 KOSTA의 A는 All nations의 A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1월부터 12월까지 일년 내내 전 세계에서 수 만명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큰 집회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youth kosta까지 생겨 정말 글로벌한 한국 청년들의 영적운동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92년도에 처음 미국 코스타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코스타에서 돌아오자마자 장로님들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저 해마다 코스타에 가게 해 주십시오' 그 때 제 분위기는 그게 허락이 안 된다면 동안교회 사임할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정말 동안교회 담임목회보다 코스타 사역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동안교회를 시무할 당시 일년에 네 나라를 다녔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를 목회하면서는 일년에 평균 여섯 나라를 다녔습니다. 스스로 이렇게 이야기하면 곤란하지만 교회 사역보다 코스타 사역이 주고 우선이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코스타에는 언제나 독특한 영적인 감동이 있습니다. 코스타는 언제 어디서 누가 강사로 나서든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17-8년 전 쯤으로 기억이되는데 캐나다 토론토의 집회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저녁 집회에 특별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도저히 집회를 끝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했습니다. '그냥 가자'
집회는 새벽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계산을 해 보니 그 전날 오전 7시경부터 시작된 코스타 집회가 다음날 새벽 4시경 까지 쉬는 시간 없이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집회를 하면 아이들이 변합니다. 당연히 변합니다. 2회 토론토 코스타 때 과일 도매상을 하시는 장로님 한 분이 수 백명이 모인 청년들이 먹을 과일을 트럭으로 실어 오셨습니다.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이유는 1회 토론토 코스타에서 자기 아이가 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코스타 집회에서는 대개 첫날 복음을 제시하고 예수를 영접케 하는 시간을 갖고 마지막 날에는 선교 헌신자를 헌신하게 합니다. 코스타의 선교헌신은 꼭 목사가 되어 선교가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것도 부인하지는 않지만 대개는 전공과 직업적인 전문성을 가지고 선교적 사명을 다하는 것을 서원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자기의 전공을 가지고 해외 선교지에서 일년에서 삼년 정도를 헌신할 헌신자를 일으켜 세우는 시간이 있습니다.
작년 미국 시카고 코스타의 저녁 집회를 제가 맡았습니다. 그 집회에는 1,300명 정도의 청년들이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집회 때 제가 선교 콜링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그 콜링을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십일조 하게 해 주십시오' 다시 말해 1,300명 중 130명이 일어서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것은 130명만 서원 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의 전공과 직업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는 선교사적인 삶을 살겠다는 헌신을 합니다. 저는 이게 코스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일부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군대 몇 년을 가듯이 몇 년을 아예 구별하여 선교지에서 헌신할 사람을 일어서게 하는데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130명의 서원자를 일으켜 세운다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아 누구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하나님께만 몰래 기도하였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콜링을 하였습니다. 자기의 전공을 가지고 사역지에서 1년 에서 3년 정도 헌신할 사람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청년들이 일어서기 시작하였습니다. 울면서 강단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기 시작하였습니다.
느낌이 이상하였습니다. 정말 십일조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계수해 보니 126명이었습니다. 너무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1,300명의 십일조 130명을 달라고 기도하였는데 126명이 헌신하였다고...
그러자 잠시 후 스텝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집회 중에 기도실에서 중보기도하는 팀이 있는데 그 기도 팀원 중 4명이 헌신했다고.... 결국 꼭 130명이 헌신하였습니다.
저들은 전문적인 선교단체로 부터 선교 훈련을 받고 선교지로 파송되게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파송을 받아 헌신을 하게 되면 선교지가 바뀝니다.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제 살아오면서 참으로 복된 만남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코스타는 제인생 최고의 만남 중 몇 안 되는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코스타는 가난한 유학생들이 참석하는 집회라 저들에게는 적지 않은 참가비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늘 적자입니다. 참가 인원이 작으면 적자가 작아지고, 많아지면 적자가 많아집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코스타는 언제나 만원입니다. 코스타가 끝나면 늘 몇 몇 교회가 적자 분을 담당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코스타가 너무 커져서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코스타는 재정자립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와 지역에 있는 교회가 재정을 담당하라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나라와 지역의 코스타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본부를 운영하고 재정자립을 하지 못하는 지역의 코스타를 지원하기 위한 적지 않은 재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코스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회를 순방하며 후원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몇 만 원 혹은 만 원씩을 내는 후원자이 생겨 지속적으로 재정이 확보되어야만 안정적으로 이 기막힌 사역을 계속해 나갈 수 있습니다.
코스타 사역은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교회에 허락해 주신 특별한 은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에 이런저런 속상하고 암울한 일이 많아 낙심이 되다가도 코스타에 가서 몰려와 은혜를 받는 우리 아이들 청년을 보면 '우리 한국 교회는 망할 교회가 아니구나'하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코스타는 대표적인 파종 목회 다시 말해 뿌리는 목회입니다. 그 씨값을 여러분 보태주십시오.
저는 저 자신을 스스로 영적인 펀드매니저라고 생각합니다. 교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교인들의 보물을 어디에 투자하고 쌓아두게 하여야 할는지를 코칭해 주는 영적인 펀드매니저라고 생각합니다.
몇몇 좋은 펀드를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코스타 펀드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놓치면 손햅니다. 투자하세요. 감사합니다.
시 126:1-6.
여러해 전 코스타에서 박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많은 은혜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늘 은혜교회를 한번 와보고 싶었습니다. 드디어 오늘 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1991년 동안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노회에서는 제일 큰 교회였습니다. 아직 어린 목사라할만큼 젊은 목사가 나름 열심히 목회하였더니 부임 첫 해 제법 숫적인 부흥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어리석게 하고 교만하게 하였습니다. 늘 그것이 제 마음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제 마음에 말씀하셨습니다. 거두절미하시고 '네 목회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럼 누구 목횝니까?' 하나님이 대답해 주셨습니다. '너희 교회 원로목사 목회니라.' 조금 억울한 마음에 하나님께 따지듯 말씀드렸습니다. '1,300명 까지는 원로목사님이 하신 것이지만 그 후에 늘어난 것은 제가 한거잖습니까?'
하나님이 계속 대답해 주셨습니다. '네가 씨를 뿌렸냐? 밭을 갈았냐? 네 선배가 닦아 놓은 터에 와서 좀 수고하여 수가 늘었다고 그걸 다 네 몫이라고 하는 놈이 어디있냐?'
그날 저는 제 평생에 교훈이 되고 기준이 되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목회에는 두 종류의 목회가 있다. 하나는 뿌리는 목회이고 또 다른 하나는 거두는 목회이다.
거두는 목회도 중요하지만 정말 하나님께 칭찬받고 상받는 목회는 뿌리는 목회다.
그날로 제 목회의 철학과 방향이 정해졌습니다. 그것은 뿌리는 목회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저도 뿌리는 것보다는 거두는게 더 좋습니다. 그러나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를 생각하고 힘써 거두는 것 보다 뿌리는 것에 더 힘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는데 조금씩 조금씩 연습을 해보니 거두는 것보다 더 보람이 있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뿌려 그것의 열매를 거두게 되면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또 다시 뿌리는 일을 찾았습니다. 농부가 가을에는 추수를 하지만 다시 봄이 되면 또 다시 파종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뿌리는 목회를 통하여 제 목회라는 농사는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계속 봄을 맞고 있습니다.
저의 뿌리는 목회는 나름 발전하였습니다.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교회를 분립하여 나눈다거나, 저희 교회가 하고 벌이는 이런 저런 조금은 파격적인 일들을 캐보면 그 이유가 뿌리는 목회 철학과 정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뿌리는 목회의 첫 적용은 청년 목회였습니다. 동안교회에서의 10년 목회는 청년목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청년들의 부흥이 있었습니다. 제가 동안교회를 떠날 때 4부 예배가 청년들 예배였는데 청년 예배 출석이 1,600명 정도였으니까 처음을 생각하면 제법 큰 청년의 부흥이 있었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가 개척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시 4부 예배가 청년들 예배였는데 교회를 분립하기 직전 약 2천 명 정도의 청년들이 2천 석 예배당을 꽉채워 예배하였었습니다. 1부, 2부 3부에도 청년들이 예배하였는데 언젠가 조사해 보니 5천 명 출석 교인 중 67%가 20대와 30대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뿌리는 목회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뿌리는 목회의 핵심은 코스타였습니다.
KOSTA는 1986년 여름 미국 워싱톤 DC에서 홍정길목사님과 이동원 목사님에 의해서 유학생 수련회로 시작되었습니다. KOSTA란 KOrean STudent in America 란 뜻이었습니다.
이 집회가 발전하여 유럽과 일본과 남미 전 세계로 발전함에 따라 현재 KOSTA의 A는 All nations의 A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1월부터 12월까지 일년 내내 전 세계에서 수 만명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큰 집회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youth kosta까지 생겨 정말 글로벌한 한국 청년들의 영적운동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92년도에 처음 미국 코스타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코스타에서 돌아오자마자 장로님들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저 해마다 코스타에 가게 해 주십시오' 그 때 제 분위기는 그게 허락이 안 된다면 동안교회 사임할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정말 동안교회 담임목회보다 코스타 사역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동안교회를 시무할 당시 일년에 네 나라를 다녔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를 목회하면서는 일년에 평균 여섯 나라를 다녔습니다. 스스로 이렇게 이야기하면 곤란하지만 교회 사역보다 코스타 사역이 주고 우선이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코스타에는 언제나 독특한 영적인 감동이 있습니다. 코스타는 언제 어디서 누가 강사로 나서든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17-8년 전 쯤으로 기억이되는데 캐나다 토론토의 집회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저녁 집회에 특별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도저히 집회를 끝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했습니다. '그냥 가자'
집회는 새벽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계산을 해 보니 그 전날 오전 7시경부터 시작된 코스타 집회가 다음날 새벽 4시경 까지 쉬는 시간 없이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집회를 하면 아이들이 변합니다. 당연히 변합니다. 2회 토론토 코스타 때 과일 도매상을 하시는 장로님 한 분이 수 백명이 모인 청년들이 먹을 과일을 트럭으로 실어 오셨습니다.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이유는 1회 토론토 코스타에서 자기 아이가 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코스타 집회에서는 대개 첫날 복음을 제시하고 예수를 영접케 하는 시간을 갖고 마지막 날에는 선교 헌신자를 헌신하게 합니다. 코스타의 선교헌신은 꼭 목사가 되어 선교가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것도 부인하지는 않지만 대개는 전공과 직업적인 전문성을 가지고 선교적 사명을 다하는 것을 서원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자기의 전공을 가지고 해외 선교지에서 일년에서 삼년 정도를 헌신할 헌신자를 일으켜 세우는 시간이 있습니다.
작년 미국 시카고 코스타의 저녁 집회를 제가 맡았습니다. 그 집회에는 1,300명 정도의 청년들이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집회 때 제가 선교 콜링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그 콜링을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십일조 하게 해 주십시오' 다시 말해 1,300명 중 130명이 일어서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것은 130명만 서원 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의 전공과 직업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는 선교사적인 삶을 살겠다는 헌신을 합니다. 저는 이게 코스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일부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군대 몇 년을 가듯이 몇 년을 아예 구별하여 선교지에서 헌신할 사람을 일어서게 하는데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130명의 서원자를 일으켜 세운다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아 누구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하나님께만 몰래 기도하였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콜링을 하였습니다. 자기의 전공을 가지고 사역지에서 1년 에서 3년 정도 헌신할 사람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청년들이 일어서기 시작하였습니다. 울면서 강단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기 시작하였습니다.
느낌이 이상하였습니다. 정말 십일조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계수해 보니 126명이었습니다. 너무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1,300명의 십일조 130명을 달라고 기도하였는데 126명이 헌신하였다고...
그러자 잠시 후 스텝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집회 중에 기도실에서 중보기도하는 팀이 있는데 그 기도 팀원 중 4명이 헌신했다고.... 결국 꼭 130명이 헌신하였습니다.
저들은 전문적인 선교단체로 부터 선교 훈련을 받고 선교지로 파송되게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파송을 받아 헌신을 하게 되면 선교지가 바뀝니다.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제 살아오면서 참으로 복된 만남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코스타는 제인생 최고의 만남 중 몇 안 되는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코스타는 가난한 유학생들이 참석하는 집회라 저들에게는 적지 않은 참가비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늘 적자입니다. 참가 인원이 작으면 적자가 작아지고, 많아지면 적자가 많아집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코스타는 언제나 만원입니다. 코스타가 끝나면 늘 몇 몇 교회가 적자 분을 담당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코스타가 너무 커져서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코스타는 재정자립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와 지역에 있는 교회가 재정을 담당하라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나라와 지역의 코스타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본부를 운영하고 재정자립을 하지 못하는 지역의 코스타를 지원하기 위한 적지 않은 재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코스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회를 순방하며 후원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몇 만 원 혹은 만 원씩을 내는 후원자이 생겨 지속적으로 재정이 확보되어야만 안정적으로 이 기막힌 사역을 계속해 나갈 수 있습니다.
코스타 사역은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교회에 허락해 주신 특별한 은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에 이런저런 속상하고 암울한 일이 많아 낙심이 되다가도 코스타에 가서 몰려와 은혜를 받는 우리 아이들 청년을 보면 '우리 한국 교회는 망할 교회가 아니구나'하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코스타는 대표적인 파종 목회 다시 말해 뿌리는 목회입니다. 그 씨값을 여러분 보태주십시오.
저는 저 자신을 스스로 영적인 펀드매니저라고 생각합니다. 교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교인들의 보물을 어디에 투자하고 쌓아두게 하여야 할는지를 코칭해 주는 영적인 펀드매니저라고 생각합니다.
몇몇 좋은 펀드를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코스타 펀드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놓치면 손햅니다. 투자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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