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히2:10 |
---|---|
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09-04-06 http://www.yullin.org |
십자가와 하나님의 계획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히 2:10).
I. 본문해설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 안에 품으셨던 모든 계획의 절정이다. 그 하나님 안에 품으셨던 계획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방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일을 위해서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던 일은 합당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II.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구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꼭 필요했느냐는 질문에 부인할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두 가지 의견이 나온다.
A. 두 가지의 의견
첫째로 가설적 필요론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데 꼭 십자가라는 방법이 아니었어도 되었다고 하는 주장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유익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많은 다른 방법 가운데 하나님이 이 방법을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굳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필요가 없었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에 죽으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두 번째 의견은 결과적 절대적 필요론이다. 이것은 하나님께도 이 방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방법이었다고 하는 견해이다. 본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음으로 우리들이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게 되는 그 일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음을 말해준다. 우리는 이 견해가 성경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지은 죄의 크기 때문이다. 죄는 상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죄를 지은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죄의 크기 또한 달라진다. 친구에게 잘못한 것은 큰 문제가 안 되어도 황제에게 잘못한 것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큰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지은 죄는 얼마나 크겠는가? 하나님께 지은 죄는 무한하고 무한하다. 무한하고 또 무한한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는 그 형벌과 희생 또한 무한하고 무한했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시는 십자가에서 받으시는 고난과 희생이 아니라면 무엇으로서 무한한 속죄가 될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여러 곳에서 이보다 더 큰 사랑을 하나님도 보이실 수 없었다는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이것은 명백히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있는 제자들을 포함한 사람들을 위해 죽으실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러한 말씀이 이것을 입증한다.
그리고 이 일이 하나님께 엄청난 아픔이셨을 텐데 왜 굳이 당신의 아들로 하여금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셨겠는가? 당신과의 완전한 교통 속에 사시는 아들로 하여금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절규까지 하게 하셨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결론적으로 하나님께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기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는 것이 꼭 필요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누군가에 의한 강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 자체에서 오는 긴장인 것이다. 하나님은 지극히 공의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시기 때문에, 또 사랑 때문에 공의가 무시되지 않고 공의 때문에 사랑이 무시되지 않는 완전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꼭 필요한 방법이었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생각하여야 한다.
B. 십자가 사역의 완전성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역을 이루셨는데 이 사역은 완전한 사역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마음에 품으셨던, 인간의 구원과 세계의 완성을 위한 계획이 완전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될 수 있다.
첫째는 역사적 객관성이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역사 속에 오셔서 진짜 죽으셨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진짜 2천 년 전에 이스라엘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실임을 믿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은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도, 공생애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도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둘째는 속죄적 최종성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이다. 이 사실은 예수님이 이루신 이 속죄의 공로가 충분했다는 것이다. 가톨릭에서처럼 성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거나 인간의 선행을 통해서 구원을 얻게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 이외에 더 이상 첨가되어야 할 것이 없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충분한 대가를 치루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루신 이 십자가가 우리의 구속을 위한 모든 것을 이루셨음을 믿고 감사해야 한다.
셋째는 중보적 독특성이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현실적으로 이루어졌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진리를 잘 가르쳐주는 것만으로, 이적을 베푸시는 것만으로 생애를 끝내셨다면 우리에게는 결코 구원이 없었을 것이다. 바로 예수님만 이루실 수 있는 중보적 사역을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핵심은 구원의 가능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다른 아무 곳에도 없다고 믿는 것이다. 여기에서 영혼의 구원을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행복으로서의 구원도 포함하고 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구원의 가능성이 십자가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넷째는 내재적 효능성이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아무 효과도 없고 단지 우리의 모범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은 실제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죄, 한 사람 한 사람이 받을 형벌에 대해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내재적 효능성은 다음과 같이 입증된다. 우리가 죄악 가운데 살다가 어느 한순간에 복음과 성령의 조명을 통해 자신의 죄인됨을 절실히 깨닫고 우리의 죄를 고백하게 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느끼고 나의 이 죄를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셨음을 깨닫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게 되는데 이 때 우리의 영혼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단지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다. 성령의 놀라운 은혜가 쏟아지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용서, 영광에 대한 감각이 생겨나고 자기가 깨어지는 변화가 일어난다. 이것이 십자가의 내재적 효능성이다.
III. 결론 : 우리의 자랑, 십자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자랑이 오직 십자가일 뿐임을 노래하게 된다. 2천 년 전에는 흉악한 죄인을 죽이는 무서운 사형 틀에 불과했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들을 능하게 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불러주시는 귀한 부르심이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도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은 오직 하나, 십자가뿐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드러내는 가장 중심적인 하나님의 방법이다. 2009-04-06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