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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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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09-04-07 http://www.yullin.org |
십자가와 순종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I. 본문해설
본문은 어떻게 한 사람 아담을 통해서 죄가 들어오고 어떻게 그 죄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가 들어오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대표성의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이 맨 처음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그와 언약을 맺으신다. 첫째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노동의 명령과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종교 명령이다. 이 종교 명령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격차가 있음을 기억하게 하고 인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지 보시기 위해 내린 명령이셨다. 아담이 이 명령에 잘 순종하면 하나님과의 평화와 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 하셨는데 이 죽음은 육체의 죽음뿐 아니라 영혼의 죽음이었다. 이러한 명령은 아담 개인에게 내리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머리로서 내리신 명령이셨다. 그래서 성경은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대표성을 지닌 한 사람이 또 있었으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이셨다. 그래서 성경은 아담을 첫 번째 아담으로, 예수를 두 번째 아담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대표성의 원리에 의해 아담에 의해 죄가 들어온 것처럼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의 의가 들어왔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단지 한 사람, 예수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에 구원하시기로 선택한 모든 사람들을 안으시고 그들의 대표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의를 이루셨던 것이다.
II. 구원의 의: 그리스도의 순종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은 구원의 의를 친히 이루셨기 때문이다. 이 구원의 의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말할 때 십자가에서 죽으신 죽음만을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은 그보다 더 큰 그리스도의 순종이라는 배경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는 바로 순종이다.
예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그분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이신 그때에도 성자로서 성부 하나님께 순종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이다. 그 이후에 예수의 생애는 가난과 고통, 비참과 핍박의 생애였지만 이 모든 생애를 통해 예수는 자신을 온전히 드려 하나님께 순종하셨던 것이다. 십자가에 죽으신 고난의 사건은 예수의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순종의 한 부분이었다.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의 의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 자체뿐만 아니라 생애 자체를 관통하는 전적인 순종을 통해서 구원의 의가 성취된 것이다.
III. 그리스도의 순종의 특징
그리스도의 순종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A. 순종의 전일성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외면적 행위의 순종일 뿐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내면에서의 전심으로의 순종도 동반된 온전한 전일성의 순종이었다. 예수님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 고난, 핍박, 시련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안팎으로 온전하게 되도록 만드는 일에 이바지하였으니 이는 환경이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안팎의 온전한 순종이 어떠한 여건이든지 이용하여 하나님께 완전한 순종을 드러내신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 전체는 순종의 전일성(integrity)으로 바쳐진 생애였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의 의를 이루실 수 있었다.
B. 순종의 점진성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도 순종에 대해서 배우셨고,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 온전하게 되셨다고 말씀한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시면서 배운 순종이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하나님이셨으나 성육신하셨을 때 당신 안에 있는 신성을 인성 아래 감추시고 스스로 모르는 것이 있기로 선택하셨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6-7). 사람처럼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가고자 하셨던 것이다. 고난을 통해 배우시는 순종의 점진성을 구원받은 신자가 아직 죄성을 간직하고 있어서 성화되어가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는 죄가 없으셨기 때문에 어떤 불순종도 없으셨다. 다만 예수님이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 온전케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 동안에 다가오는 모든 시련과 고난, 격렬한 시험과 고통 속에서도 더욱더 불같이 하나님께 복종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야겠다는 소명감에 불타셨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C. 순종의 극치성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를 버려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신 것이 바로 순종의 극치성이다. 순종은 전일성의 순종으로, 점진적인 순종을 통해서, 마지막에 극치의 순종에 다다른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향해 쏟아 부어지는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를 기꺼이 당하시고 하나님의 형벌을 당하면서도 헌제자의 마음, 제사장의 마음, 제물로 바치는 마음에서 조금도 이탈하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지상생애에서의 순종의 극치였던 것이다. 이렇게 자기를 다 바치는 순종을 통해 우리에게 이루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이었나?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 순종과 목적을 배우게 된다.
IV. 두 가지 순종과 목적
A. 두 가지 순종
예수님은 순종은 두 가지 순종으로 나누어진다. 수동적 의미의 순종과 능동적 의미의 순종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 태어나시고 율법의 요구를 모두 지키시고 율법을 따라 형벌을 받으시는 전 과정을 수동적 순종이라 한다면, 자기 자신의 몸을 스스로 하나님 앞에 바친 모든 고난에서의 형벌은 능동적 순종이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예수님의 생애의 고난과 순종 가운데 마지못해 당하신 것이 없기 때문에 수동적 순종이라 해서는 안 되고 자격적 순종이라 해야 한다.
이러한 순종은 결국 형벌적 순종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 형벌적 순종이야말로 예수님의 순종의 극치에 이르는 것이다. 형벌의 진노를 위하여 자기를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못해서 짊어지신 십자가가 아니라 기쁘게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 진노를 받아도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를 이룰 것을 바라보시며 드리신 순종이셨다.
B. 순종의 목적 : 대신(代身)적 형벌
이 순종에는 목적이 있었는데 대신적 형벌을 위한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가 당하여야 할 형벌을 모두 끌어안고 죽으심으로써, 고난은 예수님이 당하셨지만 형벌의 효과는 우리 모두에게 미치게 하셨다. 이것이 대신적 형벌이다. 예수님이 우리 모두를 끌어안고 죄 없으신 분으로서가 아니라 죄인들의 대표자로서 십자가에 죽으신 형벌을 가리킨다. 이것은 내포적 대신의 형벌이라고도 말한다. 죄인들을 친히 끌어안아 당신의 죄로 짊어지시고 형벌을 당하심으로써 끔찍한 고난을 당하고 죽으시는 형벌을 통해 우리가 함께 형벌을 당하는 자가 되게끔 하신 것이다.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려는 대신적 형벌을 위해 내포적으로 우리를 끌어안고 죽으셨으니 그리스도의 순종의 목적은 바로 이 대신의 형벌이었던 것이다.
V. 우리의 자랑, 십자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자랑이 오직 십자가뿐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무 의로운 것이 없고 죄는 지었지만 스스로 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적 형벌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 때문에 순종하시고 당신의 목숨을 드려 우리를 구원하셨다.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자랑할 수 없다. 200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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