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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보다 나은 믿음

여호수아 김남준 목사............... 조회 수 2818 추천 수 0 2013.04.08 15:25:50
.........
성경본문 : 수6:20-21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2009-01-04 http://www.yullin.org 

기적보다 나은 믿음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수 6:20-21)

 

Ⅰ. 본문해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여리고성을 점령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불세출의 지도자 모세는 죽고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셨습니다. 아마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 차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기적을 몰고 다니는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었던 반면, 여호수아는 모세 곁에서 수종을 드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던 인물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경륜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모세는 율법을 수여받은 중보자였습니다. 그는 지도자가 되어 하나님의 명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약속의 땅 가나안이 보이는 언덕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했던 모세의 사명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율법의 대명사이었고 가나안은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언약의 땅의 예표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가 아니라 여호수아를, 우리를 영원히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삼으셨습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의미가 ‘구원자’인 것도 그 사실을 드러냅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지도자가 되어 첫 번째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Ⅱ. 가나안 정복과 여리고성

이스엘 백성의 가나안 정복전략은 중부지방을 뚫고 들어가 위아래를 휘젓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가장 처음 맞닥뜨린 성이 바로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이 여리고성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만약 이 성을 제쳐놓고 가나안에 들어간다면 후방에서 공격을 당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여리고성을 통해 앞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실 것임을 명백히 보이시는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중요성입니다.

 

A. 믿음의 중요성

아시는 바와 같이 모세는 기적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생애 초기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타지 않는 가시나무 떨기의 불꽃 가운데서 소명을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기 위한 10가지 위대한 재앙을 내리는 데 쓰임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홍해가 갈라진 사건을 비롯하여, 하나님께서 광야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신 것은 모두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세는 죽고 지극히 연약해 보이는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은 모세 시대와는 다른 경륜을 보여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모세의 때가 기적을 행하면 사람들이 그 기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었던 때였다면 여호수아부터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그 곳에 모세의 기적에 버금가는 위대한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이런 놀라운 믿음의 역사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 등장하게 된 여호수아는 명백하게, 연한 순과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와 같아서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없었지만 그를 전심으로 믿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예표였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성과 마주하기 전에 한 번의 시험을 겪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요단강을 건너는 사건이었습니다. 요단강은 그리 큰 강은 아니었지만 건너기 그리 쉬운 강도 아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묘책을 제시하십니다. 법궤를 메고 당신의 말씀대로 일단 출렁이는 요단강에 들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물이 마르고 땅이 드러나 건너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기적을 행하고 나니 홍해가 갈라지고, 보게 되니까 마른 땅을 건넜던 것과는 반대로 먼저 믿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적을 베풀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전에는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기적을 먼저 찾았고 기적을 찾는 곳마다 모세를 의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나님 앞에 믿음을 먼저 구하여야 했고 그래서 보이는 여호수아보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법궤를 메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믿음으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주셨던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믿음이 기적보다 훨씬 위대하다는 것을 깨닫고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모세 때와는 다른 여호수아적인 경륜을 보이신 것일까요?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심으시기 원했습니다. 거기서 이제 그들은 발달한 문명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은 기적이 아니라 말씀으로 그들을 인도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그들 안에 진정한 열매를 맺고, 그들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 독특한 백성으로서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전폭적인 믿음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지도자를 부르실 때 어떠한 기적도 베풀어주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라는 분부를 내리셨고, 마음을 굳고 강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명령은 여호수아뿐만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야할 바였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작은 것부터 시작하게 하지 않으시고 가나안에서 제일 큰 성 앞에 직면하게 하셨는데 그 이유는 가나안의 이 위대한 정복의 역사가 그들의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달렸다는 것을 보여주심으로 그들의 믿음을 공고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약속은 황당한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바퀴씩 조용히 성을 돌고 마지막 7일째는 일곱 바퀴를 돌고 마지막 바퀴를 돌 때 제사장들의 나팔소리에 맞추어 온 백성들이 소리를 지르면 성이 무너질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황당한 약속을 통해 그들이 당신을 믿는지 시험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심으로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그렇게 그들의 믿음을 그렇게 기뻐하셨고, 기적을 보고 믿는 것보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을 더 좋아하셨을까요? 답은 이렇습니다. 기적을 보고 믿는 것은 그 기적 때문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을 보지 않고 믿는 것은 그 약속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의존의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여기서의 믿음은 확률에 대한 의존이 절대 아닙니다. 비행기가 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타는 것, 물건을 살 때 상인을 믿는 것은 말은 믿음으로 표현하지만 실은 확률입니다. 믿음은 영혼의 활동이며 움직입니다. 자주 비행기를 타고 거래를 많이 하여도 우리의 영혼에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반드시 영혼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옵니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참된 믿음은 언제나 참된 사랑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이유는 이 믿음이 반드시 사랑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사랑과 함께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 세 가지가 마치 삼위일체와 같이 하나가 있는 곳에 다른 둘이 있고, 하나가 빠지면 참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전적인 의존의 감정이 없는 믿음은 자기 암시적인 믿음일 뿐이고, 의존하지 않거나, 믿음이 없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랑과 믿음이 없는 의존의 마음은 하나님이 가길 원하시는 전적인 의존의 마음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믿음을 무엇보다 기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B. 약속의 주어짐

 

하지만 믿음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 믿음은 발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막연하게 하나님의 큰 능력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아주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 안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습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씀의 사람들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믿음을 많이 행사하려고 해도 그 믿음의 행사가 칼을 휘두르는 것이라면 약속의 말씀은 그 손에 들려진 검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검법을 익혔더라도 그의 손에 검이 없다면 소용없는 것처럼 만약에 그가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경향이 마음 가운데 충만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또 받은 바 약속의 말씀이 마음속에 있지 않다면 그는 그 믿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향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이 주어졌을 때 그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우리는 믿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 요동하고, 마음에 정함이 없이 흔들리는 이들의 특징은 손을 넣고 마음을 아무리 휘저어 보아도 근심과 걱정 그리고 때로는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열정은 있을지 모르지만 약속의 말씀의 칼이 잡히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피할 수 없는 일전, 자신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여리고성을 앞에 두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일 먼저 왜 나를 믿지 않느냐고 말씀하시지 않고 그들에게 조용하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끝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말씀을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신앙으로 굳게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믿음을 뒤따라 왔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금년은 내년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시작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희망은 언제나 속임일 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변화가 없는데 어떤 새로운 마음이 일어나고, 그를 사로잡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데 달력 한 장 넘긴 것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Ⅲ. 당신의 여리고성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의 여리고성은 어떤 것입니까? 오랜 세월동안 버티고 있어서 바라만 볼뿐 무너뜨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그 성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 문제를 회피할 수 없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문제는 너무 크고 나는 작으며, 문제는 너무 어렵고 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리고성은 유서가 깊은 성이었지만 믿음 앞에서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그 일을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진 성 때문에 주눅 들고 자유함이 없이 번민하고 괴로워하여 그냥 서 있었던 날들을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믿음이 행사되는 것을 보시기 위해 여리고와 같은 난제를 남겨 두셨습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이제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가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피하지 말고 성을 대면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그것을 굳게 붙드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약속을 향해 도전하십시오. 그러면 마침내 그 성은 여러분들 앞에 무너지고 여러분들은 주님의 손에 붙들려 올해를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200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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