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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7:3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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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2013.2.7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
늑대와 춤을
눅7:31-32
그렇습니다. <늑대와 춤을>은 1990년 미국에서 제작된 서사영화입니다.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 감독, 제작을 했습니다. 남북전쟁과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백인들의 인디언 몰아내기와 연관이 있습니다. 존 던바라는 북군의 장교가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라코타 평원으로 갑니다. 그러나 백인의 장교는 인디언들을 그곳에서 몰아내기는커녕 인디언들과 어울려 삽니다. 침략과 정복, 약탈과 탐욕의 세상 사람들과 함께 춤추지 않고 사람이 아닌 짐승, 늑대와 함께 춤을 췄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세상 사람보다 늑대하고 춤을 추는 게 옳다는 것이죠. 이래서 이 영화가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1600년경부터 새로운 항로가 발견되고, 항해기술이 발달하면서 영국,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왕들은 신대륙을 정복해 나갑니다. 신대륙 정복 초기에는 이교도들이나 범죄자들을 식민지로 보내서 불모지를 개척하도록 했습니다. 미국과 호주가 그런 식으로 개척됩니다. 대부분의 식민지 개척사는 약탈과 학살로 얼룩져 있습니다. 영국인들은 미국 동부에 제임스타운, 필라델피아 등을 기점으로 수 십 개의 도시를 건설하더니만, 1776년에는 아예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합니다. 이게 미국의 독립국가 건설입니다. 이렇게 동부가 백인들에 의해 점령당하자 원주민 인디언들은 서부 지역으로 쫓겨 갑니다. 1840년경에는 강제 이주 법을 만들어 인디언들을 서부로 몰아냅니다. 그 후에도 백인들의 약탈은 계속되었고, 180여 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는 인디언 문화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존 던바라는 장교도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살았어야 했습니다. 당시에 불어 닥친 침략과 정복의 피리에 춤을 춰야 했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 내 것으로 삼는 게 그 시대의 진리였고 미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세상과,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춤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함께 춤추지 말아야 할 대상들과 춤을 췄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누구와는 함께 춤을 추지 말아야’하고, ‘누구하고는 함께 춤을 춰야 하는지’를 이 영화 속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걸 읽지 못한다면 이 영화는 아무 감동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물음, 누구와 함께 춤을 추지 말아야 하고, 누구와 함께 춤을 춰야하는지를 묻는 물음에는 어떤 전제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춤춰야 할 거’ 하고는 춤을 추지 않고, ‘춤추지 말아야 하는 것’하고는 춤을 춘다는 전제 말입니다. 한마디로 청개구리처럼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늑대와 춤을>을 옮겨다 놓은 것과 같은 가르침이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본문입니다.
많은 설교자들과 교인들은 “너희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해도 가슴을 치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달랑 떼어다 놓고 ‘내가 말씀을 이렇게 외치는 데 도대체 너희들은 들어먹지를 않는구나’하면서 화를 냅니다. 자기가 피리를 불고, 애곡하는 사람이라고 설정을 해 버린 겁니다.
성경을 보세요. 피리를 부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 세대를 무엇에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 고.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함과 같도다.”
이 세대=장터에 앉은 아이들=그들이 그들의 동무더러 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피리를 부는 사람은 ‘세상사람=장터에 앉아 있는 아이들’인 거죠. 그 세상 사람들이 제 동무들더러 ‘왜 우리처럼 살지 않느냐’고 비난하는 말인 것입니다. 여기서 피리를 부는 사람은 ‘목사’거나, ‘예수’거나,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피리를 부는 대도 춤을 추지 않는 사람은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너희가 피리를 부는 대도 춤추지 않는다”는 말은 예수님이 하시는 비난이 아니라, 이 악한 세대(여기서는 장터에 앉아 다투기 좋아하는 아이들)가 예수와 그 무리들을 향해 하는 비난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어떤 누구와도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율법주의적인 바리새인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말도 행동도 실천도 달랐습니다. 그게 마땅치 못한 겁니다. 그들에겐(악한 세대)늘 그게 시비 거리였습니다. 자기들은 종교로 배불리 먹고 사는데 세례요한이 금식한다고 그가 미쳤다고 비난했습니다. 자기들은 죄인들과 엄격한 격리를 하고 사는데, 예수는 세리들과 창녀들과 식탁을 같이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더러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하는 그들을 일컬어 [악한 세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나와 같아야 한다” 또는 “우리와 같이 춤추자”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말합니다. “나는 너희와 같이 춤추지 않는다” “너희들처럼 살지 않는다” 고 말입니다.
피리를 부는 주체는 악한 세상 또는 악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입니다. 1700년대 인디언들을 잡아 죽이던 당시의 유럽입니다. 그렇게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사람이 바로 늑대와 춤을 춘 존 던바입니다. 악한세대와 춤추기를 거부하고 늑대와 함께 춤을 췄다는 존 던바가 바로 본문 속에 나오는 예수이며, 그 추종자들이고,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과연 악한 세대와 춤추기를 거부하고,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들으며 사는지는, 악한 세상보다는 차라리 늑대와 함께 춤을 춤으로 감동의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늑대와 춤을 췄던 존 던바, 세상과 같이 살지 않는다고 비난을 들었던 예수, 그리고 오늘 그 예수를 믿는다는 교회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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