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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최후의 3일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567 추천 수 0 2013.04.10 19:3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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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1:11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3013. 3. 31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예수, 최후의 3일
막11:11

오늘 우리가 나눌 이야기는 지난 월요일부터 시작된 매일 아침 성서강좌의 ‘마가복음 새로 읽기’의 연속선에 놓여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한 마디로 ‘권력에 대한 저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타인인 권력자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그러한 세속 체제의 공범자로 변질되어 가던 당시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비판이었으며, 오늘날 이 시대 교회와 종교권력에 기대고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저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직전에는 제자들에게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에서 ‘제자그룹’의 어리석은 행위들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펼쳐 보이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에게 나온 부자청년을 거절하는 대신 거렁뱅이 맹인 청년을 제자로 받아들이는 역설을 통해 ‘예수 운동’의 본질이 뭔가를 견고하게 교훈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던 그 장면, 나귀를 타고 다리를 질질 끌며 성으로 들어갈 때 제자들이 옷을 벗아 땅에 깔았다는 이야기는, 스가랴서의 전승과 예언자 엘리사 시대의 예후의 장면을 그대로 연출하므로 예수는 자신이 이스라엘이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메시아’임을 성서적으로 입증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기 직전의 3일에 대해서 주목하려고 합니다.

첫날/ 예수님은 어쩌면 처음으로 들어가 보았을지도 모르는 예루살렘 성 안 이곳저곳을 살핍니다(11:11). 방금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의 떠들썩한 장면 치고는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입니다. 혹시 예루살렘의 세력들을 뒤집어엎으려고 정탐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엄숙  했을까요? 밤이 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베다니로 나갑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근방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둘째 날/그 유명한 성전 난동 사건이 벌어집니다(11:15-18). 이것은 예수님의 개인적인 퍼포먼스일까요? 아니면 집단적으로 일으킨 일일까요? 만약 개인적으로 하신 일이라면 이 때 제자들의 입장은 어땠을까요? 우리는 두 가지 모두 부정적입니다. 우선 개인적인 사건이라고 한다면, 환전상과 짐승을 거래하던 장사치들이 예수님의 이 행동을 보고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성전 당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허가받은 공식지정업체들입니다. 예루살렘 제의의 규모를 보건데 이정도 사업권을 따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려면 이들은 상당한 실력을 갖춘 재력가들일 터이고, 권력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그들이 그들의 사업권이 훼방 받는 것을 보고 그대로 있을 리 만무 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 장사치들은 여러 사람들 입니다. 그런 조합 집단이 한 사람의 훼방을 그대로 보고 있었을리 없는 겁니다.

그들의 종들도 있었고, 성전 경비병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개인이 독단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도 있기는 합니다. 하도 주변의 많은 이목들이 있고, 청중들이 위압적으로 보고 있었다면 상인조합도, 사병도, 경비병도 그 위세에 눌려 가만히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게 설득력이 없는 것은, 후에 겟세마네 동산으로 예수를 체포하러 갔을 때 예수를 알아 볼 수 없어서 그를 필요로 하는 배신자의 암호를 대야한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성전난동사건은 주모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여러 사람이 집단적으로 벌인 사건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다른 시간에 다시 한 번 둘째 날의 이 시간, 성전 난동사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셋째 날/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많은 논쟁을 벌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논쟁이 이날의 일화들로 모여 있는 것은 이야기를 단순명료하게 전달하려는 마가의 의도 때문일 것입니다. 어떻든 예수님은 셋째 날에 많은 논쟁을 성전 안에서 벌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둘째 날의 그 난동이 많은 사람과의 논쟁을 부채질 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기다라고 기다리던 군중들로서는 예수가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더욱 많은 질문과 답이 오갔을 것입니다.

이 사흘간의 서전 활동은 모두 낮입니다. 밤이 되면 예수님 일행은 성전 밖, 특히 성 밖 모처로 사라지곤 했습니다(11:18). 성전은 낮에는 사람들이 밖에서 들어 왔다가 밤이 되면 모두 성전 밖으로 나가야했습니다. 그러니 예수의 일행도 저녁이 되어 성전 밖으로 나가는 군중들과 성전 밖으로 나가는 것이 일신상에 안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셋째 날, 이런 행동 패턴에서 이례적인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이 반대로 밤에 성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14:17). 무언가 특별하고 비상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제자 둘을 보내서 집을 확인한 뒤, 그곳에서 만찬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에 마가는 비로소 그 시기를 공개합니다. 그 때가 무교절 첫 날, 즉 해방절 양을 잡는 날(14:1-12)이었습니다. 그날은 우대의 최대의 명절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도래할 장소가 예루살렘이라고 믿고 있었고, 그 때는 가장 중요한 절기 중의 한 때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절기가 유월절 혹은 무교절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느 때보다 메시아의 도래를 기대하면서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날이 바로 그날인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돌연 예루살렘으로 향한 시점의 궁금증이 풀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참아왔던 그 시기의 폭로가 왜 이제야 등장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가복음 14장이 최고조의 분위기에 도달해 있기 때문입니다.

14장은, 산헤드린이 예수를 체포하지 말자-유다가 배신하고-유월절 식사를 준비하고-죽음을 맞으러 감람산으로 올라가시고-겟세마네 동산에 세명의 제자만 데리고 가시고-사제의 사병들에게 체포됩니다.  

자, 우리는 14장의 처음과 마지막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헤드린의 결정은 체포하지 말자입니다. 그런데 그게 마지막에 가서는 체포의 상황으로 끝납니다. 우리는 이렇게 된 이유가 배신자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순입니다. 왜냐하면 ‘채포하지 말자’는 결의의 이유는 ‘명절에 체포하는 것은 대중을 자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배신자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더 큰 변수, 대중의 동요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루  밤 새 ‘불 체포’에서 ‘체포’로 바뀐 이유는 뭘까요?  배신자 한 사람의 역할 말고, 뭔가 그렇게 긴박한 상황이 대사제로 하여금 의회의 결과를 묵살하면서까지 그 밤에 그를 체포하도록 했는가 말입니다.

본문은 우리의 눈을 22-25절에 집중하게 합니다. 그것은 유월절 식사입니다. 이 만찬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게 대사제로 하여금 ‘불 체포’에서 ‘채포’로 급히 생각을 바꾼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이 만찬은 이례적으로 밤에 성 안 모처에서 벌어집니다. 이 묘사가 이 상황의 긴박감을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이 식사를 끝으로 밤의 전형적인 장소인 성 밖 산으로 돌아갑니다. 또 제자의 배신도 이 식사에서 시작이 됩니다. 도대체 무슨 식사일까요?

배신자의 제보를 받은 대사제는, 낮의 그 결의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사병을 동원하여 예수에 대한 체포조를 출동시킵니다. 긴급한 상황 변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변화의 동기는, 본문에 의하면, 유월절 식사를 마치고 나온 배신자의 제보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유월절 식사는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최후의 식사’를 넘어서는 의미가 담긴 행사였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예를 갖춘 식사자리를 넘어서서 ‘그 날’의 도래를 선포하는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공포에 쌓인 배신자가 등장한 것이고, 대사제가 산헤드린의 결의를 어기면서까지 긴급하게 병력을 출동시켜야 했던 이유입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예수는 치밀하게, 메시아적 기대를 증폭시키고 관심을 예수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수차례의 상징행위들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모일모시를 겨냥하며’말입니다. 그게 유월절 만찬 사건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은 로마의 반란자들에게나 주어지는 극형인 십자가 공개처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4-7일의 일정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고 부활하는 시간들입니다. 그 사이에 예수와 함께 변혁의 불을 지폈던 예수의 공범들은 날카로운 경고음을 듣고 무대 뒤로 숨어 버립니다. 이제 그들 중 누구도 성전의 억압의 장치들을 불질러 태워버려야 한다는 ‘불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화재경보기가 울린 뒤, 불을 냉동 시켜 버릴 듯 거세게 내뿜는 소방차의 잔인한 물줄기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욕설을 퍼붓고, 추종자들은 모두 도망치거나 멀찍이서 관망하는 가운데, 처절하게 찢겨지는 자신을 확인하면서 예수님은 죽어갑니다. 하나님도 침묵하고, 권력과 대중과 제자들은 모두 공모자가 되어 그를 그렇게 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변혁 행위를 꿈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혁 행위를 통해 예수와 만나지 않아줬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절정인 것인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조차도 침묵한 상태에서 도살당하는 바로 그 현장, 대중의 가학성을 가학성으로 보응하지 않고 피학성으로 실천하는 그 현장이 바로 십자가의 절정인 것입니다. 인류의 가학성에 침묵으로 도살당함으로, 가학은 가학으로 갚는다는 윤회의 도식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죽으심으로 비로소 침묵하고 있었던 하나님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게 예수님이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입니다.  

우리에게, 마가에게 부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십자가의 죽음 사건입니다. 무능하게 죽음으로 마침내 유능한 하나님과 만나고, 죽임당한 사람들과 만나며, 모든 죽임 당함을 넘어서는 전통과의 만남인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은 ‘부활’의 원 사건이며, 마가는 그 의미를 ‘내가 하늘로 아직 올라가지 않았으니 만지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만을 만지려고만 하지 말고, 가학적으로 가해진 죽음 앞에서 피학으로 나아간 예수를 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고, ‘영원과 만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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