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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13: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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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자다가 깰 때
롬 13:11-14
07. 8. 19, 오전
운명의 시계(Doomsday Clock)
사람들은 누구나‘최후의 날'에 대한 막연한 공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92년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는 이장림씨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휴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세계적인 예언가로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는 1999년 7월에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예언했지만 불발로 끝났습니다.
그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구의 종말이 가까워 왔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수명의 절반을 넘긴 태양이 갈수록 뜨거워져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 지구상에서 물이 사라지고 모든 인간과 식물이 죽는다는 경고도 있습니다.
지금 세계 천문학계는 '소행성 비상’에 걸려 있습니다. 지름이 수㎞나 되는 이 별이 2027년 인공위성 궤도보다 안쪽까지 지구에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별이 지구와 충돌한다면 모든 것이 끝장이 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경고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지구의 종말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를 만들었습니다. 온 인류를 공멸에서 구해보자는 경보장치입니다. 1947년 미국 핵과학자협회가 만든 이 시계가 12시, 자정을 가리키면 핵전쟁으로 인류가 파멸하는 것을 뜻합니다.
미국과 소련이 차례로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한 1953년엔 자정 2분전까지 다가서 세계를 떨게 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11시 51분에 맞춰져있던 분침이 2002년에는 11시53분으로 바뀌었습니다. 9·11테러 등이 핵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종말은 핵위기 뿐만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내륙해(Inland Sea)였던 아랄해는 이미 물이 말라버린 사막으로 변했습니다. 하루에 지구상에서 100종씩 생태계가 멸종하고 있습니다. 엘니뇨, 라니뇨 같은 환경 재앙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가뭄과 홍수, 한파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에는 엄청난 폭우로 40년 만에 겪는 물난리로 많은 사람이 죽고 농경지가 유실되고 집들이 무너져 수많은 이재민을 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인류의 종말을 예고하는 사인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종말의 시간은 7분전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느끼고 있는 종말의 시간은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성경적 의미에서의 종말은 우주적인 종말과 개인적인 종말이 있습니다. 우주적 종말은 주님이 재림하셔서 모든 만물을 발아래 무릎 꿇게 하시고 최후의 심판을 하시는 날입니다. 개인적인 종말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죽는 날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종말에 대한 확실한 태도와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의 자세와 태도는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지금은 자다가 깰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둠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이 등불을 하나 들고 밤길을 나섰습니다. 자기는 빛을 볼 수 없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등불을 보고 자기와 부딪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그만 다른 사람과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맹인은 화가나서 등불을 쳐들며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누구신지 모르지만 눈을 똑바로 뜨고 다니시오. 이 등불이 보이지도 않소?" 그러니까 상대방이 하는 말 "맹인 양반, 당신의 등불이 꺼진지 이미 오래된 것 같소" 하더랍니다. 맹인은 빛만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입니다.
어둠 속에서 죄악에 물든 자들은 선과 의만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절망된 현실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 시대는 너무나 악합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생명까지도 죽이는 것이 안타까운 오늘의 모습입니다.
얼마전 신문에 이런 기사가 있었습니다. 3년전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남편이 있었습니다. 부인은 내연의 남자와 공모를 해서 15억원 짜리 상해보험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화물차로 치어 죽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들통이 나서 쇠고랑을 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악합니다.
노아의 시대에 세상에 악이 관영했다고 말씀했습니다. 세상이 악으로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어둠이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향하여 인류는 줄달음치고 있습니다. 졸고 있으면 자칫 멸망의 길에서 죽을 수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산 위에서 방주를 짓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도 심판의 징조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조롱하고 비난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세상의 종말은 우리를 향하여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오시지 않았는데 설마 오시겠어? 내가 죽기 전까지는 아마 괜찮을거야. 여러분 설마가 사람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설마설마 하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즉시로 가야하는 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주님은 언젠가 오늘 반드시 오십니다. 따라서 오늘이라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날잡아 놓고 주님을 기다리거나,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오시더라도 기쁨으로 주님을 맞을 수 있는 '마라나타'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라고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올라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말합니다.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욘1:6)."
우리는 어쩌면 요나와 같이 세상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영적인 잠에 빠져 있지는 않는지요. 세상은 죄악의 풍랑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는데 교회라는 배 속에서 잠들어 있지는 않는지요.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 우리는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 활동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계속 졸고 있으면 영적으로 육적으로 모두 죽게 됩니다. 대가를 지불하게 됩니다. 빨리 깨어나야 합니다. 아직도 세상의 잠에 취해있다면 빨리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생활이 잠들어 있습니까? 속히 깨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말씀을 보는 생활이 잠들어 있습니까? 속히 깨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섬김과 봉사의 생활이 잠들어 있습니까? 이제는 깨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전도생활이 잠들어 있습니까? 이제는 깨어 일어나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졸면 죽습니다. 자동차 사망 사고의 대부분은 졸음운전입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죽이게 됩니다. 우리들이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영적으로 죽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도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야 합니다. 경직된 사고의 틀을 벗어나야 합니다. 부정적이고 폐쇄적인 틀을 벗어야 합니다. 누가와도 기쁨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속에서 부흥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모두 졸고 있는 성도가 있다면 서로 깨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는 것도 전염성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졸면 다 따라 졸게 됩니다. 우리는 먼저 주의 일군으로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앞장서서 힘차게 전진할 때 부흥을 노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어둠의 일을 6가지 단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방탕과 술취함과 음란과 호색과 쟁투와 시기입니다. 이것은 오늘의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단어들입니다.
①방탕은 무질서입니다. 절제하지 못하고 자기의 이기심을 좇아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의 푯대를 정하지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방향을 상실한 모습입니다.
②술취함은 이성이 마비되어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건 사고는 술취함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나라의 술소비는 세계적입니다. 신문 발표에 의하면 국민 일인당 소주는 79병, 맥주는 120병입니다. 영국산 고급 스카치위스키의 수입액은 일본보다 많은 1억7800달러로, 스페인 미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4위를 기록했습니다. 위스키와 와인 등 외국산 술을 수입하는 데 쓴 돈은 2억5600만달러나 됩니다. 가히 술독에 빠진 한국인의 모습입니다. 그 결과 음주음전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세계 3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모든 음란과 성적 타락의 대부분은 술취함에 있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까지 음주문제 해결하지 못하신 분은 예수 이름으로 끊으시기를 바랍니다.
③음란입니다. 육체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부도덕한 행동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전국을 다녀보세요. 길거리마다 소위 러브호텔이라는 것이 즐비합니다. 모두 집떠나 철새들이 머무는 음란의 현장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④호색입니다. 이것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의미보다는 부끄러움이라는 의미입니다. 요즘은 죄를 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개를 들고 재수없어서 걸렸다는 불만스러운 표정입니다.
⑤쟁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싸우기를 좋아합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다보니 걸핏하면 분을 내고 혈기를 부립니다. 어떤 분을 보면 싸우기 위해서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분 같습니다.
⑥시기입니다. 남 잘되는 것을 배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 가운데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못사면 사촌도 못사야 한다는 못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배아파 하는 사람은 계속 배가 아프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상대방이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도 복을 받지 않겠습니까?
이 6가지 가운데 나에게 해당되는 것은 몇 개입니까? 이러한 어둠 속에 살기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이 어둠의 일들을 벗어버리고 적극적으로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이 있습니다. 바로 빛의 갑옷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이 벗어버려야 할 어둠의 옷이 6가지라면 입어야 할 빛의 갑옷도 6가지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를 써야합니다. 가슴에는 의의 흉배를 붙여야 합니다. 허리에는 진리의 띠를 띄어야 합니다. 한 손에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다른 손에는 성령의 검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발에는 복음의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더 이상 어둠의 일에 유혹되거나 빠지지 않도록 완전무장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내 안에 있는 어둠을 몰아내고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을 해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옷은 삶의 표현입니다. 가벼운 옷을 입으면 가볍게 행동하고 싶어지고, 야한 옷을 입으며 야하게 화장을 하고 야한 행동을 합니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마음의 생각과 태도가 달라집니다. 남자들은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한가지가 있습니다. 예비군복만 입으면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군에서 군복을 입었을 때는 군인정신이 투철했던 분들인데 제대 후에 예비군 훈련장에 가보면 정말 가관일 때가 많습니다. 무질서하기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무데서 누워자고, 담배를 피워대고, 술을 마시고, 지휘관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예비군복만 입으면 이상하게 사람들이 변하는 것을 봅니다. 옷이 그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어떤 옷을 입는가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14절에 보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으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와 온유함을 본받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내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모습이 표현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삶을 한마디로 '단정히 행하는 삶'(13절)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사는 모습,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는 자세로 사는 모습, 이것이 바로 단정하게 사는 사람의 바른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단정히 사는 사람을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눅12:15)."에 비유하고 계십니다. 주인이 언제 오실지 몰라서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켠 채 옆에 서 있는 하인의 태도가 바로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의 자세입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른지 모르지만 그분을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자기 일에 충실하게 사는 모습, 그것이 바로 단정한 삶의 모습입니다.
어느 현자에게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소중한 사람입니까? 스승은 "내가 대하고 있는 그 사람이 바로 가장 귀한 사람이다." 그러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무엇입니까? "네가 지금하고 있는 그 일이 가장 귀한 일이다." 그러면 가장 소중한 때는 언제입니까? "네가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그 사람이 바로 소중한 분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귀한 일입니다. 내가 서 있는 그 시간이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지금 여기서(Now and Here)"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미래는 바로 오늘 나의 삶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언젠가 오늘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 나의 개인적인 종말이 옵니다. 언제 주님의 우주적 종말이 다가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 때와 시기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내가 지금 여기서 만나고 행하는 모든 사람과 일에 대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벌써 2007년도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를 때가 있나니 사람이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다”고 전3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를 놓치거나 잊어버릴 때 참으로 후회스러운 일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때를 바로 보고 준비하는 지혜로운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종말을 향하여 지금도 달려가고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하나님 앞에서의 시간은 지금 몇 시입니까? 계속 제 자리를 맴돌며 육신의 일을 도모하고 있지 않습니까?
죄악의 밤이 깊어 갈수록 주님께서 오실 낮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밤이라도 낮과 같이 단정히 행할 때입니다. 모든 어둠의 일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모두 언제 주님이 오시더라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지혜로운 세광가족들이 모두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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