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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15:3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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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
롬 15:30-33
07. 11. 4, 오전
지금 나라는 온통 대통령선거로 시끌벅적합니다. 연일 비리와 구속, 수사이야기가 요란합니다. 참으로 인생의 무상과 풀과 같고 꽃과 같이 시들어 버리는 한 때의 권력과 물질의 우상의 덫에 걸려서 기여이 멸망하는 것들을 봅니다. 일반적으로 부정축재자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없어서 이런 범법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평생 먹고 살고, 또는 자식들 대대로 물려주어도 남을 만한 물질이 있는데도 계속하여 권력이나 물질에 대해서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권력과 물질이란 내가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주께서 나에게 맡긴 사명 즉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하나의 수단이나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이 말씀대로 다 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잠언서 16: 8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평생 가난하게 살아도, 평생 권력의 밑바닥에 있어도, 남에게 존경은커녕 관심의 대상이 못된다해도 예수님 생각하고 예수님 바라보고 살았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요, 승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외형적인데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인간들처럼 표리부동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행 13:22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이루게 하시리라 하시더니."
들에서 아비의 양떼를 위해 생명을 걸고 살아가는 인간들 보기에 초라한 막내둥이 다윗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딤전 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로 감사를 하되, 임금들(대통령)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왜 국가가 만날 시끌법적 합니까? 왜 우리들이 경건생활에 집중하지 못하고 우리들의 삶이 평안하고 고요중에 살지 못합니까?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중보기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바울이 로마서를 끝맺으면서 자신을 위해서 자신도 기도하지만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자신의 기도에 힘을 실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즉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제 본문말씀을 풀이하면서 강해할 때 저도 여러분들도 은혜가 충만히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본문말씀 ]
30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 형제 여러분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사랑으로 부탁하노니 여러분도 나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십시오.
31절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 내가 유대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안전하게 보호를 받고 예루살렘에서 나의 섬기는 일이 그 곳 성도들에게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주십시오.
32절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 그러면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가서 함께 편히 쉬게 될 것이다.
33절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 평화의 하나님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
1. 우리는 영적인 지도자를 위해서 중보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자식이 부모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아릅답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것이든 육적인 것이든 말입니다. 국민들은 자신이 소속된 국가를 위해 기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딤전 2;1 - 내가 평안한 가운데 신앙생활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국가가 혼란이 오면 그 영향은 백성들이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바울은 자신이 이제 이방 지역에서 선교하여 교회를 세우고 그 교인들을 통해서 모금된 연보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갑니다. 오늘 본문은 자신이 가기전에 기도를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종종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엡 6:19-20 "나를 위해 구할 것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담대히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살전 5: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 (기도해 줄래가 아니라 기도하라 명령조로 말함)
살후 3:1-2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를 위해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게 하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자의 것이 아니니라."
몬 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꼭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주어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물론 부모가 자식을 위해, 자식이 부모를 위해 잘되기를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나의 신앙을 위해서 수고하는 영적인 유모와도 같은 자신이 소속된 교회의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그 안에 사랑과 관심과 동역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여서 합심하여 기도하고, 개인적으로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고, 목회자의 부족한 부분과 하나님의 능력을 위해서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2. 그럼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해 중보 기도할 것입니까 ? (31-32절)
1) 불신 유대인에게서 구원받게 (육적인 구원)
유대 불신자들에게서 자신에게 오는 환란에서 구원을 받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당시는 유대교가 중심이라 종교 지도자들 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당시의 종교적인 인물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핍박이 심했습니다. 동족으로부터 모욕과 핍박과 멸시와 구타와 학대와 구금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억울하고 무모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런 일로 인해서 낙심하거나 절망하거니 포기하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또는 저들이 자신을 핍박하고 미워한다고 같이 상대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으로 주님께는 충성으로 행하게 해 달라고, 저 악한 사람들로부터 구원받게 해 달라고 기도를 부탁합니다.
왜냐하면 바울도 인간인지라 이런 일로 자신의 사명감당하는 데 걸림이 되고 쉽게 말하면 개 죽음같은 것을 당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부탁합니다. 성도여러분, 혹시나 바울같은 대 사도가 무슨 그 정도가지고 겁을 내고 기도를 부탁하다니 하나님이 알아서 도와 줄 것인데 무슨 겁쟁이처럼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바울 같은 대 사도가 성경 곳곳에서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면 여기 있는 너무나 부족하고 죄많고 미비한 저야 얼마나 여러분들의 기도가 필요하겠습니까? 어떤 목회자들은 목회에 육적 부분들이 너무나 힘들어서 목회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힘드는 분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습니다. 여기 이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 보기는 제가 목사라고 믿음이 좋고 특별히 강한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저도 인간이요 여러분들의 형제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도 여러분들의 사랑과 격려와 용서와 이해와 관용을 필요로 하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기도하시겠지만. 목회자인 저나 제 아내나 자녀들을 위해서 여러분의 절대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왜 기도해 주어야 합니까? 여러분의 영적인 지도자가 은혜롭고 건강하고 평안해야 성도들에게 목자로서 직무를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설교와 교회 교육과 기타 행정과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말입니다. 목회자는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목회자의 영성에 타격을 주어서 결과적으로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안정감을 주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고로 성도 여러분,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자신의 사역을 잘 받아들여 달라고 기도 부탁.
쉽게 말하면 목회활동을 잘 이해하고 받아주고 자신의 목회에 힘을 실어달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는 목적은 이방인 교회로부터 기쁨으로 모은 연보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전달하러 갑니다. 혹시나 가는 중에 거금을 가지고 가니 도중에서 강도같은 위험한 일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은행이 없는 터라) 힘들게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그들에게 이방교회들이 거두어 준 연보를 가지고 도움을 줄 때 만약에 이들이 유대인 자존심 때문에 자신과 이방교회들의 호의를 뿌리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루살렘교회와 이방교회와의 관계가 좋지 못하고 결국은 선교에 지장을 초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물론 바울이 본문에는 구제금을 전달하러 예루살렘에 갑니다. 구제금 전달은 자신의 사역의 한 부분입니다. 즉 목회자의 목회활동전반에 걸쳐서 성도들이 잘 받아주어서 이해해주고 동참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실 목회자가 기도하면서 생각 끝에 내어놓는 교회의 행사나 행정이 성도들이 받아 주지 않게 된다면 사실 저 역시 목회자로서 힘이 빠지고 낙심하고 불신임하는 같아서 매사 의욕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 남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목사가 뭐 그런 것 가지고 고민하고 낙심하나? 기도하면 될터인데 -- 맞아요 그것은 정답입니다. 사실 정답대로 사는 성도나 목회자가 이 땅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죄인이요 넘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일로 목회의 힘을 잃고 다른 교회로 옮기려고 기도하거나 고민하는 목회자들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은 하루하루을 그저 무기력하게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인들이 협조해 주지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고, 아예 동참하지도 않으니 말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만, 혹시나 저와 여러분들 사이에서도 제 목회가 여러 가지로 미숙하여 부족하고 혹시 이해가 가지않는 부분이 있어도 이해하며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이제 기쁨으로 나아가서 너희와 편히 쉬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32절
바울은 이 모든 일이 잘 되고 난 다음에 편히 기쁨으로 쉬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쉬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선교여정으로 바울은 사실 쉴 틈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잡히고 재판받고 호송되어 로마로 가고 가서 선교하고 다시 감옥가서 순교합니다. 그러나 안식이란 육체적으로 쉬는 것도 안식이지만 자신이 기뻐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안식인 것입니다. 잠을 자든 낚시를 하든 볼링을 하든 등산을 하든 그 어떤 취미생활을 하든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목회자도 일이 끝나면 편히 기쁘게 쉬고 싶어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쉰다고 해서 그냥 가만히 잠만 자는 것은 아닙니다. 주일오후까지 예배 잘 드리고 가정으로 돌아가면 목회자는 기쁘게 쉴 수 있어야 합니다. 육체적인 고민을 안고 잠자리에 든다면 그것이 영적인 암과 같습니다. 힘을 잃어버린 바울은 지극히 인간적인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바울은 축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입니다. 33절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입니다. 즉,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복의 근원이십니다.(창 12:3) 그리스도인들이 축복하면 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바울은 반드시 편지 서두나 끝 부분에서 성도들에게 축복을 기원합니다. 29절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 아노라. 성도는 누구를 만나든 축복을 가지고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만나기가 무섭습니다. 시비와 원망과 불평의 사람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적인 삶입니다.
결론입니다. 성도 여러분, 남을 위한 중보의 기도의 폭을 넓히시기 바랍니다. 그 중에서 특히 여러분들의 목회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목회자의 활발한 목회활동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회활동에 여러 성도들이 잘 이해하고 동참해서 주의 나라를 확장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남을 위한 기도가 넓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부족한 종입니다. 저의 육신의 구원과 목회활동이 성도들과 잘 조화를 이루어 기쁨과 안식과 축복이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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