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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9: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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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성희 목사 |
참고 : | 2002년 12월 22일 연동교회 http://www.ydpc.org |
출9장8-12, 고전1장21-25
하늘의 재와 땅의 독종
메아리의 법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깊은 산 속에 할머니와 단둘이 외롭게 살고 있는 한 소년이 하루는 할머니께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네가 미워!"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메아리도 "나는 네가 미워!"라고 흉내를 냈습니다. 더욱 화가 난 소년이 계속 외쳤더니 메아리도 질세라 더욱 큰 소리로 울려왔습니다. 이것이 메아리의 법칙입니다. 메아리의 법칙은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격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적어 내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남의 이름을 많이 적어낸 학생이 대체로 남의 미움도 많이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메아리의 법칙은 인간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시집살이 호되게 한 사람들이 며느리 형편 알텐데 며느리 보면 시집살이 더 호되게 시키지요? 이것이 인간관계에서 메아리 법칙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역을 준 도구로 고역을 준 만큼 애굽인들에게 고역을 다시 주십니다. 풀무에서 벽돌을 구워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박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노예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풀무의 재와 티끌이 그들에게 고역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독종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메아리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메아리는 무서운 형벌입니다. 애굽인들에게는 재앙입니다.
마태복음 7:12에는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고 가르치십니다.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전체를 의미합니다. 구약 전체의 핵심적 말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메아리 법칙이 구약의 핵심적 권면입니다. 여섯째 재앙은 재가 티끌이 되고 독종이 되어 애굽인들과 술객들까지 독종에 걸리게 되는 무서운 형벌이었습니다.
첫째, 모세의 이적은 하늘의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재와 티끌을 하늘을 향하여 날리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하늘을 향해 날렸습니다. 이 말씀의 주체를 보세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셨고,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따랐습니다. 모세의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늘을 향하여 날리라고 하신 것은 재앙이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의미합니다. 모세가 재앙을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입니다.
재앙이 사람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모세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 다음에 있을 우박의 재앙이나 흑암의 재앙도 보세요. 모세가 하늘을 향해 손을 높이 듦으로써 임하였습니다. 왜 모세가 손을 하늘을 향하여 높이 들었을까요? 재앙이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재앙입니다. 자연적인 재앙이 사실은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들입니다.
욥기 28:26에는 "비를 위하여 명령하시고 우뢰의 번개를 위하여 길을 정하셨음이라"고 합니다. 욥기 38:25에는 "우뢰의 번개 길을 내었으며"라고 합니다. 모든 자연 법칙이나 재앙도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님의 것들입니다. 자연의 질서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재앙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8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오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모든 것을 내가 하려고 합니다. 너무 지나치게 자신의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 하려다 안되면 그제야 하나님께 의존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에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까? 모세가 보이지 않게 되자 그들을 이끌 신을 만들자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을 이끈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이것이 불신앙입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에 왜 아홉 제자가 산아래서 한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까? 예수님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자신들의 경험과 힘에 의지하여 고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왜 우리는 고치지 못했습니까?"라고 했을 때에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힘에 의존할 때에 실패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을 때에 실패하였습니다. 말로는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하면서도 내 힘에 의존하고 내 경험에 의존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패의 이유입니다.
기도원에서 가끔 환자를 때려 죽였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왜 환자를 죽입니다. 밧줄이나 쇠사슬로 묶어놓고 몽둥이로 때려 죽였답니다. 하나님이 고치신다는 생각보다 내가 고쳐보겠다는 영웅심리가 죽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때리지 않아도 나을텐데 내 힘으로 하려고 하니 때리게 되고 죽이게 돕니다.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의 흉내를 내고 하나님을 대신하려니 이런 사고가 생깁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은 제일 싫어하십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모세가 바로 앞에서 하늘을 향하여 재를 날리라고 하십니다. 다른 때는 아론이 대신했지만 이번에는 모세가 직접 하게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늘을 향하여 날렸습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요구가 점점 강경해집니다. 하나님도 바로에 대하여 강경하게 대하십니다.
둘째, 풀무의 재가 티끌이 되어 독종을 발하게 하였습니다.
풀무에서 발생한 검댕이가 먼지가 되어 독종을 만들었습니다. 독종은 뜨거운 열을 발생하는 염증 같은 질병입니다. 통증과 열을 함께 지닌 질병입니다. 독종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쉬힌'인데 끓다, 부풀다, 터지다에서 나온 '솨한'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벌써 그 말의 의미부터가 얼마나 아픈 병이겠습니까? 성홍열, 상피병 혹은 한센씨병 같은 병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탄저열이라고 합니다. 탄저병이라고 하면 작년 미국의 911사태 이후에 미국과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 넣었던 병입니다. 상당히 치명적인 병입니다. 이런 무서운 병이 애굽 전역에 퍼진 것입니다.
독종은 욥이 받았던 고통입니다. 욥기 2:8에는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라고 합니다. 욥이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시록 16:2에는 독종이 마지막 날의 심판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며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에게 독종이 날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에 있어질 현상을 애굽에서 미리 보여 주십니다. 애굽은 이미 마지막 심판 같은 형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벌써 심판을 받고 있는지 아십니까? 왜 벽돌 굽는 용광로에서 나온 재가 독종이 됐는지 아십니까? 이 재는 애굽인이 두려워하는 악신 '튀폰'을 달래기 위해 바친 제물을 태운 재라고도 합니다. 우상을 섬긴 뒤의 찌꺼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벽돌을 굽게 하여 괴롭힌 그 대가를 이제 그 풀무에서 나온 재로 받게 합니다. 풀무의 매연 재로 애굽인을 징벌하십니다. 하나님을 대항하던 그 것이 그들에게 재앙으로 돌아옵니다.
사람들이 번성하게 되자 바벨탑을 쌓아 흩어짐을 면하게 하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고 하나님을 대항하여 탑을 쌓았습니다. 바벨탑을 쌓아 그들이 흩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흩어졌고 언어도 혼돈하게 되었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장대를 높이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장대에 자신이 매달려 죽었습니다. 그들의 행위로 그들이 재앙을 받습니다. 이것이 자승자박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호화 주택 높은 담 아래로 초라한 판잣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 판잣집 주인은 윗집과 자신을 비교하여, 가난이 죄라며 불만도 서러움도 많았습니다. 그런 판에 저택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구정물이 쏟아져 내려왔습니다. 어느 날 판잣집 주인은 저택을 찾아가 자기 집이 있는 쪽으로 구정물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사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저택 주인은 인상을 써가며 언짢은 말투로 일축했습니다. "아니,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게 마련인데 시비는 무슨 놈의 시비요?" 일순간 판잣집 주인은 저택 주인을 괘씸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 돌아와서 곧 바로 저택 정원을 향해 굴뚝을 높이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땔감만 골라서 불을 지폈습니다. 저택에선 냄새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도도하게 판잣집에 엄중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판잣집 주인은 코방귀를 뀌며 말했습니다. "아니, 그렇게도 지체 높으신 분께서 연기가 낮은 데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이치도 모르셨던가요?" 그 후 호화 주택은 냄새 때문에 견디질 못하고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지는 꼴입니다.
야고보서 2:13에는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합니다. 애굽인들은 긍휼 없는 노역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고 그들의 괴롭히는 그것으로 이제 그들이 재앙을 맞고 있습니다.
셋째, 술객들은 티끌을 만들지도 없애지도 못하고 독종이 발하였습니다.
술객들은 애굽의 지혜와 능력을 대표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처음 두 재앙은 모세를 모방하였지만 셋째 재앙 때는 모방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는 모방은커녕 독종에 걸려 모세 앞에 서지도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처럼 흉내내고 맞서는 이들이 이제는 독종에 걸려 나타나지도 못합니다.
결국 애굽의 능력자들은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 자신조차 구원할 수 없는 존재이었습니다. 인간의 힘과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잠시는 흉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인간의 한계는 드러나고 맙니다. 고린도전서 1:25에는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감히 견주거나 대항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무력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절대 맞서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맞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는 상대가 안 되는 존재입니다. 이걸 알면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사람들은 이걸 아는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모릅니다. 빨리 알수록 복입니다. 빨리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술객들은 자연현상, 마법을 통하여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이들은 진리를 왜곡하고 하나님 뜻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정죄의 대상입니다. 레위기 20:27에는 "신접한 자나 박수가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합니다. 말라기 3:5에는 "내가 술수하는 자에게 심판하러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1:8에는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2:15에는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잔꾀를 가지고 하나님처럼 행세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시고 마지막 비참한 멸망을 당하게 되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술객들이 이제는 대항도 못하고 재앙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존 템플턴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대도시의 러시아워 시간에 대형 트럭이 지하로 입구에서 꽉 끼어버리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차는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운전사는 지하로 입구와 자동차 지붕 사이에 몇 인치 정도는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입니다. 경찰이 출동하고 구경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기술자들이 차를 빼내기 위하여 궁리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한 소년이 트럭 운전사에게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아저씨 제가 차를 빼낼 방법을 가르쳐 드릴까요?" "됐다 꼬마야, 어른들이 알아서 할거다. 다친다 저리 가라" "타이어에서 공기만 빼면 돼요". 정말 어른들은 그 아이의 말을 듣고 타이어의 공기를 조금 뺐습니다. 그러자 트럭은 쉽게 빠져 나왔습니다.
하나님과 대치하는 인간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인간관계에서 대치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우리 자신이 조금만 바람을 빼면 쉽게 문제는 해결됩니다. 내 무력함을 인정하면 문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끼지 않습니다. 내 자신을 낮추면 절대로 재앙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조금만 바람을 빼면 금방 해결될 문제입니다. 그러나 너무 바람이 빵빵하여 부딪치고 끼고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진노만 삽니다. 바로는 하나님 앞에서 너무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재앙이 유난히 많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마음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소리'에서 말합니다. "혼자 치유해 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실망만 더 커질 뿐이다. 그러므로 너의 무력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네가 무력하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나님이 치유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무력함을 인정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치유하십니다. 내 무력함을 인정하는 것이 내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힘을 과시하고, 자신을 높이고, 대항하는 이것이 재앙의 원인입니다. 자신을 과시하고 높이고 대항하는 그 자체가 재앙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힘을 빼세요. 자신을 낮추세요. 내 무력함을 인정하세요. 이 때 비로소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치유됩니다.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님의 탄생 교회로 들어가는 문은 낮습니다. 모든 사람이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할 만큼 작습니다. 낮은 데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는 자는 누구나 낮아져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 예수님처럼 낮추고 낮은 자의 친구가 된다면 복된 성탄이 될 것입니다. 바람도 빼고 낮아져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낮은 자의 예수님을 만나는 성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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