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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9: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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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곽면근 목사 |
참고 : | 2010.05.02 누림교회[기침] http://www.nurim.or.kr/ |
출9장1-35
내가 너를 세웠음은
Ⅰ.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1. 히브리 사람
본문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라는 말이 창세기에는 딱 세 장면에서 여섯 번만 나오는데 출애굽기에 오면 매우 빈번하게 나옵니다. ‘히브리’라는 말의 의미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두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브르’라고 ‘건너다’라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의미는 ‘아비루’라고 당시의 하층민들, 천민들을 일컫는 용어였다고 합니다. 강대국 애굽의 태양 신의 아들 바로 앞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고아와 과부와 같은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고아와 과부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모든 인간에게 관심이 있으시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가난한 자들, 약한 자들, 낮은 자들,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이시라는 말도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들이 바로 가난한 자들이요 약한 자들이요 낮은 자들이라는 의미로서,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2. 구별하는 이유
물론 본문에는 하나님이 애굽과 이스라엘을 구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러한 구별은 절대로 차별이 아닙니다. 애굽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알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애굽과 이스라엘에게 애굽의 신들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을 비교하여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인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인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애굽은 신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신들이 애굽을 지켜 보라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사는 곳에 어려움이 임했습니다. 왜요? 애굽의 신이 애굽을 지키지 못했으니까! 히브리인들이 사는 지역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임하지 않습니다. 왜요?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이 지시키니까! 이러한 사건들, 이적들을 보면서 누가 깨달아야 합니까? 이스라엘과 애굽 사람들 모두가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하나님만이 진정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들이 무능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호받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3. 바로의 점검
오늘 본문의 다섯 번째 이적에는 바로의 독특한 행동, 바로의 그동안과는 다른 반응이 나타납니다. 7절처럼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이스라엘의 정황을 살폈다는 것입니다. 바로가 확인하고 싶어 했던 내용이 무엇일까요? 이적이 계속해서 반복되어서 바로 왕의 마음이 변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아무리 말을 해도 바로 왕이 듣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모세의 말대로 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이미 오래 동안 애굽에 살아왔고 지금 애굽에게 임하고 있는 어려움은 처음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이미 애굽에 이러한 자연현상적 어려움이 임한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바로 에게 와서 하는 말이 하나님이 그런 것을 오게 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모세가 하는 말이 하나님이 그런 것을 가게 하겠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이러한 말이 바로에게 어떻게 들리겠습니까? 어림없는 소리로 들리는 것입니다. 바로는 ‘애굽의 신들이 왜 아무 것도 하지 않는가?’를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바로 왕은 애굽의 신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바로는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이 히브리인들의 가축을 지켜주었나?’를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바로는 히브리인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가 점검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일까? ‘과연 사람이 말한 대로 되는가?’입니다. ‘과연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이 말한 대로 되는가?’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바로의 입장에서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이적이 나타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왜나하면 이러한 현상은 처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여러 번 있었던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바로의 입장에서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이적이 나타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적은 자기의 술객들도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로의 입장에서 정말로 놀라운 것은 ‘말 한 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정한 시점에 정한 방식대로 정한 이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바라고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이 말한 대로 이루어 지는가?’ 그것이었습니다.
4. 하나님의 방법
나일 강물이 피로 변하는 이적을 행할 때에는 바로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올 때 그 앞에 나아가고 행하고, 개구리 이적을 행할 때에도 바로 왕의 면전에서 행합니다. 바로 왕이 직접 보고, 애굽의 술객들도 직접 행합니다. 세 번째 이적인 티끌이 이가 되게 하는 이적도 바로 왕과 술객들 앞에서 행합니다. 이번에는 술객들이 따라하지 못합니다. 왜 바로 왕 앞에서 행할까요? 변명하지 못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개구리 이적에서 모세가 바로에게 개구리가 물러날 것을 요구하라고 말합니다. 그때 모세는 시점을 요구합니다. 개구리가 ‘언제’ 물러나도록 해 줄것이냐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왜요? 그냥 물러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증하려는 것입니다. 바로 왕이 ‘내일’ 이라고 요구를 하고 실제로 그렇게 됩니다. 무엇입니까? 이것은 자연현상이 아니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Ⅱ. 내가 너를 세웠음은
1. 바로의 역할
하나님의 목적은 바로를 죽이는 것도 아니고, 바로를 이기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 바로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는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를 통해서 무엇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로를 세웠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바로를 써 먹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바로를 하나님의 사역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바로는 대상이고 실제로 모든 사역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가 하나님을 알리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2. 백성들의 반응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기대하신 것은 20절처럼 단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들판에 우박에 내린다고 하면 내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합니까? 들판에 있는 가축을 집으로 들여보내는 것입니다. 더 이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행할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예물을 드려라, 하나님을 향하여 재산을 내 놓아라, 하나님을 위하여 신전을 지어라,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그런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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